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먹이 - 팍팍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간소한 먹거리 생활 쏠쏠 시리즈 2
들개이빨 지음 / 콜라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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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없이 많은 이들이 자신의 멋짐을 크게 떠드는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오래 살아남으려면, 역시 '꿔보'(꿔다 놓은 보릿자루)다. 들개이빨 『나의먹이』 intro

『먹는 존재』의 작가 들개 이빨의 책

'생존'을 위해 우리는 매일 '섭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느순간부터 음식에 '노동'이나 '가치'를 대입시켜서 '먹을값'을 하는 존재인지 여부를 따지기 시작했다. 오늘의 노동이 고되거나 꽤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다면, 그에 따른 포상이나 대가처럼 음식을 '선물'하고, 오늘의 노동이 큰 도움이 되지 못했거나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면,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다며 '박탈'한다.


'그러고도 밥이 넘어가냐', '뭘 잘했다고 먹어'라니, 참 애처로운 말이다.

남의 인생에 신경을 끄지 못하고 들여다보는 것도 모잘라, 기어코 자신과 비교해버리고마는 '상대적 박탈감'을 지닌 그대는, 그럼에도 매일 먹어야 하는 존재이다. 음식 마저 박탈할 순 없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을 축내지 않고 지갑도 지키는 최적의 생존 전략은 무엇이 있을까? 하루하루를 '자격지심'을 딛고 일어나 버티기 위해서는 그것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서 살아가는 전략을 짜야한다.


'팍팍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간소한 먹거리 생활' 이란 한 줄 소개와,

'몸과 마음을 축내지 않고 길게 버티려면 좋은 먹이를 싸게 확보해야 합니다.'라는 홍보문구가 이 책의 성격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

콩, 계란, 우유, 견과류, 아보카도, 고구마, 밥과 김치, 빵과 고기, 술을 소재로 다루며 재료의 성질과 요리하는 법, 이를 먹게된 계기 등이 담긴 에피소드들이 차례로 나열되어 있는 이 책은, 지나치게 솔직한 내돈내산의 리뷰같은 화법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쉽게 읽힌다. 한탄하기도 하고, 험담하기도 하면서 쉴새없이 몰아치는 화법이지만 그래도 나는 제일 마지막 문구가 마음에 든다.

이만하면 엄청 복 받은 인생이네요.

가능하면 오래도록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날 꿔보취급해도, 그래서 자꾸 스스로를 진짜 꿔보인가보다 하고 잠식되는것 같아도 가만히 돌이켜보면 괜찮은 인생이였던것 같다는 행복한 꿔보의 '나의 먹이' 의 책 내용을 파트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채소와 친해질 것

- 채소의 장점: (가격이) 싸다. (칼로리가) 낮다. (영양소가) 많다.

- 채소의 단점: (보관이) 짧다. (맛이) 없다.

- 채소의 단점 극복: 데친 후 냉동실에 보관한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튀긴다.

2. 저렴한 양질의 단백질인 '콩'과 친해질 것

-콩의 장점: (종류가, 맛이, 색이, 모양이) 많다.

-콩의 단점: (방귀가) 잦다.

-콩의 종류: 강낭콩, 쥐눈이콩,완두콩, 작두콩, 호랑이콩, 울타리콩, *아이돌콩… ​

*메주콩 (만년센터 초메이저 멤버, 가장 애용되는 베스트 셀러, 대중적인 맛)

*서리태 (다재다능하고 잘생긴 귀족이미지 멤버, 건강식 고급스런 단맛)

*병아리콩 (중동출신 국민아이돌 멤버, 가성비 갑, 포슬, 고소, 이국적인 맛)

*렌틸콩 (마른근육 삭발 멤버, 먹어도 공허한맛)

*완두콩 (막내포지션 멤버, 귀엽고 애기같은 이미지, 달큰, 고소, 부드러운 맛)

3. '계란'은 식탐과 몸무게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저렴한 식단

​-계란의 장점: (디자인이) 완벽하다. 완전식품이다. (우리말로는 사실'달걀'이다.)

