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듣고 있니? ㅣ 에프 그래픽 컬렉션
틸리 월든 지음, 원지인 옮김 / F(에프)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한 여자아이가 도로를 걷고 있다. 여행을 떠나려는 듯 처음엔 버스를 기다리지만 선뜻 타지 못한다. 이어 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위험한 도로를 위태롭게 걷는다. 반면 다른 차도에는 트레일러가 달린 작은 차에 한 여성이 지도를 보며 운전을 하고 있다. 차가 달리다가 서고 하는 통에 물도 쏟고 사방에서 클랙션이 울리니 뭘 어찌 해야할지 몰라 점점 화가 난다. 두 사람은 간이 매점에서 만난다. 여자아이는 전화기를 찾으러, 여성은 화장실을 찾기 위해.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동네에 아는 사이였고 여성, 루와 여자아이 비는 당분간 여정을 함께 하기로 한다.
처음에 둘은 계속 삐걱거렸다. 둘 모두 사연이 가득한 듯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들의 감정만 앞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그러니 자신들의 비밀을 숨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둘은 여행을 계속 이어간다. 그리고 잠시 멈춘 상점 앞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이들과 함께 하게 되며 이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둘의 사연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앞부분은 도대체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미스테리처럼 펼쳐진다. 그러다 그런 것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앞으로 둘의 관계가 더 궁금해질 즈음에 고양이가 등장하고 으스스한 도로, 어두운 밤, 이상한 사람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공포심을 부추긴다.

고양이 목에 메달린 주소를 찾아가는 이들의 여행길은 순탄치가 않다. 주변엔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커녕 뭔가 이상한 느낌의 사람들이 가득하고 알 수 없는 주소에 황무지 같은 길만 계속 펼쳐지기 때문이다. 날씨도 마찬가지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가 하면 낮엔 해가 쨍쨍 나는가 하면 갑자기 눈이 펑펑 내려 오도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렇게 극으로 치닫는 상황이 그들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해 준다. 어쩌면 이런 이상한 도로와 이상한 사람들, 이상한 상황은 루와 비의 마음 속 어지러움과 불안, 슬픔 등을 표현한 것은 아닐지. 두 사람의 아픔이 담긴 기억을 공유할 때, 수상한 고양이의 주소를 찾아갈 때, 루의 고모할머니댁의 지표에 사용되는 모든 것이 "나무"이다. 이 나무들로 인해 루와 비는 서로의 아픈 기억을 나누고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무는 또한 자기 마음 속 지표로 아무리 어지럽고 불안하더라도 잃지 않는 자기 중심을 뜻하기도 한다. 너무나 큰, 상실과 고통을 겪었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힘.

루가 비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비. 듣고 있니?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204p)라고 말해줄 때,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던 비는 처음으로 위안을 받는다. 또한 고양이 주인이 "하지만 여기선, 모두 듣고 있어요. 길도, 구름도, 나무도... 당신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어요."...(256p)라고 말했을 때, 비는 비로서 자기 마음 안의 견고한 나무를 발견한다. 두 사람이 다시 설 수 있는 계기와 뿌리가 되는 것이다.
때론 커다란 실망과 절망, 슬픔, 고통, 상실을 겪을 때가 있다. 그런 감정에 휘둘리면 더욱 어찌할 줄 모르게 된다. 아무 일이 없었던 척 살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루와 비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상황을 바꿔보려 했다. 비록 여러 방황을 했지만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며 책은 끝이 난다. 상처입은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금은 어둡고, 그렇지만 새로운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책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틸리월든 #에프출판사 #그래픽노블 #상처 #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