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해킹 - 사교육의 기술자들
문호진.단요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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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의 공통 교육과정을 마치면서 대학에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될만한 '수단'이 필요했다. 그것이 이전에 예비고사(암기형 지식)와 본고사(논술형)가 있었고, 학력고사와 내신(교육과정 이수 충실)을 통해 대학을 가게 되는 과도기적인 과정을 거쳐, 수능에 이르렀다. 예컨데, '00에 대해 알고 있느냐?'와 같은 질문을 던진것이 학력고사라면, 수능은 '기존에 알고있는 00이란 개념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낯선 지문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 과정에서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료의 해석, 원리 적용, 현상이나 사실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판단 등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출제하여 가장 공적하고 탁월하게 우수한 수험생의 줄세우기가 가능한 시험으로 등장한 것이 수능이다. 줄세우기에 실패한다면 제일 큰 손해를 입는 것은 사실 수험생들 자신이다. 내가 1등인지 20등인지 확실히 정해 30등, 40등과 뒤섞이는 상황은 피해달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시작하는 것이 수능이므로 따라서 수능에 응시한다는 것은 생존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 책은 그러한 수능에 대한 분석 및 '어떻게' 변화하는것이 좋을지 그 방향성에 대해 종합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책이다.

때문에 수능이 반교육적인 시험이 되었으며 노동 집약적 산업으로 바뀌게 된 것에 대한 공교육의 책임과 사교육의 고도화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힘껏 실은 1부와, 수능을 왜 반교육적 시험이라고 주장하는지에 대한 논증과 수능 해킹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다루는 2부, 관료 조직과 사교육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살피는 3부, 마지막으로 수능은 어떤 시험이 되어야 하며 변화에 무엇이 필요한지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옛날의 시험은 인재를 얻으려는 방법이었지만,

오늘날의 시험은 그 반대다.

시험 보는 법만 가르쳐서 평생의 정기를 시험에 소진했는데도

운 좋게 시험에 붙으면 배운바를 모두잊고 정작 쓸곳이 사라진다.

박제가 『북학의(1778)』


18세기의 박제가의 글귀로 시작하는 이 책은 21세기인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시험'제도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1993년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첫 선을 보인 이후 매년 11월 세번째 목요일로 시험이 고정되었기에 11월은 그야말로 수험생의, 수험생을 위한 달이다. 전국민이 '수능'을 위한 배려에 혈안이기 때문이다. 합격을 위한 기도, 선물, 시험장까지 실어주는 경찰들의 대기, 듣기평가를 위해 비행기 착륙 지연, 수험자를 위한 할인 등. 고등학생을 위한 시험이 명절만큼이나 중차대한 연례행사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청소년들은 주당 60시간 이상 공부에 할애하는 학생이 23.2%에 달하고, 따라서 대학 이수율은 OECD 국가 평균(47%)을 훨씬 웃도는 (69%)인 만큼 '대졸'이 보편적인 발달 과업이자, '최종학력'으로 남는 인생의 성적표이자 '소득'의 지표, '학연'으로 남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주는 큰 과정이다.

즉, 수능이란 청소년을 한국인으로 완성시키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이쯤에서 우리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수능해킹』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수능은 OMR카드에 마킹해서 채점해야 하기에 오지선다 객관식이다. 이는 문제 유형이 표준화 되어 정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의도치않았겠지만 전형성과 예측가능성이 올라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출제 원리를 역산하여 유형을 파아학하는 훈련을 숙달하면, 복잡한 문제도 쉽게 풀 수 있게 된다. 이런 작업을 수능해킹이라고 부른다. 문제 유형의 고착화=수능해킹의 가능성 과 동일어이기 때문에 평가원들이 문제를 낼 때, '고착된 출제 경향'을 유지한다는 것은, 수능 해킹을 암묵적으로 용인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것이 시험이 끝나면 뉴스를 장식하는 단어들은 정해져있다. '수능 난이도', '1등급 커트라인', '불수능/물수능', '편차', '출제오류'등 평가원에게 큰 책임을 묻는다. 때문에 평가원은 더욱 예측가능한 문항, 정형화된 문항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는 사교육 의존도와 큰 상관관계를 보이게 된다. 기존 퍼즐 공략법이 봉쇄되고 난이도를 올리려 까다롭게 만들어 새로운 유형의 퍼즐법을 만들어도 곧 이 공략법이 개발되면서 평가원은 늘 진퇴양난의 길에 서있게 되는 것이다.


