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정치와 무관하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은 없다. 신체형(몸에 가하는 형벌)은 사법의 영역이지만 정치성을 띤다. 특히 반역 사건을 조사하는 추국은 말할 것도 없다. 반역의 당위성 여부를 떠나 아무리 작은 규모의 반역이라도 그 반역 사건을 다루면서 체제 권력은 자신을 과시한다. 중죄를 처벌하는 데 왕권의 행사는 법의 시행에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처형을 결정하든 사면 또는 감형하든 마찬가지이다. 처벌 속에는 항상 한 가지 몫, 군주의 몫이 있어야 한다. 상처받는 군주권을 회복하는 의식儀式, 그리고 본질적 불균형과 우월성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오항녕, <유성룡인가 정철인가>, 너머북스, 2015, 252쪽에서 인용.
역사책을 읽자니 나는 엉뚱하게 조선과 현재의 한국이, 그리고 선조와 박그네가 오버랩된다. 선조는 역모사건인 정여립의 난을 조사하며 정여립과 친했던 이발까지 역어 처벌한다. 그는 곤장에 맞아 죽는 장살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선조는 역모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이발의 노모(82세)와 어린 아들(8세)를 잡아와 고문을 가한다. 결국 노모와 어린 아들은 죽게 되는 데, 당시의 형법으로 이는 불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 게 되는 걸까. 결국 군주권 회복을 위해 선조가 임의로 권력을 행사한 때문이다. 그는 이 고문과 처벌을 통해 군주권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널리 알린 셈이다.
우리의 그네씨는 어떨까? 왕조시대 임금과 무엇이 다를 바 있는가? 시위대를 IS에 비유하는가 하더니 급기야 법무부장관은 법이 없는데도 복면시위하면 엄중히 처벌하겠단다. 경찰은 이 시위대를 가만두지 않겠다며 연일 엄포다. 과연 이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나를 반대하면 국민이 아닌가? 법무장관과 경철청장은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시녀인가? 반대하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처사다. 반대를 거부하는 사회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이것이 작금의 한국의 현실이다. 권력에 대한 인식이 조선시대와 전혀 달라진 바 없는 그런 현실말이다.
오늘은 왠일인지 중앙일보에서 그네씨를 칼럼에서 비판하고 있다. 미국 주간지에서도 그러고. 세상 참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