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과 반고흐 미술관에 다녀왔다


국립Rijks 박물관museum과 판van 호흐gogh 미술관은 걸어서 10분 거리로 바로 앞에 있다. 안국역 국립현대미술관과 고궁박물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글 혹은 아모레퍼시픽 사이 거리 정도다


양과 종류에 압도된다. 너무 많다. 예술의전당 2만원 전시 하나 보는 호흡으로 다 둘러볼 수 없다. 하루를 써야한다. 언젠가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박물관이 힘을 모아 루브르처럼 쏟아지는 듯이 많은 양의 고려 불화, 조선 서화와 도자기 전시를 할 수 있을까?


항상 책에서 이미지로만 봐왔던 얀 아센 반 레이넨의 1650년경 작품 <위협받는 백조(The Threatened Swan>에 깜짝 놀랐다. 작은 프레임으로 봤을 때는 그냥 새를 잘 그렸겠구나 싶었는데 실물로 보니 화룡점정격으로, 프레임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게 아닌가. 남북조의 양승요가 반 레이넨의 전생임이 틀림없다. 그외에도 정물화 컬렉션에서 감동이 있었다. 괜히 이슬람에서 생명체 모방을 금지시킨 게 아니다. 예술가는 창조주와 마찬가지로 숭배될 가능성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이머시브 회화다.


흑백과 컬러TV를 거쳐 디지털에 4D에 올레드까지 기술이 발달했다. 앞으로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거쳐 뇌척추 인터페이스로 오감전달까지 가능하게 될테다. 인류는 자연의 선명한 재현과 사물의 정밀한 모방 그리고 감각의 온전한 전달을 향해 분투하고 있다.


한 번 유럽 미술관을 가본 사람들은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 다시 와서 더 많은 미술관을 다니겠다고 마음 먹게 된다. 그렇게 마음먹게 할 정도로 미술관 컬렉션이 참 좋다. 이전에는 왕족과 귀족과 일부 부르주아만 향유할 수 있던 문화다. 좋은 시절이다.


판 호흐 미술관에서는 고양이를 건졌다.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네. 네덜란드 친구가 추천해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녹진한 우유맛이다. 연유와 우유를 반도체 스택 쌓듯 뭉쳐놓은 저항감 있는 크림이다. 홋카이도 우유도 물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가게명은 van der linnde다



물론 지금 갔다온 것은 아니다. 6년 전 7월이다. 코로나도 겪지 않았을 시절의 이야기다. 


한국말의 선어말어미 '왔'은 과거형 표지라서 틀린 말은 아니다. 옛날에 갔다왔다는 말이다.


앞으로 자주 가고 싶다. 일단 아쉬운대로 일본, 대만, 홍콩이라도 가고 싶다.


SNS에 스친이 나고야에 갔다. "아이고야 나도 나고야 가고프다 나고야 좋아해 나도야"라고 댓글을 달았다. 라임이 좋다고, 대댓을 달아주었다. 그 메시지는 나고야로부터 온 데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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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론뮤익전에서 왜 우리는 감동을 느끼는가?


명상적이고 성찰적인 색면추상 회화로 가득했던 이강소전이 자기 독백적인 모노톤 소설이라면 


론뮤익전은 다층적 시각을 보여주는 연출방식이기에 관객들은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어도 무언가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같은 사소설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기독백적 내레이션, 멀리 나아가서는 수학자 이윤하가 쓴 <나인 폭스 갬빗>처럼 마치 한 캐릭터의 보이스톤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비슷한 색감, 비슷한 작품의 크기, 위치와 동일한 시선높이 등. 한 테마에 몰입하기에는 좋지만 다채롭다고 느껴지는 않는다. 색감이 아니라 관객경험이라는 측면에서. 그래서 다양한 레이어와 타이밍과 표현방식을 구사하는 이머시브 전시가 각광을 받는다.


