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VIOUS : IMAGINE

2025.3.8-5.3




1. 원래 오늘 인사동에 갈 계획이 없었다. 성북으로 가는 길에 신문을 읽는데 흥미로운 전시 소개가 있어서


성북동을 빠르게 돌고 중간에 시간을 내어 인사동 선화랑에 방문했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5/03/21/JCCGC473LNAKDPH2IQHYJYECDQ/

AI가 머릿속을 읽고 그린 그림… 우리의 상상은 '작품'이 됩니다

佛 3인조 AI 창작 집단 '오비어스' 국내 첫 전시


2018년 10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인공지능(AI)이 그린 초상화 ‘벨라미가(家)의 에드몽’이 43만2500달러(당시 환율로 약 5억원)에 낙찰됐다. 예상가를 40배 이상 뛰어넘은 가격에 미술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중략)


오비어스의 작품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이 ‘초현실주의의 새로운 지평: IMAGINE’. 인간의 무의식과 AI를 결합해 만든 풍경화와 초상화 등 28점을 선보인다. 오비어스가 파리 브레인 연구소(ICM)와 함께 개발한 ‘마음에서 이미지로(Mind-to-image)’라는 기술을 사용해 만들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들은 “AI가 인간의 뇌 속을 들여다보고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오비어스 작가 3명이 각각 MRI 기계에 들어가서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를 상상하면, 생체 신호를 기반으로 AI가 뇌 안을 들여다본 것처럼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2. 물론 예기치 못한 일정 변경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계획에 언제나 약간의 여백을 두는 게 좋다. 스케쥴의 쉼표는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문장의 호흡을 살리는 숨비소리다.


일분 일초라도 허비하지 않게다는 일념으로 중무장한 빡빡한 여행.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A점에서 B점으로 최적의 경로만을 따라 이동하는 일정 보다는


큰 틀에서 버킷리스트를 정하되 발 길 닿는대로 흐르며 여행지에서 알게 된 플레이스를 찾아나가고 우연히 마주치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여행이 더 값진 것 같다.





MRI와 뇌파로 만든 예술이라니? 


마르셸 뒤샹급으로 올라선 것인가?


마르셸 뒤샹은 철학자이자 선언가였다. 유럽회화 같은 장인정신은 없다. 작품의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공장에 의뢰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데미언 허스트를 지나 그 아이디어를 더 시도하고 발전시킨 가장 최전선은 오비어스인듯하다.


LLM 모델을 디자인해 자동글쓰기로 만든 초현실주의 문장을 되뇌이는 작가들이 MRI 장치 안에 들어가 만든 뇌파를 시각화해서 디지털 프린팅까지 하다니.


1) 초현실주의라는 기존 예술사조에 기대고 (선례)

2) 대충 AI한테 그려줘!하고 마법봉을 휘두른게 아니라, 알고리즘을 디자인하고 MRI에 사람이 들어가 뇌파를 측정하며 창작과정에서 인간의 기획과 노력이 들어갔으며 (노력)

3) 디지털이미지를 물성을 지닌 예술작품으로 보여주고, 그 디지털 인쇄기법 인증도 받았으며 (물성)

4) 무엇보다, 인간의 뇌파를 MRI로 단순히 수동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MRI 속에서 특정 문구를 되뇌며 상상할 때 발생하는 뇌파를 기록함으로써, 입력 → 출력의 수동적 과정이 아닌 ‘출력 → 입력’의 역방향 흐름을 보여준 것이다. (혁신)


기존에 있던 기술과 매커니즘을 창의적으로 활용해서 아트앤테크놀로지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예쁘고 보기 좋냐? 는 아니다. 신기하다? 는 맞다. 창작과정을 감안했을 때 독특하고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이 보인다.







캡션을 읽어보면 자동글쓰기로 만든 초현실주의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을 읊으면서 MRI에 들어가 발생한 뇌파를 기록하고 모아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기법으로 바탕으로 만든 아래 그림에 내장? 우물? 같은 느낌이 보이는 것 같다.




이것은 라벤더 언덕이다.



이것은 구름, 두 갈래로 갈라진 하늘





3. 사진의 등장으로 초상화 그리던 사람은 일거리가 없어졌다. 그러나 회화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매년 미술학원에서 드로잉을 배우고 회화과에서 수천 명의 학생이 졸업하며, 회화작품이 여전히 거래되고 감상된다. 그저 다른 플레이어가 생긴 것일 뿐이다. 초기 흑백 사진은 유화의 다채로운 분위기를 전혀 살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비싼 초상화 가격을 감당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 수요를 감당해줬다.

