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카미유 클로델 -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이운진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미유 클로델을 처음 접한건 내가 좋아하는 프로인 서프라이즈(https://youtu.be/VnJxQDXrn2w)에서 다뤄지면서였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다시 한번 영상을 찾아봤는데 지금봐도 카미유와 로댕의 이야기를 압축하여 잘 담아낸 이야기인것 같다.


​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https://youtu.be/VnJxQDXrn2w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요약하자면, 이 얘기는 두 조각가의 이야기이자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로댕의 연인이라고 불렀고, 비운의 천재라고 불렀던 그녀,

카미유 클로델의 삶에는 여성으로서의 한계, 예술가의 소명과 욕망, 사랑과 실패, 병과 소외, 급변하는 시대의 풍경이 큰 물살로 어우러져 소용돌이 쳤다

빌뇌브쉬르페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처음 진흙을 만지고 놀던 다섯살의 카미유는 점점 인물을 빗어내거나 감정을 표현해내며 주변의 모든것을 눈에 담고 손으로 만들었다.

'인생의 한번은 파리로!'라는 구호를 따라 지식인, 예술가, 기술자, 노동자 등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 전체를 다시 만들고 싶어하며 모이던 1880년대의 파리의 변화 속도는 놀라웠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봐준 스승 알프레드 부셰의 설득으로 예술적 재능을 펼칠 기회의 장소로 파리에 입성했다.

그때까지만해도 조각가로 성공을 거둔 여성의 이름은 들어본적도 없었다. 빌뇌브에서 미켈란젤로(훌륭한조각가)가 되길 꿈꿨다면 파리에서는 그녀 자신(스스로 인정하는 위대한 조각가)이 되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열여덟의 소녀가 스승이 소개해준 에콜 데 보자르 교장에게 자신의 작품 <다윗과 골리앗>을 보여주었을때 교장은 "로댕에게 조각을 배웠느냐"고 물었고 이때 오귀스트 로댕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니체와 루 살로메도 그무렵 만났다.)

이후 스승이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게되었을때 남겨진 제자들을 마흔 두살의 로댕에게 부탁했고, 그중 카미유가 있었다.

이무렵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듣고 지옥의문 구상에 대해 영감을 얻기위해 골몰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만난 로댕은 '나의 무자비한 연인, 나의 천사, 나의 열정'이라는 말들로 그녀를 표현 할 만큼 사로잡혔다.

독창적인 재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조각에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나눌수 있을 만큼 놀라운 깊이를 지니니 그녀는 이상적인 여인이였다.

그녀와 로댕은 가르침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시선을 주고받는 관계로, 손으로 흙을 빚는 관계에서 흙으로 마음을 빚어 증명하는 관계로 발전해갔다. 제자에서 작품모델로, 제작조수에서 열정의 연인으로, 더 나중에는 증오의 상대로 바뀌어갈 그녀의 운명의 수레바퀴가 서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카미유가 로댕의 작업실에서 중요한 작업을 맡게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않았다. 그러나 당대엔 공동 작업을 했던 사람들의 이름은 작품에 새겨지지않고 익명으로 처리되는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로댕작품중 그녀작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길은 없다. 로댕 역시 그녀의 흉상을 제작해준 이래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을 고결하게, 관능적으로, 거침없이 가장 에로틱한 조각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그러나 로댕에겐 로즈뵈레라는 소박하고 묵묵한 성격의 조강지처가 있었다. 재봉사로일하던 가난하고 힘든 시절 스무살의 그녀는 그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의 예술이나 감수성을 이해하기엔 부족했지만 선하고 충실한 영혼을 가진,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베푼 그녀는 그의 아들도 낳았다. (그의 아들과 카미유는 2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사랑에 있어서는 전체가 아니라 마음의 일부분만 받는것은 거절이라고 생각했다.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의 전부여야 한다는 바람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불가능해졌다. 그녀는 그마음을 그림으로, 그리고 조각으로 제작했다.


늙은 여인이 나이든 남자의 팔과 어깨를 감싸안은채 이끌어가고있다. 남자는 얼마쯤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무거운 몸으로 한쪽 팔을 뒤로 뻗어있다. 막 젊은 여자의 손을 놓쳐버린 순간이었다. 그 손끝엔 돌아와달라고 간청하고 애원하는 알몸의 젊은 여아이 무릎을 꿇은채 매달려있다.

