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품절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이나 지인들이 일상에 지쳐 힘들어할때, 혹은 크나큰 시련을 당했을때 자연스럽게 술 한잔을 기울이거나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는 것으로, 혹은 그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오기 위해 노력해주는 것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보듬어 안는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기 위해서는 그토록 쉽게 내밀 수 있는 한잔의 술과 한마디의 말들, 하지만 그처럼 망설임 없이 내밀었던 술잔과 위로는 가끔 너무도 어렵고 인색해지는 순간이 있기도 하다. 바로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었을때, 나 스스로 나를 돌아보고 내 속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일, 그것만으로 위로가 될지도 모르는 일들이 바로 나를 향하는 그 순간, 가끔은 너무도 손 쉬워 보였던 그 일들이 너무도 어렵고 어색하며 인색해지곤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타인을 바라보는 사랑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아한다. 오히려 주저하고 망설이며 스스로를 더욱 외롭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왜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에는 주저하게 되는 것일까?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데 말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쓰는 대필작가.
아홉번째 집 두번재 대문에는 모든 것에 무덤덤하고 일상의 재미를 잃어버린 것 처럼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거의 매일을 라면으로 끼니를 잇고, 라면이 아니면 나가서 대충 한끼 사먹고 마는, 같은 동네에서 집과 사무실을 겸해 살아가고, 그래서 언제나 그 동네에 붙박이처럼 붙어 움직일줄 모르는, 그렇게 대충 넘겨도 시간만은 일정하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듯한, 그래서 남들처럼 인생의 무엇인가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기 보다는 그저 인생에 홀로 남져진듯한 그 남자는 이런저런 글들을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논문이나 공모작을 의뢰받지 않는는 탓에 주로 자신들의 인생을 추억하고 회고하고자 하는 자서전들을 써주는 경우가 많은 대필작가.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의 이름 속에 숨어 글을 써주지만 그들의 인생을 쓰기 위해 그들의 인생을 듣고, 그들의 인생을 기억하며 그들의 인생을 다듬는다. 제3의 작가라는 그의 영업성명처럼 제3의 눈이 되어, 혹은 3인칭 작가시점이 되어 타인의 인생을 대신 돌아봐 주는 일. 새로운 것들 창조해 이야기를 짓는 소설가가 아닌 그저 일어났던 일들만을 회고할 뿐인 그 남자의 대필작가로서의 일은, 그 남자에게 생계를 이어주는 수단임과 동시에 그 남자의 현재이기도 하다.


미래를 보았던 아내, 죽은 자를 보는 남자.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애쓰며 달려온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에게 버림받듯, 인생이라는 시간위에 내던져진 남자. 하지만 그에게는 언젠가부터 생긴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어귀에서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능력, 자신의 아내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특히나 잘 알고 있었듯, 그에게도 주어졌던 다른 이들과는 다른 그 능력은 살아 숨쉬는 자와 죽은자들에 대한 그의 특별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아내가 죽은 뒤 미래 대신 과거만을 되짚으며 살아간 그에게 현재이자 미래가 되어간다. 살아있을 때에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집념으로 죽어서도 남아있는 영혼들에게 연민을 던지고, 그들이 죽어서 가야할 곳에 가지 못하고 남아 과거를 맴보는 것도 결국은 살아 있는 자들의 욕심임을 알아가는 그의 현재는 그래서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추억만을 되짚으며 현재를 이어나가는 과거로 얼룩진 그를 과거가 아닌 현실로 돌려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자들의 인생에서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이미 죽어 존재 자체가 과거가 되어버린 영혼을 통해 현재로 돌아가는 법을 배우는 그. 그래서 그의 능력은 과거를 통해서만 현재를 살아갈 수 있었던 그에게 진짜 현재로 돌아가 미래를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빛 하나가 되어준다. 너무 희미하고 작지만 그래도 빛이었던 그만의 유일한 한줄기 빛 말이다.

