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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 - 제4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김윤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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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의 준영이는 얼마 전 파산으로 아버지가 사라진 후, 빚독촉에 아무것도 할수없는 집을 떠나 밤의 학교에 두번째 등교를 하고 있었다. 그냥 버티는 곳인 학교는 ‘하우스’, 언젠가는 자신이 돌아가 정착할 곳은 ‘홈’이라 생각하며 학교에 몰래 살게 되는 준영이와 이를 알고있는 주변친구들과의 이야기를 그렸다.

준영을 걱정하는 친구 ‘두홍’, 선배 학교에서 살고있죠? 자신과 통하는 것이 있다며 집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멘토링 후배 ‘소미’, 준영의 비밀을 이용하며 제안을 하는 전교회장 ‘지혜’, 그리고 학교 안에 자신이 살던 공간을 침범했다고 주장하며 경고 하는 또다는 인물 사이에서 준영이는 학교에 산다는 것을 들키지 않은 채 입시와 졸업을 무사히 마치고, 남은 생활비를 계산해서 지독하게 버티고, 그와중에 자신을 경고하는 인물찾기와 곤란한 지혜의 제안을 고민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급박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아무도없는 한밤의 텅 빈 학교 탐방을 함께한다.
"조졌네. 난 그러면 안돼. 외롭다" 를 달고 사는 준영과 학교들여다보기 속에서 입시, 가족 문제, 가출 등의 고민을 함께하며 요즘 청소년들의 갈등과 성장을 지켜볼수있다.

학생이 아무도 없는 학교는 의미없다.
가족이 없는 집도 의미없다.

길을 잃지않으려면 계획을 세우고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꼭 홈으로 돌아가자.

머무를 장소가 없는, 마음 둘 곳이 없는 아이들이 각자의 불안함을 안은 채로 마침내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 주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계속해서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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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창비청소년문학 123
박영란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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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이 우리를 어루만져 준다고 생각해 본 적 있던가?
과거와 현재의 죽은 사람들과 산 사람들, 생물과 미생물들은 모두 입자로 이루어져 있기에, 입자로 가득찬 시공간도 의식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우리만 사용하는게 아니라 다른 차원의 존재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래서 아주 가끔씩은 만나기도 한다는 생각.

우리가 가끔 주변의 풍경, 소리, 향기, 건축물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고 위로 받는 걸 보면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이뤄왔고 이뤄갈 여러 작고 다양한 정신과 마음 속의 세계들이 서로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영원한 원자들의 세계가 이 시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 서로에 대한 돌봄과 관심의 손길. 공존의 마음.

내가 지금 숨쉬는 이 시공간은 어떤 누군가가 살던 곳, 어떤 연유로든 한 번 이상은 무너졌던 곳, 그리하여 아픈 시간을 보냈을 곳, 그럼에도 다시 시작 했었을 곳, 그렇기에 비슷한 시기를 겪을 누군가에게 다정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이책은 성실하고 계획대로 살아가면 되리라 생각했던 세상에 속아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고향으로 내려간 아버지와, 서울에 남아 단독주택 2층으로 이사가며 바뀐 삶에 적응해야 했던 엄마와 두 남매가 1층에 숨어 든 남다른 사연이 있어 보이는 또다른 가족들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성실하게 살며 차근차근 원하는 방식대로 살려는 계획을 마음에 품고,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기대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실망'하고 '속았다'고 생각하는 삶이 아니라, '선택'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뇌'하는 생기 있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너의 선택에 앞서, 누군가도 그렇게 선택하는 삶을 살아왔고, 때로 무너졌고, 하지만 다시 시작하는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있다고. 그 사람들의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들이 너에게 힘내라고 말하고 있다고. 시공간은 그렇게 어루만져지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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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어린이 2023.가을 - 통권 82호, 창간 20주년 기념호
창비어린이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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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여름에 창비 계간지 200호(50주년)를 맞이했다면, 이번 가을은 창비 어린이 82호(20주년)를 맞이했다.


어쩌다보니 최근 몇년은 창비에서 출판한 어린이 그림책과 청소년 시집, 청소년 소설을 많이 읽게 되었다. 부쩍 청소년 소설이 많아진것도 사실이나, SF 장르나 영어덜트라는 장르 속에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는 그 경계성이 모호해진 것을 느껴왔다.


