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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꿈
아라이 료지 지음, 엄혜숙 옮김 / 미디어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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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저곳에 사는 고양이들의 시선을 쫓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이 어느곳에 있든 '언제나 꾸고 있는 각기 다른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크고 작은 집에 살고 있는 '꿈'이와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
집 '안'에 있는 고양이들은 자주 창밖을 본다.
저 '밖'은 어떤 곳일까, 저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안정되고 정돈된 집 안이 아닌, 크고 질서없는 험란한 '정글' 길을 걸어보고 싶다. 깊은 산 속 광장에 열리는 '축제'를 구경해보고 싶다.

커다란 공원에 살고 있는 '날름'이와 '산'이와 '야옹'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
집 '밖'의 공원에 있는 고양이들은 자주 가정집 '안'을 궁금해 한다.
저 '안'은 어떤 곳일까, 집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사람이 오가고 혼잡한 공원 벤치가 아닌, 봄처럼 화창하고 안정되고 정돈된 집 안을 누리며 안락한 포근함을 느껴보고 싶다.

사막에 사는 '선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
사막 '너머'에 본적 없는 바다, 본적 없는 커다란 물고기를 타고 멀리 가는 꿈을 꾼다.

평야에 사는 '하늘'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 '너머', 구름 마차를 타고 넘어간 이 하늘 아래있을 더 넓은 세계를 궁금해 한다.

실체 없는 그리움, 그러나 반드시 있을것 같은 확신,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따스한 무언가가.
이들은 모두 따스한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
언제나, 앞발로 꾹꾹 눌러가며
어디서나, 앞발을 번갈아가며
따뜻한, 누군가의 '꿈'을 꾸며 잠이 든다.

고양이들은 사냥 본능이 있어서 움직이는 물체를 좋아하고 잘 쫓는다.
호기심이 많아 작은 틈이나 열린 문으로 언제든 밖으로 나가버리려 한다.
자기 노출은 꺼리기에 자기보다 작은 크기에도 아랑곳 않고 상자나 바구니 속에 잘 숨는다.
방관하는듯, 관찰하는 듯 알수 없는 눈빛으로 한곳을 지긋이 응시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고양이는 늘 '꿈'을 꾸며 사는 생명체같다.
고양이의 평화로은 꿈 속 세계들을 다채로운 색감과 선명하지 않은 형태로 잘 표현해낸 책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평화로운 잠과 아름다운 꿈' 이라고 말하는 황인찬 시인의 소개글이 이 책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 곳에선 평화로운 잠을, 다만 다른 곳을 언제나 꿈꾸며.
그런 마음들을 언제나 잃지 않으려 손짓 발짓으로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고, 상상하고, 그러다 잠이 들고, 다시금 꿈꾸고.

이 아름다운 고양이들의 꿈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꿈들도 안녕한지를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편안히, 그리고 아름답게 그렇게 지내고 있는가를.
고양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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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다듬기
이상교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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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지금 마른 멸치가 되었지만 바닷속을 헤엄치던 널 상상해'라는 작가의 머릿말에서 은비늘 반짝이며 날렵하게 헤엄치는 멸치를 생각해본다.

춤추듯 바닷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며 어디로든 갈수있고 모든곳이 모험장소가 되었던 멸치의 꿈.

가족끼리 멸치국수를 먹기로 한날 아들과 아빠는 국물을 내기 위한 멸치 다듬기 역할을 맡았다. 부자가 나란히 앉아 두 접시에 멸치 대가리와 내장, 몸통을 구분하며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사이, 신문지 위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멸치들은 신문 기삿거리들 사이에서 다시 유유히 헤엄친다. 바닷속이 아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와 피서지, 도심한복판, 공연장, 전시장을 유유히 헤엄치며 또다시 어디로든 갈수있고 모든곳이 모험장소가 되어 잠시나마 꿈을 꾼다. 멸치 육수로 우려지는 몸통들은 다시 은비늘은 반짝이며 꿀렁꿀렁 춤을춘다.

