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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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세풀베다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라는 작품 때문이었다.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 시리즈 중 한 권이었는데 그 시리즈 제목에 참 잘 맞는 동화라고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철학적이고 감동이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인생에 필요한 것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는 훨씬 나중의 작품이다. 어느 날 저녁 손자가 물었던 질문 하나. "달팽이는 왜 이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거예요?"에서 시작된 이야기이다. 손자 손녀들에게 대답해 주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라니 정말로 다정한 할아버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책은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그렇게 서술된다. 때문인지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 와 같은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없다. 오히려 <꽃들에게 희망을>이나 <갈매기의 꿈> 같은 책이 더 생각났다. 그만큼 상징과 교훈, 철학이 담긴 책이다.

 

모든 것이 갖춰진 듯 행복한 민들레 나라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달팽이가 한 마리 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다 이름이 있는데 왜 자신에겐 이름이 없는지 궁금하고 어째서 달팽이들은 이렇게 느린지 알고 싶은 달팽이 말이다. 다른 달팽이들은 자신들이 느리다는 사실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어째서인지 다른 노력을 한다든지 하지 않는다. 그저 체념하고 한숨만 지을 뿐이다. 그런 달팽이들에겐 인간들처럼 관습에 매달려 자신들의 하루하루를 그냥 지내올 뿐이다. 자신에 대해 궁금했던 달팽이는 궁금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수리부엉이를 만나고 <기억>이라는 거북이를 만나 달팽이는 <반항아>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들판을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려는 인간들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달팽이는 자신만의 길을 계속 떠날 것인지, 돌아가 이 사실을 달팽이들에게 알려줄 것인지 고민한다. 그리고 돌아가는 와중에 <반항아>는 자신의 "느림" 덕분에 이 많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만나는 동물들에게 위험을 알려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돌아간 <민들레 나라>에서 관습에 빠져있던 달팽이들에게 자신의 이름다운 방법, 행동으로 그들을 구하기로 한다.

 

"진정한 반항아라도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지만, 맞서 싸워 이겨 낸다고 말이야."...72p

"민들레 나라는 저 먼 곳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간절한 마음속에 있었다는 걸 말이에요."...93p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항상 곧게 뻗어 있거나 쉬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가시밭길도, 때론 돌아가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길을 힘들다고, 잘못 가는 것 같다고 포기하거나 멈춰버리면 결국 그 길을 끝까지 갈 수가 없다. 빠른 길보다는 천천히 한 발자국씩 차근차근 밝아나가다 보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때가 있다. 할아버지 루이스 세풀베다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편하다고 안주하지 말고 주변을 잘 살펴본 후에 내가 정한 길을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이다.

 

포기하고 싶거나 너무 빠르게 달려오다 잠시 쉬고 싶을 때마다 읽으면 좋을 책이다. 내가 맞다는 확신을 얻고 싶고 조금 느리더라도 괜찮다고 위로받고 싶을 때마다 곁에 두고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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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바이러스
티보어 로데 지음, 박여명 옮김 / 북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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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예쁜 애들은 멍청하다는 편견이 있든 없든 어떤 식으로든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말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꼭 그런 것 같지 않다. 나이가 들며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세상도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V라인이니 S라인이니, 복근이니 하면서. "건강"을 내세워 조각한 듯한 몸매를 만들라 강요하고 뚜렷한 이목구비와 주름 하나 없는 피부를 지향한다.

 

<모나리자 바이러스>는 이런 아름다움에 대한 세계의 단일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아름다움, 하면 떠올리는 "모나리자"를 앞세워 말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정말로 많은 업적을 남긴 동시에 미스테리한 면도 많아서 많은 작가들에게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나 보다.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나 랄프 이자우의 <거짓의 미술과>, E.L. 코닉스버그의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등 그림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다소 식상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이 두꺼운 책이 시작하자마자 사라진다. 소설은 시작과 동시에 사건이 펑! 펑! 터지며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한 노인과 한 소녀가 사라진다. 미스 아메리카들이 멕시코에서 납치를 당한다. 전세계에서 벌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건축물, 그림들이 훼손된다. 딸을 찾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간 신경미학자인 헬렌 모건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FBI 그렉 밀너는 각자의 공간에서 마치 퍼즐처럼 흩어진 사건들을 연결하며 자신들이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아 헤맨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범인은 아주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어쩌면 너무 빨리 눈치채버린 범인의 존재 때문에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은 범인을 찾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보다 범인의 의도가 더 중요하다. 그는 왜 이런 미친 것처럼 보이는 일을 벌이는 것인가.