그렇게 '요즘 청소년 문학'의 트랜드를 반영하고 이 시기를 대표하고 있는, 백온유, 곽유진, 길상효, 단요, 이희영, 최상희, 현호정의 창작 청소년 소설 특집 단편글을 읽으며 청소년 문학을 이해하고 사유하는 폭이 넓어지게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창작

이번 가을호는, 청소년 소설 특집으로 일곱편의 청소년 소설이 실려있다. 미래 사회를 그린 SF부터 , 판타지, 사소하지만 세밀한 일상의 이야기 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일상의 풍경을 다각도로 바라보며 따뜻한 유대관계로 넓혀갈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작품들이다.

  • 곽유진 - 뇌를 빼고 그림을 그려도 미대에 가고 싶습니다

'왕남뽑을 가리켜 뇌를 빼고 쓴 소설이라는 얘기가 많았죠. 사실 입시보다도 뇌를 많이 쓰면서 쓴 소설인데 말이죠.'라는 작가의 말이 서글프게 다가온건 결론을 못읽어서 인지 그런 날카로운 댓글들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쓰는 내가 재미있어야지 읽어주는 사람들도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의 원칙도 재능있는 사람들의 거짓말 같았다.

지금 입시미술에 시달려 있는 내 입장과 다를게 없었다. 내가 잘그린 그림이라고 남들도 잘 그렸다고 생각해주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왕남뽑의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글도 그냥 뇌를 빼고 쓴 것처럼 가벼워 보였지만 인기가 많았던 것 처럼, 숙고하여 그린 그림이나 그냥 뇌를 빼고 그려서라도 입시 미술에서 뽑히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렇게 암기화된 입시미술로 체득된 테크닉은 신체가 기억하게 놔두고,

그 다음엔 뇌를 뺀 후에 자신만의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보면 되는거야.

하지만 결국 문학이 아닌것 같은 왕남뽑을 쓰기 위해서 조차도 작가가 중세사와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했던건 분명한 사실이다. 미대 입시가 비록 예술 작품이 아닌것 같은 암기 미술을 하고 있지만 그 기초를 닦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미대 진학 후에 (지금까지의 암기 미술의 기억인) 뇌를 빼고 자신만의 작업을 하라는 선생님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작품은 엉덩이로'라는 고되고 긴 고민의 시간과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이라는 뒷받침과 '일단 내가 마음에 들어야 대중의 마음도 사로잡는다'라는 그럴싸한 그 유혹의 말과, '기본을 갖춰야 재능이 발휘된다'는 고전적인 말들이 모두 들어가 있어 꽤 공감이 되었던 글이다.

  • 길상호 - 다음 문장을 바르게 고치시오

국가 기관인 '내일 재활 센터'는 난치 질환으로 냉동되었다가 해동된 환자들이 시대적 차이를 극복하고 재사회화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이곳에서 재활 도우미로 봉사활동 하고 있던 찰라, 백년 전에 냉동되었던 환자가 깨어났고 그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는 모국어를 잃고 시간에 떠밀려 온 난민이었다.'

냉동 치료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시간을 늦췄다. 깨어나보면 저마다의 상실을 발견한다. 치료된 자신의 병에 기뻐하기 보다 달라진 미래와 사라진 언어에 당황하며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뭘 그렇게 까지 했나 싶네..'

56세인 그가 16살의 자원봉사자를 만나 반말을 듣고 억척같이 화냈던 것도 잠시, '그 시대엔 이런 말을 썼어' 라며 존댓말을 가르쳐 주다가 결국 '이 시대에 적응' 하는 쪽을 택한다.

"우리의 다정한 언어는 널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어"

언어 파괴, 기후 위기, 난민, 난치 질환 치료 개발을 위한 냉동 문제를 모두 겪어낸 미래의 이야기이가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주로 사용하던 '모국어' 를 잃는 것 또한 '난민'과 다를바 없다는 표현 또한 와닿는다. 그리고 어떤 변화가 와도 우리는 다정하게 너를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 따뜻했다.

'한국어' 에 세번의 파도가 왔듯, 시대는 계속해서 파도치며 변화한다. 변화하는 방향성에서 옳고 그름, 더 나아지고 있는지 등을 따지는 것은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결국 '적응'해 간다는 것이다. 일찍이 다윈도 말하지 않았던가.

