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호소의 말들 -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
최은숙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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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초반 프롤로그에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바뀐 마음가짐으로 책의 성격이 바뀐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다. 국가 인권 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사소해 보이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노동'과 '인권'문제로 '억울함'을 호소했던 사람들의 여러 목소리를 스피커로 연결하여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여러 목소리를 모으며 '억울할 때 읽는 책'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일들이 있었어 라고 알리면서 시작했던 책이 이럴땐 이렇게 대응하는게 좋아 라는 성격의 '권리 구제 매뉴얼'의 책으로 내용으로 바뀌다가, 이런 일을 당하기 전에 이렇게 하는건 어때 라는 예방적 차원의 '인권 교과서'적인 책으로 바뀌다가 결국 그럼에도 그저, 그러한 사람들에게 어찌되었든 귀를 내어주고 들어주는 자세, 그러니까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어떤 호소의 말들' 이 탄생했음을 알려준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민원 접수 메일 주소의 아이디는 호소다.

인권위 민원메일주소를 정하는 회의에 참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구나 무엇이든 억울한 일이 있으면 호소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메일 아이디를 호소(hoso@humanrights.go.kr)로 정했다.

더 낮고 어려운 사람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호소를 듣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최은숙의 『어떤 호소의 말들』 中

그 많은 호소의 말들을 다 지켜 줄 수 없었기에 더더욱 우리는 호소의 말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비록 '지금은' 이라는 장벽에 무너졌더라도,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들어주는 일' 만큼은 멈추어서는 안된다. 계속 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귀는 많을 수록 좋다. 그러면 '지금은'이 '언젠가'로 그리고 '결국엔'으로 바뀌어 갈 지도 모르는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중등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 중 하나가 '노동권' 이라고 한다. 법률적 권리의무를 가르치는 것 외에도 노동자로서 피해를 당했을때 구제 절차를 이용하는 방법, 노조 활동 중에 필요한 단체 교섭 기술 등을 미리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노동자로 산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얼마나 타당하고 당연한 일인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노동자로서, 납세자로서, 시민으로서 대응하는 기술을 의무 교육으로 배울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최은숙의 『어떤 호소의 말들』 中



이 책의 이부분을 읽고 난 후라 그런가, 뉴스에서 '노동'에 대한 말이 나오는데 귀를 쫑긋 귀울이게 되었다. 개정 교과서에 관한 내용이였는데, 남침(南侵)없는 6·25전쟁, 자유(自有)없는 민주주의(民主主義), 노동(勞動)없는 근로(勤勞)로 관련 내용 표현을 수정했다는 내용(https://www.ytn.co.kr/_ln/0103_202209011724078032https://www.ytn.co.kr/_ln/0103_202209011724078032)이였다.


언제부턴가 초, 중등교육은 곧 대학진학만을 위한 교육으로 변하였고, '좋은' 대학 진학이 곧 '좋은' 직장 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여겨지면서, 학교 교육은 '시험 능력 주의'교육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에도 한적이 있다.

여기서 소위 말하는 '좋은'의 기준은 다 다를 것이나 거기에 노동은 아마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교과서에서 '노동'을 빼면서 교육할 일은 없을테니까.

그럼 우리는 모두 '좋은' 곳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임금 지불 현황, 연봉협상 방법, 노동 조합, 대출, 납세 등 소득과 경제에서의 실용적인 부분들을 정규교육으로 하여 얼마나 자세하게 가르쳐야 하는가는 묻는다면 그것 역시 애매한 부분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것들을 대학에서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그럼 '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교육을 대체 어디서 받아야 하는걸까, 그냥 사회로 나가서 살게되면 저절로 알게된다고 말하고 싶은걸까. 이런 질문들은 해소되지 못하고 항상 의문으로만 남아있기 마련이다.



노동을 배운적 없으니 노동과 관련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알리 없다. '일'을 하면서 겪게되는 차별이나 침해들은 물론 '일상 생활'에서 겪게 되는 논란이나, 과거의 사례에 대해서도 살아가면서 어쩌다 '나'와 관련되어 알게 되거나 계속해서 관심 없는 채로 지내게 될 수있는 경우 두 가지로 나뉠 뿐이었다.


이번 독서를 통해서 '인권위'와 관련된 뉴스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인권위에 진정되는 사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에 띄는 단어는 '침해'와 '차별', 그리고 '구제'. 이 단어들로 인권위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인권위는 피고인의 유죄나 무죄를 밝히는 조사를 하는 곳이 아니다. 범죄의 진실을 파악하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수사 기관과 법원의 역할이다. 인권위는 체포와 구속과 재판의 철차중에 피의자나 피고의 '권리'가 '침해'되었는지 조사하여 '인권 침해 여부'를 밝히는 역할을 한다.