 

"아름다움이란 선한 건가, 악한 건가?"...184p

 

사람들이 마치 신을 모시듯 하나만을 추구하는 현상, 범인과 작가는 바로 이것에 주목했다.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인가. 맹목적으로 쫓아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들. 그래서 세계 모든 이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모나리자를 바이러스로 둔갑시킨 것이다.

 

내용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이 드러나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소재, 구성 면에서는 엄지 척!을 들어주고 싶다. 루카 파치올리의 초상화 속 인물에서부터 창조해 냈다는 "낯선 이"의 존재 자체가 꼭 필요했는지(과거 파치올리의 일기 안에서가 아닌, 현재에서)는 의문이 생기지만 적어도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쉽게 이해시키기는 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완전히 공감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겠다. 우선, 나는 아름다움에 예민한 타입이 아니다. 남들과는 참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분명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같지는 않다. 각자 살아온 환경, 가치관에 따라 다른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범인이 꼭 그렇게 전세계인의 생각을 바꾸려고 했을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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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우리나라편 - 역사의 희로애락,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 서프라이즈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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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벌써 10년 넘게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때는(아이가 너무 무섭다고 보지 말자고 할 때까지~) 열심히 일요일 오전마다 챙겨보던 프로그램이다. 워낙 신비하고 으스스하고 미스테리한 이야기들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벌써 15년이 되었단다. 그리고 올해 초부터 한 권 한 권 책으로 발간되고 있다. 이전에는 <서프라이즈 - 사건편>을 읽었다. 세계의 알쏭달쏭 미스테리한 사건들에 대해 시대순으로 요목조목 잘 정리해 놓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안본 지가 꽤 되어서 거의 모르던 이야기였고 좀 더 찾아보고 싶은 사건도 몇 있었다. 그야말로 "서프라이즈"였다고나 할까.

 

<서프라이즈 - 우리나라편>은 그 느낌을 그대로 이어가며 우리 역사까지 알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해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책의 중간 부분까지는 거의 아는 내용이어서 조금 아쉬웠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나라 역사이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역사 공부를 하다보니 그런 걸까.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 이외에 별로 다를 것이 없어 아쉬웠다. 그럼에도 간혹 새로운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일제시대 한글학자들의 '말모이 작전' 이야기라든가, 임진왜란 시 조선왕조실록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 안의와 손홍록 이야기나 내륙에서 앞장서 일본군과 싸운 김충선 장군이 사실은 일본의 가토 장군이었다는 사실이나 명나라를 통해 도우러 왔던 해귀, 포르투갈 흑인 등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서프라이즈>는 단지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고만 있지는 않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 현재 우리를 돌아보고 배워야 할 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만 원권 지폐의 뒷면 그림의 오류를 통해 일침을 놓듯이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폐는 그 나라의 역사를 반영하는 나라의 초상이자 거울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본보기가 되는 위대한 인물과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화폐 도안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만 원권 지폐의 도안 논란은 우리의 문화 유산을 제대로 알고 그 가치를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우리 사회 전반에 '소통'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81p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도세자에 대한 평가의 경우 지금까지는 혜경궁 홍씨의 기록은 <한중록> 속의 이미지가 지금까지 알려졌다면 그 외의 다른 기록들과 당시 혜경궁 홍씨와 노론의 상황을 비교하여 그 평가가 다를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아쉬움도 있다. 3부 "역사에 묻힌 고종의 비자금"에서 이용익에게 맡긴 고종의 비자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7부 "사라진 황실 예금 백만 원"에서는 제목과 다르게 마지막 문단에서 이용익이 어디서 그런 큰 돈을 가질 수 있었는지를 묻고 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송은 2년 차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했을 수 있다고 해도 다시 책으로 출간하기 전에 한 번 손을 보았을텐데 이런 실수를 찾아내지 못했던 것일까? 심지어 제목에도 황실 예금이라고 언급해 놓고 말이다. 조금 더 꼼꼼한 검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럼에도 <서프라이즈>는 지식창고이다. 물론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건 사고들도 다루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호기심이 생기고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모인 마음이 다시 그 사건들을 파헤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더욱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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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강물 마음이 자라는 나무 38
가일 E. 헤드릭 지음, 김경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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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문제가 아이들에겐 잘 와닿지 않는다.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직접적으로 나쁜 영향을 끼치고, 내 건강이 나빠지고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지 않은 한 말이다. 그제서야 호들갑을 떨며 뒤늦게 대처법을 찾는다, 예방을 해야 한다, 난리이다. 그래봤자 어쩌면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이론으로는 잘 알지만 아직도 우리와는 먼 남 얘기라고 생각한다.

