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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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는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9P

 

...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 두 문장은 매우 강렬하다. 그리고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처음엔 제목과 더불어 귀신이 나오는 건가..하고 상상하다가 뭇 탐정 소설이나 수사 드라마 속 내용처럼 리디아의 죽음에 연루된 사건이 얼마나 잔인한 것일지 상상한다. 하지만 곧 이 이야기가 그렇게 단순한, 너무나 흔한 사건 소설이 아님을 알게 된다. 허구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라서 더욱 잔인하고 더욱 가슴 아픈 이야기로 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말이 아니다. 현실 속 일반 가정의 이야기가 바로 소설이다.

 

"이 모든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언제나 시작은 엄마와 아빠다. 리디아의 엄마와 아빠 때문에 시작된 거다. 왜냐하면, 오래전에 리디아의 엄마가 사라진 적이 있었고, 리디아의 아빠가 그런 엄마를 찾아 집으로 데려왔기 때문에 시작된 거다. 무엇보다 리디아의 엄마가 자신을 사람들 밖으로 드러내려 했기 때문에 시작된 거고, 무엇보다 리디아의 아빠가 자신을 사람들 속으로 숨겨버리려 했기 때문에 시작된 거다. 그러니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을 꿈꾸었기 때문에 시작된 거다. "...43p

 

이야기는 리디아가 사라지고 발견되고 슬픔이 이 가족을 옭아매는 현실과 이 가족이 이루어지던 때, 엄마 메릴린과 아빠 제임스가 만날 때,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메릴린과 제임스가 어려서 그들이 삶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아가던 시기가 교차되며 서술된다. 작가의 서술 방식 때문일까. 각각의 사건이 급변하고 빠른 전개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객관성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 가족의 비극에 깊이 들어가게 된다.

 

이 가족의 비극엔 전제 조건이 있다. 엄마는 아직 여성의 역활이 제대로 인정받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당당히 홀로 서고 싶었고, 아빠 제임스는 미국이라는 땅에 아시아인이 많이 없던 시절, 많은 이들의 시선을 꿋꿋이 버티며 살아야 했다. 1940~50년대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이 얼마나 주위의 영향을 받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가치관에 따라 다음 세대로 자신의 꿈을 연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기도 한다.

 

내 어린 시절을, 지금의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부모는 보통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아이를 키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는 어떻게든 아이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든 안좋은 영향을 준다면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오싹해졌다.

 

스릴러나 미스테리 소설은 아니다. 반전도 없다. 읽다 보면 리디아가 왜 죽었는지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후에 리디아의 진심을 알게 된다면 조금 놀라게는 되지만 이야기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저 안타깝다. 이 가족의 비극은 진정한 소통의 부재가 만들어냈다.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고 담아둔 것들",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그 어떤 소설보다 더욱 가슴 절절하게 읽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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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친구를 만드는 방법 - 2014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 라임 청소년 문학 21
마르티나 빌드너 지음, 김일형 옮김 / 라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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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양한 나라의 청소년 소설을 읽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다. 어느 나라나 사춘기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고민은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친구, 가족과의 관계와 미래에 대한 불안함, 이성에 대한 호기심, 그러면서도 밝기도 했다가 우울하기도 했다가 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기분 등. 이제 막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와 사춘기에 생기는 다양한 호르몬 변화 등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그러니 문화가 달라도 가정 환경이나 성격이 달라도 거의 비슷한 고민이 있고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완벽한 친구를 만드는 방법>은 독일 청소년 소설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러시아계이기도 해서 우리와는 정말로 먼 나라의 이야기인데도 이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 고민, 오해 등은 우리 아이들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이런 책을 읽으며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며 함께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진지한 고민들이 아이들의 미래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

 

나디아와 카를라는 오랜 친구이다. 카를라가 이사를 오고 첫인사를 하고 난 후부터 죽~. 카를라는 보통의 아이들과 좀 많이 다르지만 나디아에겐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꽉 채워지는 그 존재감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그 우정이 정말 좋다. 가끔은 뭐든지 분명해야 하는 자신의 성격과는 다르게 단답형의 설명 없는 대답에 답답할 때도 있지만 카를라에게 자신이 필요하고, 자신에게 카를라가 있으면 모든 것이 채워지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아서 카를라는 나디아에게 완벽한 친구라는 생각을 한다.