수능해킹으로 인한 우리사회의 모습은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수능'은 오히려 사고력이 제한되는 '반교육적'인 시험이 되었다.

  2. '수능해킹'의 만성화는 사교육계를 '노동집약적 사업'으로 만들었다.

  3. '사교육'열풍은 서울(대치동)/N수/의대에 집중하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만들었다.

  4. 학교수업(내신)과 수능의 괴리, 논술과 면접까지의 복합성을 도외시하고 있는 '공교육의 책임'이 커졌다.

수능과 관련된 이 네가지 정리들은 단선적인 접근만으로 해체할 수 없는 결합과 고리를 가지고 있다. 사교육계와 평가원이 맞물리면서 수능 난이도는 기형적으로 상승해왔고, 드러나지 않은 폐단도 상당하다. 이러한 수능은 공정을 내세우며 개개인의 교육의 유의미한 성취 등의 디테일에는 점점 멀어져갔다.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순 없겠지만 한쪽에서의 최선, 즉 주관하는 평가원의 최선이 한국 사회의 최선도 아니고, 수험생과 학부모의 최선도 아니다. 이전의 '국어'가 아닌 '언어'영역일때의 시험은 '얼마나 많은 글을 읽어왔는가'가 관건이었다. 경험과 센스가 고득점의 핵심이고 학습은 부차적이였다. 지금의 '국어'시험의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능력은 독해력이 아니라 '안력, 순간 기억력, 연결력'이다. 곁눈질로 눈알 굴리기 테크닉을 시현하여단어와 단어가 맺는 관계를 피상적으로만 파악하는 태도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영역인 수학, 영어, 탐구에서도 모두 마찬가지로 '아무생각없이, 기계적으로, 누구나' 풀 수 있는 반교육적인 시험이라고 이 책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목적'을 두고 '인지'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추론'이라 한다.

'규칙'에 따라 '명제'간 논리적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추리'라 한다.

'목적'없이 형식만 존재하는 추리를 '퍼즐식사고' 라 한다.

'그읽그풀'이라는 말이 있다. 그냥 읽고 그냥 푼다는 것으로 '재빨리 관계를 파악하고 키워드를 이리저리 끼워맞추는 작업'능력을 '퍼즐식 사고'라 부르고, '공식'과 '접근법' 자체를 외워 접근하는 능력을 '사고의 외주화'라고 부른다. 사고의 외주화는 사교육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규격화된 형테로 제공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득점을 거두는 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가 바로 이 '사고의 외주화'에 기대는 것이고, 하나는 '발상과 논리'를 기르는 것이다. 전자인 사고의 외주화는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움직임만큼 정확하게 해내는 훈련으로 즉각적으로 고득점을 맞는 효과를 보여준다. '성취'보다는 '승리'에 목적을 둔 이 사고방식은 아무래도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유형별 공부는 신유형이 추가되거나 기존 유형에 변동이 생길때마다 새로운 암기가 필요하므로 완성이 불가능할 뿐더러 정작 '수능'시험판을 벗어나면 그 조차 제대로 풀지 못하는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는 지식의 맥보다 기술을, 교육의 내용보다 교육 자료(수능의 콘텐츠)를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이어지기에 학생들은 자기주도적으로 '사고'하기보다 '문제풀이'가 적혀있는 답지를 원하고, 범위를 확장하면 '이런건 수능에 안나온다'는 기준을 둔다.

"중요한 것, 좋은것을 배워야 할 시기에 아무 쓸모도 없는 기술을 배우는게, 그리고 그걸 몇년씩 하는게 너무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내가 고등학교때 배웠던 내용이 대학과정에 도움이 되었어"라고 말할 친구는 아무도 없을 것 같다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교육을 소화할 역량을 검증하고, 최종적으로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치뤄지는 시험이다.

학습범위가 줄어들고 시험이 테스트하는 지식이 얕은 수준에 머무른다고 해서 학습부담이 줄어들지 않으며 그렇게 구성된 시험의 경쟁 압력이 강해질 경우 시험의 정당성이나 적절성은 오히려 퇴보한다. 따라서 학습에는 기준선이 존재해야 하며 대입 시험에서 어려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대학교라는 고등학습기관으로 향하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목적지에 걸맞는 사고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험이 어려운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 대목에서 어려워지고(형식의 난해함), 정작 학습 목표를 최소한이라도 달성했는지 면밀히 검증할 필요가 있는 (지식과 논리의 깊이) 부분에서는 멀어지면서 교육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야 말로 잘못이다.

