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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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교토에서 7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지라 교토에 대한 애착이 각별한 편이다. 교토를 다룬 여행기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라는 책이 나와서 반갑게 읽어 보았다. 교토는 일본에서 여섯 번째로 큰 대도시로 백화점, 영화관, 대형 서점 등등 있을 것은 다 있는(반대로 말하면 있을 것만 있고 없을 건 없는) 도시다. 도쿄대학의 라이벌로 알려진 교토대학을 비롯해 대학이 많은 것 역시 특징이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교토는 천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로 수백여 개의 절을 비롯한 여러 문화유산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도쿄 같은 번화하고 휘황찬란한 대도시보다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교토가 더 좋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의 저자는 "도쿄가 감각의 도시라면 교토는 정서의 도시"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교토 특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서점, 카페, 빵집, 식당, 여관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 소개된 가게들은 크기가 큰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지만 가치와 신념을 지키며 장사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실은 가이드북에 소개된 숙소나 식당, 관광지만 다니다보면 알지 못하는 교토가 이 책에 나와 있다. 나 역시 교토에 오래 살았지만, 슈퍼에서 장을 보고, 식사 역시 프랜차이즈 식당 등을 이용하다보니 이 책에 나온 곳들은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토의 전통이 빚어낸 가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교토는 전세계에서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도시고, 대학이나 회사 때문에 오는 외지인도 많은 도시지만, 천년 이상 이어져 온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처음 오는 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식당이나 가게들이다. 단골 손님의 추천이 없으면 가 볼 수 없는 곳들이 있는 것이다. 홈페이지도 없는 숙소가 있는가 하면 손님이 너무 많이 오는 게 싫어서 간판을 눈에 띄지 않게 하는 서점도 있다. 이러한 가게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목표로 하지 않고 편리함이라는 가치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직설적인 화법을 하지 않고 돌려서 말하는 것 역시 교토 사람들의 특징이다.

이러한 교토 특유의 문화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저자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교토 문화에 대한 반감도 생겼다.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하지 않고 은근히 돌려서 말하며 비꼬는 교토식 화법도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교토는 내가 좋아하는 도시지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문화는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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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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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안에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끼고 있는 터키의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고대 로마제국의 식민지 '비잔티움'으로 시작되었던 이곳은 서기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삼으면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투르크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에도 수백 년간 서아시아 일대의 가장 큰 제국의 수도로 번영을 거듭했다. 현재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로 옮겨졌지만 여전히 터키의 경제적, 문화적 중심이다.
 
