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에게 솔직하지 못할까
일자 샌드 지음, 곽재은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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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센서티브>, <서툰감정>을 집필한 심리상담사 일자샌드의 <컴 클로저>의 개정판으로 관계가 어렵고 자기 자신을 다루는 법도 잘 모르는 서툰 어른들에게 자신을 제대로 돌보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기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일부러 실수하기도 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위해, 삶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피하기위해, 자기안의 생각과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 하는 이런 행동을 우리는 오랫동안 여러이름으로 불러왔다. 방어기제(프로이트), 대처기술(인지치료사), 자기보호전략(심리학자) 등.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슬픔에서 우리를 구제할 좋은 수단이기도 하지만 결국 구체적 현실로 부터 다르게 인지하여 삶으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하여 실제보다 더 좋거나 나쁘게 보게할 뿐이다. 성숙한 자기보호를 위해선 자기 스스로 어떤 감옷을 두르며 살았는지 알고, 지속과 중단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것이 중요하다. 삶의 깊이감, 풍성함, 유대감, 기쁨 등을 온전히 누려 충실하게 삶에 임하고 더 큰 인생의 선물들을 받아갈수있도록 고민해볼 필요가있다.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첫째, 그동안 내가 어떤 자기보호 전략을 쓰고있었는지 점검해 볼 것.
둘째, 무엇이 잘못된 행동이었는지 알고 중단, 해방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것.
셋째, 성숙한 자기보호의 방법으로 감정과 관계를 회복하고 균형점을 찾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단계까지 이르는 것 이다.

진정한 내적 자아를 인식하지 못한채 습관적으로 자기보호만 하게되면, 스스로 보호해서 덜 다치긴 한 것 같은데 꼬리를 무는듯 비슷한 경험이 계속펼쳐지면서 주변 상황에 끌려다니고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들에 알수없는 불쾌한 감정들이 계속해서 쌓이기만 할것이다. 해결되지 못하고 회피했던 감정들은 의식아래에 남아 눈치채진 못하지만 계속 짊어지고 가기 때문이다. 경우에따라 그 짐은 계속 커지며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는다.

미성숙한 자기보호전략으로 동일한 패턴에 갇히는 대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자기보호전략을 써왔는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하거나, 지속하거나, 포기할줄 알아야한다.

나 자신을 포용하여 나 자신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신과, 세상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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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저자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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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기도 한 이길보라 작가 역시 '코다'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아이로서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와 관련된 '영화'와 '도서'를 많이 접했을 뿐만아니라 자신 역시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활동 중에 있다. 간결하지만 강렬한 작가 소개글부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소개글만으로도 작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부모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부모는 나에게 수어를 가르쳤고, 나는 눈을 마주치며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 '장애'가 된 건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딸인 '코다'로 살고싶다.

이것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편찬된 역사가 아닌 '장애의 역사'이자,

'나의 역사'이다.

이길보라,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中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가르쳐준 가족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한 사랑하는 '내 사람'들을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외부 사람들'에 의해 우리 가족은 '장애인 가족'이 되었다. '눈을 마주치며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가족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될때 세상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편찬되고 있는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초반의 이 부분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내가 가족의 품에서 '안전'하게 자라다가, 세상이란 위험한 곳으로 한발걸음 걸었더니 세상은 내 가족을 '불완전'하게 바라 보았다. 그나마 자녀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보라네 어머니'라는 학부모의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다시 학생이 아니게 되었을때, 그러니까 자녀가 사는 공동체 세계가 '사회'라는 이름으로 확장되었을때 내 부모는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고졸, (호떡,와플,풀빵 등을 파는) 자영업자, 청각장애인.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르는 말들 사이에서 이것이 그들의 '이력'이자 '특이사항'이 되었다.


뒤늦게 엄마의 생을 가늠해 본다.

농인이자, 여성이자, 비장애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온 삶을.

나는 아직도 모르는게 많다.


그리고 농인의 자녀로 살아가는 자신이 삶을 반추해본다. 그렇게 '장애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이다.' 라고 당당히 말하며 비장애인 중심으로 편찬된 역사가 아닌 '장애의 역사' 그대로가 필요하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인상깊게 본 부분들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통념의 프레임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장애인은 불쌍해', '장애인들은 다 똑같은 장애인들아닌가' 라던가

'장애인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는 존재들이니 다) 착할거야'라는 것들이다.


모두의 인생이 그렇듯 기쁘고 가슴 벅찰때도 있고,

화가나고 속상할 때도 있다.

대게 후자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럴줄 알았다'고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찬다.