  • 학습 수준을 검증하는데 어떤 문항 유형이 적합한가?

  • 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가?

  • 이 시험에 준비하기 위해 어떻게 설계해야 바람직한 학습과 발달을 유도하는가?

를 물어 볼 수 있는 교육철학을 정립하여 서로 공유하여야 한다.

결국 교육의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족 대입만 잘 넘기면 입시 고민은 끝난다'는 마음가짐으로 '한순간, 손쉽게' 끝마칠 일이 아니거니와 끝마쳐선 안된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 만큼 교육철학을 정립하고 그 기준을 통해 지금의 제도를 감시하는 작업은 언제나 새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거기엔 한국이라는 조건을 직시하고 공동체의 지속을 염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쾌도난마'라는 말이있다. 어지러운 것은 베어야 한다는 말이다.

쉽지 않겠으나 수능은 바뀌어야 한다. 시대는 계속 바뀌고 있으니 수능 또한 변화의 흐름 가운데 놓여있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새로운 교육 철학과 함께 새로운 교육으로 맞이 거기엔 새로운 기준과 제도가 뒷받침 되야 한다. '내 시험', '내 자녀의 시험', 만 끝나면 끝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공동체의 지속을 염려하는 태도로 우리 교육에 대한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현실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길을 제시하기위해 먼저 수능을 해킹하는 책, 수능 해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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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랭면 (여름 리커버)
김지안 지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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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을 사람들이며 모든 가축들이 그칠줄 모르는 더위에 지쳐있는 모습으로 책은 시작한다. 마을의 김낭자, 이도령, 박도령은 노는 것을 제일 좋아하던 삼총사였는데 '절대로 녹지 않는 투명하고 시원한 신비로운 얼음'이라는 것이, 아홉마리의 호랑이들이 있다는'구범폭포'라는 곳에 있다는 서책을 발견하고, 이를 찾으러 산넘어 물건너 모험을 시작한다.
모험 중 위험에 처한 새끼 고양이(막내 호랑이)를 도와준 일을 계기로 호랭면도 얻어먹고 찾고있던 신비한 얼음도 잠시 선물로 받아 사용할 수 있게 된 삼총사는 마을에 잔치를 벌려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얻어먹었던 시원한 냉면을 맛보게 해주며 더위를 물리치는 내용이다.

7월 중순에 시작하여 10일간격으로 있는 초복(初伏)·중복(中伏)·말복(末伏)의 삼복(三伏) 기간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때이기도 하다. 너무 더워 식욕이 떨어지고 기력이 약해지는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삼계탕, 추어탕, 장어 등의 보양식을 먹는 기간이기도 하다. 복날에 가족들과 나눠먹는 음식들은 풍성한 건강과 행운을 상징하며 그렇게 구성원들에게 서로의 복을 빌어주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듯 복날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로 가족들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연대감과 고마움, 중요함을 다시금 느끼며 관계를 돈독하게 다지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이 책에서도 '복(伏)날의 음식'을 '복(福) 그릇'에 담아 '함께' 복받으며 '더위(라는 곤경)'를 극복해내려는 마음을 담으려는 듯 보인다.

고맙습니다. 호랑이님. 얼음 잘썼어요.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마지막 장면. 다시금 '선의'를 당연히 여기지 않고 고마움을 표현하며 되돌려주는 장면. 그림책과 청소년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키워드인 '호의의 연대'가 실현되는 장면이기도 했다. 선의와 호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이 장면이 가장 좋았다.

뜨거운 한낮의 태양으로 지쳐있던 마을에 한바탕 호랭면을 선사하여 시원하고 선선한 여름 밤으로 만들어주고 유유히 돌아가는 호랑이들의 모습이 담긴 맨 앞장과 맨 뒷장은 완벽한 기승전결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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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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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여서 다행이였었던 순간들에게