"지구상에서 살아남는 종족은 가장 강한 종족도 아니고, 가장 지적인 종족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족이다. "

  • 단요 - 세상의 이름은 기린

기린의 줄잡이였던 '나'는 가족을 모두 잃고 기린의 다리가 무너지면서 땅으로 내려오면서 새로운 가족을 찾아야 했다. 그러면서 지키고 지켜지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유령기린은 우리를 지켜주지만, 우리가 없으면 유령 기린은 기린일 수 없다. 슬퍼도 내일을 위해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고, 낯선 기린을 찾아 익숙해 지는 것은 평생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였다. 그래서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때때로 빈자리가 원래의 마음을 대신하곤 한다. 기대가 서서히 무너지다가 모두 사라진 뒤에도 마음이 이었던 자리는 그 모양 그대로 남곤 한다. 버려짐에 대해서 생각했다. 강물이 지나간 후 그 자리에 싹틀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밀려나는 무엇으로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세계가 한껏 역동하며 내달리는 것에 함께 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든, 꿈꾸든 꿈꾸지 않든 '순환'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돌다 어느 순간 서로 다른 것의 마음이 기적처럼 맞닿아서 각자의 고통을 보게 되기도 한다.

'삶이란 숨결과 시간과 갈증과 열망이다. 삶이란 모든것이다. '

기린에 대한 이야기로 지켜짐과 지킴, 변화에 대한 슬픔과 적응, 만남과 괴로움, 배려와 용서, 다시 지켜짐과 지킴으로 순환되는 삶의 모든 숨결을 이야기 한다. 비유와 이입이 적절해서 눈길이 가는 소설이었다.

  • 백온유 - 냠냠

떡볶이집 딸로 똑부러진 반장이 은근 손을 많이 타는 한 친구를 관찰하고 챙겨주다가 정이 들어 버렸다는 청소년의 귀여운 썸타는 이야기를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냈다. 자존심을 지키는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자칫 예민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부분들을 어떻게 지켜내면서 또 어떻게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는 지점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결식아동이라는 점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연민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보다, 오히려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 이미 인기있는 떡볶이 집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이제 차릴 생각인데 '시식'해 달라는 핑계로 음식을 권하고, 평가를 받으면서 갖는 둘만의 시간에서 짝남을 관찰하는 재미에 푹빠진다. 이렇게 웃는구나, 이런 말투를 쓰는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이를 보면서 함께 '식사' 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만의 습관을 눈치채고 대화를 통해 알아가고 같이 보내는 시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나는 그애가 먹는 모습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고 소리에 귀 기울였다.

냠냠 소리를 내며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 순간이 참 행복해 보였다.

먹을때 신기하게도 냠냠 하는 소리가 만화캐릭터처럼 났다.

이 예쁜걸 나만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떡볶이를 나눠 먹는 것도 좋았지만, 새로운 면을 알아간다는 것이 더 좋앗다.

말이없고, 소심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챙겨줘야 하고, 눈치 없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말이 많고, 웃기고, 똑부러지고, 신세시는 것을 싫어하고, 눈치도 있었다.

"너 먹을때 냠냠, 하면서 먹잖아. 그거 귀여워서 좀 보려고 했다. 그게 그렇게 불만이야?"

나는 내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마지막에 두 아이는 마주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함께 웃으면서 식사한다는 것은 한층 더 가까워진다는 말이기도 한것 같다.

  • 이희영 - 꽃의 노래를 함께 부를래?

'너는 기억을 잃은 후에야 비로소 네 가치를 알게 된 것 같아'

기억을 잃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 기억에 없는 가족, 친구들을 만나고 낯선 거울 앞의 자신을 마주한 뉴라. 거추장스러웠던 앞머리를 자르고 초록색의 예쁜 눈동자를 드러내며 '나는 왜 내 눈동자를 가리고 있었던 거지?'라고 말하고, 방에서 발견한 자신이 그린것 같은 그림들을 보며 '나 그림을 잘그리는 것 같아'라고 말하자 그것이 너만의 '가치' 라는 말을 듣는다.

"나랑 꽃의 노래를 부를래?"라고 여자가 파트너를 청해야만 남자는 수확 감사절 춤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 잔뜩 움츠렸던 꽃봉오리가 터지듯, 잃어버린 용기가 발현되듯, 기억 너머의 지워버린 어떤 마음을 전달하듯 비록 기억은 없지만 방에서 발견했던 자신의 그림에 등장했던 남자 '드레'에게 서슴없이 청해본다.