과거를 딛고 현재를 살아가야 미래를 기다릴 자격이 주어진다.
글을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낸 혹은 자신의 마음과 상상을 이어낸 한권의 책을 쓰고 싶어한다고 한다. 하지만 글을 써서 삶을 이어가는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의 그는 소설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어느날 장사익이라는 인물이 묘한 계약을 제안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되 자서전이 아닌 소설로, 그리고 작가는 의뢰자가 아닌 대필자의 이름으로 출간할것을 전제로 한 계약. 뭔가 석연치 않지만 얼렁뚱땅 맺어진 계약은 얼마간의 계약금과 함께 그의 손에 맡겨지지만, 장사익은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하지 않은채 망자가 되어버린다.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계약. 잊어도 무방한 그와의 약속은 끈질기게 그의 주변에 남고, 그는 그의 인생을 되짚으며 자연스레 자신의 과거도 되짚게 된다. 드러나지 않는 제3의 위치에서 타인의 인생만을 살피던 이행하지 않아도 될 약속의 주변을 맴돌며 비로소 자신의 삶에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를 보았던 그는 그렇게 조금씩 살아있는 자신의 과거를 지나 현재로 나오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정이 끝날 때 쯤 중절모를 쓴 장사익과 나누었던 계약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 본 이만이 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계약은 아마도 제3의 작가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 완료될 것이다.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에만 익숙했던 그, 그래서 그는 아마도 자신을 들여다 보는 일에는 익숙치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 보는 일을 하지 못한 그는, 그래서 자기 자신도, 타인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아내, 태인이.. 그가 그들을 잊지 못하고 길고 긴 과거 속에 자신을 담은 채 현재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은 그들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안타까움, 그리고 외로움 때문이었으리라. 자신을 들여다 보지 못했던 사람의 외로움. 그 외로움을 벗어던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누구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일이었을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이제 과거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 글을 쓸 것이다. 다른 이의 인생을 보던 건조한 눈이 아닌 충분히 자신을 사랑한 후의 햇빛을 담은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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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지> 가제본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삼한지 세트 - 전10권
김정산 지음 / 서돌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역사소설들은 각자 모두 독립적인 배경과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가지는 비슷한 분위기가 있다. 어딘지 모르게 위압적이고 살짝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역사소설만의 분위기,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역사소설들이 대작이라는 이름으로 한겹을 입고, 엄청난 분량으로 두겹을 입기 때문일것이다. 대작이라는 이름의 무게와 꽤 많은 분량의 이야기. 그리고 한 장 두 장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조금은 생소하게 맞딱드려야 하는 단어들에서 느껴지는 역사소설만의 분위기는 그래서 자칫 너무 어렵고 너무 무거운 장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한다. 그 역사소설 안에 담긴 역사적 진실과 혹이 우리가 잊었을지도 모르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거대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의미와 재미를 모두 가지다.
삼한지라는 이름의 이 열권의 책은 그런 의미에서 역사라는 이름의 무게와 재미라는 이름의 가벼움을 동시에 충족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말이다. 자칫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넘어가버렸을지 모를 우리 역사의 거대한 한덩어리를 소재로 역사적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을 동시에 주고 있기 때문이다. 10권이라는 만만치 않은 분량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와 그만큼의 의미를 담고 있어 부담스럽지 않고, 한 장 한 장의 이야기를 읽어나갈 때마다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가는 것마냥 흥미롭다는 점 또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일것이다.

오래된 삼한의 역사를 보다.
최근 삼한의 하나인 신라 후기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담아내어 큰 인기를 끌었던 ‘선덕여왕’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수 많은 이야기와 에피소드들로 국민드라마라는 칭호를 얻으며 인기를 끌었던 선덕여왕, 사실 개인적으로는 나도 그 드라마를 꽤 즐겁게 보았었고, 역사적 사실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드라마적 재미에 빠져 매주를 지켜가며 보았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선덕여왕을 즐겨 보았던 사람들이 그 드라마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드라마가 가지는 긴장감과 재미에도 그 매력점이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선덕여왕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신라, 그것도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의 삼국시대를 그린다는 바로 그 점에도 높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비교해볼때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시대, 삼한의 역사는 그래서 언제나 뿌옇고 희미했던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진실에 다가서다.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늘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사실.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너무 많은 부분이 실제 우리역사와 다르다는 바로 그 점이 삼한지에서는 많은 부분 보완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우리가 국사책을 통해 배웠던 바로 그 사실에 가까운 인물들과 배경, 그리고 역사적 이야기들이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에 부끄럽지 않게 잘 펼쳐지고 여기에 한 장한장 시간가는 줄 모르게 넘어가는 재미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더하는 것이다. 물론 선덕여왕만을 보았던 사람들에겐 다소 혼란스러움을 가져다 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욱 진실한 우리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재미있는 소설 한권을 만났다는 점에서 조금은 무심했던 삼한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진실에 가까운 역사를 만날 기회만으로 삼한지의 재미와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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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품절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에 빠지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어떤 말도, 어떤 모습도 의미가 없고, 그저 내 눈에 보이는 모습과, 내 귀에 들리는 말들만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순간들은, 그들에게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 사랑이라 불리우고, 다른 이들에게는 한번쯤 만나게 되는 바보가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그 무엇도 개의치 않는 철저한 바보가 되어도 좋은 4월의 물고기들일지도 모른다.