최지은 작가의 첫 산문집 『우리의 여름에게』가 출간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어린시절의 나를 들여다보는 일을 산문으로 풀어썼다고 한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린이'인 채로 남겨져 있는 습관이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 한 구석에서 계속해서 어린이인채로 있는 그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건내며 손을 내밀어야 아이는 대답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내 안의 어떤 상처나 두려움을 갖고 숨어 있을 어린 아이에게 '너는 숨길 수 없는 나의 모든 이야기'가 되어 있다며 어루만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른'의 내가 돌아보건데 모든 어린 날들 곳곳에 숨어있던 '사랑'을 깨닫게 하여 아이에게서 사랑받기를. 어떤 경우에도 혼자가 아니였음을. 그리하여 어른의 나도 모든 것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틈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나는 변해있고, 과거의 어린 내가 될 수 없기에 서로 달라진 모습은 그 틈을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 틈은 오롯이 혼자 메꿔야 하는 부분임은 틀림없다. 다만 그럼에도 혼자의 영역을 지고 있는 혼자의 옆에 혼자로, 각각의 무게를 잃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세계들도 분명히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없지만 '있었던'순간들을 들여다보는 그 멈춤은, 산책의 멈춤과도 같다. 산책은 멀리 나갈때보다 거리에 널려있는 반짝임들에 마음을 뺏기며 자주 멈출때가 더 즐겁기 때문이다. 그 멈춤은 과거로 차있던 마음의 방에서도 반짝거리는 작은 기쁨의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그것들이 나를 지켜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 되어주기도 한다.
내 마음속에서 접착력을 가지고 있는 짧은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붙들어 매게 하는지도 모른다. 친밀하고 다정한 마음의 유대들은 그렇게 내 안에서 아이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터이다.

상실과 재회와 사랑의 굴레 속에서 서로를 지켜주며 '우리'가 '우리'여서 다행이였다고 우리에게 '있었던' 순간들을 기억하는책, 『우리의 여름에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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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와글 들썩들썩 보건실의 하루
첼시 린 월리스 지음, 앨리슨 파렐 그림, 공경희 옮김 / 미디어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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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저 평험한 하루, 초등학교 보건실에서 일하는 피트리 선생님의 일과를 보건증 방문일지와 함께 둘러보는 날이다.

그저 배가고파서, 창피한 일이 있어서, 억울한 일이 있어서, 외로워서, 답답해서, 불안해서, 기운없어서, 그저 호기심으로 등 각각의 이유들로 학생들이 들락거리는 보건실은 하루종일 북적북적하다.

'저 기운이 없어요..'

'여기서 쉬었다가도 되나요?'

'선생님, 저 좀 봐주세요!'

라며 저마다 아픈 표정과 몸짓으로 보건실을 방문하는 모든 아이들의 말 뒤에는

'제 얘기좀 들어주세요'

'저한테 기운좀 주세요'

'힘내라고 말해주세요'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와 같은 마음의 처방을 바라는 진심이 숨어 있다.

피트리 선생님은 그 마음을 알기에 모두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진정시키고,

각자에 맞는 치료 방법을 찾아 보다듬어 준다.


배고픔은 간식으로, 가려움은과 더러움은 세척으로, 코피와 코막힘은 휴지로, 몸에 박힌 가시는 제거하고, 상처는 얼음찜질과 반창고로. 각자에 맞는 '처방'을 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러니 이제 괜찮을 거야'라는 '안심'의 말도 잊지 않는다.

한 장소에 모여있지만 저마다의 서로 다른 고통을 호소하며 괴로워하는 친구들.

그것이 외상이든 내상이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항상 '저마다'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도 하다.

한 장소를 '공유'한다고 해서 같은 아픔이 될 수 없고 그것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나의 괴로움이 우선이여서 타인을 돌보거나 살펴볼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건 끝무렵의 이야기이지만, 내가 받은 선의와 도움의 경험은 타인에게 또다시 타인에게 돌아간다. 우리는 이것을 '호의의 연대'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지만 아픔은 같을 순 없을테고 '공유'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내가 아파했던 만큼 타인도 아프겠지라는 '공감'은 불러일으 킬 수 있다. 나의 괴로움으로부터 타인의 도움을 갈망했기에 지금 저사람'도' 누군가의 도움을 갈망하겠구나 라는 마음만큼은 감히 '이해'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고,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선생님, 심장이 아플때는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가슴이 아파서 아무래도 심장에 반창고를 붙여야 겠어요."


" '언제나 너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돼"

모두에게 필요했던건 구멍난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반창고였다. 호호 불면서 꼭 맞는 반창고를 붙여주며 모두를 돌보고 치료해주는 피트리 선생님.


왁자지껄했던 하루를 마치고 치료를 해주던 선생님에게도 하루의 끝은 온다.

'건강을 지키는 방법'에는 오늘 찾아온 친구들이 같은 이유로 또 찾아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아픔에 대한 대안책과 예방법들이 나열되어 있다.

감기 조심하기, 머릿니 제거하는 법, 건강한 간식먹기와 깨끗한 치아 유지하기 등.