-계란의 단점: 쿠키가 아니다. 고기가 아니다. 계란은 계란일 뿐.

4. 완전 식품인 '우유' (유지방)

-완전식품(계란, 콩, 우유 등): 가공하지 않은 원료 상태로 섭취해도 대부분의 필수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식품. 요리할 필요없고 살생에서 자유로운 저렴한 영양식.

-우유파생상품 4대장: 너무맛있다.BUT,동물성포화지방산 과다섭취는 몸에나쁘다.

*요거트: 크리미한 질감과 적당한 신맛, 단맛, 고소함이 매력적인 농후 발효유

*치즈: 소금기와 만난 응축된 유지방의 깊고 중후한 맛.

*크림: 천사의 날개같이 생긴 휘핑크림 스프레이는 마치 꿈꾸는 맛.

*버터: 신의 축복, 압도적 행복, 불타는 사랑의 결말은 다량의 지방섭취와 비만.

*단, 유해성논란(성장호르몬, 행생제, 칼슘, 암, 당뇨, 심장병, 골다공증 유발인자)

-결론: 유지방 free 그릭요거트 만들어 먹기

5. 몸에 좋은 '견과류'

-견과류의 장점: 매혹적인 군것질. 견과류의 불포화지방산은 잘 산패되고 산패된 기름은 건강상 안 먹으니만 못하니 적은 양을 자주 사먹으면 좋다. (냉동 보관도 4년까지 가능!)

-견과류의 단점: 종류에 따라 비싸다. 배가 부르지 않다. 식물성 불포화지방산의 비리고 씁쓰름한 기름맛은 동물성 포화지방산의 치명적인 고소함에 비해 안섹시하다.

-견과류 가격비교: 비싸다고 꼭 맛잇는건 아니다.

*(높은순정렬) 잣>마카다미아>피스타치오>캐슈너트>호두>아몬드>땅콩(수입)>호박씨>해바라기씨.....(열외) 브라질 너트, 피칸, 헤이즐넛, 사차인치.

6. #다이어트#건강식#지중해#북유럽#채식 대명사 '아보카도'

-아보카도의 장점: 존재만으로도 흥미롭고 예쁘다.

-아보카도의 단점: 무미. 적당히 익은것을 먹기 힘들다.(죽어라 딱딱하거나 썪음).​

7.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고구마'

-고구마의 장점: 주식, 간식, 식이섬유 풍부하고 맛도 좋은 건강 탄수화물로 숙성해야 가장 맛있지만 구워먹든 쩌먹든 생으로 먹든 다 질감이 좋다.

​-고구마의 단점: 형태(크기)가 대개 균일하지 못하다.

8. 한국인이라면 '밥과 김치'

​-밥: 비싼 곡물

-김치: 노동집약적 발효요리

-밥과 김치: 장기간 해외여행시 간절히 생각나는 한식, 정제탄수화물과 염분과다

9. 쾌락의 음식 '빵과 고기'

​-빵: 밀가루, 설탕, 버터의 혼합물로 음식이 아니라 상품이자 마약같은 존재

-고기: 재료 생전의 살아있는 것을 굽고, 찌고, 삶아 먹어 솜씨를 부리지 않는 먹이

10. 영양학적 가치는 없지만 합적적이고 매혹적인 마약 '술'

- 국룰적 정서 : 삼겹살에 소주, 치킨과 맥주, 파전에 막걸리는 먹어 '줘'야 하는 메뉴조합이 존재

- 술김, 술자리 등 유대감과 신체 접촉을 동반. 이성 마비.


책이 마음에 들었던건 웃겼던 입담보다 처지에 대한 자학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비관은 아니다. 비관했다면 이런 글은 쓰지도 못했고 쓰려는 생각도 하지 못했겠지.

