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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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는 G8 국가들 가운데 하나이며, 한국에서 이민이나 유학을 가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캐나다의 정치나 문화에 대해서는 생각나는 점이 거의 없다. 물론 지난 해 쥐스탱 트뤼도가 최연소 총리로 취임하면서 전세계에서 캐나다 총리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그 직전에 10년간 총리를 지낸 사람이 스티븐 하퍼라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문학 역시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와 제인 오스틴부터 시작해 나사니엘 호손, 에드거 앨런 포,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를 거쳐 레이먼드 카버와 토니 모리슨까지 수많은 영국, 미국, 아일랜드 작가들이 등장하는 영어권 문학사에서 캐나다 작가들은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짤막하게나마 언급되는 정도다. 앨리스 먼로가 201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캐나다 문학에 대한 관심 또한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과문하게도 호주나 뉴질랜드 작가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른다. 인도, 나이지리아, 남아공,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의 작가들은 영어권 문학의 거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말이다.)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는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 님께,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101통의 편지가 수록된 책이다. 101통의 편지를 쓴(그 중 몇 편은 친구들이 대신 써 줬지만) 얀 마텔은 <파이 이야기>로 영어권 문학상의 최고봉인 맨 부커상을 수상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다. 2007년 4월 16일,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내며 동봉하기 시작된 편지는 2주에 한 번씩 계속되다가 2011년 2월 28일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편지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그리고 약 4년간 얀 마텔은 스티븐 하퍼의 보좌관이 보낸 형식적인 답장 일곱 통만을 받았다고 한다. 

세상에 서평집이나 독서에세이는 많지만, 캐나다 수상에게 추천하는 책들을 모은 책은 이 책밖에 없을 것이다. 얀 마텔은 수상이 라틴아메리카를 순방할 때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을, 그리스 위기가 불거졌을 때는 사포의 시를 보낸다. 캐나다 원주민에 대한 책, 퀘백 사람이 쓴 책, 환경문제나 테러에 대한 책 등등 캐나다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책들을 추천하기도 한다. 캐나다 문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마텔은 특히 캐나다 작가들이 쓴 책들을 다수 추천한다. 물론 러시아, 스웨덴,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체코 등 다양한 작가들의 책 또한 추천한다. 캐나다의 정치, 사회, 문학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마텔이 스티븐 하퍼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때는 예술에 대한 예산이 삭감되었을 때다. 그는 "사천오백만 달러로 국민의 문화적 표현보다, 또 국민의 정체성보다 더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살 수 있습니까?"(229)라고 말한다. 그 다음 편지에서는 수상이 읽어야 할 독서 리스트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얀 마텔은 왜 수상에게 백여 권의 책들을 보냈을까? 한국어판 서문을 대신하여 그는 당시 취임한지 얼마 안 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대통령님이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올라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언하자면, 소설이나 시집 혹은 희곡을 항상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놓아두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중략) 독서하는 시간을 통해 대통령님은 긴장을 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금은 뒤로 물러나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중략) 그렇기에 독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픽션을 읽으십시오.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중략)
스티븐 하퍼 수상은 절대 문학 작품을 읽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퍼 수상은 똑똑하지만, 재미는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마음을 열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위험을 멀리하고 편협한 생각의 보호막 아래 자리잡는 사람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스티븐 하퍼 수상은 대통령님은 결코 본받아서는 안 될 정치인입니다.(중략)
저는 대통령님께 책을 읽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는 캐나다 수상보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미국 대통령을 본받아야 할 귀감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할 때 대통령님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14,15) 

여기서 저자가 101통의 편지를 쓴 이유가 드러난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라는 것이다. 시인을 추방하고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고 했던 플라톤이 들었다면 기겁할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는 일종의 문학 만능주의적 관점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더 나은 인격을 도야하고,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대체로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기분전환 삼아 문학 작품을 읽어서 나쁜 일은 없으리라. 하지만 캐나다의 수상이 해야 할 일들 중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는 것이 우선순위의 상위에 있어야 할까? 저자의 믿음처럼 문학은 정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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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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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이 순전히 미국과 독일의 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독소전쟁이 발발하고, 연합군이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있기까지 유럽전선에서 독일에 맞서 지상전을 수행한 것은 소련이었다. 그때까지 미국은 진주만 이후 태평양전선에서 일본을 상대하고 있었고, 영국은 독일의 공습에 시달리며 버티고 있었다. 1945년 5월,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유럽전선의 전쟁을 종결시킨 것도 소련군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교전국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나라는 2천만 명이 사망한 소련이었다. 독일이 학살한 유럽의 유대인은 폴란드에 이어 소련의 유대인이 두 번째로 많았다.