FSC(풀 서비스 캐리어)에 LCC(로우 코스트 캐리어, 저가형 항공사)가 등장해서 FSC가 망한게 아니라, 다른 형태의 철학과 사업전략을 추구하게 되었다. 기존에 한 클러스터로 존재하던 업계가 다층화, 분화되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여러 선택지가 생긴다.  기내식과 기타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이코노미석으로 빠르게 이동하면 그만일 뿐인 사람들의 니즈를 LCC가 채워주었다.

스타벅스와 이디야도 비슷한 관계다. 이십 년 전쯤 스타벅스에서는 그란데를 판다는 어느 일본인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이후 스타벅스는 분위기를 파는 것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몇 년 전에는 어떤 책에서 이디야는 스타벅스가 입점을 내는 곳 옆에만 내서 저가 수요를 감당해준다는 코멘트를 읽은 적이 있다. 이디야를 지나 이제 MGC, 메가, 백다방의 시대다.

제주항공을 지나 에어 프레미아, 에어 서울, 에어 부산, 진에어 다 그런 것이었다.


흑백 사진, LCC, 이디야 모두 저가형 모델로 시장의 하방 수요를 흡수한다.


AI 미드저니의 등장으로 영화인들이 긴장한다. 비슷할 거라고 본다. 하방에서 수요를 확보한다. 그럼 기존 비즈니스는? 고급화로 간다. 정말 영화다운 영화, 인간성과 인간사회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보여주어 시네필을 만족시키는 영화'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럼 이제 천만관객을 논하는 시대가 아니게 된다. 데이트 관례라서 의무적으로, 혹은 킬링타임용으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줄어든다. 영화티켓 가격이면 1달에 OTT에 수 천 편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원래 영화관을 가던 사람들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몇 달 기다려서 넷플에 풀리기까지 기다린다. 얼마나 많은지. 작년만해도 탈주, 아마존활명수, 보고타, 베테랑2, 한국이싫어서, 파일럿, 탈출, 원더랜드 등등 나는 다 영화관에서 봤는데 어느새 넷플에 올라와있었다. 영화관만 주는 느낌도 분명이 있지만, 그것을 관객에게 그래야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방 수요가 빠지며 절대적인 영화관객 숫자는 줄어들 것이다. 집에서 OTT로 영화보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늘어나겠다. 드라마도, 그러나 아마 첫 회만. 뒤로 갈수록 별로인 드라마가 너무 많기 때문. 나도 많이 참고 많이 속았지만 그래도 꾸역 꾸역 완결은 봤지만, 드라마, 쉽지 않다.


이 전시 작품은 징후적이다. 영상 양산 시대를 예고하는 것 같다.

AI 미드저니 + 자동글쓰기 + LLM의 영상산업화는 적당히 킬링타임용으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제작해주는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한다.

물론 유투브 영상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주인공이 내가 아니다. 남의 영상물이다. '내'가 주인공인 영상.

사람이 상상한 뇌파를 MRI를 거쳐 입력해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출력의 단계까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MRI를 뇌파의 수동적 기록장치로 정의하지 않고 입력자의 뇌파를 발산하는 창구로 썼다는 아이디어에 혁신성이 숨겨져있다.


LCC처럼. 사진처럼. 이디야처럼. 그냥 적당히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내가 양산형 웹소설 주인공인 적당한 영화를 만들어주는 식으로. 누구나 자기 생각이 시각화되는 현실을 보고 싶지 않을까? 특히 소외층이라면 더더욱.


일본의 <소드 아트 온라인>같은 라노벨과 한국의 <로그인 무림>같은 웹툰에서 

이미 뇌파감지VR기기를 이용해 다른 판타지 세계를 살아가는 네러티브를 다룬 적 있다.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도 최근에는 넷플 애니 <사이버펑크>도 이런 비슷한 설정에 기반했다.


뉴럴링크, 뇌-척추 인터페이스까지 기술적으로 완성되고, 

AI 로봇으로 인해 노동이 필요없게 되며

거대기업에 부가 집중되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기본소득을 받겠다는 서민들의 사회적 합의까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아마 현실 대신 판타지 세계에서 사는 것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예를 들어 이런 상황도 상상해볼 수 있을테다

LGBTQ인 부모가 라떼는 사람을 사랑했는데

왜 너희 신세대들은 만질 수 없는 가상인물을 사랑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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