육수가 우려지는동안 가족 모두 역할분담을 하며 요리를 한다.
식탁 위에 모락모락 김이나는 완성된 멸치국수를 후후불며 쪼로록 나눠먹는다. 멸치의 여행도 끝나고 가족들이 함께 요리를 해나갔던 여정도 마무리된다.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눠먹는 일은 잦지만 그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모여 함께 역할분담을 하며 같이 만드는 일은 결코 잦은 일은 아니다. 멸치다듬기는 바닷속에서 다 펼치지 못했던 멸치의 여정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아이가 먹는 한끼의 식사가 이렇게 손이 많이가는 정성스런 조리의 여정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멸치 다듬기는 가족의 소소한 추억 다듬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조금 더 자란 아이는 나중에라도 깨달을 수 있을까. 바닷속에서의 꿈을 신문지위에서 잠시 떠올려본 멸치들처럼 훗날 어린시절을 떠올려본 아이가 따뜻했던 멸치국수만큼 따뜻했던 시간을 같이 떠올릴수 있길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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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짝홀짝 호로록 - 제1회 창비그림책상 대상 수상작
손소영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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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창비그림책상 대상 수상작은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손소영 작가의 『홀짝홀짝 호로록』이다.

배고팠던 담장 밖 오리와 문 밖의 강아지는 집 안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의 간식인 우유를 몰래 먹는다. 고양이는 곧장 화를 냈지만 우연히 터진 서로의 방구 소리에 웃음이 터지고, 웃음을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된다. 왁자지껄 어울리다 방 안을 어지럽히며 놀다가 으레 죄책감에 함께 도망가고, 마침 내리는 비는 다시 그들이 놀이터가 되어 흠뻑 물구덩이에 덤벼들며 함께 뒹군다. 다시 실내로 들어와 따뜻한 코코아를 나누어 마시는 모습은 처음 우유를 마실때와는 이제 전혀 다르다. 그들은 즐거운 하루를 공유한 친구가 되었고, 그렇게 노곤해진 몸을 서로에게 기대고 포개어 한 몸처럼 엉켜 잠든다는 내용이다. 

이 책은 흔한 동물들의 울음소리인 야옹, 멍멍, 꽥꽥같은 음성어는 담고 있지 않다. 고양이, 강아지, 오리가 친구가 되어 어울리며 신나게 놀다가 따뜻하게 잠드는 이 모든 내용을 58가지 의성어·의태어만으로 시청각, 후각, 촉각을 두루 담아내 우리의 비언어적인 행동들 속에서 서로 공감하고 공유하는 감성의 언어를 배우게 한다. 이 모습까지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지켜 보고 있노라면 포근함이 온몸에 퍼져 그들과 한바탕 같이 즐긴 느낌이다. 

고양이, 강아지, 오리는 우리들의 반려 동물들이기도 하다. 함께 여러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지만 대화를 나누지는 못한다. 이에 착안한 걸까, 우리의 반려동물들 끼리도 아마 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친구가 되는 과정, 얼마든지 놀잇거리가 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탐색하며 함께 어울린다는 것의 따뜻한 감정을 사랑스러운 이 동물 캐릭터들로 잘 나타내고 있다. 눈동자와 눈꼬리의 위치, 입꼬리의 떨림, 얼굴의 붉어짐,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고갯짓과 허둥거림 등의 생생한 표정과 행동으로 충분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은 그저 상황에 맞는 상징적 언어 제시로 되어 있어 몇번을 읽으며 '이럴땐 어떤 표정과 행동이 나오게 될까?' 라는 질문으로 놀 수 있는 '말놀이 그림책' 이자 타닥타닥, 모락모락 처럼 사물을 형태에서도 움직임을 찾아 낼 수 있는 생생한 '그림 문자책(타이포그래피)'이다. 

두리번 거리며 친구를 찾고, 왁자지껄 우당탕거리며 친구가 되고, 화끈화끈한 순간도 투덜투덜한 순간도 토닥토닥으로 감싸줄 수 있는 시간을 공유하고 나면 우리는 이를 '우정'이라고 부르게 된다. 다채로운 언어표현과 감정표현 뿐만이 아니라 어울림을 통한 사교성, 놀이의 즐거움을 아는 유희성, 반려동물과 함께 공존하는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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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자 와니니 창비아동문고 280
이현 지음, 오윤화 그림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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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누적 판매 90만부를 기록 중인 어린이 장편 동화 『푸른사자 와니니』 시리즈.

어느새 100쇄 인쇄를 돌파한 1권을 이제야 읽어보았다.

