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에 다녀왔다
무슨 화장이지? 장례인가? 화정박물관과 뭐가 다르지? 원래 영화도 트레일러 안 보고 보는 지라 아무 생각 없이 갔다. 화장은 코스메틱스였다.

화장이라는 문화를 중심으로 상고, 삼국, 신라, 고려, 조서, 근대의 역사를 두드리며 건넌다. 주로 옛 화장용품 보관용 작은 도자기류를 전시하고 있었고 윗층은 옛 포장지인 보자기 특별전이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팥가루와 녹두가루로 손을 씻었다는데 실제로 화장실에도 비치되어있었다. 당연히 현대 비누가 낫지만 특이한 경험이다. 가루의 사용으로 인해 6층에서 내려가는 하수관이 막힐 수도 있을 것 같다.

김기창의 그림에 거울 보는 여인이 있고 옛 그림에 표현된 여자 눈썹표현이 재밌다.


실제 은장도를 보니 너무 작아서 위급상황에 호신용 전기충격기처럼 남을 찌를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은장도로 자결하거나 치한을 공격하는 클리셰가 픽션에 많다)

근현대사 공부할 때 교과서에 나온 박가분도 보인다.


큰 도자기 안에 작은 도자기 합 여러 개를 보관하는 러시아 마트로슈카 인형같은 도자기가 있다. 기초화장용, 파우더용 등 각기 다른 기능 분가루를 각기 다른 합에 보관하고 이것들을 큰 합 안에 넣은 것이다. 이름은 청자상감 모자합. 영어로는 상감inlaid 청자celadon을 살리고 모자(엄마자식 母子)를 빼고 화장 케이스 cosmetic cases를 넣어 의미를 명확히 전달했다. 원어와 외국어를 동시에 해야하는 이유는 각기 다른 정보와 뉘앙스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한국어 어미모 자식자로 모자합이라고 했을 때는 엄마가 자식을 품듯 큰 도자기가 작은 도자기 여럿을 너른 가슴에 품는 느낌이다. 일본어에는 닭고기와 달걀을 넣어 먹는 오야꼬동이 있는데 그 한자는 친자親子+덮밥丼이다. 자세히 생각하면 끔찍하다.


끔찍한 생각말고 좋은 생각 착한 생각 해보자 심호흡하고! 가장 흥미로웠더 부분은 코리아나 화장품회사의 1분짜리 광고를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보는 것이었다.
채시라가 92년부터 06년까지 15년 전속모델이었다. 이후 전지현, 정우성, 김민희, 비, 이연희, 김민정, 김남주, 한혜진, 서인영 등으로 모델이 바뀐다.


확실히 채시라는 코리아나의 대표간판격이었고, 지금 50대 이상 여성인구의 장기기억에 잘 남아있을 것이다.
광고를 시계열적으로 보면 미의 기준의 변화에 따른 사회변화가 보인다. 광고는 해당 시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진 시각적 메시지이다. 광고의 변천은 사회문화의 변화를 읽는 것과 같다.
초기 광고에선 화장품을 쓰는 채시라의 아름다움을 광고했다. 94년까지는 프랑스어 노래도 들리고 외국인도 보이고 마치 디즈니 판타지와 같이 깨끗하고 순수한 세계를 강조했다. 정보보다는 이미지를 전달한 것이다.
화장품을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화장시간이 매일 일상생활의 루틴으로 들어오고 화장품의 가짓 수도 많아지자 어떤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낫다는 기능을 강조하게 된다. 라이벌 회사와의 차별화된 브랜딩도 보인다.
채시라도 세월을 어쩌지 못해 늙어가며 젊은 여배우를 기용한다. 그러나 투트랙으로 채시라는 중장년여성위주를 타겟팅한 화장품 광고용 이미지로 쓰인다. 그러다가 05년을 지나 채시라가 사라진다. (박물관 광고영상 내에 한정)

00년 밀레니얼 세대이후로 얼굴이 서구적이고 스타일은 당돌해진다. 자기 PR과 아이덴티티에 주목한다. 그 이전 세대가 조선적이고 순응적으로 보일 정도다.



정우성이 화장품 모델로 나왔을 때는 아마 논란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화장품광고를 했으니까. 젊은 남성을 새로운 소비집단으로 유치하고자하는 목표였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아름답고 잘생기다고 여기는가, 에 그 사회문화적 특성이 보인다.
그리고 생각보다 미인미남은 빠르게 촌스러워진다.
헤어스타일, 화장법, 패션 모두 내년이면 달라진다.
벚꽃은 매년 같은 옷을 입어도 아름다운데 사람은 유행따라 매년 다르게 입지 않으면 후줄그레해보인다.
화장법도 예쁘다고 생각하는 스타일과 바르는 순서가 한국과 외국에서 각기 다르다. 그래서 한국인이 외국에 유학하면 다른 화장법을 써야하는 경우도 있다. 여행유투버로 유명한 원지는 여성으로서 차별화를 위해 해외 각국 여행시 거금을 들여 뷰티샵에서 메이컵을 받는다고 한다. 세계마블편에 오드리햅번처럼 해달라고 했더니 너무 진하게 해서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매우 만족하지만 동양인 원지는 모르겠다 어색하다는 반응이다. 그만큼 각국의 미의 기준이 다르다.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covk6_m3RXo
아름다워 지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다. 하지만 '어떻게' 아름다워질 것인가? 는 사람마다 세대마다 사회마다 다르다. 기의는 같은데 기표는 다르다. 시스템과 프레임은 같은데 안의 내용물과 콘텐츠가 다르다. 따라서 뷰티업계는 쉬우면서도 쉽지 않다.
가장 장시간 화장품 모델을 해서 기네스북에 올라간 채시라와 함께 코리아나는 길었던 호황기를 지나 05년 후 본격적인 세계화 시대가 되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단위로 모델이 자주 교체된다. 이 시기는 아마 글로벌시장 정복에 성공하 아모레퍼시픽에게 밀리는 시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코리아나는 머드팩, 한방화장품 등 신토불이를 기수 삼아 90년대를 호령했지만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
돈을 많이 벌고 1등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분명 진입이 늦어 자본도 기술도 인력도 부족한 기업이 기존 업계의 강자을 누르고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뒤늦게 시작한 자가 굴러들어와 박힌 돌을 어떻게 빼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정말 기업의 잘못일까? 기존에 승리했던 전략을 고수하면서 기술을 정밀화, 자동화하고 더 많은 유통망을 장악하는게 나쁜 것일까? 원래 내 제품 좋아하던 사람들이 다른 제품 좋아하는 걸 배신이라고 여겨야할까? 떠나는 소비자의 마음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왜 한 기업과 함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걸까?
우리는 니시마켓과 블루오션을 파악하는 영민한 통찰력 그리고 혁신과 트렌드 선도의 중요성에 대해 쉽게 말한다.
금메달을 빼앗기지 않으며 방어전에 성공하는 챔피언의 지속력과 인내심 그리고 불안함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고 우리가 알던 자유주의 세계화시대가 저물어 각국이 벽을 쌓는 중세시대가 되면
어쩌면 코리아나도 재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