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시립미술관에 다녀왔다
수원 앞 행리단길의 바이브는 심상치 않다. 대학생 커플, 영 패피, 퇴근한 디자이너, 백인 투어리스트, 국제 커플, 반려견 산책자, 아티스트가 모두 함께 정조의 못 다 이룬 수도 이전의 꿈 앞에서 걸어다니고 있다. 정조의 세종시, 행궁 앞 잔디밭과 큰 광장을 두고 뒤로 뻗어 있는 골목에 프랜차이즈 하나 없이 갖가지 힙한 음식점과 까페가 적벽돌의 주택가와 함께 줄지어 있다. 초창기 홍대의 느낌이다. 프로 혼술러 홍탕이 좋아할 법한 빈티지 바도 보인다. 타르틴에 진심인 포피코가 좋아할만한 수제 베이커리에서 향기와 앰비언스가 흘러나온다. 흥흥킁킁 두둠칫두둥 뭉게뭉게 예에에에 후청각을 사정없이 때린다. 시각을 자극하는 미술관 이후의 또 다른 후청각을 자극하는 미술관이다. 나는 가끔 청담 한류스타의 거리, 백화점 1층, 아울렛 프레시푸드, 스낵코너를 보면서 이런 풍경도 시각을 충분히 자극한다는 점에서 전시장의 주말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과 상품이 경합구도에 있다는 말이다.
수원시립 갔다 온 사람들이 올린 사진은 대부분 입구 DIY 지하철 모델(DDP 톰삭스가 생각난다)과 상업팝아트 설치작품 위주의 1, 2전시실 사진일 거다. 이유가 있다. 3전시실의 퀴어, 노인의 성 영상은 인스타그래머블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노인의 사랑과 성생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쉬쉬하고 있을 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마지막 부분도 엄마의 딴남자(합의하 상호불륜?)에 대해 에둘러 언급만했는데도 2008년에 대중의 거부감이 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필름 지원, 소준문 감독의 저예산 영화 <빛나는 순간>에서 고두심 배우는 40살 어린 경훈(지현우 분)과 설레는 사랑을 느끼고 키스를 하는데, 이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노년여성의 사랑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하지만 3전시실의 이 영상은 순애보다는 훨씬 나아갔기 때문에 포스팅되고 널리 바이럴될 가능성은 없을 거다.
그나마 그 옆의 자본주의적 예술을 비판하며 돈대신 그림으로 값을 받는 커피집 설치예술은 인스타 포스팅으로 오케이다.노동테마는 군사주의 정권때는 타부였으나 민주주의 흐름이 진행되면서 주류의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대부분 국공립미술관 전시에서 보면 심리, AI, 노동, 여성, 퀴어 같은 동시대 예술의 담론을 터치하고 있다. 이번 수원시립은 외국의 이름을 빌렸다.
신기한 포인트. 남다현 작가의 영어이름은 남다훈dahoon으로 되어있다. 김가람의 분더캄머 프린팅의 이쁜 여자는 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있다. 클레어 퐁텐의 예술권위를 비판하는 작품은 광고판 하나 밖에 없다. 안드레아 프레이저의 89, 91년 영상이 재밌는데 아무도 앉아서 도합 1시간 보지 않는다. <뮤지엄 하이라이트:갤러리 토크>(1989)와 <웰컴 투 워즈워스: 뮤지엄 투어>(1991)
미드웨스턴 억양의 수준 높은 영어를 하다가 갑자기 톤다운되기도 하고, 대니얼의 가족 초상화를 다 읊으며 나열하기도 하며 만담같은 재미도 주고, 청산유수같이 말하다가 자기 가족 이야기가 나오거나 근처 지역치안이나 상관없는 작품을 소개하는 등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할머니들 이야기 듣는 것 같아 재미있다. 갤러리토크나 도슨트투어라고 하면 정형화된 루트에 정해진 대본에 따라 말을 하기 마련인데 그렇게 안하는데서 흥미와 웃음이 유발된다는 뜻. 톤다운에 대해서는 이런 뜻이다. 발리우드 영화에서 후궁이 지체높은 왕족처럼 힌디어를 하다가 넘어지려는 순간 당황해서 갑자기 사투리가 튀어나와 취집(?)으로 가려져있던 하층 출생신분이 드러나고 관객은 이 부분에서 깔깔대며 웃는다. 아마 지금 종영되었나, 개그콘서트에서 잠깐 봉숭아학당 리부팅시킬 때 김지민 개그맨이 졸부 여자 캐릭터 싼티나를 분하면서 디질뻔했네!, 아니 고인이 될뻔 했네 하면서 말을 수정한다. 동일한 표현이지만 사회계층적에서 다르게 표현하는 말들. 이런 언뜻 드러나는 부분을 꼬집으며 웃음의 소재로 삼았다. 이런 부분이 안드레아스 프레이저의 두 영상에서 읽힌다.
김지민 싼티나: https://www.youtube.com/watch?v=vJOO2UCCRYE
미드웨스턴 억양은 지금은 미국할머니들 말씨인데, 마지막에 악센트를 주면서 피치가 떨어진다. 영상을 다 봤다면 제인 캐슬톤이 누군지 모를 수 없다. 로마 아이 조각상을 근육질의 남성이라고, 로마 엄마를 미국 엄마라고 약을 파는 모습을 모를리 없다. 마치 구민준 편집자가 편집한 둔색환시행을 봤다면 밤이 끝나는 곳을 모를 수가 없고, 요루 핫츠루 토코로를 읽었다면 소리 지르는 가즈에를 포함한 세 엄마에게서 유곽에서 자라난 아이가 사실 선대 황제의 자식이었다는 점을 모를 수가 없다. 무슨 말이냐. 전시든 영화든 책이든 실제로 봐야지만 아는 게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정당한 학습없이 다들 변죽만 울린다. 어이없는 일이고, 그래서는 안되는데 사회적으로 만연하다.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 모르면 모르고, 알면 아는 것인데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 훑은 것은 훑은 것이고 공부한 게 아닌데 제목이나 출판사 소개나 아랫사람이 정리한 브리핑정리 훑어놓고 다 아는 척 한다. 진국은 그것을 시간을 들여 읽고 본 사람의 글에서만 나온다. 그런 글은 스크래핑으로 잘 안 읽히고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함정.
사진은 공식사이트도 볼 수 있고 SNS에서 검색가능!
알라딘이 이미지 넣기가 하나씩 해야해서 좀 번거롭고 시간이 걸려서 일단 오늘은 무리
https://suma.suwon.go.kr/exhi/current_view.do?lang=ko&ge_idx=1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