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읽었던 <<안네의 일기>>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동안 나는 자랐고 그만큼 부모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사회의 부조리도 알게 되었으며 정치적인,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 어른이 된 나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다가온 <<안네의 일기>>는 더욱 크다. 안네의 일기는 이미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던 1942년의 6월에 시작된다. 그 때에는 아직 '은신처'로 옮기기 전이고 독일 본토가 아닌 네덜란드이지만 그곳에서도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은 시작되었고 그들 가족은 위험을 느낀다. 그리고 7월 8일 드디어 '은신처'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그 전까지의 안네는 그래도 보통의 열세 살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친구들과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고 매일매일이 즐거운 하루하루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고 물건의 결핍과 항상 조심해야 하는 생활을 견뎌야 하는 은신처에서의 하루하루는 안네 뿐만아니라 안네의 가족과 반 단 씨네 가족... 그러니까 은신처에 기거하는 7명(이후 8명) 모두에게 힘겨운 나날이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소녀가 이런 생활 속에서 견뎌내야 하는 압박감이 얼마나 클까.. 생각만해도 오싹하다. 게다가 안네의 일기를 읽어보면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그대로 일기장인 키티에게 쏟아붓고 그럼에따라 안네의 내부가 얼마나 넓어지고 깊어지는 지를 느낄 수가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성격이 밝고 심히 명랑하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를 나타내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안네의 부모는 그렇게 보이는 안네의 내적 동요나 기분 등을 알아채주지 못했다. 아마도 안네가 시기적으로 '사춘기'라는 시기를 맞이했을 때와 은신처에서의 생활이 맞물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고 어른인 부모는 그런 안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어야 했던 것은 아닐지... 일기를 읽으며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이다. 안네의 처절한 내적 비명이 너무나 잘 들려서 마치 내 사춘기 시절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누구에게 발산할 수 있을까. 보통은 친구들에게, 자매에게, 혹은 또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안네에겐 한정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없었다. 만약 은신처로 옮기기 전에 선물받은 이 일기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좁은 공간에서 모든 일에 신경쓰며 지내야 하는 부담감은 가장 어린 안네뿐 아니라 은신처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었고 때문에 그 적은 인원이 서로 반목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안네는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묘사도 뛰어나고 객관성을 띠고 지켜보며 자신의 생각도 거침없이 표현해 놓는다. 그렇게 키티와 함께 안네가 성숙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 때문에 <<안네의 일기>>는 모든 청소년들이 꼭 읽어야 하는 필독 도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네의 일기>>가 단지 성장소설에서만 그칠까. 그렇지 않다. 그 큰 역할로서 전쟁 당시의 '은신처'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고 그 당시의 상황들과 안네 개인이 생각하는 종교, 사회, 정치적인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 숨어야 하는 이로서 겪어야 하는 참담한 슬픔과 고통은 물론이며 아직 아이이지만 아이가 갖는 정치적 견해도 뛰어나다. "계속해서 글을 쓸 거야. 엄마나 반 단 아줌마, 그리고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세상에서 잊히고 마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 남편과 아이들 말고도 뭔가 몰두해서 할 수 있는 일을 가질 거야."...261p 모든 어른들이 절망적인 말을 쏟아내도 안네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폭격 속에서 무서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에도 안네는 "미래"를 생각한다. 그러니.... 은신처의 발각과 안네의 죽음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어릴 때 읽었던 책은 내게 페터와의 로맨스나 힘든 상황들을 이해하는 데만 급급했던 것 같다. 이제 난 이 책 속에서 부모로서의 역할, 끔찍한 상황 속에서의 통찰력과 희망도 함께 읽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마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느낌이 나는, 그만큼 따뜻하고 감동이 소록소록 솟아나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의료 현실을 꼬집고 "의사"로서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충돌하며 고민하는 의료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아마도 작은 시골 마을 주민들이 의지하는 혼죠 병원의 구리하라 선생님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런, 의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듯. 밥 먹을 시간은 둘째 치고, 잠 잘 시간도 없이 환자를 돌보는 것은 한 작은 시골 마을의 의료 현실이다. 