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17의 개봉이 다가오면서 오늘자 신문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크게 기사가 떴다. 한국일보는 라제기 영화전문기자가 작은 칼럼에 브뉴월과 함께 살짝 다뤘다. 나는 인터넷 신문은 안 보고 종이 신문밖에 읽지 않는데 종이로 읽을 때 집중도와 흡입력이 더 커서이다. 인터넷으로는 집중이 잘 안된다. 하지만 인터넷 자료는 검색과 편집이 용이한 장점이 있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5/02/19/AZ4E4UWC3BCLBCA2D2GAELZCUE/
조선일보 백수진 기자의 이런 표현은 아주 감각적이다.
"미키가 프린터에서 덜컹덜컹 뽑혀 나오는 모습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거듭하는 중생처럼 가엾다. 구부정한 어깨, 가늘고 여린 목소리, 힘없는 미소로 고단한 노동자를 연기한 패틴슨의 공도 크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82965.html
한겨레 김은형 기자의 이런 표현은 참 좋다.
1. 할리우드 메인 스튜디오인 워너브러더스가 1억달러 넘게 투입한 대작이지만, 상업영화 문법에 흔들리지 않고 봉준호의 성채가 견고하게 유지됐다.
아주 간결하게 잘 표현했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대작이지만, 상업영화의 문법에 흔들리지 않고,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성채로 은유)가 잘 묻어난다는 뜻이다. 문득, 이를 영어로 써보면 어떨까?
아마 직역하면 대충 이렇게 될 것이다.
Although it is a blockbuster film(대작이지만) in which Warner Brothers, a major Hollywood studio,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 브라더스가 ) invested over $100 million, (1억 달러 넘게 투자한)
1) 메인은 메이저라고 표현함이 적절하다 2) A인 B는 컴마로 동격(apposition)으로 표현한다 3) 투입하다의 집어넣다는 뉘앙스를 다 살릴 수 없다 투자하다는 말이 맞다. million은 백만으로 기계적으로 외우고 있어야한다. 우리는 만단위 서양은 천단위다. 순서대로 thousand, million, billion, trillion은 천, 백만, 십억, 조이다. 만단위의 0이 네 개이고 천단위의 0이 세 개이기 때문에 4x3해서 조에서 한 번 일치된다.
Bong Joon-ho's fortress remains solid, unshaken by the grammar of commercial films.
봉준호의 성채가 견고하게 유지되고(remain), 상업영화의 문법에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어에서는 술어로 병렬처리 되었으나 (흔들리지 않고~ 유지됐다)
영어는 fortress라는 명사 주어에 술어 remain olid가 붙은 상태에서 다시 unshaken이 붙어서 remain solid + unshaken 두 수식구조가 성채라는 명사주어를 수식한다고 정확히 태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했다는 어색함은 피할 수 없다. 영어만 읽었을 때 한국인들은 문제 없다고 느끼겠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이물감을 느낀다. 만약 그네들의 영화전문기자가 썼다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Despite being a blockbuster production backed by over $100 million from Warner Bros., a major Hollywood studio, Bong Joon-ho's artistic vision remains intact, resisting the conventions of mainstream commercial cinema.
한겨레 김은형 기자가 '봉준호의 성채'라고 말했을 때 스타일을 의미했다면 영화업계에서는 artistic vision시각적 비전이라고 쓴다. 이 vision은 실제 시각도 추상적이 지향도 의미한다. 추상명사이므로 구체적 물성의 견고함을 의미하는 solid가 아니라 intact가 수식됨이 맞다. 약간 옷이 정확히 몸매에 맞아 짝 달라 붙는듯한 적절하다는 의미가 있다.
영화의 문법이라는 표현도 가능하지만, convention관습이 좋고, 그냥 상업영화가 아니라 주류상업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러한 관습에는 resist저항하다는 말이 오면 더 좋다. 투자하다도 좋은데 production에는 back뒷받침된다는 표현이 더 자주 보였다.
2. 소심하고 체제 순응적인 미키와 무능하지만 뻔뻔하고 잔혹한 마샬로 대척점을 이루는 계급의 대비는 후반부로 가면서 커지는 외계 생명체의 존재감으로 또 다른 이야기의 가지로 뻗어 나간다.
기자의 이런 기술적 묘사도 좋다. 이 문장에는 압축이면서 간결한 표현이 많다.
하나씩 다 정보를 전달한다.