'기억을 잃어버려서 원래 자신이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 알수 없으니까' 작은 장점에도 기뻐하고, 속이거나 억누를 필요 없이 감정에 충실하고, 계산적으로 굴것 없이 과감하게 행동한다. 그것이 때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동안 스스로는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던 걸까 되묻게 하는 지점이다.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야. 평소에는 꼭꼭 숨겨 놓거나 억눌렀떤 스스로가 나타난거지.

기억을 잃는다는 건 자신을 가둬 놓은 '방'에서 나오는 일이니까.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변하면서 익숙했던 관계와 알고 있던 나를 색다르게 볼 수 있다.

별볼일 없던 내가 대단해지고, 새롭게 도전할 용기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해진다.

최근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라는 신간을 낸 이희영 작가의 따끈한 단편이다. 어린 나무가 첫 겨울을 맞이하는것 처럼 이제 성인이 되는 기로에 놓이는 17살이 된 기념으로 '기억의 오두막'에 들어가 '기억을 잃는 차'를 마시고 돌아오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 마을에서 이번엔 '뉴라'의 차례였다. 우리가 흔히 '자신만의 방'이라고 부르는 동굴은, 힘들때 숨으러 들어가는 혹은 생각을 정리하게 하는 그런 곳이다. 그런 방의 존재가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잠시 '숨쉬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방에 자신의 가치를 '숨기게 한다' 는 발상에서 이 소설이 만들어 졌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잃으면 자아를 잃게 된것이라 보통 두려움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데, 이 소설에서는 두려울 필요가 없으며 차분히그리고 새롭게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며 '가치'와 '관계'를 발견하자는 이야기로 쓰인 점이 좋았다. 일주일 정도 '기억을 잃을 자신'이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상상해 보시라.

  • 최상희 - 앤

'굿 시스터'는 다른 행성에서 이모님을 채용해 가정에 매치해 주는 정부 지원사업으로 보육과 가사를 담당할 노동력의 원활한 보급으로 가정의 행복도를 높이고 열악한 환경의 행성 사람들을 돕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었다.

13세 이하의 아동들을 어른 없이 집에 혼자 두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에 수요와 공급이 맞았다. 기후 변화로 두꺼운 얼음과 눈으로 덮여 혹독한 추위와 밤이 계속되던 헤카테 행성에서 온 '앤'은 상당히 앳되보였지만 일머리가 있어 노트를 들고 다니며 일을 속도가 빠르게 배웠고 곧잘했다.

이곳에 달리 집도 가족도 없는 앤은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이모님이었다.

'통역기'를 통해 각기 다른 행성의 말을 교환하면서 앤이 알아야 할 건 우리의 요구사항 뿐이었고, 우리도 언제고 떠날수 있는 시스터 앤에 대해서 알려고 하진 않았다. 때문에 앤에게도 이곳이 아닌 저곳에는 가족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했다. 앤의 돌봄을 받는 동생 래미는 23번의 이모들과의 잦은 이별에 익숙한 아이였고 '야생 동물의 눈과 코' 로 자신에게 진심으로 대해주는 지를 쉽게 파악할 줄 알았다. 앤을 잘 따라왔고, 직감적으로 앤의 변화도 누구보다 빨리 파악했다. 래미는 앤이 찾지 못하게 꼭꼭 숨는 숨바꼭질을 시도했다. 한껏 걱정스런 얼굴로 달려와 꼭 안아주길 바라며 멀리멀리 달아났고, 길을 잃었다. 그리고 앤 역시도 대게 이모님들이 작별인사 없이 떠났듯이 조용히 사라진다. 그 언젠가 들려주었던 헤카테 행성의 자장가만을 남겨둔채.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들이 '통역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요구사항'에 필요 충분하며 지내는 이 설정 속에서도, 가족, 유대, 진심, 사랑 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 놓을 수 있는 것을 보며 청소년 소설의 힘을 느낀다.

  • 현호정 - 가렌웰의 주방

전쟁 전에도 이미 삶이 전쟁같았음으로, 진짜 전쟁이 일어난 뒤에도 삶이 크게 변하거나 나빠지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낡아 빠진 여관의 화덕에서 스프를 끓여먹으며 겨우 목숨을 부지해 왔다. 남편도 잃고 딸도 잃은 이후 가렌웰은 쪽잠조차 자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으니 하루가 온통 잠이 됐다. 시작도 끝도 없는, 전쟁보다 나쁜 것이 되었다.