이때 소련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자원하여 의무병, 통신병, 저격수, 전차병 등으로 참전하였다. 201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시(구소련)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1980년대에 여성 참전 용사들의 회고를 인터뷰하여 모은 책이다.

인터뷰들을 읽으며 여성들이 겪은 전쟁은 적어도 네 가지 층위(層位)의 전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소련) 국민으로서 경험한 전쟁
2. 개인으로서 경험한 전쟁
3. 여성으로서 경험한 전쟁
4. 인간으로서 경험한 전쟁

책이 처음 출판된 1980년대에 일반적이었던 시각은 1의 소련 국민으로서의 서사였다. 여기서 "대조국전쟁(제2차세계대전을 소련에서 부르는 말)"은 침략자 나치 독일에 소련이 저항하여 승리한 영광스러운 전쟁으로 기억되었다. 전체주의 국가였던 소련이 이러한 공식적인 서사를 독점적으로 유포시켰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 참전자들의 이야기는 잊혀지고 지워졌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그러한 소련의 국가주의적 담론을 해체하고 2와 3으로 분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실제로 전쟁의 참혹함을 담담하게 회고한 책의 일부 내용은 당시 소련의 검열 당국에서 문제시되어 삭제되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지금이야 영화 <플래툰>부터 <덩케르크>까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발한 소설, 영화, 수기 등이 범람하고 있어 새로울 것이 없지만, 1980년대 소련에서는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4의 인간으로서 경험한 전쟁은 어떨까? 인터넷 일각에서는 이 책에 대한 러시아문학 연구자 이현우의 추천사 중 다음 부분이 문제가 되어 비판을 당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렉시예비치와 함께 이렇게도 말해야 한다.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 추천사에 대한 비판은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목에 담긴 여성의 문제를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1980년대 소련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1과 2, 3의 대립이었다면, 오늘날 한국에서는 3과 4의 대립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남성의 전쟁과 여성의 전쟁은 다른가? 당연히 다르다. 이 책에서는 전장에서 여자라고 차별을 받거나 전쟁이 끝나고 결혼을 기피당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시대와 국경, 성별을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전쟁의 양상이 담겨 있다. 애국심에 불타 올라 전쟁에 자원했다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직면해야 했던 것이, 전장에서 동료들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국가와 사회로부터 그 명예를 인정받지 못하고 쓸쓸한 여생을 살아가야 했던 것이 '제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여성'들만 겪어야 했던, 특정 시대, 특정 국가, 특정 성별의 문제였는가? 이 책을 읽으며 알렉시예비치가 만약 한국전쟁에 참전한 (남성)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했더라도 비슷한 책을 쓰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했다.

알렉시예비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자들이 전쟁에 대해 아무리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도, 기본적으로 여자들의 머릿속에는 '전쟁은 살인행위'라는 생각이 또렷이 박혀 있다. (중략)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중략)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 낳아 기른다. (29)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고 남자는 생명을 빼앗는 존재라는 저자의 이분법은 성차별적 편견에 기반해 있는 것 같다. 역사상 스스로의 의사에 반해서 억지로 전쟁에 동원되었던 이들이 어째서 여자들뿐이었겠는가? 혹은 전쟁의 광기에 물들어 인간성을 희생해야 했던 이들이 어째서 남자들뿐이었겠는가? 현재 한국에서 군에 입대하는 이들 중 절대다수는 전쟁이나 군대에 대해 혐오와 두려움을 가진 남성들이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해 자원해서 군대와 전쟁을 찾는 이들 중 상당수는 여자다. 얼마 전에도 한국의 육군사관학교 졸업생 중 1, 2, 3위를 여성 생도가 차지했다고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전쟁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남성이 여성보다 전쟁을 더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알렉시예비치의 다른 책들 <세컨드 핸드 타임>이나 <아연 소년들>을 보아도 이 사실은 명백하리라.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를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같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그 개별성과 보편성을 구성하는 요소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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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아 페미니즘
박가분 지음 / 인간사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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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게임 성우가 메갈리아 티셔츠를 인터넷에 인증했다가 교체되거나 초등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비판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도촬 영상이나 성범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 "메갈이니?"라는 소리를 듣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는 물론 최근 메갈리아와 워마드 등이 인터넷에서 벌인 패악질에 원인이 있지만, 페미니즘에 대해서 메갈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사회적으로도 부정적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 '페미니즘 포비아(phobia)'로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얼마 전에는 한 페미니스트 연예인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경솔한 발언으로 인해 페미니즘의 혐오발언 역시 문제시되고 있다. 트랜스젠더나 게이 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 워마드 등의 인터넷 페미니즘 커뮤니티에서 일반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와 같다. 이 책에서는 "남녀 간의 혐오감과 공포심을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부추기는 페미니즘"을 두고 "포비아 페미니즘"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성평등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페미니즘이 어째서 성소수자를 비롯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모욕과 조롱으로 점철되게 되었는지 상식인들에게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 책의 저자는 여성이 약자이고 피해자이고, 그래서 항상 옳고 선하다는 관념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선악이분법 위에 서 있는 사상은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우리'는 항상 옳고 '그들'은 항상 틀렸다는 기준을 세운다. 여성에 대한 혐오발언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여성들의 혐오발언에 대해서는 정당화하는 이중잣대(시쳇말로 '내로남불') 역시 아무런 반성 없이 용인되어 왔다. 페미니즘이든 파시즘이든 맑시즘이든 스스로의 도덕성을 절대시하며 반대되는 입장에 대해 편협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 교조적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이중잣대와 진영논리다. 페미니즘이라는 사상 자체는 상황에 따라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페미니즘이 절대적으로 옳고 틀릴 수 없다는 전제에 대한 확신은 페미니즘 진영에 대한 반성 자체를 가로막고 사회로부터 점점 더 고립시키고 있다. 비단 페미니즘뿐 아니라 보수도 진보도 진영의 문제에 대해 눈을 감는 대신 문제점을 직시하고 반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악이분법적인 진영논리에 빠져 서로를 비난하는 성찰하지 않는 보수, 성찰하지 않는 진보가 우리 사회에서 신뢰를 잃었듯이 성찰하지 않는 페미니즘 역시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