푸념이라고 해야 하나 한탄이라고 해야하나 생각하다가, 그냥 특정짓지 않은 상대를 두고 하는 수다 정도라고 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잖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지, 하는.


나만 뒤쳐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소한 상황에도 누군가가 늘 부럽다. 누군가의 축하만 해주고, 호응만 해주는 느낌이다. #나의먹이 서평단을 신청하게 된 꿔보탄생일기를 보고 나는 울기까지 했다.

'방청객'인생을 살기위해 '#저전력모드'로 살기로 했다는 말이 너무 와닿아서.

누구도 그렇게 취급하지 않았는데 지레 자기혼자 꿔보라고 생각하는것도 공감되서.


꿔보는 (저전력모드로 살아야해서) 필요 이상의 돈과 시간과 정성을 쏟지 않습니다.


어쨌든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살아남기 위해서는..하고 물꼬를 튼 서두와 끝까지 꿔보의 역할에 충실했던 식재료 소개는 참신한 책인것 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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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 -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
SUN 도슨트 지음 / 나무의마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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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마음과 감상하는 마음을 모은『그림들』의 #사전서평단 이 되어 3월25일 출간전 미리 읽어볼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카페에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며 책장을 넘기다보니 금새 한권 뚝딱, 시간 순삭.

'미알못'도 쉽게, 그리고 즐겁게 감상할수 있도록 '이야기'해주고 싶다는 #SUN도슨트 의 스토리텔링은 실로 명쾌했다.

한때 현대미술사를 달달 외웠었던 나는 후기 인상주의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현대미술사조를 이렇게 뉴욕 현대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빌려 5층부터 걸어내려오며 작품을 구경시키며 설명하는 방식은 매우 신선했다. '이런 그림이 있어. 이 그림에는 이런저런 썰이있지. 정말인지 살펴볼까. 이걸 그린 작가는 이런삶을 살며 그외에도 이런그림들을 그려왔다고 하더군. 작가의 그림에 대한 신념은 이래.' 라는 서술방식은 천천히 그리고 편안하게 작품에 젖어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책 제목부터 그러했다. 명화들, 작품들이 아닌 그림들이라는 제목. 챕터마다 실린 작가들의 신념을 대표하는 목소리.

✔#MoMA(Museum of Modern Art)소장품 16점+이중섭 특별전

✔현대미술의ism(사조)을 대표작가와 작품으로 소개

✔도슨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술관을 거니는 기분

✔#나무의마음#문학동네#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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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 50주년 기념 에디션
린다 노클린 지음, 이주은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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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린다 노클린)

원제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


린다 노클린은 미술가가 여성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위대함, 재능, 성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근거가 미술사의 이데올로기적인 토대에 있다는 비판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라는 글을 발표(『아트뉴스』, 1971년 1월)하며 페미니즘 미술사의 기반을 마련했다. 글이 발표된지 50년이 흐른 지금, 50주년 기념이자 동시에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30년 후」라는 스스로 재평가 하는 글(『밀레니엄시대의 여성 미술가들』, 2006년) 두편이 실려있다.

그녀는 최초로 미술사에서 '젠더 관점'을 도입했다. 이 '페미니즘 미술사 관점'은 그동안 역사 속에서 당연한듯 언급되어지 않았던 소외된 여성미술가들을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며, 그동안 얼마나 당연한듯 남성중심주의로 미술계가 흘러가고 있었음을 동시에 말해준다. 그리하여 그녀는 미술사에 젠더 관점을 도입하여 미술교육, 제도, 문화 전반을 재검토 하게 만들었다. 여성 재현, 오리엔탈리즘, 리얼리즘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과 여성 미술가의 역사와 성취를 주제로 한 기획전 등을 마련했던 린다 노클린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떤 것'을 '자연스럽다'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23p)

우리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발명가와 탐험가로 보아야 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질문들을 꾸준히 포용해야 한다. (18p)

마음에 들었던 세 단어.

발명가, 탐험가, 질문가가 될 것.