남편과 딸의 사라짐이 죽음인지 실종인지 알 수 없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슬픈건지 화난건지 감정이 담기지 않는지 오래다.

'희망이란 무엇일까' 가렌웰과 여관 사람들은 앵무새의 외운말 같기도, 잠꼬대 같기도, 그러나 거지말 같지않은 희망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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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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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을 아이가 직접 부모를 면접하여 선택하는 '미래'시대를 그린 『페인트』로 좋은 부모와 자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육체의 나와 영혼의 나로 '분리'된 '나'를 그린 『나나』 로 진정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청소년 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리는 이희영의 신작이 나왔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의 이번 소설에서는 자신의 '보여지는 면'과 '감춘 면'으로 타인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라는 사람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혹은

친근하게 여기는 프레임, 사회적 위치, 나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 내가 된다.


누군가의 '부모와 자식'으로 누군가의 '선생과 학생'으로 누군가의 '상사나 동료'로 각기 달리 기억되는건 비단 사회적 '역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어떤 모습에는 '시대'도 한 몫을 하고 '상대방'이라는 사람도 한몫을 하고 '분위기'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혹은 그가 스스로 어떤 이유나 계기로 인해 변화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평생'에 걸쳐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변화에 대해 우리는 '성장·성숙'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표정·태도·가치관' 의 변화에 따라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고 때때로 자신이 알고 있던 범주에서 벗어났을 경우 '의외의 면'이라며 반전매력이라던가, 갭(gab:차이)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열길 물 속보다 깊은게 인간이니까.

타인이 보여주는 모습을 '존중'하되,

그것이 전부라 '단정'짓지 않으면 된다.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수도, 그 반대일 수도 없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어떤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선의의 행동을 했을때 그 주변인들에게 '그는 평소 어떤 사람이였습니까' 라는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조용했어요, 착했어요' 등으로 통상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인사를 항상 먼저 하는 인사성이 밝은 친구였어요.' 등으로 어떤 구체적인 행동의 예를 들면서 이런 모습으로 보아 그는 어떤 사람인것 같다며 자세하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한 인간을 만나 한 부분을 같이 지냈을때 각기 달리 기억하는 이유가 수천가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연'도 한가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벚꽃은 봄의 상징, 은행나무는 가을의 표상이 된 건

바라보는 인간들이 그냥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한사람'에게 서로 다른 추억과 이미지가 덧 씌워지듯이


상대방과 당사자 사이의 경험, 그것이 기억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개개인과 모두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순 없기 때문이고, 설령 비슷한 경험을 했다하더라도 같은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비록 오래전에게 세상을 떠났지만 나에게도 형이 있었다.

형과 나는 십삼년 차이 쌍둥이라고 불렀다.

나는 시간이 지날 수록 죽은 형의 모습이 되어 가고 있었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이라는 전제로 하기에 '죽은 사람' 을 다루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설은 여태 많았다.

대부분의 '회상'이라는 것은 사건-추억-기억의 시간 순에 따라 이루어지고, '기억'하는 방식, 모습, 대부분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그리고 '기억' 하는 것도 서서히 기억에서 '지워' 지는 것도 모두 남은 사람의 몫인것이다.

이 책 역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형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터울이 큰 남동생이, 죽은 형의 나이가 되어서야 형을 기억하려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간차 기억법'인 것이다.


17살의 형이 죽었을 무렵, 동생은 겨우 5살이였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고, 형에 대한 기억도 너무 어릴때라 거의 없다.

'함께 나눈 기억이 없으니 추억도 없다. 그리움도 불가능했다.'

'형의 기억은 사라진 공룡과도 같은 것' 이라며 곁에 머물다 사라진 존재라는 것은 알지만 어렴풋한 기억밖에 없어서 '화석'이나 '뼛조각'을 이어 붙여 복원시켜봤자 '상상의 산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존재가 형이였다.

그러나 형이 죽은 나이만큼 자라자, 그때의 형의 모습과 꼭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그 시절의 형'과 같다는 말은 묘했다. 살아있었다면 형의 모습은 '미래의 나'가 된다는 말이였다. 자꾸 그런 말들을 들으니 문득 형이 궁금해졌다.

