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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余命 : 1개월의 신부
TBS 이브닝 파이브 엮음, 권남희 옮김 / 에스비에스프로덕션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다른 종합검사는 잘 안 받는 내가 꼬박꼬박 잊지 않고 받는 검사가 있는데, 바로 유방암 검사이다.
20대 초반에 발견한 섬유선종 때문에 그 이후로 매년 잊지 않고 종합병원으로 향한다.
작년 3월이었던가... 이미 검사를 받고 며칠 후 결과를 들으러 갔다.
종합병원들이 다들 그러하듯이 검사하는 데는 몇 개월이 걸리고 결과를 듣는데는 불과 3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날도 가벼운 마음으로 빨리 끝날 것을 기대하며 의사 선생님을 뵈었는데...
의외의 말을 들었다.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이 발견 되었으니, 다시 한 번 검사를 하잔다.
나는 그 좋지 않은 것...을 "암"으로 받아들였다.
그 순간부터 다음 결과를 듣고 다시 3개월 후에 검사하고 다시 결과를 들을 때까지... 내게는 악몽의 시간이었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앞으로 어떻게 살지?
뒤에 남겨지는 남편과 우리 이쁜 딸은... 끝도 없이 절망에 빠져들었다.
결국 그 좋지 않은 것은 물혹으로 밝혀졌지만, 6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해야 완전히 안심할 수 있다고 한다.
(종합병원의 이런 태도, 정말 싫다...)
내가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3~4개월동안 난 "암"에 대한 책을 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가능하면 밝고 맑게 살려고 노력했다.
"암"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렸을 때를 대비한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비슷한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화를 보고 느낀 것보다 내가 직접 경험했던 그 순간들은 정말 너무나 달랐다.
<<여명 1개월의 신부>>의 치에처럼 살아있다는 것과 내일이 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몸으로 직접 체험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물혹이라는 결과를 듣고 한 달, 두 달이 흐르자 나는 그 악몽같던 3~4개월을 잊고 다시 예전의 나태하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좋은 게 좋은거야, 좀 나태하게 살면 어때! 지금 즐거우면 되는거지.."같은 생각들.
<<여명 1개월의 신부>>를 읽으며 다시 정신이 퍼뜩! 드는 느낌이다.
난 분명 치에와 비슷한 감정 속에 있었는데, 나도 잘 알고있는 소중한 일상이었는데... 어느새 잊어버리고 이렇게 살고 있는걸까...
치에는 용감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무너뜨리는 병에 맞서려고 노력하며 매 순간 밝게, 긍정적으로 살았다.
24살의 어린 그녀에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그녀의 곁을 지키는 아버지, 이모, 타로... 많은 친구들... 그들이 있었기에 그녀가 마지막까지 힘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20대에 걸린 암이었기에 의사가 손 쓸 시간도 없이 빨리 진행되어버린 그녀의 병.
그녀는 살고자 했지만 그 병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동안 느낀 것들...
"내일이 온다는 건 기적이랍니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일상이 행복할 거예요."...163p
매일 병원에서 뭐 하고 있냐는 타로의 질문에 하는 그녀의 대답.
"살아 있어."(...190p)
이 말이 얼마나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우리에게 살아있다는 건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데, 다른 이에겐 처절한 싸움이 되곤 한다.
다시 한 번 내일이 오고, 살아있는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래, 난 살아있다.
매일 사랑하는 남편과 내 아이, 가족들, 친구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난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