와니니는 은가레강 구역에서 버팔로를 주로 사냥하는 암사자 '마디바'의 무리였다. 암사자들은 누가 낳았는지를 따지지 않고 무리의 아이들을 함께 키웠기에 모든 아이들의 엄마였다. 치밀한 작전과 풍부한 경험, 무엇보다 자식을 굶기지 않겠다는 책임감으로 사냥해왔다. '공격조'가 사냥감을 쫓으면 숨어있던 '매복조'가 뒤처진 사냥감을 기습하는 것이 암사자의 사냥법이였다. 사냥보다 세상구경에 마음이 끌렸던 아기 와니니는 겨우 한살이었다. 잡아다 준 먹이도 형제 자매들에 밀려 스스로 챙겨 먹지 못하던 힘이 약한 아이였지만 마디바 무리에 속해있는 암사자임에 자랑스러워 했고 반드시 멋진 사자로 자라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초원이 우기를 지나 초식동물 사냥감이 줄어든 건기가 되자 암사자들은 냉정한 판단을 내린다. 와니니는 '제대로 된 사냥꾼'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아이' 로 '제 몫을 해내지 않는 아이까지 돌볼 순 없다'는 이유로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암사자가 사는 법은 몇가지 룰이 있었고 그 룰은 절대적이었다.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를 것(우두머리는 무리를 위해 냉정해져야 할때가 있다)'

'사자는 혼자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사자는 여럿이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다)'

'갈기가 자란 수사자는 무리를 떠날 것(이후 수사자의 방문은 공격으로 여긴다)'

'물러서거나 겁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그것이 암사자가 수사자를 제압하는 방법이다)'

'이미 대가를 치른 일에 대해서는 다시 죄를 묻지 않고,

이미 지난 죽음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을 것(쫓고 쫓기고 먹고 먹히는건 당연한 일이다)'

'오늘 내가 할일을 할 것 (그러면 내일이 온다)'

와니니는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다른 엄마들은 '무리를 떠나는 순간, 어른이 되는 것'이라며 와니니는 남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을 뿐이라며 응원했다. 무리에서 떠나게 된 와니니는 사자에게 가장 무서운 '혼자가 되는 벌' 을 받으며 떠돌이 신세가 된다.


혼자가 된 와니니는 '무리는 며칠에 한번씩 이동했지만, 외톨이는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조금씩 몸으로 하나하나 세상의 이치를 스스로 깨우쳐 갔다.

개인적으로 이말이 왜그렇게 아프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혼자가 된다는건 더는 온전히 그리고 마음 편히 쉴 수 없다는 이말이, 매일 이동해야 한다는 말이 '떠돌이'의 신세를 너무 잘 표현해주고 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달을보고 해를 보면, 오늘을 열심히 보내자 비로소 오늘이 온다는 말을 실감한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 다시 오늘이 지나면 내일,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면 해는 꼴딱꼴딱 잘도 기울었고 다시 떠올랐다.


외톨이로 지내기 힘겨워 하던 어느날, 그저 '지독하게 운이 나빴을 뿐'이라며 다들 와니니처럼 저마다의 딱한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던 또 다른 떠돌이 사자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사자에게는 친구가 필요해, 그동안 혼자 다니면서 충분히 느끼지 않았어?'라며 비록 수사자와 암사자 사이지만 사냥할 줄 모르는 와니니에게, 그리고 절름발이 여섯살 아산테 아저씨와 두살 애송이 잠보에겐 서로 필요한 존재들이였다. 그리고 와니니는 무리를 떠난 뒤 처음으로 편하게 누워 잠을 청했다.


와니니는 자기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함께 할 친구들이 있다는것 만으로도 기운이 났다. 마디바의 아이로 돌아갈 순 없지만 외톨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새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문제는 사냥을 배울 나이인 한살 반이 되기도 전에 쫓겨났으니 아직 사냥을 할 줄 모른다는 점이었다.

'초원 어디에도 목숨을 쉽게 내 놓는 상대'는 없었다.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사냥에 서투른 떠돌이들에게도 만만한 사냥감'은 언제든지 많았고 결국 '우연한 행운' 같은 첫 사냥에 성공한다. 그리고 '초원에서 가장 운 좋은 사자들에게나 찾아오는 행운' 같은 두번째 사냥에도 성공한다.


'외톨이' 이자 '떠돌이'였던 와니니는 '영토'나 '먹이'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던 '무투'나 먹이를 가지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수사자에게도 경고했다. 해치거나 빼앗지 말자고.


사냥에 성공도 하고 새로운 무리도 만들고, 예전의 무리였던 말라이카도 다시 만났다. 그러자 사냥을 못해 '쓸모 없던' 와니니도 꿈을 꾸기 시작한다. 언제나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지내는 꿈을. 약해빠진 아이도 자상하게 돌봐주고, 경솔한 아이도 너그럽게 감싸주고, 쓸모없는 아이도 따뜻하게 품어주고 싶었다.


'혼자 둘수 없다'며 '와니니 무리'라고 칭해준 일행들과 여행의 행선지로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을 정했다. '지금까진 열심히 노력하면서만 살아왔지만 그곳에 가면 해가 지는 시간까지 마음 높고 자고, 마음껏 포효하며 품위있는 동물답게 마음껏 게으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을 상상하며 해가 뜨는 곳으로 쉬지 않고 걸었다.


