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상사 (은행나무X) - 2017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개봉열독 X시리즈
박유경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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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음산책', '북스피어', '은행나무' 세 출판사가 재미있는 기획을 했다. 각 출판사가 책을 한 권씩 포장지에 덮어서 출판사 이름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판매한 것이다. 저자도 줄거리도 비공개로 한 책(아마도 소설인 것은 분명해 보임)을 판매하는 방식은 큰 관심을 끌었고,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책의 정체를 궁금해 하며 구매하였다.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사면서 알 수 없는 책과의 우연한 만남을 구매한 것이다. 세상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나와 인연이 닿는 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만약 이런 기획이 아니었다면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무심코 지나쳐 버렸을 책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좋은 기회였다.

책들의 복면은 5월 16일에 벗겨졌는데, 마음산책은 로맹 가리의 <마법사들>, 북스피어는 필립 커의 <베를린 누아르>, 은행나무는 박유경의 <여흥상사>였다. 복면이 씌워져 있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만날 일이 없었으리라는 점에서 박유경의 한경신춘문예 수상작 <여흥상사>는 이 기획의 수혜를 톡톡히 본 책이었던 것 같다. 각각의 출판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도서에 복면을 씌울지 결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인상 수상작을 선택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소설 자체보다 소설 외부의 이벤트가 더 큰 주목을 끌면서 소설 자체의 가치는 가려지는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여흥상사>는 고등학생 시절의 끔찍한 악몽으로부터 8년이 지난 후, 공범의식과 죄책감을 가진 세 남녀가 다시 모여 '그날의 일'을 재현하는 데서 비롯되는 이야기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경계하는 데서 비롯되는 심리극이 흥미롭고, '그날의 일'이 밝혀지기까지의 전반부는 나도 모르게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문제의 '그날의 일'이 밝혀지고 난 후반부는 긴장감과 몰입감이 떨어진다. 처음에는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던 심리스릴러도, 끝나고 보면 여느 평범한 B급영화에 나왔을 법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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