페미니즘 포비아와 포비아 페미니즘은 서로가 서로를 "메갈"이라고, "한남"이라고, 매도하면서 적대적 공존을 계속하고 있다. 페미니즘 포비아와 포비아 페미니즘을 넘어서 성평등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P.S. 일부 이용자들의 항의로 인해 알라딘에서 "여성/젠더" 분야에서 "사회비평/칼럼"으로 이 책의 카테고리를 변경했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다. 비판과 이견(異見)에 직면했을 때, 논리적 근거에 기반한 논쟁을 통해 한 단계 더 발전된 이념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책에 대한 논리적 반론 없이 카테고리를 변경함으로써 비판과 이견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태도는 편협하고 독선적인 페미니즘의 문제를 보는 듯하다. 저자는 "이 책이 페미니스트들에게 읽힐 것이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과의 논쟁이 성립할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는다"(18)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이야말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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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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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과작(寡作)으로 유명한 SF 작가 테드 창의 소설이다. 충격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당신 인생 이야기>가 단편집이었던 반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중편이다. 작가 중에는 단편을 잘 쓰는 작가, 장편을 잘 쓰는 작가, 둘 다 잘 쓰는 작가가 있다.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비하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인상이 옅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여 '디지언트'라고 불리는 애완용 인공지능이 출시된다. 학습도 하고 말도 할 수 있는 '디지언트'들은 가상 공간에서 아바타로 기를 수도 있고, 로봇 몸체에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어서, 발매 직후에는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이윽고 경쟁사들의 업그레이드된 제품들이 나오고, '디지언트' 자체의 매력이 싫증이 나면서 처음에 이를 개발한 회사는 폐업하고 서비스를 중단하게 된다. 소설의 3분의 1이 되기 전에 회사가 망하고, 뒷부분은 회사에서 '디지언트'를 개발하던 애나와 데릭이 소수의 사용자들과 함께 이들 애완용 인공지능을 애완동물이나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면서 생기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 수도 점점 줄어들고, 디지언트들이 살아가는 가상 공간의 이용도 제한되면서 '디지언트'들과 그 주인들에게 큰 위기가 닥치게 된다.

소설을 읽다가 검색을 해 보니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의 소니에서 개발한 애완견 로봇 '아이보(AIBO)'는 1999년에 출시되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높은 가격과 잦은 고장 등으로 인해 소니는 2006년에 생산을 중단하고 아이보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소수의 '아이보' 사용자들은 계속 '아이보'를 기르고 있지만, 고장난 부품을 교체할 수 없게 되면 그 개체의 수명 역시 다하게 되는 것이다. 생산이 중단된 세탁기나 냉장고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애완동물과 같은 애정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슬픔 역시 애완동물을 잃은 것과 비슷하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가 지금은 시들해진 게임 '포켓몬 고'도 그렇지만, 애정했던 게임이나 물건들이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더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는 안타까움을 안다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애완동물과는 다르지만, 애완 로봇이나 인공지능 역시 경우에 따라서는 비슷한 문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920년,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펙이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이후로, <아이, 로봇>이나 <블레이드러너> 등을 통해 로봇이나 인공지능들을 다룬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는, 아니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인공지능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던져왔다. 작년에 이세돌과 알파고가 바둑 대결을 펼치기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먼 미래나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여겨졌다. 이후 "4차산업혁명"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인공지능의 문제는 과학뿐 아니라 철학적, 윤리적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이 상용화되어 판매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은 더이상 "공상과학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면한 과제인 것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은 일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SF의 가능성을 보여준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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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알쓸신잡>이라는 예능 프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알고 보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준말이다. 원래는 <지대넓얕>,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원조다. 또 <닥끌오재>, '닥치고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라는 책도 나왔다. 최근의 트렌드는 잡학상식인 것 같다. 나도 잡학상식을 통해 심오한 고찰을 가능케 하는 책 10권을 뽑아 보았다.