그래야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그만큼의 넓은 세상을 포용할 수 있기에.


린다 노클린의 글에서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당사자의 반응이다. 이 질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질문의 가정들을 심문해야 한다고 그는 글 속에서 경고한다. 즉, '천재'와 '위대함'의 개념을 예리하게 분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미술가는 주로 천재성을 가진 사람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천재성은 위대한 미술가 속에 내재한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경이로운 능력으로 간주되는데 이러한 제도 지향적인 접근방식은 미술사라는 전문분야가 낭만적이고 엘리트적이며 개인예찬과 전기 위주의 집필을 하부구조로 삼고 있음을 폭로한다.

"예술은 형태라고 하는 자기 일관성 있는 언어로 만들어진다.

이때 형태는 일시적으로 규정되는 관습이나 계획,

그리고 표기체계로부터 자유롭기도 하고

또 어느 정도는 의존하기도 하는데

분명한 것은 학교 교육이나 도제식 교습 또는 독학으로

오래도록 실험하는 과정을 거쳐

습득하고 탐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9p)"

1. 미술가는 '제도'적이고(후원제도) '교육'적인 지원(미술교육기관)을 통해 길러진다. 여기서 교육이란 사람이 의미있는 상징과 기호체계, 그리고 신호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사람에게 발생 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망라한다.

"위대한 예술의 생산 조건에 대해 올바르게 질문할 때

단순히 예술적 천재성만을 고려하기보다는

지능과 재능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의미상 우리가 천재성이라고 부르는 지능은

정적인 본질이라기보다는 역동적인 활동으로 봐야하며

주체가 어떤상황에서 활동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44p)"

2. 미술 제작이란 미술가 개인의 발전부터, 미술품 자체의 본질이나 질적 차원까지 모두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일어난다. 사회적 상황은 구체적이면서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사회제도(미술교육기관, 후원제도, 천부적 창조자 신화, 남자로서의 예술가, 사회적 소외자 처럼 사회구조에 내제한 요소가 사회제도)에 의해 중재되고 결정되는 것이다.

"예술분야에서 여성과 여성이 처한 상황은

사회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남성 엘리트의 눈으로 보면

문제가 아니다.

여성은 비록 실제는 아니더라도 잠재적으로는

자신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생각해야 하고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혼자만 꽁무니 빼는 일 없이

기꺼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직면해야 한다.

누구나 동등하게 성취할 수 있으며

사회제도적으로도 개인의 성취를 적극 보장하는

평등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여성은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노력하면서 상황을 지켜보아야 한다. (33p)"

3. 페미니즘 미술사는 말썽을 일으키고 의문을 제기하며 가부장적인 보금자리를 헤집어 놓기 위해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를 망라해 여성이 예술 분야뿐 아니라 무슨 직업에서든 경력을 쌓고 싶다면 어느종도 탈 관습적일 필요가 있다. 여성 미술가가 미술계에 진출하려면 흔들림없이 한 줄기의 강한 반항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회제도가 여성에게 자동으로 부과하는 유일한 역할(아내, 어머니의 역할)에 자신을 내맡겨서는 안된다. 미술계에서 성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나 장인정신에 대한 집중력, 집요함, 외골수적으로 몰입하는 특성을 택해야만 한다.

"내적 확신이란 예술 분야에서 가장 고상하거나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 때 요구되는

도덕적이고 미학적인 절대 기준과 자기결정력을 말한다. (83p)"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라는 질문은 미술사 뿐아니라 다른 학문 분야에까지 커다란 반향을 남겼다. 많은 분야에서 젠더 편향적인 관점에서 쓰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학계에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의 핵심은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였다.

'위대함'이라는 기준과 '성담론' 프레임을 처음으로 심판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제 학자들이 정설로 인정받은 기존의 '편향적인' 지식에 대해 묻는다. 어떻게, 누구의 관점에서, 어떠한 사회 구조와 제도에 의해 편향되어가고 있었는지. 제동을 걸고 '중립적'이라는 시선을 새롭게 등장시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향할 것인지를 묻는다. 이것이 오늘날의 비평적 담론의 큰 화두가 되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운명인듯 보이지만 실은

주입되고 내재화된 사회적 산물이다.