자신의 삶의 '서사'를 구축하는 소유권과 주체성을 꺾어버린 채

나와 부모님을 그저 '불쌍한 사람'으로 '대상화' 한다.

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할 때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영화 감독이기도 한 작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인터뷰 질문이 있다.

"농인의 자녀로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라는 이 말은 작가가 지겹도록 들어왔던 질문이다. 질문이 내뱉어 지는 순간 세상이 그녀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들 멋대로 동정과 연민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까지.

그래서 작가는 장애인들에게 자신의 '원치 않는 순간들'과 '고통들'에 대해 스스로 말할 권리를 쥐고 있다기 보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주목하려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다.

이렇듯 에이블리즘(Ableism, 장애 차별주의, 비장애중심주의)과 오디즘(Audism, 청인 우월주의로 농인에게 청인처럼 행동하게 하는 것)이 만연한 사회에서 포용되기보다 차별받고 거절당한 경험이 더 많았던 작가지만, 이런 질문에는 부모님이 농인이라서 불편한점보다 자신이 코다여서 좋았던 점을 강조해서 대답하는 쪽을 택한다.


누군가를 '대상화' 하여 항상 밝고 아름다울거라고 생각하는건 위험해요.

실제로 농인이 농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와 사기행위도 많아요.

착한 장애인만 존재해야 한다는 그런 통념은 또 하나의 선입견 아닐까요?


우리는 '장애인들'이는 한 범주를 대상화시킨 후 그들의 세계나 성격, 태도들에 대해 '이럴 것이다'라는 수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사건 사고에서는 '약자'인 장애인에게 성적, 금전적으로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실제로는 그들 사이의 범죄나 그들이 주가 된 사건들도 더러 있어왔다. '대상화' 시킨 그들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이기도 어찌보면 '너네는 약자니까, 우리가 도와주면 고마워하기만 하고 그냥 착하고 얌전하게 있어'라는 더 폭력적인 시선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같은 농인이라도 인종, 잔존청력, 수어 습득 시기 등에 따라 '엘리트'와 아닌자 들로 '계급'이 나뉘기도 하고 그들 사이에서 조차도 경쟁과 차별이 있어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할 것이다. 우리가 '장애인들'이라는 단어와 '그들'이라는 대상화로 개개인의 개별성과 각기다른 정체성들을 너무 쉽게 외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런 계급차이도 그러하지만, 생각의 차이는 더욱 심하다.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타인의 경험과 감각을 상상하며 말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나의 위치가 아닌 너의 위치에서 듣고 있는지,

어떠헥 하면 다르게 생각하고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작가는 '장애인의 날'에만 두각을 받는 것이 싫어 차라리 이럴거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고 생각했다. 이후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 이날이 동정의 날이 아닌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알리고 공감대를 확장하는 의미로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부르자고 투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그 뒤로 한참 후의 일이었다.


작가가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바뀌는 과정을 주목한것 만큼 관심을 보였던 또 다른 주제는 '지하철 장애인 시위'에 대한 생각이었다. 작가는 <썰전>프로에서 팽팽하게 나누었던 담론을 거론하였다. 청인인 장애인 차별철폐 대표가 나와서 하는 담론이였기에 '수어'나 '자막'통역 하나 없었던 방송, 그리고 '말'만 오갔던 '방송 프로그램'의 특성. 2001년 장애인 이동권 연대의 투쟁에서 20년이 지난 2022년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이르기까지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도록 했다.

이 투쟁이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라는 외침과 함께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와 이를 위한 권리 예산 확보를 주장하고 있다는 부분에 주목한다. '탈시설권리'란 시설에서 나와야 지역사회에서 '이동'받고 '교육'받고 '노동'할 수 있다는 모든 권리의 바탕이 되는 개념이다.


환경이 바뀌면 관계망이 변하고 활동범위가 달라지고 삶이 변한다.