의국에서 분리되어 있고 지방이라 의사들이 기피하는 곳. 그런데도 이곳이 좋다며 오히려 이곳을 선택한 이가 바로 괴짜라고 불리는 구리하라 선생이다. 나쓰메 소세키를 너무나 좋아하여 그의 어투까지 따라하게 되어 더욱 괴짜다운 이 주인공은 마치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대로 이 <<신의 카르테>>에서 등장인물들을 별명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모든 이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괴짜스러움을 가진 이 의사 선생님은 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본다. 그러니 누가 이 의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무엇이 '좋ㅇ느 의사'를 만드는가. 이는 내 머릿속에 깊게 뿌리박혀 있는 지상 최대의 난제이다. "...61p 과연 현실에서 좋은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한 그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한 의사가 몇 명이나 될까. 현실의 복잡함에 갇혀, 매일의 타성에 젖어 그저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며 매일 하는 똑같은 일만 기계처럼 하지 않는가. 그 누구보다 환자의 아픔을 돌봐주어야 할 의사가 말이다. 등장인물들의 어이없는 사건이나 말투 등에 풋!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앞둔 분들의 하염없는 겸손에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구리하라가 느끼는 것처럼 매일의 아주 사소한 행복에 감사하기도 하고. 다소 괴짜스럽지만 아내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전할 때에는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이 의사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아이가 조금 자라면 안전장치가 잘 된 가위를 쥐어줍니다. 가위질은 눈과 손의 협응력을 길러주고 소근육을 길러주는 아주 좋은 교육이기 때문이죠. 하염없이 그저 자르는 데에 집중하던 아이들은 조금씩 커가면서 내가 만들고자 하는 머리 속의 어떤 모양, 혹은 입체적인 것을 떠올리며 스스로 많은 발견을 하며 가위질을 합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의 경우 "예쁜 것"을 찾아 다양한 문양을 만들어내려 하죠. 하지만 막상 엄마도 잘 아는 방법이 없기에 무척 난감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더 귀여운 종이오리기>>를 만났네요. 정말정말 다양하고 예쁘고 우아한 모양들이 가득~하답니다. 138개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문양들이 가득차 있어요. 하지만 막상 직접 해보려고 하니 만만하지는 않더군요. 모양마다 접는 법이 다르고 사용되는 재료도 달라요. 가위나 칼은 물론 디자인 커터라는 것을 사용해야 더 깔끔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모양들이 있거든요. 일단, 그럼 책 속 문양들을 구경해 볼까요? 이외에 각종 동물 문양에서부터 아이들, 석상이나 다소 신기한 문양들까지 정말 다양하답니다. 직접 만들어봤어요. 스테이플러 찍는 위치에서부터 방향까지 정말 자세하게 잘 설명되어 있답니다. 이렇게 죽~ 오려서 집도 예쁘게 꾸밀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책에는 다양한 실용화할 수 있는 방법들까지 잘 예시되어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아주 예쁘게 장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힘이 불끈! 솟습니다.^^ 아이들은 얼마나 쉽게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커터나 칼을 이용하는 부분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아직 힘이 부족하여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하더라구요. 자꾸 찢어트리고 싹뚝 잘라내어 좀 더 쉬운 작품에 도전해보기로 했으나...ㅋㅋ 처음 시도했다가 실패한 작품이에요. 여기저기 찢어트려 결국 제게 넘어왔는데 커터를 사용해야 하는 문양을 칼로 대체하려니 잘 되지 않더라구요. 사진보다 훨씬 너덜너덜~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가위만 사용할 수 있는 작품을 시도했으나 뭔가 이상합니다. 사실 치즈 먹는 생쥐가 세마리가 나와야 하는데 색종이와 다른 방향으로 놓고 오려서 방향이 다른 두마리밖에 나오지 않았네요. 다시 한 번 공간감각과 함께 예술성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제는 자신의 두 작품이 실패하는 바람에 눈물도 찍~ 흘렸지만 또다른 작품을 기약하며 심기일전 하더라구요. ^^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아주 유익한 놀이 시간이 되었어요. 좀 더 세심하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집에 다양한 작품으로 장식되기를 바래봅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라고 뉴스에서 보도되어도 사실 잘 실감이 나지는 않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막상 쉬쉬~하며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 아이도, 저집 아이도 이혼녀, 이혼남, 혹은 재혼가정의 아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제가 참가하게 된 한 상담모임에서도 재혼 문제를 털어놓는 분들이 꽤 많더라구요. 그제서야 음성적으로 이혼가정, 재혼가정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됩니다. 사실 옛날에는 아무리 부부 문제가 심각해도 "아이들"을 보면서 참아왔지만 이제 "내 인생"을 찾겠다는 부모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새로운 형태의 가정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일순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 보면 역시나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받아야 하는 상처와 불안은 어떡해야 할까요? <<아빠는 내가 고를 거야>>가 새로운 해답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은지는 언니와 엄마와 함께 삽니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고 아빠는 바로 재혼하여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거든요. 