같은 이유로 상처를 받는다면 또 다시 치료해주겠지만,

이제부터는 본인의 몫이다. 다시, 다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처음 하루를 시작하며 문을 열었던것 처럼, 하루를 마치며 문을 닫는 보건실.


그리고 보건실에도 붙여있는 사진 속에서처럼 집으로 돌아가면, 언제나 피트리 선생님을 사랑하는 반려견 친구가 달려와 반겨주는 모습으로 길고 고단했던 하루를 금새 치료 받는다. 행복한 듯 서로를 포근하게 껴 앉은 모습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힐링'이자 '충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우리 모두 보살핌이 필요해요"라는 말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피트리 선생님과 함께 책은 마무리된다. 마치 당신의 하루는 어떻게 마무리 되고 있나요를 묻고 있는것 같다. 당신에게 반창고가 되고 온기가 되는 장면을 같이 떠올려 보라고 묻고 있는것 같다.

와글와글, 들썩들썩, 그리고 토닥토닥.

보살핌이 필요한 모두에게 믿음직스럽고 다정한 반창고가 되어주는 유쾌하고 따뜻한 책, 『와글와글 들썩들썩 보건실의 하루』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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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미안해하지 마세요!
홍나리 지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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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예요. 우리 아빠는 걷지 못해요" 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휠체어에 탄 자상한 아빠의 "미안해"의 연속이다.

봄 바람을 타며 자전거를 '같이' 못타서,

여름 바다에서 신나게 '같이' 헤엄치고 놀 수 없어서,

가을 소풍에서 '같이' 축구 할 수 없어서,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같이' 못타서,

그래서 "미안해."

해 주지 '못'하는게 아니라 해 줄 수 '없'어서 미안하고 안타깝기만 한 아빠.

하지만 아이는 '미안해 하지 말아요 아빠, 전 괜찮아요'라고 고개를 저으며 빙긋 웃는다.

괜찮아요 아빠, 다른 아이들이 아빠랑 어디갔어, 뭘 했어 라고 자랑할 때마다 나는 말해요. 우리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걸 정말 많이 알고 있다'고요.

자전거를 타며 봄풍경을 지나치는 것보다 아빠와 지긋이보는 꽃 구경이 더 좋구요,

여름바다에서의 수영보다 느긋한 모래성 만들기가 더 좋구요,

가을 소풍의 운동보다 아빠의 조용한 음악연주가 더 좋구요,

겨울 호수의 얼음판 위를 누비는 것 보다 천천히 즐기는 얼음낚시가 더 좋아요,

나를 위해서 정원사가, 음악가가, 요리사가, 화가가 되어주는 아빠가 좋아요.

나는 '매일매일' 아빠와 '함께'여서 행복해요.

아빠의 '미안함'은 함께 뛰어 놀지는 못하는 것만이였다. '같이' 못해줘서 미안해, 라고 했지만, 늘 '같이' 있어주었던 것이다.

오히려 늘 앉아 있는 아빠였기에 아이와 눈높이를 더 쉽게, 더 오래 맞추며 항상 곁에서 함께 해왔던 것이다.

그 점을 아이 또한 잘 알고 있다.


모든 그림을 다시 살펴보면, 두 사람은 한시도 빠지지 않고 눈을 마주보며 웃고 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같은 행동과 장소에 대한 공유가 아니라 같은 시선을 마주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늘 곁에 있어, 라는 시선이 주는 포근함과 안정감은 '같이'의 가치를 더한다.


'내가 휠체어를 타고 다녀서 불편하지 않아?' 라는 말에 '아니야 오히려 더 편한 길로만 가게 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는 걸' 이라고 말해주던 박위와 송지은이 떠오르기도 했고,

'아빠가 다른 아빠랑 달라서 미안해'라는 말에 '괜찮아 아빠 미안해 하지마 난 운이 좋아. 다른 아빠들은 아이와 함께 이렇게 공원에 안 와'라고 말해주던 아이앰쌤의 루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서로의 삶의 방식과 모습은 다르지만, 그만큼 행복을 알아차리는 시선도 다르다는 것을.

'못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을, 되려 '받은 것들'을 알아차려주며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이 다정함을.

최선을 다해도 늘 부족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을 늘 해주려 하는 그 일관성을, 불편함을 이겨내는 그 인내심을.

중요한 것은, 그리고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라는 것을


그런 소중함들을 알게 해주는 따뜻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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