 

둘은 다이빙 선수이다. 초등학교를 방문한 체육 선생님께 발탁되고 몇몇의 운동 중 자신들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종목을 선택한 것이 다이빙이었다. 둘은, 특히 카를라는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고 때문에 중학교도 체육 중학교로 진학하여 벌써부터 미래를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매일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등교하고, 하교하고, 수영장에서 다이빙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고 잠을 자면 하루가 다 지난다.)이 가끔은 답답하지만 둘이 함께 한다면 그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사춘기의 여자 아이들의 관계는 참으로 복잡 미묘하다. 나 때에도 그랬지만 지금 우리 딸을 보아도 그렇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이 시기는 가족보다 더욱 소중한 대상이 친구들이니 이 관계가 틀어지면 인생이 우울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디아는 참 기특하다. 같은 종목으로 경쟁하는 상대인데도 나디아는 한 번도 카를라에게 질투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랑스러워 한다. 가끔 왜 뛰어넘으려 하지 않느냐는 엄마의 잔소리가 귀찮지만 진심으로 카를라의 재능을 축하해준다. 하지만 무엇이든 둘이 하면 완벽했던 것들이 자꾸만 혼자가 되고 비밀이 생기고 그 틈이 벌어지면서 나디아는 자신이 무엇을 어디서부터 잘못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방황하게 된다.

 

사실 시간이 흐르면, 인생의 모든 우울을 한 번에 겪었을 것 같던 그 시기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슬며시 미소짓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고민의 흔적들이 나를, 우리를 성숙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싸웠든, 소원했든, 죽고 못사는 존재였든 그 시기를 버티게 해 줄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엔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줄지. 무지하게 많았던 고민도 친구의 한 마디면 해결될 수도 있다. 그렇게 완벽한 친구를 만들 수 있던 시기가 바로 사춘기였다. 모든 청소년들이 지금 비록 힘든 하루일지라도 내 곁에 있는 친구와 함께, 그런 사실을 알려주고 공감해주는 책과 함께 밝은 시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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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드림 내비게이션
김보경 지음 / 프리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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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늦게까지 TV를 보다가 현재 교육 현실에 대해 학생, 학부모, 교육가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사교육과 선행, 자유학기제 등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교육은 무엇인가, 아이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공부를 해야 하는가 등 다소 관념적이고 뻔~한 이야기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건 그만큼 요즘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우리 교육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3년 전부터 자유학기제가 몇몇 학교에서 실시되고 있고 올해부터는 모든 중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기나 한 건지, 아이들이 괜히 붕~ 떠서 놀고만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건 분명 나 혼자만의 걱정은 아닐 것이다. 내가 만난 아이들을 통해 자유학기제 동안 진정한 탐색을 하기는 커녕 멀게라도 꾸었던 꿈조차 사라져버리더라는 이야기를 여럿 들었으니 사실 자유학기제 = 노는 학기라는 생각 뿐이다.

 

그럼에도 부모는 이 시간을 잘 활용하여 자신을 진지하게 탐색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하다. 우리 때에는 꿈보다 단연 성적 위주의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던 시대였다. 꿈조차 부모에게 강요당하거나 세뇌당하던 시절이다.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면서도 자꾸만 허전하고 불안한 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내 아이 만큼은 자신의 재능과 흥미를 마음껏 살려 진정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가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어쩌면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서론이 길었다. <청소년 드림 내비게이션>은 청소년 드림 멘토이자 행복 전도사인 작가가 청소년들을 위해 스스로를 탐색하고 미래를 예측해 보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살려 행복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하는 책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청소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을 소개하는 책인데, 단순히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이나 명작, 근현대 문학 등이 아닌...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지녀야 할 생각이나 습관 등을 재정비하고 어떻게 미래를 계획해야 하는지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한다.

 

구성이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목적이 확실하고 그 목적이 있으니 아이들을 위해 단계별로 나누어 책을 소개한다. 단, 너무나 목적지향적이기 때문인지 책 대부분이 자기계발서여서 아이들이 과연 이 책들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분이 가장 아쉽다. 하지만 이 부분은 거꾸로 작가가 추천하는 다양한 책 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책을 골라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천천히 생각해 보고 의지를 다지고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세상 무든 것을 끌어안는다."...184p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인지하게 된다. 비단 아이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또한 살아가야 할 일이 훨씬 많이 남았고 그 변화에 발맞춰 살아가려면 분명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러니 부모인 나보다 더 유연성이 떨어져 한 가지만 고집하는 딸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딸은 중 1이다. 이번 학기가 자유학기제로 시험 없이 한 학기를 보낸다. 이번주부터 다양한 수업을 실시하고 있고 아마 2,3학년 시험기간에는 다양한 체험을 하러 밖으로도 나갈 것이다. 부디 이 한 학기가 그저 시간을 떼우는 시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와 서점에 가서 아이의 미래를 계획해볼 만한 책 한 권을 골라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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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가 말을 하다 1 : 신과 인간의 공존 그리스로마신화가 말을 하다 1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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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는 멀고도 가깝다.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읽은 이야기들은 많은데 우리 것이 아니다 보니 정리가 안된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문학이나 인문 책을 읽다 보면 어김없이 그리스로마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 역사, 문학, 어휘가 간간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유럽 문화의 근간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많은 그리스로마 신화 책들을 읽어봤는데 뭔가 정리가 안된다. 재미를 위해 인기있거나 흥미로운 이야기 위주로 설명하는 책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읽긴 읽었지만 무언가 빠진 건 아닌지 머리 속이 뒤죽박죽일 때가 많았다.