동생의 기억법에는 '형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는 것과 함께, '그런 형과 함께 자라서 형이 만약 지금 서른이 되었다면, 어떤 모습이였을까'로 나아갔고, 십삼년차 쌍둥이라는 말을 들은 나에게 '형'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미래'의 사람이 된다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지점이 기존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기억법의 특징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해서 동생이 과감하게 닫혀있던 형의 방문을 열고 형의 흔적을 찾으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형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어?" 모두에게 물었지만 모두의 대답은 달랐다.

평범하게 조용했던 사람으로, 다정했던 사람으로, 우직했던 사람으로, 애교많던 사람으로, 그렇게 기억에 없던 형을 기억해본다.

"어떤 사람이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추억만큼 "어떤 모습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달랐지만, 그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의 의지보다, 기억되는 당사자가 "어떤 모습을 얼마만큼 보여주었냐"에 따라 다른 것이었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저마다 사람을 대할때 누군가에게 어떤 모습을 얼마만큼 드러내고 숨기고 있느냐에 대한 '관계방식'이란 이야기로 흘러간다.

'숨기고 싶은 면'이 있다면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고, '말하고 싶은 면'이 있었다면 마음 터놓고 얘기했을 것이다.


책에선 사람들의 다양한 '이면'을 설명하기 위해 '메타버스', '아바타', '가상현실'을 소재로 삼았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모든 면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달의 뒷면'으로 비유되기도 하는 감춰진 모습들은 대부분 인터넷 세상 속 익명성 속에서 발현되기 마련이었다. 가면을 쓰고 날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되려 속내를 털어놓는 모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역시도 거꾸로 활용한다.

'가상공간'을 이용해서 '아무나' 알리고 싶지 않는 내 공간을 따로 만들어 현살과는 다른 관계를 별도로 쌓는 식이다.

형의 방문을 열고 형의 컴퓨터를 켜 형이 즐겨하던 프로그램에 접속하여 11년만의 로그인한다. 거기에서 마주한 한사람. 형이 가꾸어 온 '가상현실'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공간이 그곳에 서있던 한사람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한사람만을 위한 공간의 주인공인 그 한사람은 여전히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형의 비밀스런 '가상 공간'도 알게되고, 형을 기억하는 현실의 사람들에게 형에 대해 '질문'도 하고, 형의 정보로 형과의 '대화'를 구현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기억에 없는 '형'을 쫓으며 되려 형과의 추억을 쌓게된다.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 방식, 메타버스 속 아바타의 캐릭터, 현실의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맺어가느냐의 이야기는 모두 같은 맥락 속에 있었던 것이였다. 우리의 다양성과 익명성은 저마다의 어떤 '면', 저마다의 '비밀'과 '속사정'을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였다.


-너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어.

-나도 나에게 이런 면이 있는줄 몰랐어.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두는 일은, 타인이 아닌 낯선 스스로를 만나는 시간인 것 같다' 라는 말은 내가 보이는 나의 '이면'은 오롯이 나만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어떤 점을 이끌어 내주기도 한다.

'열길 물 속보다 깊은게 인간'이기에, 그 깊은 사람 속을 모르는 것은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나는 내가 이런줄 알았어'라는 스스로의 프레임을 벗겨내는 것 또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어가느냐에 따라 나의 이면들이 곳곳이 드러난다는 얘기인데, 그 '관계'라는 것이 또 그렇게 '어렵고 두려운' 것이다.

저마다의 감추는 모습과 드러나는 모습들이 다른 것은, "사람들은 모두 애쓰면서 살기 때문", 그리고 그 부분들을 보면서 사람들도 저마다의 좋거나 나쁜 기억들로 잊거나 간직해둘 것이다.


우리가 저마다 어떤 가치를 중요시 여기고, 그래서 무언가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어떤 것은 '무모하게' 어떤것은 '무심하게' 해결해나가면서 살아가는데 있어 '고작' 은 없다.


사는게 다 그러하다고.

세상에 수많은 성격과 가치관이 존재하니,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가며, 저마다의 비밀을 지켜가면서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진실을 안다고 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고.

몇가지 눈에 보이는 사실 만으로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가며, 저마다의 비밀을 지켜가면서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한때 귤을 좋아했지만, 신맛이 가슴으로 퍼지는것 같아 싫어진 사람이 있다.

귤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귤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봄귤은 달고, 여름의 귤도 맛있다.