그런데 디지털 스크린으로 연희문화적 한국인의 오감을 자극하는 이머시브 전시가 아닌데도 론 뮤익전의 티켓은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다. 무엇이 사람들을 환호하게 하는가? 다양한 관객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동선과 시선적인 측면에서도, 메시지 측면에서도 다양한 해석을 낳는 다층적 구조를 띠고 있다.


론 뮤익전에서 사람들은 걸리버 여행기의 릴리풋 소인의 시점으로 보았다가(누워있는 거대한 여인) 


다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토끼굴 속으로, 즉 6전시실 계단 지하로 들어간다



우리가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소인국 릴리풋 인간들이 걸리버를 바라보는 시선이 같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새로운 세계로 가듯 관객도 국립현대미술관 6전시실 지하계단으로 홀리듯 내려간다. 6전시실까지 안 가고 집에 가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앨리스 사진 출처 : https://www.lookandlearn.com/history-images/A008091/Alice-in-Wonderland-by-Lewis-Carroll


그 토끼굴에는 두 개 합쳐 1시간 분량 론 뮤익의 작업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영상에서는 마치 루시안 프로이드가 살점을 그리는 것처럼 점토로 얼굴살을 제대로 표현하기위해 이리저리 시도하는 모습이 나온다.


Lucian Freud 사진 출처 : https://www.wikiart.org/en/lucian-freud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관객들의 시선도, 저 멀리 바다 끝을 응시하는 나룻배 위 알몸의 남자도, 관객과 독대하는 거대한 론 뮤익의 자화두상도 모두 카라바죠가 그린 도마의 불신에서처럼 보기 전에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그득하다.


전시를 오기 전 SNS를 보는 우리의 표정도, 전시에 와서 짓는 우리의 표정도, 조각의 표정도 

모두 예수의 부활을 믿기 힘들어하는 도마의 표정을 닮았다.


카라바죠, 도마의 불신 incredulity of Thomas, 1602

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he_Incredulity_of_Saint_Thomas_(Caravaggio)


유럽회화에서 해골의 의미는 선명하다. 마지막 전시장에서, 이름 모를 죽음이 있었을 법한 옛 보안사 건물터에 지어진 국립현대미술관의 같은 공간에서 7m 높이에서부터 굴러 떨어지는 거대한 해골 더미와 함께 전시를 끝맺는다.


일견 론 뮤익전은 침착하고 차분하다. 그의 수도승과 같은 작업루틴과 완성되어 놓여진 정적 조각은 말을 건내지 않는다. 그러나 전시에서는 온갖 다층적 보이스가 난무한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처럼 독자의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다층적인 구조를 통해 풍자와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다. 관객이 표면적인 이야기와 더 깊은 의미를 모두 파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어디에 그런 사회적 풍자가 있냐고? 소녀의 손을 뒤에서 꽉 쥔 소년조각이나 자신에게 존재를 완전히 의탁한 베이비를 품에 안은채 무력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의 얼굴에서 문화적, 철학적 함의와 사회경제적 조건을 읽어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뒷모습 디테일



Ron Mueck. Young Couple, 2013. Mixed media, 89 x 43 x 23 cm. Private collection. Courtesy: Hauser & Wirth. Photograph: Isabella Matheus.



Ron Mueck. Woman with Shopping, 2013. Mixed media, 113 x 46 x 30 cm. Collection: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 Photograph: Isabella Matheus.
















바흐찐의 말마따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목소리가 서로 충돌하고 얽히는 다층성(다성성 폴리포니)이 읽힌다. 작품의 사이즈도 그렇고, 사이즈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형되는 관객의 시선과 위치도 그렇고, 지하굴로 들어갔다가 죽음을 만나는 동선도 그렇고,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그렇다. 그렇게 층층이 쌓인 여러 보이스가 상상력을 자극해 고작 30여 남짓 적은 수의 그냥 사람 조각일 뿐인데도 우리로 하여금 신기진기한 묘한 경험, 걸리버와 앨리스와 카라바죠와 루시안을 한꺼번에 모듬세트로 경험하게 하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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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ropac.net/news/2327-tom-sachs-space-program-infinity-dongdaemun-design-plaza-ddp/