최은숙의 『어떤 호소의 말들』


사회 역학자 김승섭은 『아픔이 길이되려면』에서 인권 침해와 차별의 고통이 어떻게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 과학적 통계와 연구자료로 증명해 보인바 있다고 한다.

차별의 경험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말하지 못한 상처'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새겨진다고 표현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청춘들은 계속 몸에 고통을 새기고 있으니 계속해서 아프기만하다.

우리의 교육이 '직장'으로 이어지는데도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알수 없고 그 대처 방법도 모른다. 아마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2019년에 이르러서야 생겼다는 것 역시 알 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사회 생활 속에 만연한 '갑질', '계약직과 정규직', '성희롱', '차별', '노동조합' 등의 이야기는 외면한다. 근면하게 묵묵히 참고 일하는 것(근로)이 사회 생활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거짓말과 진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통념에 대한 푸념 등을 다채롭게 담으며 '인권감수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납작하게 눌러버리는지를 알아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예민하게 감각을 열어 놓아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이런 마음상태에 '인권 감수성'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


'인권 감수성'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인권위 조사관으로 오래 일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우리는 조금씩 '알아차리며' 인권 감수성을 키워나간다.인권은 법이나 제도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지만,그 제도나 법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감수성이 없다면 실천되기 어렵다. 편견을 버리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야 한다.

말랑말랑한 마음이 법보다 훨씬 힘이 세다고 말하는 것이 인권 감수성이 아닐까? 작은 소리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리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

최은숙의 『어떤 호소의 말들』 中

이 책의 1부에는 호소의 말들에 집중되어 있다. 인권위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들을 두고 쓰는 일기장 같은 마음의 소리가 담겨있다.




'사실 너머에 있는 다양한 무늬의 진실을 헤어려 보는 것이 인권의 마음이 아닐까'

'인권 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심판이 끝난 뒤에도 피해자의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는것 같다.'

'책임은 멀리 있는 신이 아니라 여기 있는 우리에게 있다.'

'누군가를 절대 그러지 않을 사람, 또는 당연히 그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어도 인권을 다루는 일에서 만큼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거 정말 잘못된거 맞죠? 그런데 왜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는거죠? 라는 말에 부끄러움을 숙제처럼 끌어안고 집에 돌아왔다.'

'뒤늦은 정의가 정의일 수 없는 것처럼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후회의 마음만은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

'조사관으로서 더 많은 선수를 인터뷰하고 그 말들을 구슬처럼 꿰어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진정 응원하는 것은 폭력으로 얼룩진 메달이 아니라 운동장에 서 있는 사람임을 알리고 싶다.'

그리고 2부에서는 '슬기로운 조사관 생활'로 '조사관으로 산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가치 추구와 바람, 삶의 자세에 더 초점을 맞춘듯 했다.

'조사관으로서의 나의 손이 여전히 따뜻한지를. 내가 가는 길이 좋은 선례가 되고 있는지를'

'진정인을 대할 때마다 공중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줄타기일망정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중이기도 하다. 아주 옅은 농도의 다정함이나마 꽉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친애하는 진정인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괜찮으세요?'라고 안부를 전하고 싶다.'

'인권 지킴이가 아니라 인권 찍힘이가 되더라도 함께 서고 싶다.'

'계속해 보겠습니다.'

'누군가 제발 큰소리로 '저런!'하고 외쳐 주세요 라는 시인의 말대로 소리치고 끌어안는 순간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만나는 인권 피해자들이 늘 '무고하고 선량한 희생자의 이미지의 사람들'이 아니라 때때로 '악랄하고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들' 도 있다는 것이 조사관으로서의 회의감과 고뇌에 빠지게 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일이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구나 싶었다. 그러헥 엇갈리는 주장과 상식에 어긋나는 조치들, 말장난 같은 억지가 담긴 서류뭉치를 받아들면서도 '다 사정이 있겠지' 라고 말하며 저마다의 사정응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 자체가 위로가 되기도 했다.


우리에게 포클레인 같은 힘은 없지만

여럿이, 천천히, 꾸준히, 한삽씩 뜨는 진정성이 있고

그 힘으로 길도 뚫고 산도 옮길 수 있다고 감히 믿는다.