초원도 그랬다. 어디에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하찮은 사냥감, 바닥을 드러낸 웅덩이, 썩은 나뭇등결, 역겨운 풀, 다치고 지친 떠돌이 사자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껏 와니니를 살려주고 지켜주고 길러주었다. 쓸모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서로를 돌봐줄 거란 믿음이 있다면 초원을 누리고,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초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와니니는 친구들과 완전한 한 무리가 되었다. 비록 강하거나 용맹하진 않지만 약하고 부족하기에 더욱더 서로가 힘들고 지칠때 서로 도우며 함께 하는 친구들이었다. 초원의 끝에서 함께 돌아온 친구들이었으며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함께할꺼라 믿었다.

때문에 무투의 침략을 감지하고 마디바 할머니를 만나러 다시 돌아가던 길에서도 기꺼이 도와주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마디바를 만난 와니니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는 복종하지 않겠다는 뜻이였다. 그리고 똑바로 말한다. '마디바'의 무리가 아니라 '와니니' 무리가 되었다고.


" 와니니 무리는 앞으로도 잘해나갈거야.

서로를 돌봐 줄 테니까.

그럴거라고 서로 믿으니까. "


비록 무투와 그 아들에 맞서 싸우다 아산테 아저씨를 잃게 되었지만 아저씨는 웃으면서 이 또한 '초원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품위있는 동물답게 마음껏 게으른 삶을 살기를 꿈꿨지만, 품위있는 동물답게 죽은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겠다고 말하며 초원의 왕 아산테는 사자가 이별하는 범에 따라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떠난다.


" 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해. "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사자들의 '무리'의 모습은 각기 달랐다.

강한 아이만 살아남겨 곁에 두는 마디바 무리가 있었고, 자립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무리 속에서 다른 무리를 염탐하는 무투무리도 있었고, 약하고 부족하지만 홀로 있음을 경험해 보았기에, 두번다시 홀로 두지 않기 위해서 서로를 보다듬고 도우며 의지하는 와니니 무리가 있었다.

사자의 삶 뿐만이 아니었다. 이 초원 위에 사는 모든 동물들은 다 저마다의 법칙과 생존방식으로 적대적으로, 때로는 친밀하게, 때로는 교류하면서 그렇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벌어진 일에대해선 탓하지 않으며, 도움 받은 것은 갚아주고, 그렇게 공생하다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우리에겐 다양한 삶이 있고, 각자의 사연만큼 저답게 열심히 살며 다른 모습을 보여줄 뿐 틀린 삶은 없다는 것을 이 초원위의 동물들은 하나같이 말해주고 있다. 같은 것을 그리고 꿈꾸는 무리들과 뜻을 함께 할 뿐, 그 어떤 무리도 잘못되었다고 할 순 없었다.

와니니는 와니니 답게, 사자답게, 왕답게 초원을 달릴 뿐이다.

'와니니 무리'들이 푸른 들판을 달리며 함께 사는 용기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책, 『푸른 사자 와니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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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한 내 친구 - 신나라 그림책
신나라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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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하던 아이의 일상에 찾아온 오싹하고 수상한 친구와의 특별한 하루'라는 줄거리로 책의 표지를 장식하며 책 소개를 하고 있다.


'한 아이의 외로움'이 어떤 특별한 친구를 불러냈다는 이야기인데, 그 외로운 아이라는 표현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멈췄다. 책의 내용이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그림에서 아이를 포함한 학생들이 모두 짝수인 8명인데도 불구하고 2명,2명,3명이 모여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서성이는 아이의 외로운 쭈뼛거림이 보였다.


쭈뼛거렸던 책 속의 아이는 사실 씩씩하다. 누구에게나 '새학기 스트레스'가 있듯 새로운 곳으로 '전학' 온 이 아이는 아직은 낯선 환경이 익숙치 않고 조금 어색 할 뿐이다. 그런데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전학 온 어린이 집에서 첫 핼러윈 데이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할로윈 데이는 죽은 영혼들이 이 땅위로 내려오는 날이다.

영미권 문화로 죽은 영혼들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기위해서 같은 복장을 입는다고 하며, 멕시코의 '망자의 날'은 죽은 영혼이 자신의 모습과 사람들의 모습이 달라 놀랄까봐 같은 모습으로 분장 한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나라로 유입되면서는 그 유래나 뜻보다는 코스프레(Cosplay: '복장(costume)’과 ‘놀이(play)’의 합성어)를 하면서 파티나 행사를 즐기는 날로 인식된 날이다. 언젠가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단골 행사가 되었고, (중고등 학교 행사로 하지는 않지만) 어른들도 좀처럼 한국엔 없었던 이 행사를 가면 무도회를 즐기듯 제법 자리잡은 문화이다.

