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 갤러리은에 다녀왔다
1층은 금은회전, 2층은 작품분석전이다
국가무형유산 불화장 보유자와 이수자와 전수자들의
전남 구례 천은사 아미타후불도의 작품분석 스터디작
음악으로 치면 에뛰드(불어로 스터디, 습작이라는 뜻)같은 느낌이다
자차로 접근해야하는 도시 외곽 미술관이 상하반기 나누어 1년에 2-3번 전시를 한다면 인사같이 유동인구가 많은 핵심 미술지역은 1주일 단위로 바뀐다.같은 한국이지만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찾아오는 사람의 규모에 따라 공간의 밀도와 운영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시성의 비동시성. 사실상 매주 방문해야할 정도다.


언뜻 스님 뒷모습을 그린 같은 그림처럼보인다. 제목은 사리불존자, 하나는 스님이 그린 것이고 하나는 강금채 전수자의 그림이다. 스님이 그린 전자은 가사의 금박이 강조되어있고, 후광에 금박, 원의 윤곽이 더 선명하지만 옷은 더 짙은 남청색에 음영은 강조되어 있지 않고 울은 한지가 그림을 가로질러 수평으로 나있다. 尊에서 보이는 한자의 갓이나 삐침에서 조금 더 한자서예에 능숙한 부분이 보인다. 한편 전수자가 그린 후자는 옷 매무새와 주름의 음영을 강조했고 울은 한지가 가사부분에 수직으로 나있다. 이처럼 같은 그림을 표현해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작품을 보면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등의 서양화를 한국화로 표현하기도, 뒷다리 들고 일어나서 떡방아 찧는 조선 달토끼와 현대적 캐릭터도, 단청빨간색 현수교 위에 걸려있는 일월오봉도도 보인다. 현수교는 케이블로 지탱하는 서스펜션 브릿지로, 일본 한자 懸垂켄스이가 턱걸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책가도의 원근법은 정밀한 수학적 원리에 바탕을 두지 않고 소실점이 다중으로 잡혀있는 유사 원근법인데 르네상스 기법을 직접 서양인에게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청나라 그림을 보고 건너서 접했기 때문이다. 이 책가도는 조선의 분더캄머 같은 것으로 이해되기도, 자랑삼아 전시된 수입품과 문방구 등에서 선비문화와 동시에 물질문화의 융성을 보여주기도 해서 조선후기미술을 논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언급된다.
최근 한국화전시에서는 책가도의 원근법을 바로잡기도, 혹은 더 많은 레이어를 추가하기도, 더 좋은 재료를 써서 더 좋은 색감을 주기도 하는 등 현대한국화가들의 시도가 보인다. 아울러 360도로 회전시킨 부채도 흥미로웠다.
한국화의 기법으로 서양을 표현하는 하이브리드 시대. 옛날에는 형식과 내용이 일치했던 시대가 있었다. 과거에는 동양화는 먹과 종이로 한국적 풍경이나 추상화나 수묵화를 그렸고 서양화는 유화로 정물화를 조소는 나무, 돌, 청동등으로 입체를, 공예는 도자, 목공 등으로 장식이나 일상용품을 만들었다. 각 장르를 대변하는 학과가 매체, 기법, 내용면에서 거의 고정된 일치를 보였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시대가 되면서 동양화로 서양도시풍경도, 서양화로 불교나 농촌모습도, 유화로 설화를, 분토나 조각성을 살려 마티에르감을 살리기도, 수공예대신 디지털, 가변구조물, 영상사운드같은 설치예술로 전환하기도 하면서 이런 기법은 이런 내용을 담는다, 이런 학과에선 이런 그림을 그린다는 공식이 깨졌다
형식과 의미의 일치가 깨지는 해체주의적 경향이 강화되면서 의미생산구조와 작가의 마음의 레짐도 바뀐다. 시서화 등 전통예술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던 단순한 장식품이 예술이 되어 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하고, 작가도 이제 한 가지 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하고 싶은 내용에 따라 기법을 새로 배우기도 한다. 이전에는 대학에 설치된 학과에 진학하거나 기술 보유자에게 가야만 특정 기법을 배울 수 있었다면 지금은 과거보다는 학습의 경로가 다양해졌다. 덕분에 작가들은 표현방법에 있어 가일층 자유도가 높아졌는데 자유의 댓가는 골치아픔이다. 나는 무엇을 표현해야할 것인가?
이전에는 한 가지 예술형식에 기대되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이제는 예술표현이 감각의 조건과 의미의 구성을 재구성하고 조정하는데까지 나아갔다. 예술은 감각 자체를 조율하고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게 되었다. 경계의 해체가 재맥락화되면서 형식에 담긴 의미를 훨씬 더 풍성하게 담아야하는 필요성이 생겼고 아티스트의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