최은숙의 『어떤 호소의 말들』 中

작가는 모든 일이 법과 제도를 잘 만드는 것처럼 누가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인권을 위한 일이라면 더더욱이.

그 마음은 서로를 '조금 슬프고 귀여운 작은 존재'로 응시하는 것이고, 작가는 그것이야 말로 '인권의 마음'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마음이야말로 법의 그물이 구제하지 못하는 억울함이 기댈 곳이라고.

그렇게 기대고 의지하며 다정다감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실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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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 - 소멸하는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
대니얼 셰럴 지음, 허형은 옮김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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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생존보다 아름다움에 대해 쓰고 싶으니까요.

뜨거운미래에 보내는 편지 中



최근 기후위기와 관련된 뉴스를 본적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Be4Ky2J8uA


이번 폭우와 연관지어서 낸 기후변화에 대한 뉴스였는데,

"기후 변화는 곧 기후 위기로 불린다."는 마지막 멘트가 인상적이였다.

우리는 쓰레기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지만,

아직 그것이 위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의 표현처럼 '선택적 외면', '적절한 낙관주의', '무감각함이 삶을 지배하는 법칙'이 되어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문제가 있고 변화가 오고있는것은 맞지만 위기라고 말하는 때는 아직이라고,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책의 목차는 심플하다. 1차부터 4차 운동의 진행사항이 나와있고 각 운동을 진행하면서의 감정을 담았다.

그리고 책 제목처럼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그리고 책 제목처럼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읽다보면 감정선의 변화가 격해서 편지라기보다 일기같이 느껴지긴 하지만 컨셉은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한다니 그렇게 받아들이는 걸로)


편지라더니 '아니 왜 자꾸 교수님이 이러셨다 저러셨다 하면서 자신이 들은 대학 수업얘기에 대한 감상을 적은 대학생의 수업일지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싶을때 그제야 작가의 이력부분을 읽어보니 '대학 신입생 시절 UN전화걸기 운동에 동참한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환경운동의 최전방에서 일하고 있는 1990년생 기후변화 활동가' 라는 소개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납득. 열변을 토했다가 급 다운되면서 변화하는 그 감정선도 납득. 작가는 자신이 환경보호주의자가 아니며 이 편지는 '사람들을 실재하는 존재로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썼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책 초반에 환경에 대한 어원을 짚어주는 구절이 있는데, 그 부분이 인상깊다.

환경(environment)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수수한 프랑스어 전치사 environ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그냥 '근처의' 이라는 뜻이야. 이 단어는 19세기 중반에 와서야 영어 어휘에 스며들었고 '사람 또는 사물이 지내는 종합적 조건'으로 정의됐어. 모든것(everything)이라는 단어와 거의 구분이 안갈 정도로 모호한 개념이었지. 그러다 20세기 말쯤 '환경'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마음 쓰는 다른 모든것들로부터 떼어져 나와 따로 분리된 정의 안에 들어왔고, 내가 나이를 먹었을때쯤에는 부정(父情)을 품을 줄 아는 종(種)을 소환해내는 단어가 됐어. 사실상의 의미 분리가 이루어진거야.

환경은 곧 위험에 처한 고래, 아름답지만 먼 곳에 있는 숲이었어.

모두가 환경을 보호하고 싶어하지만

그 활동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이는 소수였지.

뜨거운미래에 보내는 편지 中


'근처' 에 있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에서,

아름답지만 '먼'곳에 있는 위험에 처한 것.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변화를 콕 찝어주는 서글픈 대목이었다.

환경문제를 '슬로모션 응급사태'라고 표현하곤 했다는 지질학 교수의 단어는 정책을 세우기엔 너무 빠르게, 서사를 전달하기에 너무 느리게 변화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한번 짚어주는 표현이기도 했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간다!"라는 운동에서 쓰이는 문구는 희망적이다.

위기에서 희망을 찾되 맹목적 낙관론에 넘어가거나 절망감에 주저않지 않도록 모든 것을 바꾸려면 모두가 나서야 한다며 행진하는 사람들은 기후문제로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 저항 운동을 생존의 문제로써 벌이고 있는 청년 연합, 녹색업계, 화석연로 반대 투쟁가들, 과학계와 종교계 리더들, 지역주민, 노동도합원들, 텃밭 농부들, 이웃집 할머니들이었다. 환경 운동은 기후학과 지질학, 생태학, 경제학, 역사, 사회학, 공학 및 정치과학 분야에 걸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환경을 구하'고 싶어했고

또 어떤 이들은 '환경 정의'를 이루고자 했지.