 

어릴 적 그리스로마 신화 만화책을 보여달라던 딸에게 예쁜 그림체가 옳지 않은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로 못읽게 했던 적이 있다. 딸이 자라고 다양한 책을 읽으며 그리스로마 신화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자 그때 못읽게 했던 엄마를 원망하더라. 해서 나도 한 번에 정리하고 딸도 재미있고 쉬우면서 조금은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그리스로마신화가 말을 하다>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스로마신화가 말을 하다> 시리즈는 '30가지 코드와 300가지 명화로 얽히고 설킨 그리스모사 신화를 명쾌하게 풀다'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명화 책 형식이다. 이런 형식의 책이 첫 번째가 아닌데, 단연코 많은 자료를 자랑한다. 화가들은 이 신화의 이야기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은 듯 같은 주제, 소재의 이야기가 다양한 화가들에 의해 그려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그림들을 통해 이야기를 더욱 잘 기억할 수 있다.

 

" '그리스로마신화가 말을 하다'는 여러 고전을 토대로 그리스 신화를 균형 있게 구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7p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아이스킬로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 장 아누이의 <안티고네> 등 다양한 고전 작품 속 신화를 한데 모아 다시 재편집하고 우리 식으로 명화와 함께 쉬우면서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조금씩 얻어진 지식을 다시 일렬로 재구성하는데 안성맞춤이다.

 

1권은 "신과 인간의 공존"으로 처음 신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처음부터 요약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지금까지 조금씩 생각해오던 것들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특히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다양한 전래동화나 옛이야기로 전해지게 되었는지 저절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스로마신화 속 몇몇 이야기들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미다스와 아폴론"이나 "프시케 이야기 - 미녀와 야수", "피라모스와 티스베 - 로미오와 줄리엣" 등과 매우 비슷하고 아마도 뒤의 이야기들은 신화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신화는 그저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인류의 역사이며 상징이다. 허구의 이야기처럼 비친다고 마냥 재미있는 허구로 받아들여서도 안되고 너무 의지해서도 안된다. 적절히 그 속에 숨은 속뜻을 찾아내고 교훈을 찾아 우리 방식대로 재창조하면 된다. 인류의 윤리 의식 변천사에서부터 실용주의와 원칙주의의 대립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은 신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지금 현재 우리를 돌아보는 일도 될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이 책에 인용된 고전도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좀 더 확장된 독서로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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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소 싱크대 앞
정신실 지음 / 죠이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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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표지 디자인을 보고, 제목을 살피고, 앞뒤 표지를 열심히 읽는다. 수없이 쏟아지는 책들 사이에 그나마 내가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을 즐겁게 보낼 만한, 내 마음에 울림을 줄 만한 책을 고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 실패한다. 그렇게 겉으로 살펴 본 이야기와 안의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될 때가 있다.

 

<나의 성소 싱크대 앞>에서 내가 실패한 부분은 바로 "성소"라는 단어였다. 내가 생각한 성소는 종교적인 장소, 어휘가 아닌 일반화한 '좋아하는, 지키고 싶은'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책이 아주 평범한, 나처럼 매일매일 지지고 볶고 사는 어느 한 아줌마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단정했다는 점. 물론... 그리고 사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말이 많나.... 그건 바로 이 책을 쓰신 작가님이 성함처럼 아주 신실하신 신자이자 목사님의 아내분이시라는 사실이다. (흠~ 나 이러다 테러 당하는 건 아닌지.) 만약 책을 읽기 전에 이 사실을 먼저 알았다면 절대로! 이 책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뭐랄까... 신자분들의 책에선 내가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고 그런 부분들이 계속해서 신경을 거스르기 때문인데 이건 순전히 내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비록 "싱크대" 이야기는 거의 없지만 그저 평범한 맞벌이 주부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일하는 직장인으로서 겪는 여러가지 일들이, 그러면서 겪는 다양한 생각들이, 그 속에서 얻은 교훈들이 아주 담담하게 때론 재미나게, 다소 경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같은 맞벌이 주부로서 나도 모르게 "푸하하"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작가의 마음에 공감하기도 하면서 읽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작가의 공정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무조건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자신이 느꼈던 부당함이나 편견 같은 것들을 여과 없이 내뱉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사모에게 갖는 편견들에 대한 생각이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던 목사님 특권의식 사건 등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솔직하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불편했던 나조차도 걱정될 정도이니 말 다했다.

 

때문에 가정, 육아, 일상의 이야기들은 저절로 편한 상태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또한 나만의 편견일지 모른다. 싱크대 앞 식탁 의자에 앉아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꿈이자 소망인 나로서는 직접적인 '싱크대' 이야기가 별로 없어 조금은 아쉬웠지만 아주 독특하고 신기했던 독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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