1) 우선,캐릭터의 특징을 말한다. 미키의 특징은 소심하고 체제 순응적이다. 마샬은 무능하고 뻔뻔하고 잔혹하다.
2) 그리고 이 두 메인 캐릭터의 대비는 계급의 대비를 의미한다고 연결짓는다.
3) 그 다음 스토리의 전개과정에 따른 변화를 설명한다. '후반부로 가면서'라고 말하며서 전반부에는 이 캐릭터의 특징과 대비가 등장함을 암시한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감이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가면서 더 커진다.
4)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갈무리한 이유는 아마 스포일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표현들을 어떻게 영어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일단 진짜 주어와 술어를 찾아야한다.
- 계급의 대비는 다른 이야기의 가지로 뻗어나간다.
The class struggle is expanded into another story라고 가볍게 바꿔볼 수 있겠다.
조금 더 힘을 주자면
The stark class contrast between ~ develops into a separate narrative thread 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story가 아니라 narrative thread가 더 자연스럽고 원어민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도 최초 한국어의 구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영어로 바꾸는 것이다.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성채가 견고하다 같은 한국어의 전달방식과 표현기법을 지켜주면서 최대한 영어스럽게 바꾸려는 것이다. 전문번역가라면 발화자 혹은 의뢰자의 의도를 존중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벗어나면 의역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페이를 받는 통번역가의 구조적 한계이자 어려움이다.
스스로 생각해서 스스로 영어로 표현할 것이라면 출발언어의 한계에 매여있을 필요가 없다. 영어권 사람들의 사고에 맞게바꿔서 자유롭게 표현하면 된다. 먼저 한국어로 생각하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표현하면 된다. 그리고 그러려면 그냥 좋은 글을 많이 읽고 고민해보면 된다. 옛날에는 외국에 가야 그런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꼭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유학가서 한국인들과 지내면서 겉멋만 드는 사람도 많다. 중요한 것은 외국유학감으로써 얻고자 하는 효과인데 그 효과를 인터넷이나 자료를 많이 접함으로써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을 바꾸지 않고도 가능하겠다면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지분위기나 기억은 없겠지만, 여기서는 전시나 영화같은 표현이니까 큰 차이는 없다. 영화는 외국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혼자 보는 것이니까. 영화찰영지 로케를 방문해보겠다면 다른 수준의 이야기다.
어쨌든 나라면 이렇게 써보겠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소심하고 순응적인 미키와 무능하지만 뻔뻔스럽게 잔인한 마셜 사이의
극명한 계층 간 분열이
두 개의 별개이면서도 서로 얽힌 스토리라인으로 진화하며,
후반부에서 외계 생명체의 존재가 점차 확대되면서 더욱 풍부해진다.
As the film progresses, the stark class divide between the timid, conformist Mickey and the inept yet brazenly cruel Marshall evolves into two distinct yet interwoven storylines, further enriched by the escalating presence of alien life forms in the latter half.
여기서 윗 부분은 기계적인 번역이다. 신경쓸 부분은 "후반부에서 ~ 더욱 풍부해진다" 부분이다.
이것을
as the presence of alien life forms grows in the latter half라고 하면 직역이고 어색하다.
분사구로 바꾸어서 앞부분을 수식해주는 식으로
후반부에서 외계 생명체의 "고조되는escalating" 존재에 의해(by) 더욱 풍부해지는
영어는 한 문장에 우겨넣기 위해 이렇게 수동태와 분사구가 있는데
우리는 술어 중심의 구조이므로 수동태 구조는 by 이하의 명사를 주어로 바꾸고 수동태(국문법에서는 피동형)를 풀어주는 것이 적절하다.
다시 말해 한국어에서 영어로 바꿀 때는 피동표현과 분사구와 수식구조로 압축해서 한 문장에 넣으려느 기술적 고민이 필요하다.
3.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통해 청춘 스타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이를 떼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패틴슨은 바짝 마른 몸과 붕 뜬 말투, 어쩔 줄 모르는 눈빛으로 벼랑 끝에 몰린 암울한 청년의 초상을 빼어나게 그려냈다. 자칫 어색하고 유치하게 보일 수 있는 배부른 자본가의 도식적인 태도를 기름기 묻은 표정과 목소리로 표현한 러팔로의 공력 또한 영화의 두께를 만들어내는 데 제 역할을 했다.
기사 마지막에 이르러 기자의 배우에 대한 평가가 나온다. 기사 자체도 구조적으로 깔끔하게 잘 써졌기 때문에 위의 링크에서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