뜨거운미래에 보내는 편지 中

모든 행진은 신념의 표출이다. 신념이 시대정신이 되려면 물론 집요함이 필요하다.


인류학자 애나 칭(Anna Tsing)은 우리가 인류세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알아채기의 기술' 되살려야 한다고 했다. 그건 가만히 서서보기만 하는 능력,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채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 당혹감과 놀라움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말한다.

특히 풀과 동물을 알아채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우리 삶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다른 유기체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항상 자원처럼 굴지는 않거든요"라고 말했다. 이런 알아채기 기술이 위기에 처했기에 기후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 칭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발췌적이지 않고, 첨가적이며, 일반화보다 구체화를 선호하고, 따로 계획하지 않은 충분한 시간을 요구하는 알아채기 기술을 회복해야 한다.


기후행동 운동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뜨거운미래에 보내는 편지 中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살아갈 생애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많은 생애가.

어쩌면 너의 생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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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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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보고도 자신을 돌이켜보니 수능, 국가고시, 국가공인 자격증 시험까지..

나역시도 수많은 시험을 거쳐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와야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된다.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 차라리 그게 공정하다고 믿은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미친 자들은 '노력'의 대가를 마땅히 받는 것이고 미치지 못한 자신은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했던것 마저도.

시험 능력주의를 말하기 위해서 이 책은 초반부터 '학교' 교실 속을 들여다본다.

성적과 진학이라는 획일적인 가치 강요로 자고 있는 학생, 선행 학습과 학업 중단을 선언한 학생, 공격성과 반항성의 일환으로 나타나는 학교폭력과 우울증(자살), 그리고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가속된 교육의 격차와 학교의 위기까지.

그리고 짚어본다. 과연 우리 학교는 시험 만능주의를 인지하고 있는걸까. 이를 바꾸기 위한 '노오력'은 하지 않은 것인가.

수능만능주의가 팽배한 한국 교육에서 수행평가, 동아리, 봉사, 독서, 행동특성과 인성등을 골고루 반영한 학생부종합전형과 입학사정관제, 논술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평가'하거나 '선발'할 때는 당연한듯한 절차로 공정과 변별의 합리성을 앞세우면 결국 시험문화(culture of testing)만이 남는다.

학원과 입시준비가 학교교육을 압도하고 각종 고시와 시험을 치뤄 승리한 시험선수(혹은 시험형인간) 엘리트들이 권력(지위)과 경제력(부)을 차지한 후 자녀에게 세습하는 나라, 한국이다. 성적°성과로 서열과 등급 매기기가 중심이 된 이곳은 시험은 공정하고 그 결과는 능력의 증거라 생각하기에 명문대 졸업장을 신분증 혹은 브랜드처럼 여기고 있다.


한국은 사람을 평가할때 시험성적이력을

거의 절대시하는 시험만능주의 사회다.

이런 현상을 '시험문화(culture of testing)이라 부른다.

시험이라는 것은 어느나라에나 있지만, (특히) 아시아나라들에서

시험은 '사회계층이동'과 '더 많은 경제적 기회'라는 의미를 갖는다.



교육과 시험은 분명히 별개의 것이지만,

'시험'이 '교육'을 이겼다.

그리고 시험 중에서도 자격시험이 아닌

순위(ranking)을 정하는 시험이 이겼다.

시험을 통한 절차적 공정과 최고자격자(the most qualified)선발의 원칙이교육과 수련, 공적, 일에 대한 적성 확인 절차를 거친

적임자 선발 원칙을 이겼다.

한국에서는 최고 적임자보다는 최고 능력자 선발을 우선했다.


별개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험'이 '교육'을 이긴 한국에서는 일에 대한 적합성을 따진 '최고 적임자'보다는 그 분야에 대한 순위를 매겼을때 제일 위에 있는 '최고 능력자'선발을 우선했다. 즉 능력있는 사람이란, 그일을 잘 수행할수 있는 '자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성적을 엄격히 변별해서 '최상의 순위'순서대로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 그리고 이런 신자유주의 시대의 공정, 능력주의 실적주의가 낳은 차별과 혐오는 노동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로부터 파생된다. 학교는 시험능력주의에 따라 학력, 학벌이라는 정치자본을 가진 신분이 생산노동자의 신분위에 군림하는것이 전혀 이상하지않다고 가르치며, 교과서는 주류 경제학은 시장주의 이론에따라 노동자를 산업전사, 생산성향상을 위해 순응하는 육체노동계급으로 서술하고있다. 한국의 과잉교육열은 결국 노동천시와 맞물려 노동비하로 나타난다.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긍정적으로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선호하는 직업군(전문직,공무원,공기업,대기업)은 경제활동의 10%정도에 불과하며 이들이 장차 피고용자로 일하게 되었을때의 대처나 재해정도는 가르치지않는다. 그렇다면 학교와 사회는 학생들에게 도달 할 수 없는 신기루만을 제시한후 좌절시키고 있는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입경쟁도 결국, 노동의 세계에서 탈출하기위한 전략, 즉 사회적 '노동자신분' 비하, 저임금, 고용불안, 위험한 일터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무엇이 삶을 의미있게 하는가'라는 가치 기준평가에서