그런데 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해협만은 아니다. 전통과 서양, 부유층과 빈곤층,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터키인과 소수민족(쿠르드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등). 도시와 시골. 이러한 균열들이 중층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바로 이스탄불이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마음의 낯섦>의 주인공은 이스탄불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소설 주인공 이름은 '메블루트'다. 그러나 실제로 메블루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사실은 이스탄불의 이야기이며, 메블루트는 이스탄불에게 인격을 부여한 존재라고 했다고 느껴진다.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할 때 이스탄불을, 이스탄불을 설명할 때 나 자신을 설명한다"는 저자 오르한 파묵의 말을 알고 나면, 소설의 주인공이 메블루트라는 개인인 동시에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의 낯섦>의 공간적 배경은 이스탄불이며, 시간적 배경은 열두 살 소년 메블루트가 시골에서 상경하는 1969년부터 그가 노년에 접어드는 2012년까지의 40여년간이다. 주인공 메블루트는 이스탄불 시내에서 '보자'를 파는 거리상인이다. '보자'는 소설의 중심이 되는 소재인데, 약한 알코올에 들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알코올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음주가 금지되었던 오스만투르크제국 시대에 사람들이 죄책감 없이 마시기 위해 만들어진 터키의 전통 음료인 것이다. 메블루트는 보자를 팔러 다니며 사람들이 물으면 신에게 맹세코 보자에는 알코올에 들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 무스타파는 보자와 함께 요구르트도 팔았지만, 70년대 말 이스탄불에 요구르트 유통망이 확보되면서 요구르트 장사는 접어야 했다. 보자 역시도 8, 90년대에 들어서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잊혀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평범한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의 이야기를 비극으로, 평범한 사람보다 모자란 사람의 이야기를 희극으로 분류했다. 얼굴이 약간 잘 생겼고 다른 사람들보다 순진하다는 사실 외에는 평범함 그 자체인 메블루트의 이야기는 비극도 희극도 되지 못한다. 체르노빌, 천안문, 9.11 등의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목격하지만 메블루트는 포레스트 검프가 아닌 것이다. 등신대(等身大)의 평범한 소시민 그 자체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중간중간에 등장인물들이 1인칭 시점의 서술을 하며 끼어든다. 메블루트의 아버지 무스타파, 메블루트의 사촌 쉴레이만과 코르쿠트 형제, 메블루트의 친구 페르하트, 메블루트의 아내 라이하, 라이하의 자매인 웨디하와 사미하, 메블루트의 장인인 압두르라흐만 등 주요 인물들이 1인칭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3인칭 화자가 시골에서 쉴레이만을 향해 짖는 개 이야기를 한 직후에 쉴레이만이 "사실 개들은 마을에서 나를 보고 전혀 짖지 않았다. (중략) 어쨌든 시골에서 개들이 나와 메블루트를 대하는 태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난 그저 이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58)라며 반론을 제기한다. 메블루트 주변의 여러 등장인물들이 1인칭 시점으로 참견을 하고 들지만, 메블루트만은 1인칭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3인칭 화자가 메블루트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시점의 도입은 소설 기법으로서 재미있기도 하고, 메블루트의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보완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특징적인 시점들에 숨겨진 저자의 진짜 의도를 짐작케하는 부분이 있었다. 메블루트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이스탄불 시내에는 좌파와 우파가 나뉘어 항쟁을 벌인다. 서로 상대방에게 린치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기관총 등을 들고 암살이나 테러를 벌이기도 한다. 메블루트는 어느 날은 절친한 친구인 페르하트를 따라 좌파 포스터를 붙이기도 하고, 다른 날은 사촌인 코르쿠트와 쉴레이만 형제를 따라 민족주의의 벽보를 붙이기도 한다. 메블루트 자신은 "사실 난 공산주의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좋아. 그런데 왜 신을 믿지 않지?"(156)라고 말하며 양쪽 모두에 거리감을 나타낸다. 메블루트의 아버지 역시 "어차피 가련한 보자 장수와 아들에게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을 거다. 우리는 중립이야"(151)라고 말하며 어느 쪽의 이념도 부정하는 실용적 입장을 취한다.

이 과정에서 좌파의 편에 선 페르하트와, 우파의 편에 선 코르쿤트, 쉴레이만이 각각의 관점을 1인칭 시점에서 서술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페르하트는 우파는 먼저 자신들을 공격한 원수들이라 주장하고, 코르쿠트는 좌파가 불온한 음모를 꾸미는 악당들이라고 주장한다. 좌파와 우파의 관점에서 번갈아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부분은 양자의 입장을 잘 나타낼 수 있는 한편, 독선과 오만에 빠져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가지는 이념 대립의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3인칭 서술의 중간중간에 수시로 참견하는 등장인물들의 1인칭 시점은 모든 사건들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그 해석들은 어떻게 보면 옳은 동시에 어떻게 보면 틀리기도 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82년, 군 복무를 마친 메블루트가 라이하라는 여자와 야반도주해서 결혼을 하는 것이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1969년부터 2012년까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만, 소설의 프롤로그는 메블루트가 사촌 쉴레이만의 도움으로 라이하와 도망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보다 4년 전인 1978년, 메블루트의 사촌 형 코르쿠트는 '웨디하'라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 메블루트의 아버지 무스타파는 원래 자신의 형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형제간의 공동 재산(이라고 무스타파가 주장했던) 토지를 코르쿠트의 결혼 자금으로 팔아버리자 격노한다. 무스타파는 아들 메블루트에게 코르쿠트의 결혼식에 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지만, 메블루트는 코르쿠트의 결혼식에 간다. 그 자리에서 신부 웨디하의 두 여동생 라이하, 사미하를 보게 되고 막내인 사미하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런데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것은 아닌지라 사미하의 이름이 '라이하'라고 착각한 채 엉뚱한 라이하에게 몇 년간 연애편지를 보낸다(이러한 오해의 배후에는 사미하를 짝사랑한 쉴레이만의 농간이 있었음이 나중에 드러난다.)