-117p

성 담론이란 성의 특성에 관해 남녀의 성차이를 기반으로 말해지는 모든 가치를 지정한다. 백과전서파의 지식인들의 남성성, 여성성의 대조를 통한 유형 범주화가 아니라 그 유형 범주화 앞에 씌워진 '편견'의 구조적 프레임을 살펴보고, 거기에서서 비롯된 '위대한'이라는 말의 정의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고 굵직한 획을 그으며 잠시 멈춤을 외쳤던 린다 노클린. 그녀의 기념비적인 첫 저술을 읽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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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일가 - 교토 로쿠요샤, 3대를 이어 사랑받는 카페
가바야마 사토루 지음, 임윤정 옮김 / 앨리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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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일가(가바야마 사토루)

원제 京都·六曜社三代記喫茶の一族 (교토 ·로쿠요샤 삼대기찻집일족)


찻집이란, 어디까지나 멍하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자,

책을 읽고, 친구와 이야기하고, 낯선 사람과도 어울리는 장소다.

내가 카페에 가는 이유,

그리고 내가 아닌 누구라도 그 이유가 되어줄것이다.

" 찻집에 있을때 만큼은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일견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대처가 긴 안목으로 보아 가게의 미래로 연결될 것이다."


패전 이듬해인 1946년 구 만주의 고도에 문을 연 작은 커피점(喫茶(きっさ)店)에서의 인연에서 시작되는 이 커피집은, 이후 교토에서 레인보우(レインボウ), 코니아일랜드(コニアイルランド)커피집을 거쳐, 로쿠요샤(六曜社)라는 이름의 가게를 이어받아 2020년, 로쿠요사가 처음 발걸음을 뗀 지 70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대로 천천히 '100년을 잇는 커피점'이라는 타이틀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100년 찻집'이라는 목표는 어느덧 종착점이 아닌 통과점이 되어 있었다.

'늘 죽음을 의식하며 아슬아슬하게 매일을 보내던 중에 만난 것이

바로 '작은 커피점(小ちな喫茶店) 포장마차였다.

융드립으로 정성스럽게 내려주는 커피는 힘든 나날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어느덧 야에코에게 그곳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장소가 되었다.

그 커피점을 운영하던 남자가 훗날 야에코의 남편이 되는 오쿠노 미노루다. ㅡ26p'

'야에코는 미노루와의 (교토에서의) 재회를 기뻐했던 찻집에서

다시금 출발하게 된 것에 어딘가 운명 같은 걸 느꼈다.

여섯명의 여성이 경영을 하고 있었던 데서 가게 이름이 유래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길일이네 흉일이네 하는 달력에서, 길흉의 기준이 되는 여섯날을 연상케 하는

로쿠요샤는 어딘가 신비스러운 울림이 있어 좋았다.

로쿠요사에서의 새출발, 미노루는 27세, 야에코는 25세였다.ㅡ41p'

'손님에게 붙임성 좋게 응대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야ㅡ36p'

'접갭업은 무엇보다 청결함이야.ㅡ51p'

'접객은 웃는 얼굴로, 어서오세요와 감사합니다는 큰소리로, 물은 잔이 비기 전에 따르러 간다, 머리가 길면 반드시 뒤로 깔끔하게 묶는다, 앞치마 끈은 예쁜 리본 모양으로 묶는다, 매니큐어는 절대 금지, 등등 무엇보다 청결이 가장 중요하다.ㅡ103p'