한국인들의 대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독 한국인들만 '물질적 복리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대답한 것은

시험능력주의와 무관하지 않기때문이다.

다른 선진 16개국들은 '사회', '가족', '직업' 라고 대답했고,

이는 한국사람들이 최종 성적표를 '부'로 여기며

다른 가치들을 후순위로 돌린다는 것으로 가치 일원성, 가치 획일성이 매우 큰 나라임을 시사한다.

이책은 이렇게 학력인플레와 대졸청년들의 고통, 능력주의와 개인주의의 자기모순과 한계, 진짜 적용되어야 할 영역과 이를 넘어선 정의와 형평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능력주의는 수평적다양화, 능(能)과 지(知)를 고루 중시하는 사회를 말한다. 따라서 로스쿨, 경영대, 의대로 국가 엘리트를 양성하려는 능력주의가 아닌 순수학문분야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철학, 예술에 특별한 재능을 가자 청년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수 있도록 지원하여 이후 일자리뿐만아니라 높은 보상까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가지 개혁이 필요하다.


✔️관료 법조인의 (지위독점,지위폐쇄) 특권철폐와 반부패, 전문직 직업윤리확보 등으로 '지배집단' 구조개혁

✔️노동의 인간화, 처우개선, 임금격차축소, 단계적 숙련형성 등으로 사회적 연대와 조직운동을 활성화한 '노동사회' 구조개혁

✔️능력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이데올로기에대한 비판적 사고와 정신적 노예화 극복 등의 '가치'개혁과 대학 공공성 확대와 대학서열 구조 완화로 병목통로 확대

이책의 교육의 본질에 집중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계층, 계급, 불평등을 복합적으로 안고 있어 경제, 복지, 노동, 수도권 집중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풀 수 있는 사회개혁 사안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책은 한국의 사회개혁, 불평등극복, 시험능력주의 극복을 위한 일종의 정책 제안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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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 -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이운진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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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클로델을 처음 접한건 내가 좋아하는 프로인 서프라이즈(https://youtu.be/VnJxQDXrn2w)에서 다뤄지면서였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다시 한번 영상을 찾아봤는데 지금봐도 카미유와 로댕의 이야기를 압축하여 잘 담아낸 이야기인것 같다.


​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https://youtu.be/VnJxQDXrn2w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요약하자면, 이 얘기는 두 조각가의 이야기이자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로댕의 연인이라고 불렀고, 비운의 천재라고 불렀던 그녀,

카미유 클로델의 삶에는 여성으로서의 한계, 예술가의 소명과 욕망, 사랑과 실패, 병과 소외, 급변하는 시대의 풍경이 큰 물살로 어우러져 소용돌이 쳤다

빌뇌브쉬르페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처음 진흙을 만지고 놀던 다섯살의 카미유는 점점 인물을 빗어내거나 감정을 표현해내며 주변의 모든것을 눈에 담고 손으로 만들었다.

'인생의 한번은 파리로!'라는 구호를 따라 지식인, 예술가, 기술자, 노동자 등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 전체를 다시 만들고 싶어하며 모이던 1880년대의 파리의 변화 속도는 놀라웠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봐준 스승 알프레드 부셰의 설득으로 예술적 재능을 펼칠 기회의 장소로 파리에 입성했다.

그때까지만해도 조각가로 성공을 거둔 여성의 이름은 들어본적도 없었다. 빌뇌브에서 미켈란젤로(훌륭한조각가)가 되길 꿈꿨다면 파리에서는 그녀 자신(스스로 인정하는 위대한 조각가)이 되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열여덟의 소녀가 스승이 소개해준 에콜 데 보자르 교장에게 자신의 작품 <다윗과 골리앗>을 보여주었을때 교장은 "로댕에게 조각을 배웠느냐"고 물었고 이때 오귀스트 로댕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니체와 루 살로메도 그무렵 만났다.)