이 소설에는 젊은 남성이 미혼 여성에게 사랑에 빠져 여자와 함께 도망치는 에피소드가 반복적으로 나온다(메블루트와 라이하 커플을 비롯해 총 세 번 등장한다). 도주혼(逃走婚)이라고 해야 할지, 납치혼(拉致婚)이라고 해야 할지, 가출혼(家出婚)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이러한 이야기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비교적 빈번하게 문제가 되는 것 같다(문득 든 생각인데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슬람 문화권의 인권 문제로 거론되는 명예살인이 이런 맥락에서 등장하게 된다. 문란한 행위를 했다고 여겨지는 젊은 여성을 아버지나 오빠가 살해하는 행위다. 터키의 이스탄불은 이슬람 원리주의 색채가 약한 탓인지, 저자인 오르한 파묵이 서구화된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내 마음의 낯섦>에서는 명예살인의 논리가 부정된다. 딸이 두 명이나 도망친 압두르라흐만(메블루트의 장인)은 두 딸의 결혼을 사후적으로 허락할 뿐 아니라, 딸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행동한 것을 자랑스럽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쉴레이만은 짝사랑하던 사미하가 도망치자 예비 장인이었던 압두르라흐만에게 "인간은 명예를 위해서 삽니다"라고 말하며 명예살인을 암시한다. 압두르라흐만은 "다들 아는 것처럼 명예 문제라는 말은 사람들이 서로를 마음 편히 죽이기 위해 꾸며낸 핑계지(290)"라고 대답한다. 도주혼은 여성이 집안에서 스스로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해주는 결혼 상대 대신 서로 좋아하는 상대와 결혼하기 위한 자발적 행동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메블루트가 라이하(라고 착각했던 사미하)에게 쓴 연애편지에 관한 오해는 결말에 이르러 운명과 의도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메블루트의 의도는 사미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지만, 운명은 라이하와 결혼하게 되었던 것이다. 메블루트가 아닌 코르쿠트의 주례사에 나오는 다음 말은 메블루트와 라이하의 사랑을 잘 요약하고 있다. "우리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랑이 있지. 첫째는 누군가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경우지.(중략) 두 번째는 결혼한 후에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네.(169)"

한편 코르쿠트와 쉴레이만 형제는 밉상스러운 행동을 자주 한다. 쉴레이만은 사미하에 대한 짝사랑 때문에 메블루트가 라이하와 결혼하도록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미하가 자신을 버리고 페르하트와 도망치자 라이하에게 메블루트가 애초에 연애편지를 보낸 상대가 사미하였다고 폭로하기도 한다. 쉴레이만과 메블루트 사이에는 경제적 격차가 있다. 메블루트의 아버지는 형제들의 재산을 형이 가로챘다고 성토하기도 하고, 쉴레이만의 집안은 여러 사업을 통해 메블루트보다는 부유해졌다. 쉴레이만은 1인칭 독백 부분에서 "우리 가족들 중에 아직도 거리를 돌아다니며 요구르트를 파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마음이 아프다"(189)라며 메블루트에 대한 생각을 토로하기도 한다. 친구인 페르하트 역시 전기검침원 일을 하면서 메블루트보다는 경제적으로 나아졌다. "메블루트는 젊었을 때 공산주의자인 척하다 결혼해서 자본주의자가 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414)며 그에 대한 경멸을 드러낸다. 페르하트는 "꿀을 집는 사람이 손가락을 빤다는 것은 사장들도 알아"(490)라고 말하며 전기검침을 하며 뒷돈을 챙기는 일에 대해 정당화한다.

