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품절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이나 지인들이 일상에 지쳐 힘들어할때, 혹은 크나큰 시련을 당했을때 자연스럽게 술 한잔을 기울이거나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는 것으로, 혹은 그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오기 위해 노력해주는 것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보듬어 안는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기 위해서는 그토록 쉽게 내밀 수 있는 한잔의 술과 한마디의 말들, 하지만 그처럼 망설임 없이 내밀었던 술잔과 위로는 가끔 너무도 어렵고 인색해지는 순간이 있기도 하다. 바로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었을때, 나 스스로 나를 돌아보고 내 속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일, 그것만으로 위로가 될지도 모르는 일들이 바로 나를 향하는 그 순간, 가끔은 너무도 손 쉬워 보였던 그 일들이 너무도 어렵고 어색하며 인색해지곤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타인을 바라보는 사랑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아한다. 오히려 주저하고 망설이며 스스로를 더욱 외롭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왜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에는 주저하게 되는 것일까?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데 말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쓰는 대필작가.
아홉번째 집 두번재 대문에는 모든 것에 무덤덤하고 일상의 재미를 잃어버린 것 처럼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거의 매일을 라면으로 끼니를 잇고, 라면이 아니면 나가서 대충 한끼 사먹고 마는, 같은 동네에서 집과 사무실을 겸해 살아가고, 그래서 언제나 그 동네에 붙박이처럼 붙어 움직일줄 모르는, 그렇게 대충 넘겨도 시간만은 일정하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듯한, 그래서 남들처럼 인생의 무엇인가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기 보다는 그저 인생에 홀로 남져진듯한 그 남자는 이런저런 글들을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논문이나 공모작을 의뢰받지 않는는 탓에 주로 자신들의 인생을 추억하고 회고하고자 하는 자서전들을 써주는 경우가 많은 대필작가.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의 이름 속에 숨어 글을 써주지만 그들의 인생을 쓰기 위해 그들의 인생을 듣고, 그들의 인생을 기억하며 그들의 인생을 다듬는다. 제3의 작가라는 그의 영업성명처럼 제3의 눈이 되어, 혹은 3인칭 작가시점이 되어 타인의 인생을 대신 돌아봐 주는 일. 새로운 것들 창조해 이야기를 짓는 소설가가 아닌 그저 일어났던 일들만을 회고할 뿐인 그 남자의 대필작가로서의 일은, 그 남자에게 생계를 이어주는 수단임과 동시에 그 남자의 현재이기도 하다.


미래를 보았던 아내, 죽은 자를 보는 남자.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애쓰며 달려온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에게 버림받듯, 인생이라는 시간위에 내던져진 남자. 하지만 그에게는 언젠가부터 생긴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어귀에서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능력, 자신의 아내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특히나 잘 알고 있었듯, 그에게도 주어졌던 다른 이들과는 다른 그 능력은 살아 숨쉬는 자와 죽은자들에 대한 그의 특별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아내가 죽은 뒤 미래 대신 과거만을 되짚으며 살아간 그에게 현재이자 미래가 되어간다. 살아있을 때에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집념으로 죽어서도 남아있는 영혼들에게 연민을 던지고, 그들이 죽어서 가야할 곳에 가지 못하고 남아 과거를 맴보는 것도 결국은 살아 있는 자들의 욕심임을 알아가는 그의 현재는 그래서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추억만을 되짚으며 현재를 이어나가는 과거로 얼룩진 그를 과거가 아닌 현실로 돌려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자들의 인생에서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이미 죽어 존재 자체가 과거가 되어버린 영혼을 통해 현재로 돌아가는 법을 배우는 그. 그래서 그의 능력은 과거를 통해서만 현재를 살아갈 수 있었던 그에게 진짜 현재로 돌아가 미래를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빛 하나가 되어준다. 너무 희미하고 작지만 그래도 빛이었던 그만의 유일한 한줄기 빛 말이다.

과거를 딛고 현재를 살아가야 미래를 기다릴 자격이 주어진다.
글을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낸 혹은 자신의 마음과 상상을 이어낸 한권의 책을 쓰고 싶어한다고 한다. 하지만 글을 써서 삶을 이어가는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의 그는 소설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어느날 장사익이라는 인물이 묘한 계약을 제안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되 자서전이 아닌 소설로, 그리고 작가는 의뢰자가 아닌 대필자의 이름으로 출간할것을 전제로 한 계약. 뭔가 석연치 않지만 얼렁뚱땅 맺어진 계약은 얼마간의 계약금과 함께 그의 손에 맡겨지지만, 장사익은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하지 않은채 망자가 되어버린다.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계약. 잊어도 무방한 그와의 약속은 끈질기게 그의 주변에 남고, 그는 그의 인생을 되짚으며 자연스레 자신의 과거도 되짚게 된다. 드러나지 않는 제3의 위치에서 타인의 인생만을 살피던 이행하지 않아도 될 약속의 주변을 맴돌며 비로소 자신의 삶에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를 보았던 그는 그렇게 조금씩 살아있는 자신의 과거를 지나 현재로 나오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정이 끝날 때 쯤 중절모를 쓴 장사익과 나누었던 계약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 본 이만이 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계약은 아마도 제3의 작가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 완료될 것이다.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에만 익숙했던 그, 그래서 그는 아마도 자신을 들여다 보는 일에는 익숙치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 보는 일을 하지 못한 그는, 그래서 자기 자신도, 타인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아내, 태인이.. 그가 그들을 잊지 못하고 길고 긴 과거 속에 자신을 담은 채 현재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은 그들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안타까움, 그리고 외로움 때문이었으리라. 자신을 들여다 보지 못했던 사람의 외로움. 그 외로움을 벗어던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누구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일이었을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이제 과거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 글을 쓸 것이다. 다른 이의 인생을 보던 건조한 눈이 아닌 충분히 자신을 사랑한 후의 햇빛을 담은 눈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