이후 스승이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게되었을때 남겨진 제자들을 마흔 두살의 로댕에게 부탁했고, 그중 카미유가 있었다.

이무렵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듣고 지옥의문 구상에 대해 영감을 얻기위해 골몰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만난 로댕은 '나의 무자비한 연인, 나의 천사, 나의 열정'이라는 말들로 그녀를 표현 할 만큼 사로잡혔다.

독창적인 재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조각에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나눌수 있을 만큼 놀라운 깊이를 지니니 그녀는 이상적인 여인이였다.

그녀와 로댕은 가르침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시선을 주고받는 관계로, 손으로 흙을 빚는 관계에서 흙으로 마음을 빚어 증명하는 관계로 발전해갔다. 제자에서 작품모델로, 제작조수에서 열정의 연인으로, 더 나중에는 증오의 상대로 바뀌어갈 그녀의 운명의 수레바퀴가 서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카미유가 로댕의 작업실에서 중요한 작업을 맡게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않았다. 그러나 당대엔 공동 작업을 했던 사람들의 이름은 작품에 새겨지지않고 익명으로 처리되는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로댕작품중 그녀작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길은 없다. 로댕 역시 그녀의 흉상을 제작해준 이래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을 고결하게, 관능적으로, 거침없이 가장 에로틱한 조각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그러나 로댕에겐 로즈뵈레라는 소박하고 묵묵한 성격의 조강지처가 있었다. 재봉사로일하던 가난하고 힘든 시절 스무살의 그녀는 그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의 예술이나 감수성을 이해하기엔 부족했지만 선하고 충실한 영혼을 가진,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베푼 그녀는 그의 아들도 낳았다. (그의 아들과 카미유는 2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사랑에 있어서는 전체가 아니라 마음의 일부분만 받는것은 거절이라고 생각했다.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의 전부여야 한다는 바람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불가능해졌다. 그녀는 그마음을 그림으로, 그리고 조각으로 제작했다.


늙은 여인이 나이든 남자의 팔과 어깨를 감싸안은채 이끌어가고있다. 남자는 얼마쯤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무거운 몸으로 한쪽 팔을 뒤로 뻗어있다. 막 젊은 여자의 손을 놓쳐버린 순간이었다. 그 손끝엔 돌아와달라고 간청하고 애원하는 알몸의 젊은 여아이 무릎을 꿇은채 매달려있다.

사랑을 알았던 열여덟 청춘의 그녀는 조각계의 거장과 아리따운 제자의 사생활에 관한 소문과 맞서야 했기에 그 어떤 말로 증언하기보다 작품으로 보여주는것을 선택한다. 예술이 자기 비밀에 맞설때 가장 활기차고 위험해 질것임을 알고있었다.

파리에서의 삶은 살아가야할 이유와 성취하고싶은 욕망, 열정, 관능, 갈망, 질투 속에서 흙과 돌을 만지며 유능한 조각가이길, 사랑받는 한사람이길 바랬다.

그러나 이후 사랑의 고통과 이별 질긴 외로움을 안고 아틀리에에서 몽그베르그 정신병원으로, 그리고 일흔 아홉의 나이까지 30년넘게 No.2307로 존재하던 그녀는 1943-392라는 무연고 무덤에 매장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최초의 숨결과 최후의 한숨 사이에 있는 삶의 모습은

모두 다르고 결국 같다.

여기, 카미유 클로델 中


이 책은 사집과 산문집을 낸 작가 이운진이 카미유 클로델에게 바치는 헌정글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알기 위해서는, (특히나 그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록'을 찾는 것 뿐이다.

어린 시절의 일화, 누군가와 나눈 편지들, 남겨진 작품과 사진들로

그 사람의 진짜 목소리를 쫒는다.

물론 몇몇의 기록을 모두 모은다고해도 한 사람의 '완전한 인생'은 되지 않을 뿐더러 더욱이 그것을 '전기'라 할 수 없겠지만,

단지 지난 사람의 흔적을 찾아서까지 말을 건내고 싶은

애착의 글로 이 책을 봐두면 될 것같다.

여기, 카미유 클로델 - 시작하며 中


그녀를 추억하고 그녀를 예찬하며 그녀의 슬픔을 감히 짐작해보며 함께 흐느끼다가 그녀가 못다한 말까지 꺼내어 그녀의 일생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아트북스에서 여성 작가에 대해 다룬 책 중 『여기, 아르테미시아』와 같은 형식의 제목을 띄고 있는 이 『여기, 카미유 클로델』은 사실 결이 좀 다르다. 전작이 논문형태에 가까울만큼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시대 배경과 작품 해설의 '사실적 검증' 에 논점을 맞췄다면 이책은 '감정선'의 흐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랑에 대한 좌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픽션 소설처럼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반전이 이루어지는 포인트는 두 목차였다.