메블루트는 쉴레이만이나 페르하트의 도움을 받아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물론 보자 파는 일도 계속하면서). 그러다 21세기 들어 메블루트가 살던 무허가 판자촌이 고층 건물로 재개발되면서 메블루트는 큰 돈을 손에 넣고 아파트로 이주하게 된다. 메블루트의 이야기는 중산층의 성공신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의 낯섦>이라는 제목처럼 이 소설은 언뜻 보면 낯설게 느껴진다. 소설의 중심적인 소재가 되는 술 "보자", 판자촌 "게세콘두" 등의 고유명사들은 생전 처음 들어본 것들이고, 책에 그려진 터키 현대사와 이슬람 문화 또한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급격한 근대화와 좌우대립, 군사쿠데타 등 한국 현대사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소년 티를 벗기 시작한 메블루트와 쉴레이만이 서로의 얼굴에 콧수염이 난 것을 확인하고 포옹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쉴레이만은 메블루트에게 "하지만 넌 좌파 스타일로 콧수염을 길렀네. (중략) 모른 척하지 마. 좌익주의자들이나 가장자리를 삼각형으로 다듬는다고"(179)라며 놀린다. 콧수염도 좌파우파가 따로 있다니 웃기면서도 슬프다.

이 소설은 가장 터키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터키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의 독자들 또한 공감할 수 있는 삶에 대한 보편적 고찰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반전(反轉)된 거울상처럼 또 하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수십년간 "찹싸아아알떠어어억"을 외치며 서울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또다른 메블루트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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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새해에 여러 계획이 있었지만 실제로 성공한 일은 거의 없다. 알라딘서재에서 12개월 동안 10권씩 추천도서를 선정했던 것은 그나마 올해에 있었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올해 읽은 책들 중에서 좋았던 책 10권을 골라 보았다.(이하 책들의 순서는 랭킹이 아니다.)

 

1.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 유벌 레빈(조미현)

 

 

프랑스혁명에 대해 영국과 미국의 사상가였던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은 각기 다른 입장에서 해석을 내렸다. 이후 200여년간 이들의 사상은 각각 보수와 진보를 형성하도록 발전해왔다. 잘 모르고 있던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2. <분열된 제국> 콜린 우다드(정유진)

 

 

미국이 11개의 문화권으로 분열되어 있었으며, 독립부터 현재까지의 미국사는 이들 문화권의 동맹과 각축을 통해 해설할 수 있다는 대담한 주장을 내놓은 책이다. 미국의 정치와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3.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 리처드 솅크먼(강순이)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지만, 안타깝게도 유권자들이 항상 바람직한 투표를 하는 것은 아니다. 투표할 때마다 유권자들이 왜 어떻게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미국의 사례에 대한 책이지만 한국에서도 충분히 통용되는 내용이다.

 

4. <낙엽이 지기 전에> 김정섭

 

 

종전 100주년을 맞이하는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 과정을 분석한 책이다. 제1차세계대전은 제2차세계대전처럼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전쟁이 아닌 각국 지도자들의 오판과 무능으로 인해 시작된 전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제1차세계대전의 교훈을 통해 전쟁과 평화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5.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최근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현상 중 하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이 책은 서촌, 종로, 한남동, 창신동 등 서울의 여러 동네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울이 고향인 나도 몰랐던 발전과 개발의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6. <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이난아)

 

<내 이름은 빨강> 등으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최신작이다. 이스탄불 시내에서 거리 장사를 하는 메블루트라는 인물을 통해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터키 현대사를 그려내고 있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고 극적인 사건은 별로 없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빠져들게 된다. 

 

7. <화재감시원> 코니 윌리스(최용준, 최세진, 정준호, 김세경)

 

 

 

SF작가 코니 윌리스의 단편소설집이다. 독특한 세계관을 짧고 위트있게 표현한 <리알토에서>, 역사에 대한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화재감시원>, 유쾌하고 통쾌한 <내부 소행> 등 수록작들이 모두 수작이라 만족스럽다.

 

8. <여수의 사랑> 한강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으로 화제가 된 한강 작가가 90년대 전반에 썼던 단편소설들을 모은 책이다. 읽으면서 지금과는 많이 다른 90년대 전반 한국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다우면서도 여운을 남기며 인상적이다.