사랑을 알았던 열여덟 청춘의 그녀는 조각계의 거장과 아리따운 제자의 사생활에 관한 소문과 맞서야 했기에 그 어떤 말로 증언하기보다 작품으로 보여주는것을 선택한다. 예술이 자기 비밀에 맞설때 가장 활기차고 위험해 질것임을 알고있었다.

파리에서의 삶은 살아가야할 이유와 성취하고싶은 욕망, 열정, 관능, 갈망, 질투 속에서 흙과 돌을 만지며 유능한 조각가이길, 사랑받는 한사람이길 바랬다.

그러나 이후 사랑의 고통과 이별 질긴 외로움을 안고 아틀리에에서 몽그베르그 정신병원으로, 그리고 일흔 아홉의 나이까지 30년넘게 No.2307로 존재하던 그녀는 1943-392라는 무연고 무덤에 매장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최초의 숨결과 최후의 한숨 사이에 있는 삶의 모습은

모두 다르고 결국 같다.

여기, 카미유 클로델 中


이 책은 사집과 산문집을 낸 작가 이운진이 카미유 클로델에게 바치는 헌정글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알기 위해서는, (특히나 그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록'을 찾는 것 뿐이다.

어린 시절의 일화, 누군가와 나눈 편지들, 남겨진 작품과 사진들로

그 사람의 진짜 목소리를 쫒는다.

물론 몇몇의 기록을 모두 모은다고해도 한 사람의 '완전한 인생'은 되지 않을 뿐더러 더욱이 그것을 '전기'라 할 수 없겠지만,

단지 지난 사람의 흔적을 찾아서까지 말을 건내고 싶은

애착의 글로 이 책을 봐두면 될 것같다.

여기, 카미유 클로델 - 시작하며 中


그녀를 추억하고 그녀를 예찬하며 그녀의 슬픔을 감히 짐작해보며 함께 흐느끼다가 그녀가 못다한 말까지 꺼내어 그녀의 일생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아트북스에서 여성 작가에 대해 다룬 책 중 『여기, 아르테미시아』와 같은 형식의 제목을 띄고 있는 이 『여기, 카미유 클로델』은 사실 결이 좀 다르다. 전작이 논문형태에 가까울만큼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시대 배경과 작품 해설의 '사실적 검증' 에 논점을 맞췄다면 이책은 '감정선'의 흐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랑에 대한 좌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픽션 소설처럼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반전이 이루어지는 포인트는 두 목차였다.


홀로 선 여자, 그리고 예술가


역시, 이거지. 이래야 아트북스지 했던 부분은 책의 중간부분부터 나왔다.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었는가?』 『여기, 아르테미시아』 를 읽으면서 19세기 이전 여성이 미술사에 남겨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여성미술가의 발견은 더 귀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살아남아 이렇게 이름을 남길 수 있었는가. 그 노력과 재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이 여성 누드를 그리는 것은 당연했으나 여성은 그곳에 낄 수 없었다. 그저, 관행이었다. 그녀가 파리에 갔을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들어가고자 했던 보자르 학교에서는 여성의 입학은 허락되지 않았고, 그녀는 스승의 추천을 받아 콜라로시 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1883년부터 그녀는 쉬지 않고 전시를 했으며 작품을 출품했다.

'금지된 꿈으로 가득찬 내면을 최초로 표현한 조각가'

'이런 작품은 미켈란젤로 이후 처음이다!' '스승만큼 뛰어난…'

'놀라운 걸작이다' '세기의 위대한 조각가…'

명성있는 로댕의 뮤즈이자 시인 폴클로델의 누나라는 꼬리표가 늘 달려있었었지만 그녀는 세간에서 이런평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대담한 조각이 순수함 대신 관능으로 환기되며 작품이 평가 절하되거나 전시가 취소되는 등의 난항을 겪기도 하였으나 사회에서 배척당할만한 무명의 예술가로 지내기엔 그녀의 천재성은 높은 찬사를 받았기에 대규모 전시회와 작품 판매의 행운을 잠시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주 재료로 쓰던 대리석/오닉스의 재료비를 포함하여, 보조자와 주조공의 임금, 운송료, 보관비 등 당시 1년 동안 조각에 드는 비용을 만만치 않았다.

그녀가 지인들과 나누던 편지에 수없이 '돈'과 관련된 '외상''집세''판매가'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할 만큼 '독립된'미술가로 살기에 지독한 재정난을 겪었고, 그녀의 삶은 곧 피폐해져 갔다.


