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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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985년 데뷔한 이래로 다작한 작가인데, 한국에는 갈릴레오 시리즈 등의 최근 작품부터 데뷔작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식의 순서대로 번역되는 경향이 있다. 일본에서 1995년에 출간된 <천공의 벌>은 한국에서는 작년에 출간되었다.

<천공의 벌>이 최근 다시 읽힐 이유가 있다면, 이 소설이 원전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위대 자동조종 군용헬기를 원격조종으로 납치해 원전 바로 위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범인은 메일을 통해 즉시 일본 전역의 원전을 정지하지 않으면 헬기를 추락시키겠다고 협박한다. 게다가 우연히도 헬기 안에 어린아이가 실수로 들어간 채로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 전역은 충격에 빠지게 된다. 원전사고에 대해서는 체르노빌과 같은 휴먼 에러(human error)나 후쿠시마와 같은 자연재해에 대해서만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원전에 대한 테러를 시나리오로 삼고 있다.

저자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오사카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해 엔지니어로 일하다 작가로 데뷔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이과적인 요소도 많이 들어가 있는데, 원자력기술에 대해서도 소설에서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범인을 추적하는 경찰들이 원전 주변 주민들이나 원전 관계자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원전에 대한 찬성, 반대 양론을 드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복화술 인형 삼아 주장을 펼치게 만드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원전 문제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다가 소설의 분량 자체가 600페이지가 넘다보니 전체적으로 소설이 너무 루즈하다. 탐정이나 형사가 범인과의 치열한 두뇌싸움 끝에 범인을 잡는 것도 아니고, 추리소설 특유의 반전도 없다보니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는 부족한 편이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판도라>라는 원전사고를 다룬 재난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되었다. 하지만 원전사고를 엔터테인먼트로 다루는 데는 난점이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방사성 물질 유출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기 어려워 재난 스펙터클의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공의 벌>은 원전사고 그 자체보다는 헬기 납치라는 스펙터클을 통해 서스펜스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사건만으로 6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진행시키기에는 지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을 통해 원전문제를 접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수 있겠지만, 스릴러 소설 자체로는 밋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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