이야기 초반부로 돌아가 계절에 대한 얘기와 기억에 대한 얘기를 다시 짚어본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계절마다 의미를 부여하는건 인간이라는 말, 봄의 상징은 벚꽃, 가을의 상징은 은행나무, 겨울은 귤.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어떤 '기억'은 그 계절을 좋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계절을 싫어하게 만들기도 하겠지.

이건, 겨울의 귤을 좋아하던 사람에게 여름의 귤을 권하며 더는 귤을 싫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이야기다.


매일 귤빛 태양으로 물들이며 하루를 보내지만, 또 하루는 시작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보내는 오늘과 다가올 내일에서 서로의 비밀과 이면을 발견하면서 조금씩은 특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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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리는 아리송 창비청소년시선 45
정연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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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정연철 선생님이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물들어가면서 직접 '송아리'라는 학생이 되어 적은 시들이다.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기 보다 이런 저런 의견들을 접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아리송한게 많은 팔랑귀이지만, 그만큼 잘 들어주고 수용과 공감에 열려있는 마음을 지닌 캐릭터가 탄생되었다.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아, 그건 줏대 없는거 일 수도 있지만 공감을 잘하는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제나 맞다고만 하진 않는다. 때때로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에 대핸 과감하게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는 송아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팔랑귀'에 '아리송'한 것이 많지만 덕분에 사람에게 상냥하고, 성심껏 잘 '들어준다'는 장점을 갖고있는 송아리에게 『송아리는 아리송』이라는 제목을 붙여준 이 시를 보면, 어쩐지 남북 전쟁 중이던 중위가 외딴 전초기지 황야에서 수족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안 부족을 만나 충돌, 교류, 수용, 우정등을 다누는 『늑대와 함께 춤을』 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주인공인 던바 중위가 '늑대와 춤을'이라는 이름을 채택하고 수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주먹쥐고 일어서', '발로차는 새', '머릿속의 바람', '열마리 곰' 등 인연을 맺는 이 이야기에서, 극중 사람들의 이름이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신념이나 성격을 드러냈던 점이 '송아리는 아리송'과 어쩐지 닮은 점이 보였다.


성심껏 들어준다. 들어만 준다.

들어준다는 건 어쩌면 천근만근 묵지근한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

<들어준다는 것> 中


더욱이 수록된 시구 중에 '들어준다는 것은,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 이라는 표현은 이름도 특이하게 짓는 인디언 부족의 말로 '네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가 바로 '친구'를 뜻하는 것과 연결선상에 있는 느낌을 가져다 준다.

'등에 지고 가는 것=덜어주는 것=들어주는 것'

그래서 인지 가장 마음에 드는 표현은 바로 이 시였다.


너 알아? 사람은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는 거.

넌 수학공식에서 괄호야,

가장 먼저라는 뜻, 잊지마.

<괄호> 中


'뒷모습의 표정'도 눈치채고는 이내 마음쓰여 얼른 힘이 되어 주고 싶어 다가가는 친구 송아리, 그런 친구에게 고등학생 다운 표현, 수학공식에서 가장 먼저 계산하라는 기호인 '괄호'를 예를 들며, '너가 항상 가장 먼저야'라고 말해주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네 슬픔을 등에 지고가는 자' '네 등의 슬픔을 가장 먼저 알아봐 주는 자'이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들어준다'는 것은 삶의 무게 뿐만이 아니라 계속 같이 걸어주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관계'를 말할 때 '곁'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집과 학교 구석구석에, 골목 곳곳에,

틈날때마다 채집해준 단어들로 '해시태그'를 달아둔다.

그럼 내 안에 '알고리즘'이 작동해

좋은것만 보게 돼 좋은것만 생각나.

<멘탈보호 해시태그>中


두번째로 좋아하는 표현이 있는 시는 이 시이다.

어느날 문득, '어째 행복하지가 않다'라는 말을 내뱉었을대, 지인이 자신만의 방법이라고 알려준 방법과 비슷했다.

'그럴 땔 대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행동들을 메모장에 잔뜩 적어두는게 중요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행복을 까먹거든. 메모장에 가득 좋아하는 일들을 적어놓고 그럴때마다 펼쳐보면서 거기에 써있는 행동을 하면 돼. 강아지와 산책 후 샤워하기, 발마사지기 하면서 과일먹기, 핸드드립 커피 내린 후 책 읽기, 다이어리 꾸미기, 팝콘 먹으며 영화보기 등 사소하지만 즐거운 기운을 가져다 주는 것들을 잔뜩 수집해 두어야 해. 그래서 행복이 뭔지 모를때 그걸 꺼내 보내는 거지. 그중에 하나는 반드시 내 기분을 다시 좋아지게 할꺼야.'