4월의 물고기로 채워진 세상
<4월의 물고기>라는 제목을 가진 한 권의 책. 따사로운 햇살이 하늘부터 땅까지는 모두 보듬는 그 시절을 써내려간 온화하고 밝은 빛의 이야기일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이 책은 가장 잔인하고 가장 통속적인 모습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조금은 의외의 모습을 한 책이었다. 마치 가장 아름다운 핑크빛으로 단장을 하고 사람들을 홀리는, 그러나 그 실체는 100% 아름답지 않을지도 모르는 현실의 사랑처럼 말이다.

장르는 없다.
<4월의 물고기>의 가장 큰 특징은 다소 복잡하게 섞인 장르의 혼재인 듯 하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한 비밀, 그리고 가장 아름다워야 할 기억에서 인생을 뒤흔들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이들의 만남을 통해,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장 아름답거나 혹은 잔인할 수 있는 이름으로의 치유를 그리는 듯한 연애소설로 시작했다가 그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며 사건의 시작과 진실을 뒤쫓는 추리소설의 모습으로 뒤바뀌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가장 큰 상처를 기억에서 지워버린 서인과 그 지워진 기억들을 단편적으로 끝맺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전체로 끌어와 반쪽의 삶을 살아야 했던 선우의 만남, 그래서 그들의 만남은 가장 운명적이자 가장 완벽하고 가장 필연적인 것들이라는 의미마저 가지게 된다.

순수함을 갈망하다.
서인과 선우는 언뜻 보기엔 일방적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린 시절 혼란의 시작이 선우였으며 그 인생 마지막의 혼돈까지도 선우에게 좌우되었던 서인의 삶과, 한 소녀의 인생에 끼어들어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 인생을 보상받듯 그녀를 뒤쫓던 한 남자 선우.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관계는 일방적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라기 보다는 처음부터 한 덩이였던 찢겨진 나무조각처럼 서로를 갈망하는, 혹은 갈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그들의 이야기속에 존재했던 이런 혼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사랑했던 혈육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던 선우의 잃어버린 순수와, 어린시절 지워진 기억속에 기억과 함께 잃어버린 서인의 육체적 순수. 그것은 잃어버린 선우의 동생 미우와 자신의 순수를 빼앗아갔던 선우가 아니면 절대 회복되지 않을 그들의 단 하나의 순수였기에 그들은 어쩌면 서로를 원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잃어버린 순수를 갈망했었던 것은 아닐까? 절대 성공하지 못할것 같은 나의 손에 걸려든 바보 같은 4월의 물고기들처럼 바보같은 순수함으로 서로에게 걸려든 두 사람은 그래서 운명을 깨닫고 세상을 잃어버린 바보 4월의 물골기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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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2주

[퍼시잭슨과 번개도둑]

판타지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마법이 아닐까? 아마도 해리포터 시리즈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일테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제는 판타지라고 하면 하늘을 날고 신비한 빛을 뿜어내는 마법사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판타지라는 장르를 생각하면 그 보다 먼저 우리곁에 늘 자리를 지켜왔으며 언제나 문학적인 의미와 인간의 상상력을 함께 동반하는 신화의 그 많은 이야기들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더 당연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적어도 영화라는 장르에서는 판타지의 대명사라는 자리를 살짝 빼앗겨 버린 신화이지만 이제라도 바로 이 신화들을 근거로 하여 현대적인 감각과 동화적 감성, 그리고 유쾌하고도 흥미로운 설정들이 조밀하게 배치된 영화가 나왔다. 그리고 그 영화의 첫번째 제목은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이라고 지어졌다. 