'향유의 집' 사무국장 강민정


이런 말들을 보면, '이동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 투쟁의 과정에서 얼마나 혐오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지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에는 수많은 '다름', 그러니까 장애와 질병을 겪는 사람들, 재일조선인, 다문화가정, 미등록 이주 아동, 불법체류자와 난민,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기후위기 활동가 등 수많은 '소수자'의 삶을 다룬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 '다름'을 마주하는 자세를 정확하게 짚어준다. 손쉬운 연민, 구분, 단순하고 납작한 공감, 그뒤에 따라오는 편견, 차별, 거절까지.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 장애를 경험하는데서 비롯되는 가치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고통에 '공감'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고통이 가져다 주는 가치나아가야 할 확장적 가치관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넓어진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한 이해와 납작하게 눌린 공감이라는 착각을 넘어설때 비로소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공감과 이해가 전부가 아니라, 고통이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하며 그러한 경험에 우리가 어떻게 연대하고 연결될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권리를 찾는 과정은 자신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는 동등한 출발점을 만들 준비가 되어있는가. 우리는 어떤 몸과 언어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세상을 바라보는가. 당신과 나의 고통은 보다 적극적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삶을 거기서부터 다시 쓸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질문과 그에 따른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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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김성경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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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냉전 이후 북조선은 경제적,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핵개발'에 매달리게 되었고 남한은 이에 대응하기위해 미국과 안보동맹 강화 및 군사력 확장에 나서면서 '안보' 앞에서 대결과 적대의 관계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어왔다. 핵실험과 잦은 미사일 발사로 남한의 '안보'가 위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남한사회에서 북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감각은 증폭되어 갔으며,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었으며, 경제주의적 사고가 사회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경제적 실효성과 실익에 대해 따지는 통일 회의론까지 고개를 들며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점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작가 김성경은 군인인 아버지로 인해 군부대 안에서 자라오면서 누구보다 군대, 안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왔고, 결국 북한 사회문화와 이주민, 여성, 청년 등을 주로 연구 주제로 다루는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자리매김 하였다.  

작가는 150명을 훌쩍 넘기는 북조선 여성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한반도를 옥죄고 있는 분단의 현실이 책에서 배운것보다 훨씬 더 일상과 의식을 장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녀들을 만나면서 분단 반대편의 존재가 아닌 '사람'으로 인터뷰가 가능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기에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산문, 편지, 소설과 영화의 재구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술하면서 가장 그녀들의 삶을 역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다. 

식민과 전쟁, 분단, 냉전과 탈냉전, 지역화와 세계화가 개인의 삶에 어떻게 중첩되어 있는지, 이 역사적 소용돌이속에서 '남겨진 사람들도 뭐든 해야했다, 살아야지 어쩌겠는가'라는 선택이 아닌 필연적인 억척스러움과 절실함을 보여준다. 때문에 전쟁과 같은 일상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극복하는 여성들의 행동적 실천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분단 체제 앞에서의 한국사회의 모순을 폭로하기도 하고, 남북 공통으로 적용되는 가부장제의 민낯을 보여주기도 하며 노동자로 내몰린 여성들의 고된 경험과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억압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고 자신의 존엄도 지키려 노력했던 여성들의 삶은 기적과도 다름 없었다. 

남한 사회는 북조선 사람들에 대해 무지하다. 식민과 분단 구조에서 가장 힘겨운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북조선 여성, 조선족 여성들의 모습은 우리가 손쉽게 떠올리는 북조선 여성들의 이미지나 서사와는 사뭇 다르며, 북한에서 선전하고자 했던 모습과도 거리가 있다. 가장 낮은 서열에서 자매애와 가족애를 실천하는 여성들의 행위주체성은 전복과 해방의 실마리를 안겨준다. 전쟁, 냉전, 분단 체제 속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의 역사는 현재를 규정짓고 미래로 전수될 것이기에 우리의 이해가 더 필요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숙고해야할 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북조선과 마찬가지로 분단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한사회를 한번쯤 되짚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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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연인들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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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로서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소멸되지만,

(동사로서의 '사랑하는') 사건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장소'가 필요하다.

사랑의 사건이 '함께 있음'의 '행위'라면,

장소는 '함께 있음'이라는 사건이 그곳에서 벌어졌음을 '증거'한다.

'공간'이 연인들이 '장소'가 된다는것은 사랑이라는 '사건'의 개입 때문이다.

연인들의 장소는 '임의적'으로 탄생하기에,

연인들은 장소를 '발명'한다고 할 수 있다.

연인들의 장소는 사회적 몫을 갖지 않는 세상의 바깥이다.

연인들은 사랑의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를 독창적이고 정체가 불분명한곳, 촉각적인 에로스의 자리로 만든다.


'연인'이라는 이름의 이 '최소 공동체'는 '함께 있음' 자체가 '목적'이고 사회가 승인하는 수준의 '열정'을 관리하며, 사회가 인준하는 장소에 머문다.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장소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가족'에게만 허락되어 있기에,

그러나 사랑의 '사건'은 아무리 강렬해도 '일회적'이며 되돌릴 수 없으며, 너와 나를 '우리'라는 감각으로 묶어서 함께 어울어지던 '감정'은 '소멸'하고 만다. 감정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 역시 아무리 강렬하였다 한들 '지속성'을 담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함께 했음의 '증거'가 되어 남아 있다.

