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초구 신원동,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있는 오디움이다.
작년 2024년 6월 처음에 개관할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예약이 쉽지 않아서 번번히 실패하다가 최근에 다녀왔다.
나이들어 살기 좋은 고즈넉하고 살기 좋은 동네다. 고도제한 때문인지 평균적으로 아파트의 크기가 낮아 위압적이지 않고 편안하다. 청계산과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온화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 쿠마겐고가 설계했다라든지, 500억원을 들였다라든지, 이런 정보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시한 이야기는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 이런 피상적인 정보들이 이곳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오디움에서는 도슨트의 안내를 따라 이동해야한다. 따라서 개별적으로 작품 설명을 일일이 읽을 여유가 없다. 사진을 찍을 충분한 시간마저 없지마 어차피 인터넷에 이미 충분한 이미지가 존재하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이므로 사진보다 중요한 것은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안내에 따라 무심히 움직이기만 하면 2시간 동안 알찬 경험을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스피커가 전시되어 있다. 같은 555 컴프레션 드라이버라도 앰프의 재질이 철제인지, 합성수지인지, 혹은 수제 나무인지에 따라 소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1~3와트 출력만으로도 얼마나 크고 선명한 음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비틀즈의 Yesterday를 들으며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선율을 구분할 수도 있다. LP 한 장이 3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타자를 쳐서 정리한 자기 컬렉션 전체를 볼 수도 있다. 오르골이 아니라 오르겔이 정확한 용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축음기의 구동 원리가 납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의 전환에 따라, 그리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스피커의 기술이 바뀌어왔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매우 흥미롭지만, 상대적으로 시시한 이야기다. 더 흥미롭고 본질적인 것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감동을 느꼈다. 그 마음의 떨림은 부암동 목인박물관 목석원을 방문했을 때의 울림과 유사했다.
누구에게도 쉽게 이해받을 수 없는 취미를 수십 년간 지속한다는 것, 한 사람이 뜻을 세우고(立志), 이를 지켜 나간다는 것 자체가 주는 감동이었다.
이 공간은 범현대가의 KCC 정몽식 회장이 50년간 수집한 오디오의 결정체라고 알려져있다.
흔히 재벌이라면 돈이 많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사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월급을 받으며 살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무수한 문제를 동반한다. 오히려 돈이 많아도 마음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자산상으로 돈이 많지만 묶여있어 실질적으로는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용도가 정해져있어서 원하는 곳에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돈이란 원래 자신이 원래 갖고 있는 것을 증폭시킬 뿐이지, 모든 시련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왜 재벌가 며느리들에게도 고부 갈등과 자식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존재하며, 잘나가던 사업이 상속세, 트렌드 변화, 관세 전쟁으로 인해 무너지는가?
그러니 오디오 수집이 재벌이라서 가능했다, 라는 이야기는 적절하지 않다. 재벌이지만 오디오 수집을 했다고 표현을 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재벌이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사장이라고 봐도 좋겠다. 사장이라서, 돈이 많아서 오디오 수집을 할 수 있었다, 가 아니라, 사장이지만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오디오 수집을 했다, 라고 표현해야한다.
여기서 핵심은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산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위해 싫어하는 일을 했다’는 점이다.
혹은 ‘취미와 무관한 일을 해야만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
KCC는 건축 자재를 다루는 기업이다. 정몽식 회장은 화학과 재무용어가 가득한 서류를 읽고 기계냄새가 나는 현장에서 일하다가 집에 와서 오디오와 음악을 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다가 먹고 사는 것과 관계없는 취미를 했다. 이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외로웠을 것이다.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으리라.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부유층의 한가한 소비’라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고, 가족과 친척조차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도 지위, 신분, 재력의 차이로 인해 완벽하게 어울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목인박물관 목석원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목석과 꼭두를 오랜 세월 모아온 관장의 립지, 뜻을 세움이 있었다.
오디움과 목석원 둘의 공통점은 굳은 立志와 수십 년간의 몰두했다는 것.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다는 것.
차이점은 단지 돈의 많고 적음이다. 그러나 돈의 없음으로 인해 뜻을 지속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돈이 많았기에, 오디움은 쿠마 겐고가 설계한 아름다운 공간에서 완벽한 세팅으로 오랜 취미를 선보일 수 있었다.
돈이 부족했기에, 목석원 관장은 야적장이나 골동품가게에 버려진 것들을 주워 산비탈에 모았다.
하지만 두 곳 모두, 방대한 컬렉션과 정련된 열정에서 우러나오는 감동만큼은 동일하다.
이 모두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자신만의 취미를 몇 십년 동안 지속한다는 것, 사람이 뜻을 세우고, 즉 립지하고, 그것은 지켜나가는 것에 대한 감동이다.

고장난 벨기에 모르티에사의 미러포닉 오르겔은 수리를 해보고 성공적이면 4월 부터 목금토 10시 첫 타임에만 틀겠다고 했다. 다시 방문해야할 이유다. 근처에는 아트스페이스엑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