때문에 은지는 "남자"와 "사랑"에 상처받고 믿음을 저버렸어요. 사랑이라는 것은 모두 믿지 못할 것이며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고 말이죠. 은지 주변에는 비슷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혼남인 아빠와 사는 준구는 잘 돌봄을 받지 못해 너무나 지저분하고 학습 능력도 떨어지고, 은지의 단짝인 미혜는 새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요. 또 창민 오빠의 엄마도 돌아가셨죠. 어쩌면 은지가 "사랑"이 영원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모두 어른들의 문제로 야기된 아이의 상처에요. 그런데 엄마가 어떤 아저씨를 소개해 준답니다. "사랑"을 또 믿는 엄마가 은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게다가 그 못미더운 새아빠의 자리를 꿰찰 남자가 바로 코찔찔이 준구의 아버지라지 뭡니까! 이쯤되니 은지는 새아빠가 될 사람을 스스로 찾기로 결심해요. 은지의 새아빠 찾기는 잘 이루어질까요? 처음 엄마가 소개한 준구 아빠는 은지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었죠. 하지만 뒤이어 은지가 소개한 창민 아빠는 엄마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엄마와 언니, 은지는 모두 가족이기 때문에 모두의 생각이 반영된 선택이 가장 옳은 선택이겠죠. "내가 아빠를 고르겠다"는 은지의 생각은 정말로 당당하고 옳습니다. 자신도 가족의 한 부분이므로 당연히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은지는 그 과정을 통해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랑"이란 서로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가족은 모두 한 곳에 똘똘 뭉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엄마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 은지는 이제 "사랑"의 불신을 버리게 되겠지요?^^ 은지가 아빠한테 찾아가던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은지의 마음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이해되었기 때문이죠. 부모들의 자존심과 하찮은 실수들 때문에 얼마나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는지가 극명하게 나타난 장면이었습니다. "난 이제부터 엄마처럼 약속도 하고 결혼도 하고 사랑도 할 거다. 사랑 따위 필요 없다면서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을 거다. 용감한 여전사가 되어 왕자님을 찾아 나설 거다."...152p 은지의 씩씩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감동과 함께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동화였네요.
이름이 굉장히 어려운 작가...하면 친구와 난 "와카타케 나나미"를 떠올린다. ^^ 그럼에도 그녀를 잘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일상 미스터리 "하자키 시리즈" 때문이다. 분명 미스테리한 추리소설이지만 어딘가 빛이 있고 밝아서 기분이 좋아지는 시리즈. 때문에 그녀의 다른 작품들이 읽고 싶어졌다. 같은 작가에게는 비슷한 분위기를 기대하게 되는지라 분명 무언가를 기대하며 책을 읽어나갔지만 <<의뢰인은 죽었다>>에서는 또다른 느낌을 받으며 의아함과 놀라움을 금치못한다. 어두운 과거(동생:주인공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결국은 "너 때문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한 언니)로 인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하무라 아키라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소설은 9개의 단편들이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고 각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의뢰인"을 제외하고 등장인물들은 거의 같다. 주인공인 하무라 아키라와 그녀의 동거인인 친구 미노리, 아키라가 적을 두고 있는 하세가와 탐정조사서의 소장, 함께 일하는 동료 무라키 등. 그리고 검푸른 점을 갖고 있는 의문의 남자. 사건들은 따로 떨어진 듯 보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하무라가 개인적이든 조사서의 일원으로서든 사건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각 사건들마다 하무라의 감정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뢰인으로부터 사건 수사를 의뢰받고 죽은 자와 죽인 자를 이해하려하면서 하무라는 자신의 언니 스즈의 기억을 계속해 떠올린다. "왜" 죽었을까. 결코 언니의 죽음은 밝혀낼 수 없지만 의뢰받은 일들은 하나씩 밝혀낸다. 하지만 각 단편들의 끝은 모두 조금씩 애매하다. 확실한 결론보다는 독자의 해석대로, 혹은 하무라나 의뢰인의 해석에 맡겨버린다. 그럼으로서 남겨지는 의문은... 아마도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서 밝혀지는 듯. <<의뢰인은 죽었다>>를 읽다보면 인간의 저 밑바닥에서부터의 "악의"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살인(자살도 포함하여)이 그냥 벌어지지는 않는다. 아주 사소한, 처음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 같은 작은 동기에서부터 시작되어 결국은 그 한계점을 넘어 현실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다보면 간혹 섬뜩한 느낌이 저절로 든다. 내 속에서 잠자고 있던 악의도 움트는 것은 아닐까..하면서. 마지막 장을 읽고나면, 그동안 내가 뭘 빼놓고 읽었나..싶어 다시 처음부터 읽고 싶어진다. 이렇게 괴로운 결론을 내놓다니!!! 하자키 시리즈처럼 하무라가 주인공인 연작 시리즈가 있는 듯하다. 진실을 알고 싶다. 하무라는 언니 스즈가 자살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