전학생 지우 역시 어린이 집 '행사'로 기획된 이 날을 즐기기 위해 '고양이 가면'을 준비했다. '가면'은 지우에게 기회이자 용기를 줄 수 있는 훌륭한 아이템이였다.

단순히 외모를 가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학온 아이'라는 것을 가려줄 가면이였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언제 말을 걸 수 있을까, 어떤 놀이에 낄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이 할로윈 파티 가면 뒤에 숨어 친구들과 잘 섞여 어울리며 행사를 즐길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신났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통학 버스에 올라타면서 부터 평소의 조용한 모습과는 달리 '가면을 쓰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 보다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을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가면은 역시 저 친구는 누구일까 맞추기 놀이가 되기도 하지만, 가면의 캐릭터 자체를 흉내내는 역할 놀이 이기도 하면서, 가면들이 뒤섞인 파티이기도 했다.

아이는 오늘을 즐길 준비가 잔뜩 되어 있었다. 우리는 8명이고 두명씩 짝을 맞추어 추는 춤 파티에도 어울릴 수 있고 수다떨며 간식을 먹거나 밖에 나가 놀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지 오늘 뭔가 틀어진다. 춤 파트너 짝이 맞지 않고, 간식도 모자라고, 나가 놀 신발도 없어졌다.

하지만 가면 속 친구들은 가면 속 지우가 용기있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만큼 이에 대답해 주며 친절을 베푼다.

셋이서 추니까 더 즐거웠어요.

나누어 먹으니까 더 맛있었어요.

빌려 신은 신발로 뛰어 노니 더 신났어요.

혼자였으면 심심했을텐데 둘이 같이 있으니까 재미있었어요.

오늘 헤어진게 아쉬었지만 내일 또 만나서 놀 수 있어서 좋아요.

오늘, 정말정말 재미있었어요!

같이 추자, 같이 먹자, 내 꺼 빌려줄게.

혼자 있으면 심심했을 텐데 아이에게 오늘은 정말 모두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하나 둘 시간이 흘러 가면을 벗으며 귀가하면서 베일이 벗겨졌다.

아 누가, 누구였구나, 아 이건 누구였구나, 가면 맞추기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단 하나의 퍼즐이 안맞춰진다.


넌.. 누구야?

8명인 우리 어린이집에서 도무지 유추할 수 없는 한명의 유령 친구.

공룡, 꽃, 핫도그, 호박, 거미,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고양이 분장들 사이에서 마침 분장도 유령이다.



오싹~하다기보다 그저 내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할 뿐인 아이의 시선이 순수하다.

넌 누구야 (소오오름) 이 아니라, 넌 누구양? (궁금) 으로 끝난다.

그리고 네가 누군지 오늘 당장 몰라도 괜찮다, 내일은 가면을 벗은 채로 다시 만나 놀 수 있으니까. 오늘 놀았던 친구는 내일도 만날 수 있는거다.

할로윈 데이 행사는 단 하루뿐인 놀이였지만, 오늘이 지나도 두고두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화제거리일 뿐이다. 내일도 우리는 어린이집에 나오고, 어제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와 같은, 하지만 더 친밀해진 내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른의 시점에서 봤을땐, 순수한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와 같은 역할을 맡은것 처럼 유령의 역할도 잘 적응하지 못한 지우를 적응시켜주기 위해서 누군가 했겠지 싶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그저 기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렴 어때 싶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누구였을까, 불청객이였을까, 당연했던 잔잔한 일상에 작은 사건들을 일으켜 '관계맺기'에 변화를 준 중요한 도우미였을까.

오싹한 내 친구는, 오싹한 내 친구의 정체가 중요한게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건,우리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어떤 사소한 사건과 계기를 우리는 놓치지 않았고, '덕분에' '더' '재미있고 즐겁게' 핼로윈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학(새로운 환경)을 와서 어색했던 사이는, 파티(새로운 환경)를 가서 더이상 어색해지지 않게 되었다.


'누구냐 너는!!!' 이라면서 추리하며 그 친구가 누구인가라는 정체를 알아내려 하기보다, '너무너무 재미있었다'며 웃으며 어린이 집을 나서는 지우가 내일은 더 즐겁게 어린이집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길 응원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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