즉 '사랑하다'와 '장소하다'는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연인들에게 장소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여기서 재미있는건, 이 '장소'의 개념이 확장적이고 개방적인 공간이 아니라 축소적이고 개별적인 '방'이라는 좁은 개념으로 보고 있는 점이다.


연인들이 머무는 장소의 기본 단위는 집이 아니라이다.

방은 현재적인 체류의 지점이지만 카페나 숙소처럼 소유한 곳은 아니다.

연인들은 이 방에 머물때 무언가가 일어날 것이다.

그 방에서 잠시 바깥 세계에 대한 감각을 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은 외부의 소음에 노출된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들 그들이 함께한 '(공간)'이 없었다면

겪은 시간들은 추상성 속에서 떠돌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방'은 소유의 장소가 아닌 '임시적 선물'로

'지속성'과 '영원성'을 보장해 주진 못한다.


어떤 장소에 머물렀던 그것은 임시적이다.

우리들의 역사는, 그리고 우리들의 '관계'는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실존'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추억을 쌓고 기억을 되내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곳에서 어떤 추억을 쌓았던간에 '시간의 흐름' 앞에서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연인들이 함께 보낸 '시간'과 '기억'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들 '만'의 약속도, 고백도, 다짐들도 돌이켜 볼때마다 똑같이 상영되고 재연되는 '필름'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의 머물렀던 시간과 장소를 기억한다는 것은 전부 끊임없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다.

'아름다웠다'고 말하지만 '암기할 수 없는 문장'처럼 잊히는 '파괴된 잔해'들과 같다. 이런 기억의 '망각'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붙잡고 끊임없이 '의심'과 '상상력' 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을 '장소의 멜랑콜리'라고 한다.


연인들은 흘러가야만 하는 '실존' 앞에서 잠시 '유예'를 선언하며 시간을 붙잡기 위해 그들만이 숨어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다니며 계속해서 장소를 '발명'한다.

소유의 장소가 아닌 임시적인 그 장소에서, 내적이며 우주적인 장소로 만들 그 곳을 계속해서 '발명'하고 '재발명'하며 고군분투한다.

이 소유할 수 없는 장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물질성'과 '사실성'을 비켜간다. 장소는 명사가 아니라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동사'이기에 늘 다른 공간으로 변환 될 수 있다. 권력과 통치도, 대립과 위계도, 공적이고 사적인 곳이나 고급스럽냐 저급스럽냐 하는 장소의 '위치'와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우산'은 매력적인 사물이다. 우산이 펼쳐지는 순간 두사람의 최소 공간이 만들어 지면서 순식간에 내밀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공원에 있는 '벤치'는 연인들을 손가락에 닿는 최단 거리에서 '옆'으로 나란히 앉게 만든다. 거리의 복잡함과 소음은 제거되고 가볍고 부드러운 침묵의 공간으로 만든다.

'카페'는 연인들의 둘만의 공간에 무대가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소란스러운 공간도 둘이 앉은 공간만큼은 다른 조명을 비추는 방이 된다. 책상을 두고 얼마만큼 가까이 앉아있느냐에 따라서도 둘 사이의 거리를 말해줄 수 있다.

갈곳이 마땅치 않은 연인들은 공원의 '계단'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때 계단은 오르내리는 장소가 아니라 쉼터이고 작은 방이 된다. 복층 구조의 펜션에 있는 계단은 침대에 오르기 위한 은밀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침대'는 그 자체로 방이 된다. 탄생과 죽음을 맞이하는 이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체류지가 된다. 때때로 영원에 닿을 수 없는 하룻밤의 공기가 잠시 머물다 우회하는 뗏목이 되기도 한다.

'욕조'는 연인들이 몸을 담는 순간 이륙하는 우주선이 된다. 어디로든 비행할 수 있는 우주선이자, 어디로든 유영할 수 있는 좁고 따뜻한 바다가 되어 연인들을 안내한다.

'창문'과 '테라스'가 있는 방은 우리를 외부와 내부로부터 단절시키기도 하지만 연결시키기도 한다. 외부로 부터 보호되고 있다는 안도감과 친밀감, 만질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안밖을 가르며 그 속에 연인들의 사건을 일으킨다.

'자동차'는 움직일 때와 움직이지 않을 때 전혀 다른 공간을 연출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기 위해 정차한다면 자동차는 기계가 아니라 방이 되기를 바란다. 이 지붕이 있는 완벽한 주차장이 연인들의 성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리' 위에서 우리는 이 다를 끝까지 함께 걸어 갈 수 있을 것인지 없을지를 예감하게 된다.