그렇게 시작되어 운영된 이 커피 가게는 '가족끼리 꾸려가는 편안함'이 감도는 분위기를 풍긴다. 이 가게를 찾은 손님중 한명은(세토우치 자쿠초 작가) 이곳을 '데이트에서 남녀가 은밀하게 있을법한 분위기가 아니라 장소 전체가 우리집 부엌같은 느낌이라 마음이 편했지요' 라고 회상한다. 엽서 그림을 그려놓고, 클래식을 중심으로 재즈와 샹송 레코드를 틀었으며, 휴대 전화가 없던 시절 가게의 메모장에 전언을 남겨 손님 사이의 가교가 되주기도 했다. 때문에 60년대 학생운동 시절의 단골은 '시위 후 돌아가는 길에 좌절과 허무감에 망가진 기분을 치유할 목적으로 들르는 코스이자 동료들과 연락을 취하는 곳'이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로쿠요샤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목격자이자, 때로는 삶의 희비가 교차되는 곳이기도 했다.

'사랑이 시작되는 곳이자 말없이 음반을 듣는 곳, 주먹다짐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한 찻집은,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일순 교차하는 이야기의 무대였다.ㅡ80p'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멍하니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오락이었다.ㅡ85p'

이후 지하에서 1층으로 옮기면서 지하점은 선술집(바)으로 개점한 이자카야 로쿠요로 재출발해 스낵바를 열어 샌드위치, 필라프, 스파게티 등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지상점은 차남인 하지메가, 지하점은 장남인 다카시가 가게를 돕게 되면서 두 형제가 가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아주 먼 길을 돌고돌아 온 막내 오사무는 저녁에 바가 오픈하기 전인 낮시간에 지하 커피점을 열게 되어 결국 세형제가 모두 가업에 참여하게 된다.

'가게에서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주요 손님층이라고 생각되는, 편안한 옷차림을 한 손님들이 저마다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가게 분위기에도 점원에게도 기를 쓰지 않고 거리에 녹아든 느낌이 강했다. 사람들의 일상에 능숙하게 파고 든 가게, 대중적이고 제대로 맛있는 집, 오사무가 목표로하는 이상형의 근원이다.ㅡ106p'


언젠가 로쿠요샤를 이어가고 싶어요.

앞으로도 가게가 계속 남아 있었으면 해요.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 오사무의 아들 군페이가 이어가면서 가게는 지속되고 있다. 한 작은 커피가게가 어떻게 70년을 이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 글 속에는 전쟁의 시대를 보낸 그들이 고스란히 지내온 시대적 배경과 역사가 들어있었고, 자연스럽게 그들이 자리잡은 장소인 교토의 상업화 과정, 그 중 커피집의 발전과정과 가격 변화등 전반적인 도시 발전과 경제성장기, 소비 문화의 변화, 시대별 유행들이 담겨있었다. 뿐만아니라 가족 경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가족간의 소통 방식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었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인생도 담겨있었다. 이 작은 책한권에, 그것도 교토의 한 작은 커피가게 이야기가 이렇게 두루두루 포괄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 줄이야. 시간여행과 교토여행을 동시에 하는 기분이었고, 천천히 가게에 스며들어 로쿠요샤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계속 찾던 길인지도 모른다.

오사무 116p

헛된 경험은 없구나.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서 이상으로 삼는 찻집을 만들고 싶다.

군페이 169p, 172p

어디로 넘어질지 모르지만 따라와주면 좋겠어

군페이 175p

끝으로, 책속의 책으로 지나가는 문장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 하나.


로쿠요(六曜社로쿠요샤를 六曜(ろくよう)로쿠요라고 썼다)에서 혼자 술을 마신뒤

나는 잘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울고 웃는 묘한 감정으로 지냈다.

저 웨이터 아저씨에게

'Do you know yourself? (자기 자신을 아세요?)'라고 말했더니,

'Yes, Perhaps, I know myself.'(네, 아마도요. 저는 제 자신을 압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I don't know my self.(저는 저를 모르겠어요)'하며 웃었다.

64p

자신있게 내가 가는 길에대해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대해서, 그렇게 나에 대해서 I Know myself, Perhaps. 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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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65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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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정말 명서이다.