DDP에서 톰 삭스 전을 하고 있다. 2만원은 조금 아깝고 얼리버드로 만6천원, 현대카드추가할인으로 만2천원이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도쿄에 21_21 디자인인사이트가 있다면 서울에는 DDP가 있다. 회화과 학생이 서양미술을 보러가고 동양화, 도예과 학생이 국중박을 간다면 시디과, 산디과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바로 DDP다. 패션, 섬유 등 물질문화 전반에 대한 디자인 레퍼런스를 얻기 좋다. 많은 배움이 된다.

다음은 단상이다.

1. 미국의 우주에 대한 문화적 애착을 이해해야 이 전시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미국인에게 우주는 거대한 미개척지로 17세기 신대륙 정복(Age of Exploration 탐험의 시대와 Colonial America식민지 아메리카)와 서부개척(American Westward Expansion))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전통의 계보를 잇는 집단적 낭만이다. 역사와 함께 태동해 정치외교, 사회문화를 통해 더 강화된 상상계다. 냉전시대 우주경쟁에서 발아해 아폴로 달탐사, 스타트렉, 스타워즈, 스탠리큐브릭의 오딧세이 등 스페이스 픽션, 최근에는 스페이스X와 머스크가 쏘아올린 작은 공, 곧 화성식민지까지.


유투브에는 현대카드 컬쳐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제작한 톰 삭스의 약 7시간 분량의 라이브 발사 재현 영상까지 올라와있다.

사진 캡쳐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VxXrEkeWkY0


한국인들은 보다가 끄거나 2배속으로 보겠지만, 미국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다 본다. 놀라운 일이다. 일본인이 프랑스를 낭만적으로 그린 베르사유의 장미를 스킵하지 않는 것과, 한국인이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의 대사 하나하나 곱씹는 것과 일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우주라는 상상적 세계가 미국인의 문화적 영역에 똬리를 틀고 있다. 저 멀리 영겁의 허적과 흑암의 블랙홀을 겨냥해 인류가 쏘아올리는 거대한 기계문명의 정수, 로켓이 미국인 마음의 레짐을 거버넌스하고 있다.

2.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패권국으로 성장한 미국은 20세기 중반 소련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우주 탐사를 국가적 아젠다로 삼았고 달 착륙 성공은 과학기술과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신화화되었다. 톰 삭스는 이러한 한마음 꿈을 수용하면서 직접 제작(두잇열셀f)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 공통의 몽상을 해체한다. 어떻게 해체하는가, 실제 NASA 미션은 정밀성과 완벽을 추구하지만, 이를 예술의 영역에서 재현한 톰 삭스의 스페이스 프로그램은 잭 다니엘스 위스키르 알코올 연료로 사용하고 작품에 수공의 흔적을 남기며 서툴고 불완전한 임시방편적 구조를 두드러지게 한다. 이를 통해 기술에 대한 맹목적 숭배를 비판하고 실패와 불완전성 속에서 인간성을 탐구한다. 미국적 우주 신화를 향한 헌사이자 동시에 풍자인 셈. 현대문명의 욕망과 한계를 반영하는 예술적 고찰이다.


3. 미국인의 DIY 문화는 무엇이냐. 두잇열셀f, Do-It-Yourself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DIY문화는 자기 집에서 필요한 것은 직접 제작해서 쓴다는 문화이다. 미국의 개척시대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 도구를 만들고 집을 짓는 생존 능력을 중시한 미국인은 개인주의와 자조(스스로 도움, 自助, self-help) 이념과 맞물려 미국적 문화적 기질로 자리잡았다. 자기 문제는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미국인이 많이 하는 이야기가 mind your own business, 네 일이나 신경써! 이다. 의료보험이 비싼 미국에서는 드럭스토어에는 일반 약품뿐 아니라 수술세트도 파는데 심지어 수술도 스스로 하기 때문에 수술 DIY키트가 상품성이 있다. 코맥 매카시의 2005년작을 기반으로 코엔 형제 감독이 연출하고 하비에르 바르뎀이 주연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안톤쉬거는 총상을 스스로 치료한다. 진정한 자조의 예시다.