  

 퍼시잭슨과 번개도둑 역시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퍼시잭슨 시리즈라고 불리우는 원작이 있는 영화이다. 정식 제목은 퍼시잭슨과 올림포스의 신들이라는 이름의 책들이고 역시 시리즈물로 1편부터 10편까지의 완결편이 이미 출간된 상태. 원작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원작과 비교해 이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겠지만 일단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은 꽤 유쾌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판타지 영화임에는 분명한것 같다. 적재적소에 준비된 소소한 웃음거리와 유쾌한 장면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그리스 신화라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현대적인 감각과 더해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세계라는 판타지를 선사한다는 점은 분명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인듯.  

 

 게다가 잘 자라준 아역스타 로건 레먼과 한동안 영화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왕년의 007 피어스 브로스넌의 새로운 모습, 짧고 굵게 나타났다 사라진 우마서먼등의 곳곳에 숨은 일등공신들의 연기력등이 어린 주인공등로 인해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영화를 힘있게 끌어가고 있기도 하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로 기억하는 나비효과 속 그 어린 에반이 이토록 훈훈하게 자라주었다는 점에서 눈이 즐거운 영화이기도 !! 

 

나비효과 출연
로건레먼

 

퍼시잭슨 출연
로건레먼 

 

 [울프맨]  

한동안 일주일에 한편 정도 저 영화는 보고 말리라 다짐하게 했던 영화들이 개봉했던 것과는 다르게 설 연휴를 두고 한주간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스케일면에서 기대를 충분히 끌어모았던 영화들이 개봉을 하기 시작했다 그 처음은 방학이 마무리 되고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에 아이들의 아쉬움을 달래줄 판타지 영화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이었다면 그 다음은 아마도 신화라기 보다는 전설에 가까운 소재를 충격적인 영상과 음습한 공포로 담아낸 울프맨이 아니었을까? 

 

퍼시잭슨이 그리스 신화라는 문화와 문명의 기원이 되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면 울프맨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에서 전해졌을 법한 전설, 늑대인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이미 늑대인간이라는 기존의 원작 영화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슷한듯 다른점을 지닌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작이나 그 이야기의 시작점에 앞서 울프맨을 기대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기대를 불러 일으켰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출연진이 아니었을까? 

 

베네치오 델 토로

 

에밀리 브런트

 

안소니 홉킨스

 

유주얼 서스팩트라는 반전 영화의 대명사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한 베네치오 델 토로부터 그 필모그라피를 모두 댈 수도 없을 만큼 방대한 작품과 수 없이 많은 수상경력으로 대변되는 안소니 홉킨스 그리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통해 얄미운 직장상사 역을 훌륭하게 해낸 에밀리 브런트까지 한 눈에 보기에도 그 연기가 기대되는 걸출한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이상의 것들을 기대하게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관람 직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은 이들이 그토록 대단한 배우이기 때문에 더욱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기도하다. 영화의 대부분이 늑대인간의 변신과정이나 영화의 주를 이루는 전투(?)씬의 표현이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정작 배우들의 이름으로 기대하게 했던 연기력부분에서는 다소 아쉬운 느낌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듯하다. 물론 인간에서 늑대로의 변신과정이나 화려한듯 충분히 충격적인 싸움씬등에서는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채울 수 있겠으나 지나치게 순간의 장면에 집중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느껴지는 스토리라인은 안소니 홉킨스나 베네치오 델 토로의 연기력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관객들에게는 2%부족한 부분임에는 분명한듯 한 영화.
 

[공자 - 춘추전국시대]  

요즘은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스케일이라는 단어를 대변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상 기술과 테크닉을 제외한 진정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중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수많은 사람들로 꽈악 채워진 화면을 대면할때면 그것이 그래픽이라고 할지라도 중국이라는 배경이 실사로 만들어주는 듯한 느낌은 그 길고 긴 역사와 광활한 영토를 가진 중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 아닐까?