일전에 청소년을 위한 시리즈로 4권을 나눠서 '답사노트'와 함께 나왔던 책도 전권 샀었는데, 이번 책은 '여행자를 위한 만년 다이어리'로 답사기에서 엄선한 이달의 추천 여행지 24곳이 수록되어있다는 표제가 보인다. 이번에도 '나'에 초점을 맞춰 내가 채워가는 답사기가 완성되는 책이다.


다이어리라 불릴 수 있을 만큼, 달력, 스케줄표, 갔던 곳 표기, 메모지, 그리고 인터뷰형식의 몇가지 질문을 두고 기억하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

추천하는 장소와 이유, 그리고 장소와 관련된 역사 정보가 짧게 실려있고 나머지는 내가 채워나가는 형식이다. 사진이나 글귀등으로 나만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좋은 구성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보통 책은 읽고, 덮어두고에서 끝나지만,

이 책은 읽고, 쓰고(기록하고), 다시 읽고, 쓰고를 반복하게 된다.

그 사이 사친첩처럼 들춰보고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1. 서울 종묘와 무계원

가을 겨울에 좋은 곳

종묘는 삶을 영위하는 궁궐과는 달리 죽음의 공간이자 영혼을 위한 공간으로 봄여름보다 가을겨울이 좋다. 단풍 속 황혼녘에 처연한 미학을 느낄수 있으며 눈덮인 거대한 수묵 진경산수화를 볼수있기 때문이다.

2. 부여 무량사, 해남 대흥사

사계 모두 좋은 곳

일년 열두달 무량사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만수산과 오붓한 시고내음이 나는 사하촌이 어울리는 무량사, 국토 최남단에서 사계의 제빛을 놓치지않는 두륜산 구림리의 나무숲 장관 속 대흥사

3. 순천 선암사, 강진 무위사

매화꽃 피는 3월에 가기 좋은 곳

3월에 피는 매화꽃이 장관이며 우리나라 궁궐,정원에세 대할 수 있는 100종정도의 나무를 모두 볼수 있는 정원수의 표본이자 산사의 전형 선암사, 가장 오래된 후불 토벽의 붙박이 벽화 아미타 삼족 벽화와 수월관음도 원화가 보존된 무위사

4. 고창 선운사, 여주 신륵사

동백꽃 피는 4,5월에 가기 좋은 곳

동백나무 자생지의 북방산계선상에 가까이 있어 4월말에서 5월초 동백꽃의 절정을 볼수 있는 선운사, 보기 드문 강변사탈로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변의 높은 절벽위에 자리잡은 신륵사

5. 서산 마애불과 보원사터, 문경 봉암사

4월에만 출입을 허락하는 곳

동동남 30도로 동짓날 해뜨는 방향이라 일년의 시작을 알려주는 서산마애불과 백제의 숨결과 백제지역의 지방적특성이 나타나는 보원사터.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에만 출입을 허용하며 남한에 있는 금석문 중 최고봉인 지증대사비문이 있는 봉암사

6. 지리산 동남쪽, 제주 해녀불턱과 돈지할망당

초여름이 아름다운 곳

6월 산천의 초록과 연둣빛의 푸르름이 아름다운 지리산자락, 제주 올레 제 20코스의 종점이자 마지막 코스인 24코스의 출발점에 있는 해녀들의 쉼터이자 사랑방 해녀불턱과 종달리 수국꽃이 몇 킬로비터나 장하게 피어있는 환상적인 해신당 돈지할망당

7. 공주, 영양지역 답사

한여름이 아름다운 곳

금강변 따라 동서로 길게 뻗은 해발 110미터, 2킬로미터의 공산성과 주위 민가 돌담에 매해 여름 피어나는 능소화가 장관이 절터, 그리고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

봄이면 산수유, 여름이면 담배, 가을이면 고추가 제철을 구가하며 아름다움을 자아내지만 특히 주실마을 숲의 250년된 느티나무와 느릅나무가 우거지고 서석지윽 연꽃이 피어나는여름(7~8월)이 아름다운 영양.