일견 미국은 온갖 소비문화의 산실 같으나 히피와 같이 주류문화에 반기를 드는 혁명적 정신도 맥이 살아있어 DIY는 대량생산품에 대한 저항, 주류브랜드의 천편일률적인 상품에 대한 반감, 창의적 자아실현, 미국적 개인주의와 독립성의 상징으로 지속되었다. 20세기 중후반, 반체제 운동과 서브컬처의 확산 속에서 DIY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대기업 시스템에 대한 개인적 대안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톰 삭스는 이러한 미국적 DIY 전통을 현대적 우주 신화와 결합해 기술 숭배를 해체하고 인간적 결핍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 그러니 톰 삭스의 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인이 DIY를 통해 표현해온 자유, 독립, 그리고 체제에 대한 은밀한 불신을 읽어내야 한다. 톰 삭스의 우주선은 완벽을 지향하는 기술문명의 상징이 아니라 끊임없이 실패하고 다시 조립하는 인간 존재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4. 만들고자 하는 픽션을 미니어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전에 대만 북사미술관에서 본 <전투의 도시 포르모사>가 생각난다. 이전 포스팅 링크은 여기

https://blog.aladin.co.kr/797104119/16241814


이런 미니어쳐 전시에 대한 공식 해설을 번역하면 이렇다.

출처: http://www.gncmedia.com/en/exhibition/tom-sachs-space-program-infinity


An artist who reinterprets the world with handcrafted precision, Tom Sachs

Born and based in New York City, Tom Sachs is renowned for his intricate bricolage sculptures and immersive, singular worlds. Using his studio’s standard materials like plywood, foamcore, cardboard, tape and resin, Sachs meticulously recontextualizes iconic and everyday objects, from Mars rovers to teacups, to make inimitable and unforgettable works of art. His Space Programs enable viewers to experience the visceral thrill of exploring the vastness of space while venturing into a transcendental and self-reflective realm.


수공예의 정밀함으로 세상을 재해석하는 예술가, 톰 삭스

뉴욕시에서 태어나고 거주하는 톰 삭스는 정교한 브리콜라주 조각과 몰입감 넘치는 독특한 세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용하는 표준 재료인 합판, 폼코어, 판지, 테이프, 레진 등을 활용하여, 화성 탐사 로버에서 찻잔에 이르기까지 상징적이고 일상적인 물체들을 세심하게 재구성하여 독창적이고 잊을 수 없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의 '우주 프로그램'은 관객들에게 우주의 광활함을 탐험하는 본능적인 스릴을 경험하게 하면서 동시에 초월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영역으로의 여행을 제공합니다.





전체 화면 사진 캡쳐 출처 : http://www.gncmedia.com/en/exhibition/tom-sachs-space-program-infinity


5. 오사카 엑스포의 미국관에서도 우주에 관한 대대적 홍보를 하고 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360도 전면 영상에서 보여지는 로켓 발사 장면에 감동한 후기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환경, 기후위기와 연관짓고 미국이 아닌 인류의 아젠다로 확장하는 화술이 솜씨가 대단하다. 미국관과 자웅을 다투는 일본관도 우주선에 탑승한 민간임 입장에서 건담이 보호하는 식으로 우주 테마를 연결하였으되 픽션 캐릭터인 건담에 대한 정서적 애착을 강화하는 식으로 설계기획을 했다. (정세월드 유투브에서 봤다. 사진캡쳐는 정세월드 유투브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TicPlVnZPKI&t=1s


오사카 엑스포 미국관


오사카 엑스포 일본관




6. 내일 열리는 타데우스 로팍의 톰 삭스전은 피카소와의 관련성이고 DDP와 언뜻 관련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톰 삭스의 미학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타데우스 로팍의 톰 삭스전에 관한 이전 포스팅 링크느 여기

https://blog.aladin.co.kr/797104119/16365109


예를 들어 DDP에는




정육점 소년 달 암석 샘플  Butcher Boy Moon Rock Sample이라는 작품이 있다. 