  

 

공자 - 춘추전국시대는 서양의 그 어떤 영웅보다도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의 성인 공자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올수 있는 요소를 갖춘 영화이다. 여기에 주윤발이라는 걸출한 배우와 최근 화피라는 영화로 우리게에 조금 더 친숙해진 여배우 저우쉰등의 배역등이 더해지면 중국스타일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탄생했다. 
 

 

주윤발

 

저우쉰

 

공자 - 춘추전국시대의 가장 큰 매력점은 공자라는 우리에게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역사적 인물 공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한 국가의 지혜의 대명사를 뛰어넘어 역사를 대변하는 사상가로서의 공자의 위치에 익숙한 우리에게, 공자란 인물은 한적한 산속 어딘가에 정자 하나를 짓고 책장을 넘기는 모습이 익숙한 인물이었기에 전장의 지략가로서 카리스마 넘치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지닌 영화속 공자는 어딘지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생소한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과 영화상 필요한 허구를 적절히 섞어 만든 팩션에 가깝다는 점을 감안해야하겠지만 이러한 설정 때문에 역사적으로 의의를 지니는 공자의 진짜 모습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또 하나의 공자가 만들어졌다는 점은 영화를 보기전과 후에 꼭 한번 되새김해야할 부분이 된 듯한 느낌도 받는다. 작년과 재작년즈음에 개봉했던 적벽대전 두편의 영화처럼 거대한 물량공세가 이루어진 스케일 큰 영상과 장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매력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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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품절


사춘기 시절을 표현할때, 종종 낙엽만 굴러가도 웃던 시절이라는 표현을 쓸 때가 있다. 굴러가는 낙엽만 보아도 즐거웠던 사춘기 시절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굴러가는 낙엽에서 무엇을 발견했길래 그 시절에는 그 작고 사소한 모습만을 보고도 친구들과 함께 박장대소를 하며 웃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건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그 시절 굴러가는 낙엽에도 이름을 붙여주고, 이야기를 더해가며 의미를 만들어 주었던 바로 그 순수하거나 진지했던 작지만 소중했던 사소함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조금은 무덤덤해진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다.
<사소한 발견>은 바로 그 굴러가는 낙엽에서도 의미를 찾고 웃음을 찾았던 그래서 박장대소하며 웃었던 소녀시절의 풍부한 감성과 섬세함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아주 작은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발견하는 의미들, 혹시 잊어버렸거나 찾으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바로 그 이야기들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는 지극히 사소하지만 공감이 되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어쩌면 너무나 사소해서 꾸밀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를 일상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 속에 담긴 당신만의 사연을 담는 법을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책상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탁상시계, 내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전화기, 그리고 누구나 책상서랍 한 쪽 구석에 하나씩은 쳐박아 두었을것만 같은 낡은 필름 한통, 사소한 발견은 그렇게 모두가 가지고 있고, 그래서 아무 의미도 없을지 모르는 것들에서 자신의 추억을 꺼내고, 일상을 발견하고, 사람들 간의 이야기들을 끄집어 낸다. 무심코 스쳐지나갔다면 아무것도 아닐 사소한것들, 그들에게 하나씩 이름을 붙이고 추억의 사연들을 매달아놓는 작업을 통해 사소한 발견이 기억의 발견이며, 일상의 창조이자, 자신의 인생을 말하는 모든 그림임을 보여주기에 사소한 발견 그 자체가 사소하지 않는 대단한 발견으로서 탈바꿈하는 이야기. 그리고 당신 역시 그렇게 일상에서 모든 것들의 의미를 발견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살며시 제안하는 책. 사소한 발견은 그래서 낡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사진한장처럼 흐리고 매력적이다.

모든 것의 의미가 나의 의미가 될 것이다.
<사소한 발견>이라는 제목이 지어진 이 한권의 책은 사실, 한 사람의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관련한 사진과 함께 엮어낸 작은 사진집 겸 에세이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모든 것들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작가의 사소한 감성과 함께 내가 잊고 있었던 나의 기억을 짧은 토막이나마 떠올리게 하는 정말 사소한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나의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사소한 발견>을 통해 나만의 사소한 발견들이 나만의 특별한 색을 입고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이제라도 사소한 발견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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