8. 안동 병산서원, 제주 다랑쉬오름

한여름이 아름다운 곳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백사장(모래밭), 강변의 솔밭, 마주하는 병산 사이에서 강산의 경관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건축적, 원림적 사고의 탁월성을 보여주며 배치된 한국 서원건축의 최고봉 병산서원.

대칭미, 균제미를 보여주며 매끈한 풀밭과 한여름에도 더운줄 모르는 시원한 제주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깔대기 모양의 분화구. 그 깊이가 한라산의 백록담과 같은 굼부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다랑쉬오름.

9. 평창 봉평, 정선 정암사

만추에 단풍이 아름다운 곳

개울길과 감자,옥수수밭이 여지없는 강원도 산길을 느끼게하는 봉평마을과 푹꺼진 천변에 준수한 바위와 소나무가 어울어지는 작은 명승지 팔석정은 가을꽃 필 무렵의 향촌향기가 느껴지는 곳.

태백산 깊은 산골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 절경을 보여주는 정암사.

10. 영주 부석사, 양양 선림원터

늦가을 낙엽이 아름다운 곳

은행나무가로수와 사과밭이 있어, 은행잎이 떨어져 샛노란 낙엽이 길게 펼쳐지며 사철 중 늦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부석사 진입로.

늦가을 단풍의 절경을 보여주는 설악산과 오대산 사이 움푹 꺼진 골짜기로 응복산 만월봉 미천계곡을 따라 향신제로 이름난 산초나무가 길게 늘어진 하늘아래 끝동네의 끝번지 선림원터.

11. 경주 감은사터, 안동 봉정사

늦가을에서 초겨울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

산과 호수, 고갯마루와 계곡, 넓은 들판과 강, 바다가 어우러져 조국강산의 모든 아름다움의 전형을 축소하여 보여주는 11월 중순의 감포가도(경주에서 감은사로 가는길)

참나무의 갈색낙엽과 노랗게 물든 은행잎, 붉은 홍시가 익은 만추의 안동. 현존하는 목조건축중 가장 오래된 극락전이 있는 가을의 명소 봉정사.

12. 담양 소쇄원, 단양 적성

사계 모두 좋은 곳

무등산 북쪽 산자락과 증암천 냇물을 끼고있으며 사계마다 절정인 나무와 대나무가 모두있어 현존하는 우리나라 원림(교외에서 동산과 숲의 자연상태를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며 집칸과 정자배치)중 단연 으뜸인 소쇄원.

죽령천과 단양천이 남한강으로 흐르는 모습이 조망되고 옥수수밭, 도라지밭, 엉겅퀴같은 억센 야생화들이 사방에 있으며 겨울철 눈덮인 사자락 나목 행렬이 굵고 긴 산수화를 보여주는 천연의 요새 적성.


이 책의 말머리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느끼는 법이다.

그 경험의 폭은 반드시

지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경험, 삶의 체험 모두를 말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65일

여행자들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시야가 넓어졌어"라고 말하는

여행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럴 수 있는 질문들이 담겨있는 책이기도 하다.

어디를 다녀왔지? 왜 그곳으로 갔지? 그곳에 간 이유를 이루었나 혹은 이루지 못하였나, 무엇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나,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나?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헤프닝이 있었나?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아쉬웠나.

그리고 책표지에도 있는,

'(경험 이후에 보고 느끼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라는 말.

그 말을 이 곳에 남기면 된다.

여행 후에 그곳, 그 장소는 여행가기 전의 내 머릿속에서 알고만 있던 장소와는 분명히 다르리라.

여정과 일대기가 있고, 추억을 남기고 왔고, 어떠한 감흥을 내게 주었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너에게 어떤 곳으로 남게되었는지 기록하는 나만의 답사기.

완성된 책이 아니라 완성해 가는 책,

나의문화유산답사기 36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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