암석채취 및 시료분석 과정을 미학적으로 패러디한 작품이다.과학적 프로세스의 미학적 렌더링이다.


나사에서 달 표본을 채취하는 정밀하고 엄격한 프로세스를 부정확하고 대충대충인 인간적 방식으로 바꾸었다.

과학 실험실의 최신식 고급장비가 아니라 정육점에서 고기 다루듯 조악하게 달 표본 샘플을 다룬다.


그러니 일견 진짜 암석채취 및 시료분석처럼 보여도 사실은 DIY 과정이다.

정밀한 실험식 과학에 대한 인간의 확신과 그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흉내 내려는 인간적 서투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통해 인간의 기술 숭배+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인 DIY정신+실패와 노력의 미학을 주제로 삼았다.


제목이 "정육점 소년"인 이유가 있다.

오랜 기간 전문 트레이닝을 받은 전문 우주과학자가 아닌

쟁기로 밭가는 농촌 마을에 사는 일개 정육점 소년이 연구하는 달 암석이란?

마치 의사가 아닌 상처 입은 개인이 마트 수술키트로 스스로 마취하고 환부를 도리고 째고 봉합하는 것과 비슷한 것



이런 부분은 타데우스 로팍에서 볼 수 있는 톰 삭스 작품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7.

매 세대는 기성 질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갈망한다. 

어린이는 어른을 피해 숨을 놀이터를 찾아 숲과 계곡을 쏘다니고, 

청년은 나만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경계를 넘어 이동한다. 

기득권이 굳건한 세상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주연인 새로운 무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신대륙 개척은 이러한 탈출 본능의 대표적 사례였으며, 이후에도 사람들은 만주로, 알래스카와 남극, 북극, 히말라야, 안데스 산맥으로 끊임없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탐험은 지리적 공간을 넘어 영화 속 세계로, 다시 디지털 가상 세계, 메타버스로 이동했다. 인간은 달 식민지와 화성 식민지로 리브랜딩한 우주에서 나만의 세계를 꿈꾼다. 톰 삭스의 작업은 바로 이 오랜 탈출의 충동과 그 끝에 소록소록 남은 낭만과 허무를 동시에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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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다루기 연습 - 내일이 걱정되어 잠들지 못하는 나에게
김지언.노영은 지음 / 리드앤두(READNDO)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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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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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로모션 상품을 보면

시판소스를 조립해서 만들고 새롭다고 홍보한다

대표적으로 맥도날드 투움바

투움바소스+맥머핀

투움바소스+치킨버거


편의점에서 이런 조합이 많다

흑임자+, 피스타치오+, 두바이+

스테비아를 넣어서 칼로리 제로라고 홍보하는 제품이 대표적

제로 중 가장 괜찮은 것은 펩시제로라임이고

가장 망한 것은 팔도비빔면 제로다


화학식 만들 듯이 상품을 만든다

과학가설이 그렇듯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적절하지 않기도 하다


예를 들어 민트김치찜(둘 다 화한 느낌)

매운 아이스크림 라면(우유푼 로제소스를 즉석제작)

초코짜장볶음(검다고 다 같은게 아님)


에드워드리 미나리막걸리는 괜찮았고

소맥에 이어 막맥도 슬슬 시동 걸리는 것 같다


도수가 높고 깔끔한 증류주인 소주에

부드럽고 향이 풍부한 발효주인 맥주를 섞는 조합은 보완적이다

ex)삼겹살(차분한 돼지)+소주(과격한 증류)

치킨(과격한 닭)+맥주(차분한 보리)


막맥은 둘 다 발효주라 강점을 뾰족하게 하는지라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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