 

9.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최세희)

 

1960년대의 풋풋한 첫사랑을 기억하는 남자와 그에 대한 악몽을 가진 여자가 수십년 후 노인이 되어 만난다는 소설. 구성이나 문장도 좋지만, 영국 사회의 변화에 대해 느낄 수 있게 해 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결말이 인상적이다.

 

10. <남한산성> 김훈

 

 

<남한산성>은 올해 100쇄를 찍었다고 하고 영화화되기도 한 소설이다. 김훈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이 소설이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잘 쓰여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비극적 역사 속의 인간에 대해서 잘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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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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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작으로 유명한 <연인>은 저자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살고 있던 10대 소녀 주인공이 돈많은 중국인 남자를 만나 연인이 된다는 스토리다. 쉽게 접할 수 없던 1930년대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주인공 소녀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백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은 가난하고, 히스테릭한 어머니와 폭력적인 큰오빠에게 애증을 느낀다. 그녀가 연인이 되는 중국인 남자는 화교라고 무시받지만 돈은 많다. 그래서 주인공의 가족들은 유색인종과의 연애를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용인하게 된다. 인종적 위계와 경제적 지위가 뒤바뀌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인종과 빈부, 나이의 차이 때문에 두 남녀는 여러 편견에 시달린다.

가족과의 갈등을 겪고 중국인 남자와의 연애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던 주인공은 프랑스로 귀국한다. 언뜻 보기에 백인과 현지인의 사랑을 그린 <미스 사이공>이나 <나비부인>에서 성별이 역전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남자는 베트남인이나 캄보디아인 같은 현지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다. 중국인은 프랑스 식민지에서 현지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한 수혜자로 그려진다. 성과 사랑, 인종주의와 식민지주의, 시대와 개인, 가족 등의 소재들이 복합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소설 기법 상의 특징은 동일한 주인공을 지칭할 때 '나'와 '그녀'라는 1인칭과 3인칭이 혼용되고 있으며, 시제 또한 현재 시제(~한다)와 과거 시제(~했다)가 혼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를 통해 소설 속에 그려지는 사랑이 과거에 있었던 사건임과 동시에 현재에도 변함없이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려 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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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책 읽기 - 대통령에게 권하고 시민이 함께 읽는 책 읽기 프로젝트
이진우.김상욱.김윤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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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파이 이야기>의 작가인 캐나다의 얀 마텔이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에게 추천한 책들을 모은 책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를 재미있게 읽었다.

최근에 한국의 지식인 26명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을 권하는 <대통령의 책 읽기>라는 책이 나왔다. 문학작품들로만 이루어졌던(논픽션도 소수 포함한)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와 달리 문학 작품은 거의 없다. 일단 분류를 해 보자면 동서고금의 명군들이 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정조치세어록>, <만델라 자서전> 등이 눈에 띈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맹자강설>, <징비록>,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등도 리더십과 정치에 대한 고전들이다.

나머지는 중요한 현안들에 대한 책들이 많다. 여성 문제를 다룬 <아내 가뭄>과 <82년생 김지영>, 경제 문제를 다룬 <성장을 넘어서>, <긴축>, <시민권과 복지국가>, 빈곤 문제에 대한 책 <사당동 더하기 25>, 식품 문제에 대한 책 <식품정치>, 대학 문제에 대한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등이다.

정치사회적 현안들과는 거리가 있는, 순수학문적 책도 있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 <사피엔스>, <삶과 온생명>은 과학의 관점에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과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인문학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방법을 권하고 있다.

모두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이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과연 이 책들을 읽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겸비해야 한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이 유명하지만, 대통령은 머리와 손, 발을 두루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러고 보니 "머리는 빌려 쓰면 된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말도 생각난다). 아무쪼록 문재인 대통령, 혹은 장래에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정치와 사회, 인간에 대한 폭넓으면서도 깊이있는 시각을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나라면 대통령에게 어떤 책을 추천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책에 거론되지 않은 책 중에서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떠올렸다. 왜 어떤 국가는 성공하고 어떤 국가는 실패하는가에 대해서 제도의 관점에서 다룬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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