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네 개의 전시 작품을 겹쳐보자
시간적으로 2개는 상설, 하나는 작년 2024년, 하나는 2025년 현재진행중
공간적으로 전남, 북서울, 남서울이다.
2. 전남도립미술관 지하1층 상설
서도호, Stove, Apartment A, 348 West 22nd St., NY, NY 10011, USA, 2013
폴리에스테르 천, 스테인리스 철사, 유리 진열장, LED 조명



성북동 화정미술관 1층 상설 현대미술
서도호, Hub, 260-10 성북동, 성북구, 서울, 한국, 2016
폴리에스터 패브릭과 스테인리스 스틸

남서울미술관
SeMA 옴니버스 《제9행성》
20240731-20241027
정승, Landscaping a Machine, 펠트, 스티로폼, 손 자수 실, 가변설치, 2013



서울대미술관
무기세 (武器世)
2025년 02월 06일 - 2025년 05월 04일
허보리, 부드러운 K9, 양복, 이불솜, 실, 바느질, 앵글프레임, 2020


3. 작품 모두 원래 단단하고 딱딱한 물건을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물성으로 치환했다는 특징이 있다.
단단한 스토브, 철제 탱크와 자동차, 콘크리트 건물처럼 원래는 무게와 강성을 지닌 사물들이 부드러운 천과 패브릭으로 재탄생했다. 재료적 치환을 통해 익숙한 사물의 감각을 뒤흔드는 시각적 트릭이자 촉각적 전복이다. 머릿속에서 딱딱한 금속과 콘크리트의 차가운 감촉이 떠오르지만 동시에 패브릭의 말랑하고 흐물거리는 질감이 상상되어 낯선 긴장과 충돌을 일으킨다.
정승 작가의 펠트천으로 만든 자동차는 아예 분해되어 전시장에 분산 설치되었다. 파편화된 자동차 부품은 분절된 개인의 노동을 상징하고 쿠션은 노동 후 휴식을 의미한다. 허보리 작가의 양복 천으로 만든 탱크와 소총은 남성 양복으로 만들어져 전쟁의 남성성을 비판하는 동시에 폭력적인인 무기를 무력화시킨다. 한국에서 출생해 영미에서 활동한 서도호 작가는 뉴욕과 성북동의 기억이 묻은 장소특정적 작품을 만들어 자신의 이주 경험과 공간 기억을 작품 속에 녹여낸다. 개인적 네러티브를 특정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장소가 지닌 역사성과 의미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작품이 된다. 부드러운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따뜻하고 편안했던 장소에 대한 기억을 물리적으로 구현하였다.
중력의 무게감이 있는 원본과 팔랑팔랑한 느낌의 재현이 서로 충돌하며 감각의 교란이 일어난다. 경직된 것과 유연한 것, 위협적인 것과 무해한 것 사이의 긴장을 통해 우리는 익숙함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촉각적 사고를 경험하고 사물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이러한 낯설게 보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해함이다. 본래는 산업사회의 거칠고 차가운 외면과 냉혹한 기능성을 지닌 사물들이 폭신폭신하고 포근한 표면을 변하면서 위협의 기세가 사라진다. 탱크나 자동차 같은 전쟁, 기술진보와 산업화의 상징을 천으로 덮었을 때 전혀 다른 의미망이 생성된다. 권력과 폭력이 연상되던 물체가 몽글몽글하고 완만해져서 유순함을 획득한다. 유년기의 유연한 쿠션 장난감처럼 느껴진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혼란한 외부세계의 위협으로부터 피신해 자기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들이 추구하는 무해함을 반영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마치 갑각류의 딱딱한 외골격이 아니라 말랑한 연체동물의 유연한 신체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거친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게처럼 날선 집게다리를 가지고 전투적으로 남을 위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달팽이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존재하고 싶은 자들의 욕망이 무해함이다. 거친 현실과 대조되는 무해한 연성은 일종의 자기 위안 같은 방어 기제처럼 작용하기도 하며, 사물의 본질이 어떻게 고정된 인식틀 안에서 해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겹쳐 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촉각적 언어를 통해 사물과 감각을 다시 정의하는 접근 방식이다. 보통 우리는 시각적 경험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지만, 이 작업은 촉각적 경험을 소환해 시각적으로 환기시키고 기존의 감각적 위계를 무너뜨린다. 아울러 안전과 위안을 제공하는 무해함과 부드러움을 통해 무겁고 위압적인 존재를 친숙하고 가벼운 것으로 바꾸고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받아들이는 사물의 속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