'기차역'과 '공항'은 연인들에게 아주 먼 곳에 데려다 줄 수 있다는 희망을 약속한다. 지역과 국경을 옮겨다니는 이곳에서의 시간성은 가독성이 없다. 하나의 장소에 무수한 시간의 주름을 품고 있다.

'낮'의 햇빛과 '밤'의 불빛은 공간에 다른 느낌을 준다.

'극장'의 스크린과 무대는 삶 너머를 비춘다. 공터, 광장, 산, 바다 그리고 그 어떤 곳들 모두 연인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할 때 연인이라는 것은 계속해서 함께하자는 약속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어떤 것을 하자' '무엇을 먹자' '어디에 가자' 여기에는 모두 '둘'이여야 한다는 것과 '장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과거형'도 있고 '진행형'도 있고 '미래형'도 있어서, 장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함하여 의미를 갖게된다.

장소에 대해 이야기 할때, '우리가 ~했던 곳'이라며 지난 시간에 머물러 있을수도 있고, '우리가 ~했었고, ~했었고, ~해왔던 곳'으로 계속해서 덧씌워 질 수도 있고 '우리가~하려 했지만 하지 못한 곳'도 포함된다.

따라서 장소를 '발명'해서 찾는 것도 일종의 연인들의 '여행'이고,

그곳에 대한 '추억'을 더듬거리며 기억을 더듬거리는 것도 하나의 추억 '여행'이다.

장소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지나간 기억을 되짚어 보는 것도 우리의 실존적 시간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여행'인 것이다. '증거'로 남아 있는 장소에 대해 '상상력'을 가미하여 기억하는 것을 '여행에 대한 여행'으로 볼 수 있다.

더듬더듬 되짚어 보며 그 순간 놓쳤던 순간적인 연인의 표정을 다시 기억하고, 그땐 보이지 않았던 장소의 세부가 뒤늦게 떠오르기도 한다.

시간의 '바깥'에 있으면서 시간이 '부식'되지 않도록 담아두는 것이 '장소'이다.

장소는 '지금' 없음이자 '아직' 없음이며 본질적으로 '가질 수 없음'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설명하자면, '홀로'였던 우리가 '연속성'을 경험했지만 영원에 닿을 수 없는 공기가 잠시 머물렀다 우회하는 곳, 그 환각들이 생에서 계속 반복되게 하는 곳, 독창적이고 정체가 불분명한 곳, 촉각적인 에로스의 자리.

이것은 그러한 장소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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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새로워진다 - 나이의 편견을 깨고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리사 콩던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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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이드는 일은 나 자신에게 이르도록 해주었다. 나는 이제 나와 잘어울린다.'로 시작하는 이책은, 자신감 없이 지독한 불안속에 전전긍긍하며 오래세월 살고나니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작가가 자기처럼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뒤늦게 꽃피운 인물들을 존경하며 롤모델로 삼으면서 자신도 대기만성형일꺼라고 용기를 얻게했을 뿐만아니라 40세가 넘은 후에도 대담하고 모험적으로 흥미로운 인생살기위해 노력한 그녀들을 찾아 인터뷰한 내용이다.

중년이 되면 보통 탁월한 성취를 이룰 기회는 이미 지났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럼에도 용기내어 자신의 꿈과 욕망에 다가가고자 도전하며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거나 자신의 경력에 멋진 결실을 맺게된, 이른바 '두번째 인생'을 살게된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원제는 <A Glorious Greedom>, 즉 <영예로운 자유>이다. 우리는 모두 나이에 상관없이 자유로울 자격이있다. 그러니 '이 나이에 무슨' 이라며 겁낼필요가 없다. 우리가 지난 세월을 어떻게 살아내고 '이 나이까지 이르렀는데' 더 무엇을 못하랴.

중년이 훌쩍 넘은 나이, 그러니까 인생의 후반부라 말하는 시기에 다른 어떤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중년의 '위기'가 아니라 그간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일이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야 하는 삶'을 살아오면서 '살고싶었던 삶'에 간절히 이끌려왔다면,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놓아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 을 껴안아주며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이와 함께 터득한 지혜, 감정회복력, 직업관, 여가관, 유머감, 통찰력, 나이드는 과정,고투, 승리 등 나이들며 쌓아온 경험을 가장 강력한 도구로 삼아, 당신이 원하던 삶을 만들어갈 앞으로의 시간이 당신을 최고의 삶으로 이끌어 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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