그 표현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 바로 이 시였다. 틈날때마다 채집해 둔 나의 #소확행 해쉬태그를 열어 알고리즘 작용을 시켜 좋은 기운으로만 수렴되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일, 그걸 어른이 되서야 알게되었는데 고등학생 송아리가 벌써 행복의 원리를 알고 있는것 같아서 대단했다.


송아리는 쪼그려 앉아 작은 무당벌레에도 한참 시선을 빼앗기는 잔정이 많은 아이다. 그렇기에 시 전반에는 그런 송아리의 마음이 듬뿍 담겨있다.


하고 싶은게 많고, 자신의 좋은 점을 발견해 칭찬하려 애쓰고, 사랑과 그리움, 고민과 궁리, 반박과 반항, 틈과 행복, 삶에 대한 응원들이 한가득 담겨있어서, 마지막 시에 이를 즈음 '송아리 많이 컸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시를 읽는 나는, 고등학생을 훨씬 오래전에 떠나온 나도 송아리 만큼 많이 컸을까. 하며 돌아보게 만든다.

항상 시는, 마음에 와닿는 시구절을 만나면 내 인생과 마주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더 이입하면서 읽게 된다. 청소년 시선에서 쓰인 청소년 시이지만, 그시절을 지나왔기에 여전히 청소년의 마음이 남아있어 그런 마음으로 읽어내려간것 같다.


새해를 맞이한지 9달이 지나고 단풍이 지는 계절이다.

선선해지고 선명해졌지만, 현명해지고 있는걸까 하는 아리송함이 든다.

바닥에 낙엽이 떨어지고 그 잎들이 바싹 말라 썩어가도, 우리에게 그 잎은 여전히 단풍잎이다. 내 지나온 삶의 얼룩투성들도 고운 단풍으로 기억될까 의문이다.


매일 지나는 길에 있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기대한다.

모퉁이 너머에 있는 그길을 선택한건 잘한걸까, 그 너머엔 무었이 있을까, 잘하고 있는걸까, 내가 선택한 길에 책임질 수 있나, 나는 내가 걷는 보폭만큼 진화하고 있나.


이리 치이고 저리치이고, 이런 저런 핑계에 지고 사는 요즘,

'진다'는 말에, '해도 하루를 다 지내고 진다. 내일 또 뜨려고 오늘은 이만 진다.'라는 그 뻔한 말이 적잖이 위로가 되는 가을 밤.


마음 먹는대로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할땐, 차라리 마음 '먹지' 말고 '굶어'.

괜찮아 방황해, 그 방황하는 길목으로 물줄기를 주면서 나만의 길로 가꿔나가면 돼.


잘하고 있나 질책하고 돌아보다가도,

뭐 괜찮아, 괜찮겠지 라며 결국 다독이는 것도 자기 자신.

만만하지 않은 세상을 호락호락(好樂好樂)하게 사는 것이 방법이라고


작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 잔정을 뿌려주는 것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면, 차라리 느리게 살면서 천천히 많은 것을 보며 차츰 단단해 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 웃자, 웃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자꾸 웃어야 웃음도 는다.


웃음 꽃이 피어야 인상도 피고 인생도 피고, 예쁜 문양을 가진 나뭇잎이 되어 선명하게 무르익으면 다시 가을이 되어, 지고 떨어져 모퉁이를 돌고 거름이 되었다가 다시 선명한 잎으로 피어나는 일이 돌고 돌겠지.


특별하고 각별해. 세상은 아리송하지만, 호락호락(好樂好樂)하게 살아가자고 말하는 시, 『송아리는 아리송』이다.


어둡고 잘지만 다양해서 찬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고등학생 송아리의 시선으로 학교생활 속 교우관계세상 속 편견 맞서려는 의지, 자신만의 개성을 찾으려는 고민들을 담으며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별도의 진도를 나가는 중' 인 송아리의 성장담을 담고 있는 이 시를 읽으면서,


세상 작은 일들을 시처럼 단비처럼 적셔 내리며 맞이하며 사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함께 마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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