책 속에는 이와 관련하여 다른 여성 작가들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롯이 자신(의 작품활동)에 집중 할 수 있는 자신을 위한 방과 고정된 수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이 인용되어 있다.

물질적 자립은, 단순히 돈 자체라던가 즐거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덜 받는 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점에서 그녀는 세간의 모진 풍파에 영향을 '덜' 받을만큼 독립된 예술가로 살지는 못했다.

궁핍한 현실은 주변 사람들을 불신하게 만들었고, 예민해진 신경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영감을 훔치고 표절하려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실제로 로댕의 친구 조각가로 인해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고 늘 로댕과의 비교(영향력)를 겪어왔던지라 모두 자신을 파멸시킬 음모자들이라는 의심의 눈으로 세상에 방어태세를 갖추게 된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힌 카미유는 자기 작품을 산산조각 내거나 부수는 파괴행위로 이어졌고 피해망상이 심화되며 사람들이 자신을 독살하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동생 폴 클로델은 이러한 카미유의 마음을 '혐오'와 '광기'라는 말로 표현했고, 그녀는 가족에 의해 결국 정신병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이래 죽을때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마지막 일기


가장 압권이였던 부분은 이 부분이였다.

내내 그녀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구성되어 비극, 슬픔, 고통, 분노, 증오, 외로움과 괴로움 등으로 가득찼던 표현들이 이부분에서 깨달음을 얻은듯, 체화한듯 오히려 덤덤하게 서술해 나가며 이윽고 이 삶을, 모든 운명을 받아들이고 모든 할일을 끝내듯이 마무리를 짓는다.

비록, 작가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라는 단서를 붙여 작가만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간 그녀의 마지막 페이지지만, 너무나 이입이 되는 부분이라 정말 그녀가 쓴 것이라고 믿어지게 된다. 그렇게 이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손을 부들부들 떨었는지


처음 흙을 만지던 다섯 살의 어린아이였던 나,

사랑을 알았던 열 여덟 청춘이었던 나,

그리고 들개처럼 세상에 맞섰던 나의 무엇이 일흔 아홉의 내 안에 남았을까?

-

조각가이기를 바라며,

사랑스러운 한 사람의 여인이기를 바라며 나는 돌을 다듬었다.

돌 만큼 한 사람을 사랑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

나는 내가 살아온 세상과 계속 살아갈 세상을 다 잃어버렸다.

당신이 아니었다 해도 내 삶은 무너졌을까?

-

사랑은 한 생애를 걸고 천천히 만드는 작품이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거짓말같은 아름다운 삶의 한때를 나누어 가졌다는 사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그럭저럭 용서할 것이다.

-

나에게는 이제 잊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부질없어보인다.

비극으로 보이는 삶이더라도 나는 내 삶을 완수하고 싶었다.


로댕은 카미유에게 분명 독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독히 사랑했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조각했던 그 시절은 분명히 존재했음을 인정한다. 비록 영원하진 못했었도. '당신이 없었다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있었던'시절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그럭저럭 용서할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사무치게 마음이 아팠다. 이 구절에서 멈칫하며 울컥이는 마음을 잠시 달랜 후에야 뒷 부분을 읽어야 했다.

그 '용서'의 마음은 로댕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리라. 그 뒤로 스스로 혹사시켰던 자기 자신에게도 분명 향했으리라 짐작한다.


로댕의 지인이 보낸 편지에는 로댕의 진심이 언급되어 있다.


어느날 로댕이 찾아와 「애원하는 여인」앞에서

갑자기 멈추어 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작품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처럼 말입니다.

나는 그가 당신을 버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로 인해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뜬지 15년이 지났군요.

살아 있었다 해도 그는 카미유 당신만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작품 중개인 외젠 블로가 카미유에게 보낸 편지 中


그녀는 이 말에 흔들렸을까.

어쩐지 한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영화 『아가씨』 이즈미 히데코의 대사 中


이 책을 읽고 나니, '비운의 그녀'라는 수식어만 붙었던 까미유를 조금 더 확장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보다 치열했고, 강렬했고, 결국 통달하며 삶을 용서했을 그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녀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비극으로 보이는 삶이더라도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완수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바란다.

이곳에서 흙을 처음 만지던 그때 처럼, 늙은 나무 아래 흙한줌이 되는 그때가 되면 구름을 빚고 있기를.

1943.10.19. 여기,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도서 #아트북스서포터즈2기 #아트북스서포터즈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