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 - 소멸하는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
대니얼 셰럴 지음, 허형은 옮김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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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생존보다 아름다움에 대해 쓰고 싶으니까요.

뜨거운미래에 보내는 편지 中



최근 기후위기와 관련된 뉴스를 본적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Be4Ky2J8uA


이번 폭우와 연관지어서 낸 기후변화에 대한 뉴스였는데,

"기후 변화는 곧 기후 위기로 불린다."는 마지막 멘트가 인상적이였다.

우리는 쓰레기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지만,

아직 그것이 위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의 표현처럼 '선택적 외면', '적절한 낙관주의', '무감각함이 삶을 지배하는 법칙'이 되어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문제가 있고 변화가 오고있는것은 맞지만 위기라고 말하는 때는 아직이라고,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책의 목차는 심플하다. 1차부터 4차 운동의 진행사항이 나와있고 각 운동을 진행하면서의 감정을 담았다.

그리고 책 제목처럼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그리고 책 제목처럼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읽다보면 감정선의 변화가 격해서 편지라기보다 일기같이 느껴지긴 하지만 컨셉은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한다니 그렇게 받아들이는 걸로)


편지라더니 '아니 왜 자꾸 교수님이 이러셨다 저러셨다 하면서 자신이 들은 대학 수업얘기에 대한 감상을 적은 대학생의 수업일지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싶을때 그제야 작가의 이력부분을 읽어보니 '대학 신입생 시절 UN전화걸기 운동에 동참한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환경운동의 최전방에서 일하고 있는 1990년생 기후변화 활동가' 라는 소개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납득. 열변을 토했다가 급 다운되면서 변화하는 그 감정선도 납득. 작가는 자신이 환경보호주의자가 아니며 이 편지는 '사람들을 실재하는 존재로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썼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책 초반에 환경에 대한 어원을 짚어주는 구절이 있는데, 그 부분이 인상깊다.

환경(environment)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수수한 프랑스어 전치사 environ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그냥 '근처의' 이라는 뜻이야. 이 단어는 19세기 중반에 와서야 영어 어휘에 스며들었고 '사람 또는 사물이 지내는 종합적 조건'으로 정의됐어. 모든것(everything)이라는 단어와 거의 구분이 안갈 정도로 모호한 개념이었지. 그러다 20세기 말쯤 '환경'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마음 쓰는 다른 모든것들로부터 떼어져 나와 따로 분리된 정의 안에 들어왔고, 내가 나이를 먹었을때쯤에는 부정(父情)을 품을 줄 아는 종(種)을 소환해내는 단어가 됐어. 사실상의 의미 분리가 이루어진거야.

환경은 곧 위험에 처한 고래, 아름답지만 먼 곳에 있는 숲이었어.

모두가 환경을 보호하고 싶어하지만

그 활동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이는 소수였지.

뜨거운미래에 보내는 편지 中


'근처' 에 있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에서,

아름답지만 '먼'곳에 있는 위험에 처한 것.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변화를 콕 찝어주는 서글픈 대목이었다.

환경문제를 '슬로모션 응급사태'라고 표현하곤 했다는 지질학 교수의 단어는 정책을 세우기엔 너무 빠르게, 서사를 전달하기에 너무 느리게 변화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한번 짚어주는 표현이기도 했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간다!"라는 운동에서 쓰이는 문구는 희망적이다.

위기에서 희망을 찾되 맹목적 낙관론에 넘어가거나 절망감에 주저않지 않도록 모든 것을 바꾸려면 모두가 나서야 한다며 행진하는 사람들은 기후문제로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 저항 운동을 생존의 문제로써 벌이고 있는 청년 연합, 녹색업계, 화석연로 반대 투쟁가들, 과학계와 종교계 리더들, 지역주민, 노동도합원들, 텃밭 농부들, 이웃집 할머니들이었다. 환경 운동은 기후학과 지질학, 생태학, 경제학, 역사, 사회학, 공학 및 정치과학 분야에 걸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환경을 구하'고 싶어했고

또 어떤 이들은 '환경 정의'를 이루고자 했지.

뜨거운미래에 보내는 편지 中

모든 행진은 신념의 표출이다. 신념이 시대정신이 되려면 물론 집요함이 필요하다.


인류학자 애나 칭(Anna Tsing)은 우리가 인류세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알아채기의 기술' 되살려야 한다고 했다. 그건 가만히 서서보기만 하는 능력,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채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 당혹감과 놀라움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말한다.

특히 풀과 동물을 알아채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우리 삶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다른 유기체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항상 자원처럼 굴지는 않거든요"라고 말했다. 이런 알아채기 기술이 위기에 처했기에 기후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 칭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발췌적이지 않고, 첨가적이며, 일반화보다 구체화를 선호하고, 따로 계획하지 않은 충분한 시간을 요구하는 알아채기 기술을 회복해야 한다.


기후행동 운동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뜨거운미래에 보내는 편지 中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살아갈 생애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많은 생애가.

어쩌면 너의 생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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