 

<위험한 강물>은 너무 무겁지 않아 좋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위험한 강물이 이런 영향을 끼치니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훈계하듯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면 자극이 강한 것만 찾는 아이들은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마치 환경 소설을 가장한 14살 소녀의 당돌하고 당찬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재미와 교훈, 공감까지 느낄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에밀리는 여름 내내 아버지의 출장을 따라 다른 지역에 머물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집보다 더욱 사랑하는 장소, 외삼촌 외숙모 댁에 도착했지만 아름다운 히그돈 강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고, 눈알이 튀어나온 채 죽어 있다. 냄새는 고약하고 처참한 그 광경이 에밀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하나 이해되지 않는 건, 단짝친구 리앤의 행동이다. 한 달 정도 떨어져 있었다고 너무나 달라져 버린 친구는 언제나 붙어다녔던 자신과의 하루하루 대신 돈 많고 허세 가득한 신시아와 붙어다니며 에밀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에밀리는 이 모든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샘은 이제 인기 아이돌 같은 태도를 버리고, 학교에서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그리고 매리는 이 모험을 누구보다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내가 물고기와 리앤, 그리고 나 자신의 문제에 몰두해 있는 사이, 내 주위의 세상과 친구들은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145p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는 새로운 세계로의 변화이다. 비록 같은 친구들, 같은 동네에 존재할지라도 말이다. 각자의 생각 범위가 달라지고 조금씩 성장해 나아간다. 모두 같은 방향이 아닌, 내 관심사에 따라, 친구들에 따라.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내 주위 사람들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다.

 

<위험한 강물>은 그 과정을 아주 잘 그려나가고 있다. 자칫 너무나 진부할 수 있는 강물 오염 이야기를 에밀리의 성장과 함께 재미있게 그려냈다. 제목만큼이나 위험한 행동의 여파로 정말 위험해질 뻔한 에밀리를 따라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아이로서 할 만했던 실수와 자신이 스스로 책임지려 했던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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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투 더 포레스트
진 헤글런드 지음, 권진아 옮김 / 펭귄카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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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접했을 때의 느낌과 책을 모두 읽고 난 뒤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표지의 사진과 띠지나 표지의 설명 등을 통해 상상했던 이 책의 내용은 미스테리, 판타지와 같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오히려 <손도끼>나 <먼 산에서>와 같은 책들이 생각났다. 두 책과의 차이점이라면 앞의 두 책은 소년들이 숲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지만 <인투 더 포레스트>는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래서 다르다. 소녀... 여자만이 겪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장애와 놀라움이 드러나 있다.

 

넬과 에바는 도시, 이웃과 아주 멀리 떨어진 집에서 홈스쿨링으로 자라왔다. 두 자매가 마치 쌍둥이처럼 같은 영혼을 지니고 있었고 그들 집 주변은 온통 놀이거리였기 때문에 다른 친구나 놀잇감 같은 것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둘만 있으면 괜찮았다. 숲을 뛰어다니며 둘만의 이야기, 놀이를 만들어냈고 그렇게 무한한 상상 속에서 마냥 행복했다. 언니가 "발레"에 빠지기 전까지는. 넬은 발레에 미쳐 많은 시간을 도시에 가서 수업을 하고 집에서도 연습만 하는 에바가 미웠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하지만 제대로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이 가족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이 책이 판타지나 미스테리 장르라고 생각했던 건, 뒷표지의 "질병과 혼란의 창궐로 온 나라가 붕괴되다시피하면서"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이 구절은 <나는 전설이다>를 생각나게 했고, 아무것도, 아무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홀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다 보니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분명 이들이 사는 나라 혹은 지구에 무슨 일인가가 생기긴 했다. 전기가 끊기고 전화도 할 수 없고 휘발유도 구할 수가 없다. 세상엔 미지의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작가는 더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차피 이 두 여주인공의 배경은 그 도시나 사람들과 너무나 많이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고 그런 불편함들이 점점 익숙해지며 그들은 버텨나갔다. 하지만 온전히 둘만 남게 되자 이 두 소녀는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조금씩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 상황이 시작된 이래 우린 늘 구조되기를 기다려왔다. 멍청한 공주들처럼 우리의 정당한 삶이 다시 복구되길 기다려왔다. 하지만 그건 자기기만에 불과했다."...260p

"그동안 우린 계속 과거 속에서, 과거로 돌아가길 기다리며 살았어. 하지만 과거는 사라졌어. 죽었다고. 그리고 어쨌거나 그건 잘못됐어."...407p

 

어린 시절 숲은 이들에게 놀이 장소였고 너무나 친숙하고 위로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언니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세상에 이상한 일들이 생기고 심지어 숲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이곳은 그녀들에게 무섭고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들은 이 숲을 자신들만의 장소로 만들어 간다. 살아가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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