홀로 선 여자, 그리고 예술가


역시, 이거지. 이래야 아트북스지 했던 부분은 책의 중간부분부터 나왔다.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었는가?』 『여기, 아르테미시아』 를 읽으면서 19세기 이전 여성이 미술사에 남겨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여성미술가의 발견은 더 귀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살아남아 이렇게 이름을 남길 수 있었는가. 그 노력과 재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이 여성 누드를 그리는 것은 당연했으나 여성은 그곳에 낄 수 없었다. 그저, 관행이었다. 그녀가 파리에 갔을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들어가고자 했던 보자르 학교에서는 여성의 입학은 허락되지 않았고, 그녀는 스승의 추천을 받아 콜라로시 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1883년부터 그녀는 쉬지 않고 전시를 했으며 작품을 출품했다.

'금지된 꿈으로 가득찬 내면을 최초로 표현한 조각가'

'이런 작품은 미켈란젤로 이후 처음이다!' '스승만큼 뛰어난…'

'놀라운 걸작이다' '세기의 위대한 조각가…'

명성있는 로댕의 뮤즈이자 시인 폴클로델의 누나라는 꼬리표가 늘 달려있었었지만 그녀는 세간에서 이런평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대담한 조각이 순수함 대신 관능으로 환기되며 작품이 평가 절하되거나 전시가 취소되는 등의 난항을 겪기도 하였으나 사회에서 배척당할만한 무명의 예술가로 지내기엔 그녀의 천재성은 높은 찬사를 받았기에 대규모 전시회와 작품 판매의 행운을 잠시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주 재료로 쓰던 대리석/오닉스의 재료비를 포함하여, 보조자와 주조공의 임금, 운송료, 보관비 등 당시 1년 동안 조각에 드는 비용을 만만치 않았다.

그녀가 지인들과 나누던 편지에 수없이 '돈'과 관련된 '외상''집세''판매가'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할 만큼 '독립된'미술가로 살기에 지독한 재정난을 겪었고, 그녀의 삶은 곧 피폐해져 갔다.


책 속에는 이와 관련하여 다른 여성 작가들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롯이 자신(의 작품활동)에 집중 할 수 있는 자신을 위한 방과 고정된 수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이 인용되어 있다.

물질적 자립은, 단순히 돈 자체라던가 즐거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덜 받는 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점에서 그녀는 세간의 모진 풍파에 영향을 '덜' 받을만큼 독립된 예술가로 살지는 못했다.

궁핍한 현실은 주변 사람들을 불신하게 만들었고, 예민해진 신경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영감을 훔치고 표절하려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실제로 로댕의 친구 조각가로 인해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고 늘 로댕과의 비교(영향력)를 겪어왔던지라 모두 자신을 파멸시킬 음모자들이라는 의심의 눈으로 세상에 방어태세를 갖추게 된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힌 카미유는 자기 작품을 산산조각 내거나 부수는 파괴행위로 이어졌고 피해망상이 심화되며 사람들이 자신을 독살하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동생 폴 클로델은 이러한 카미유의 마음을 '혐오'와 '광기'라는 말로 표현했고, 그녀는 가족에 의해 결국 정신병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이래 죽을때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마지막 일기


가장 압권이였던 부분은 이 부분이였다.

내내 그녀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구성되어 비극, 슬픔, 고통, 분노, 증오, 외로움과 괴로움 등으로 가득찼던 표현들이 이부분에서 깨달음을 얻은듯, 체화한듯 오히려 덤덤하게 서술해 나가며 이윽고 이 삶을, 모든 운명을 받아들이고 모든 할일을 끝내듯이 마무리를 짓는다.

비록, 작가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라는 단서를 붙여 작가만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간 그녀의 마지막 페이지지만, 너무나 이입이 되는 부분이라 정말 그녀가 쓴 것이라고 믿어지게 된다. 그렇게 이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손을 부들부들 떨었는지


처음 흙을 만지던 다섯 살의 어린아이였던 나,

사랑을 알았던 열 여덟 청춘이었던 나,

그리고 들개처럼 세상에 맞섰던 나의 무엇이 일흔 아홉의 내 안에 남았을까?

