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호소의 말들 -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
최은숙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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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초반 프롤로그에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바뀐 마음가짐으로 책의 성격이 바뀐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다. 국가 인권 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사소해 보이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노동'과 '인권'문제로 '억울함'을 호소했던 사람들의 여러 목소리를 스피커로 연결하여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여러 목소리를 모으며 '억울할 때 읽는 책'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일들이 있었어 라고 알리면서 시작했던 책이 이럴땐 이렇게 대응하는게 좋아 라는 성격의 '권리 구제 매뉴얼'의 책으로 내용으로 바뀌다가, 이런 일을 당하기 전에 이렇게 하는건 어때 라는 예방적 차원의 '인권 교과서'적인 책으로 바뀌다가 결국 그럼에도 그저, 그러한 사람들에게 어찌되었든 귀를 내어주고 들어주는 자세, 그러니까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어떤 호소의 말들' 이 탄생했음을 알려준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민원 접수 메일 주소의 아이디는 호소다.

인권위 민원메일주소를 정하는 회의에 참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구나 무엇이든 억울한 일이 있으면 호소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메일 아이디를 호소(hoso@humanrights.go.kr)로 정했다.

더 낮고 어려운 사람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호소를 듣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최은숙의 『어떤 호소의 말들』 中

그 많은 호소의 말들을 다 지켜 줄 수 없었기에 더더욱 우리는 호소의 말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비록 '지금은' 이라는 장벽에 무너졌더라도,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들어주는 일' 만큼은 멈추어서는 안된다. 계속 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귀는 많을 수록 좋다. 그러면 '지금은'이 '언젠가'로 그리고 '결국엔'으로 바뀌어 갈 지도 모르는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중등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 중 하나가 '노동권' 이라고 한다. 법률적 권리의무를 가르치는 것 외에도 노동자로서 피해를 당했을때 구제 절차를 이용하는 방법, 노조 활동 중에 필요한 단체 교섭 기술 등을 미리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노동자로 산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얼마나 타당하고 당연한 일인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노동자로서, 납세자로서, 시민으로서 대응하는 기술을 의무 교육으로 배울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최은숙의 『어떤 호소의 말들』 中



이 책의 이부분을 읽고 난 후라 그런가, 뉴스에서 '노동'에 대한 말이 나오는데 귀를 쫑긋 귀울이게 되었다. 개정 교과서에 관한 내용이였는데, 남침(南侵)없는 6·25전쟁, 자유(自有)없는 민주주의(民主主義), 노동(勞動)없는 근로(勤勞)로 관련 내용 표현을 수정했다는 내용(https://www.ytn.co.kr/_ln/0103_202209011724078032https://www.ytn.co.kr/_ln/0103_202209011724078032)이였다.


언제부턴가 초, 중등교육은 곧 대학진학만을 위한 교육으로 변하였고, '좋은' 대학 진학이 곧 '좋은' 직장 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여겨지면서, 학교 교육은 '시험 능력 주의'교육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에도 한적이 있다.

여기서 소위 말하는 '좋은'의 기준은 다 다를 것이나 거기에 노동은 아마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교과서에서 '노동'을 빼면서 교육할 일은 없을테니까.

그럼 우리는 모두 '좋은' 곳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임금 지불 현황, 연봉협상 방법, 노동 조합, 대출, 납세 등 소득과 경제에서의 실용적인 부분들을 정규교육으로 하여 얼마나 자세하게 가르쳐야 하는가는 묻는다면 그것 역시 애매한 부분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것들을 대학에서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그럼 '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교육을 대체 어디서 받아야 하는걸까, 그냥 사회로 나가서 살게되면 저절로 알게된다고 말하고 싶은걸까. 이런 질문들은 해소되지 못하고 항상 의문으로만 남아있기 마련이다.



노동을 배운적 없으니 노동과 관련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알리 없다. '일'을 하면서 겪게되는 차별이나 침해들은 물론 '일상 생활'에서 겪게 되는 논란이나, 과거의 사례에 대해서도 살아가면서 어쩌다 '나'와 관련되어 알게 되거나 계속해서 관심 없는 채로 지내게 될 수있는 경우 두 가지로 나뉠 뿐이었다.


이번 독서를 통해서 '인권위'와 관련된 뉴스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인권위에 진정되는 사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에 띄는 단어는 '침해'와 '차별', 그리고 '구제'. 이 단어들로 인권위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인권위는 피고인의 유죄나 무죄를 밝히는 조사를 하는 곳이 아니다. 범죄의 진실을 파악하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수사 기관과 법원의 역할이다. 인권위는 체포와 구속과 재판의 철차중에 피의자나 피고의 '권리'가 '침해'되었는지 조사하여 '인권 침해 여부'를 밝히는 역할을 한다.