 

1. <돈가스의 탄생> 오카다 데쓰(정순분)

 

 

 

일본은 18세기까지도 육고기를 일반적으로 먹지 않았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추진하기 시작한 이후, 음식에 관해서도 서양식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일었고, 소고기와 돼지고기 음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돈가스는 서양의 문화를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대표적 음식이다. 돈가스의 탄생에 이르는 양식의 변화를 통해 일본의 근대를 조망한 점이 재미있다.

 

2. <대한민국 치킨전> 정은정

 

 

한국은 치킨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치킨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양념치킨부터 치맥, 조류독감과 프랜차이즈 등 치킨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치킨이라는 음식을 통해 한국사회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치킨이 먹고 싶어지는 건 덤이다.

 

3.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 야콥 블루메(김희상)

 

 

역시 치킨의 단짝은 맥주인 모양이다. 맥주의 역사, 역사 속의 맥주를 주제로 맥주로 유명한 나라 독일 사람이 쓴 책이다. 치킨 한 조각에도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녹아 있듯이, 맥주 한 잔에도 다양한 정치사회적 문제들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음을 새삼 알게 된다. 

 

4. <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말이 있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을 거쳐 전래된 담배는 그리 오래된 물건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조선 후기에는 '담바고'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유포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의 조선인들은 담바고를 어떻게 접하고 대해왔을까? 조선시대 담배에 대해 쓰인 글들을 통해 당시대 생활상을 알 수 있다.

 

5. <문구의 모험> 제임스 워드(김병화)

 

 

문방사우라는 말도 있지만, 글쓰는 사람들에게 책 못지 않게 문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필, 지우개, 볼펜, 만년필부터 스테이플러와 포스트잇까지 문구들이 겪어 온 모험들이 그려진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시대이기에 새삼 빛나는 아날로그 문구들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6. <라디오체조의 탄생> 구로다 이사무(서재길)

 

 

얼마 전 예비군 훈련에서 오랜만에 국군도수체조를 했다. 한국에 국민체조가 있다면 일본에는 라디오체조가 있다. 1920년대 일본에서는 라디오체조가 유입되어 유행하였고 그 명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파시즘과 전체주의와 함께 유행한 라디오체조는 신체와 시간의 규율화하는 대표적인 매체였다. 라디오체조를 통해 일본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운 책이다.

 

7.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진중권

 

 

최근 한국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는 반려동물, 그 중에서도 고양이의 인기가 아닐까 싶다. 논객으로 유명한 진중권이 고양이 기르는 즐거움에 푹 빠지더니 고양이의 역사, 문학, 철학에 대한 책을 썼다. 고양이는 언제부터 어떻게 길러졌으며,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비롯한 문학 작품들에서 고양이들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쇼펜하우어나 데리다는 고양이를 어떻게 그렸는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책이다.

 

8.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손열음

 

 

클래식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고상하다거나 어렵다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칼럼니스트인 손열음이 쓴 이 책은 클래식에 대해 어려워하는 일반인이 입문하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클래식에 빠져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9. <김이나의 작사법> 김이나

 

 

나 역시 클래식보다는 대중가요, 특히 걸그룹 노래가 더 익숙하다. 현재 가장 유명한 작사가 김이나가 작사의 비법을 풀어놓은 책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요즘 노래는 가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선입견도 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멜로디에 맞춰 서정적인 가사를 쓰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앞서 소개한 책들이 돈가스나 치맥을 먹으며 읽어야 할 책들이라면, 이 책은 유튜브를 켜 놓고 읽어야 할 책이라 할 수 있다.

 

10.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이경혁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게임비평 책이라 반갑다. 그 옛날 오락실 게임부터 스타크래프트, 문명, 워킹데드, 심시티, 마인크래프트, LOL 등 일세를 풍미한 게임들을 다룬다. 게임 속에 나타난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는 것은 물론, 게임을 통해 정치와 사회를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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