-

조각가이기를 바라며,

사랑스러운 한 사람의 여인이기를 바라며 나는 돌을 다듬었다.

돌 만큼 한 사람을 사랑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

나는 내가 살아온 세상과 계속 살아갈 세상을 다 잃어버렸다.

당신이 아니었다 해도 내 삶은 무너졌을까?

-

사랑은 한 생애를 걸고 천천히 만드는 작품이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거짓말같은 아름다운 삶의 한때를 나누어 가졌다는 사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그럭저럭 용서할 것이다.

-

나에게는 이제 잊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부질없어보인다.

비극으로 보이는 삶이더라도 나는 내 삶을 완수하고 싶었다.


로댕은 카미유에게 분명 독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독히 사랑했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조각했던 그 시절은 분명히 존재했음을 인정한다. 비록 영원하진 못했었도. '당신이 없었다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있었던'시절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그럭저럭 용서할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사무치게 마음이 아팠다. 이 구절에서 멈칫하며 울컥이는 마음을 잠시 달랜 후에야 뒷 부분을 읽어야 했다.

그 '용서'의 마음은 로댕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리라. 그 뒤로 스스로 혹사시켰던 자기 자신에게도 분명 향했으리라 짐작한다.


로댕의 지인이 보낸 편지에는 로댕의 진심이 언급되어 있다.


어느날 로댕이 찾아와 「애원하는 여인」앞에서

갑자기 멈추어 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작품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처럼 말입니다.

나는 그가 당신을 버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로 인해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뜬지 15년이 지났군요.

살아 있었다 해도 그는 카미유 당신만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작품 중개인 외젠 블로가 카미유에게 보낸 편지 中


그녀는 이 말에 흔들렸을까.

어쩐지 한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영화 『아가씨』 이즈미 히데코의 대사 中


이 책을 읽고 나니, '비운의 그녀'라는 수식어만 붙었던 까미유를 조금 더 확장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보다 치열했고, 강렬했고, 결국 통달하며 삶을 용서했을 그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녀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비극으로 보이는 삶이더라도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완수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바란다.

이곳에서 흙을 처음 만지던 그때 처럼, 늙은 나무 아래 흙한줌이 되는 그때가 되면 구름을 빚고 있기를.

1943.10.19. 여기,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도서 #아트북스서포터즈2기 #아트북스서포터즈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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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권리를 주장해 -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인권 가이드 창비청소년문고 41
국제앰네스티.안젤리나 졸리.제럴딘 반 뷰런 지음, 김고연주 옮김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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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권선언 1조에는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있다.

권리는 평등하다. 그리고 불가양하다.

권리가 생기는 시기가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여기,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권리를 위반하거나 침해하려는 상황에서 주장할수 있어야 한다.

평화, 존엄, 관용, 자유, 평등, 연대 정신 속에서 성장해야한다.

이 책은 15가지 권리(생명, 평등, 참여, 신분, 안전한공간, 위험에서 보호, 폭력에서 보호, 신체온전성, 사생활, 사상의 자유, 소수자와 선주민, 평화적시위, 형사사법 제도)를 세가지 공통 질문 속에서 설명하며 구성되어있다.

✔무슨 뜻인가요? (권리의 내용 이해)

✔현실은 어떤가요? (현 실태, 위기, 문제점 파악)

✔권리를 위한 투쟁 - 행동하기 (투쟁의 사례)

예를 들어 제일 처음 나온 권리는 생명,존엄,건강(신체적, 정신적)과 안녕을 위한 권리이다. 우리는 양질의 식수, 적절한 영양식과 집, 위생설비와 의료를 누릴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깨끗한 기후와 지속가능한 환경이 필요하며 이와 관련하여 기후 위기에 의해 야기되는 환경파괴로 인한 권리침해에 대해 목소를 높인 식수보장, 바다자원보호, 탄소배출제한, 감영병 예방운동을 펼친 청소년들의 사례를 들려준다.

그밖에도 각종차별(인종, 성, 장애, 빈곤)과 투표권, 강제노동과 부당이득, 사상과 종교의 자유 등을 예로든다.

개념과 사례를 들어 이해를 마친후에는 주장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단계별로 제시한다. 자각, 토론, 반박, 연설을 위한 팁과 방법을 알려주고(자신감, 정확한 자료제시, 예의  등) 주장을 대중앞에서 실천할수 있는 행동방법(캠페인, 집회와 시위, 책임묻기, 관련법 살피고 요청하기)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책은 누구든, 어디에 살든, 언제든, 가지고 있는 권리가 무엇아지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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