최은숙의 『어떤 호소의 말들』


사회 역학자 김승섭은 『아픔이 길이되려면』에서 인권 침해와 차별의 고통이 어떻게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 과학적 통계와 연구자료로 증명해 보인바 있다고 한다.

차별의 경험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말하지 못한 상처'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새겨진다고 표현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청춘들은 계속 몸에 고통을 새기고 있으니 계속해서 아프기만하다.

우리의 교육이 '직장'으로 이어지는데도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알수 없고 그 대처 방법도 모른다. 아마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2019년에 이르러서야 생겼다는 것 역시 알 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사회 생활 속에 만연한 '갑질', '계약직과 정규직', '성희롱', '차별', '노동조합' 등의 이야기는 외면한다. 근면하게 묵묵히 참고 일하는 것(근로)이 사회 생활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거짓말과 진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통념에 대한 푸념 등을 다채롭게 담으며 '인권감수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납작하게 눌러버리는지를 알아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예민하게 감각을 열어 놓아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이런 마음상태에 '인권 감수성'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


'인권 감수성'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인권위 조사관으로 오래 일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우리는 조금씩 '알아차리며' 인권 감수성을 키워나간다.인권은 법이나 제도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지만,그 제도나 법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감수성이 없다면 실천되기 어렵다. 편견을 버리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야 한다.

말랑말랑한 마음이 법보다 훨씬 힘이 세다고 말하는 것이 인권 감수성이 아닐까? 작은 소리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리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

최은숙의 『어떤 호소의 말들』 中

이 책의 1부에는 호소의 말들에 집중되어 있다. 인권위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들을 두고 쓰는 일기장 같은 마음의 소리가 담겨있다.




'사실 너머에 있는 다양한 무늬의 진실을 헤어려 보는 것이 인권의 마음이 아닐까'

'인권 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심판이 끝난 뒤에도 피해자의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는것 같다.'

'책임은 멀리 있는 신이 아니라 여기 있는 우리에게 있다.'

'누군가를 절대 그러지 않을 사람, 또는 당연히 그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어도 인권을 다루는 일에서 만큼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거 정말 잘못된거 맞죠? 그런데 왜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는거죠? 라는 말에 부끄러움을 숙제처럼 끌어안고 집에 돌아왔다.'

'뒤늦은 정의가 정의일 수 없는 것처럼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후회의 마음만은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

'조사관으로서 더 많은 선수를 인터뷰하고 그 말들을 구슬처럼 꿰어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진정 응원하는 것은 폭력으로 얼룩진 메달이 아니라 운동장에 서 있는 사람임을 알리고 싶다.'

그리고 2부에서는 '슬기로운 조사관 생활'로 '조사관으로 산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가치 추구와 바람, 삶의 자세에 더 초점을 맞춘듯 했다.

'조사관으로서의 나의 손이 여전히 따뜻한지를. 내가 가는 길이 좋은 선례가 되고 있는지를'

'진정인을 대할 때마다 공중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줄타기일망정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중이기도 하다. 아주 옅은 농도의 다정함이나마 꽉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친애하는 진정인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괜찮으세요?'라고 안부를 전하고 싶다.'

'인권 지킴이가 아니라 인권 찍힘이가 되더라도 함께 서고 싶다.'

'계속해 보겠습니다.'

'누군가 제발 큰소리로 '저런!'하고 외쳐 주세요 라는 시인의 말대로 소리치고 끌어안는 순간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만나는 인권 피해자들이 늘 '무고하고 선량한 희생자의 이미지의 사람들'이 아니라 때때로 '악랄하고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들' 도 있다는 것이 조사관으로서의 회의감과 고뇌에 빠지게 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일이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구나 싶었다. 그러헥 엇갈리는 주장과 상식에 어긋나는 조치들, 말장난 같은 억지가 담긴 서류뭉치를 받아들면서도 '다 사정이 있겠지' 라고 말하며 저마다의 사정응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 자체가 위로가 되기도 했다.


우리에게 포클레인 같은 힘은 없지만

여럿이, 천천히, 꾸준히, 한삽씩 뜨는 진정성이 있고

그 힘으로 길도 뚫고 산도 옮길 수 있다고 감히 믿는다.

최은숙의 『어떤 호소의 말들』 中

작가는 모든 일이 법과 제도를 잘 만드는 것처럼 누가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인권을 위한 일이라면 더더욱이.

그 마음은 서로를 '조금 슬프고 귀여운 작은 존재'로 응시하는 것이고, 작가는 그것이야 말로 '인권의 마음'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마음이야말로 법의 그물이 구제하지 못하는 억울함이 기댈 곳이라고.

그렇게 기대고 의지하며 다정다감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실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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