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를 위해서 - 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개정증보판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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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70주년 되는 해에 일본의 수상이 아베 신조라는 사실은 한일관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일합방 100주년 당시 민주당의 간 나오토 수상 시절과 비교해 보아도 그 위기 정도가 두드러진다. 10년 전 당시 한국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던 고이즈미 정권과 비교해도 그렇다. 그간 한국 언론은 일본의 극우, 우경화를 과도할 정도로 우려해 왔는데, 그 예언이 이제야 실현된 셈이다.


 아무튼 당시엔 거론조차 되지 않던 '고노담화'가 긍정적으로 이야기되고 일본이 '평화헌법'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제는 한국 사회의 '상식'이 될 만큼은 한국 사회의 일본 이해도 깊어졌다. (중략)
 문제는 늘 그것이 부정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에나 겨우 그 존재가 알려진다는 점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것의 '존재'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움직임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일본 비난'에만 사용된다는 점이다. (265)

 그동안 일본의 우경화를 소리높여 경계해 왔던 양치기소년들은 이제 아베 신조라는 진짜 극우를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이러한 사태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대응에 잘못된 점은 없었을까?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의 비판이 강경할수록 일본이 무시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반발을 거세게 하는 악순환"(270)이 한국의 잘못된 비판도 일정 부분 책임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를 하나의 완결된 주체로 보고, 한국은 순전한 피해자이며, 일본은 순전한 가해자라는 도식에서만 한일관계사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뒤에 있는 개인들의 시선을 발견하려는 이 책과 저자의 접근은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이 일본의 역사왜곡교과서를 비판하지만 그 못지 않게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강조한 국정교과서를 발행해 왔고, 야스쿠니신사를 비판하면서 베트남전쟁이나 민간인 학살, 군부독재의 어둠을 은폐하는 현충원 참배를 당연시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기지촌 근처의 매춘은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용인해 왔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한국의 가해자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례로 위안부 문제의 사례를 보자. 50년 전의 한일협정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한국이 일괄적으로 맡아서 처리하기로 했다는 사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개인'에게 전달하는 일을 충분히 하지 않고 대신 경제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써버렸"(75)기 때문에 위안부나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정부로부터 보상을 받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 대신 일본 정부가 국민기금을 마련하여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엄청난 고통을 경험하고 몸과 마음에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전합니다"(79)라는 수상의 편지와 함께 보상금을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전달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정대협은 공식 사죄와 법적 보상만을 주장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국민기금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을 방해했다. 이러한 사실은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고, 일본에 대한 적개심만이 고조되고 있다.

 물론 일본정부와 우익들의 망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일본에 대한 오해와 편견, 무지가 한일 과거사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지는 않은 것일까?

 공포는 경계심과 폭력을부른다. 공포를 야기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는, 한일 양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의 아픔에 대해 좀 더 아는 일이다.(241)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냉전주의가 덧칠된 동아시아 근현대사에서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한일관계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본 이 책은 다시 한 번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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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
다니엘 튜더 지음, 송정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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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가 너무 좋아서 기대하고 고르 책이 같은 저자의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전작만큼 뛰어난 책인 것 같다.

 너무나도 당연히 이루어지는 공약 파기, 상대방 진영에 대한 인신공격과 네거티브, 언론의 기능부전, 검증되지 않은 유명인에 대한 무분별한 열광, 정책이 부재한 선거. 한국의 정치현실에 대한 이 책의 비판은 타당하다. 나 또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씁쓸한 정치현실이 얼마나 참담한지는 굳이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의 고견을 빌어오지 않아도 충분히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책의 제목처럼 익숙하고 불편한 이야기들인지라 신선한 부분은 별로 없었다.

 저자 나름대로 해결방법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한국 민주주의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정치권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우선 새정치연합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도전해야 한다"(157)라고 저자는 주장하는데, 소선거구제에서 양당제 구도를 탈피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정치적 상식 아닌가. 더구나 새정치연합이 호남이라는 텃밭을 끼고 있는 새로운 야권 정치세력의 대두를 허용할 리가 없다. 

 저자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모두를 비판하며,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은 가차없는 반면, 야권의 실패에 대해서는 갑갑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차라리 자신의 정파적 입장을 확실히 드러내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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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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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출신으로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을 지낸 저자의 이력이 주목을 끄는 책이다.


 원서가 영어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기에, 한국인으로서는 다 아는 내용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한 기우는 한국 경제발전의 역사를 다룬 첫 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과연 나는 저자보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몰랐던 한국의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일급 저널리스트가 각종 통계적 사실, 각계각층 인사들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저자의 탁월한 통찰력으로 한국을 본 걸작 저널리즘이다. 한국에 대해서 쓴 책들, 혹은 어떤 나라에 대해 쓴 책들 중에서 이 책만큼 흥미진진하면서도 심도 있게 적은 책은 읽은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최근 문제가 된 기업가 범죄자들에 대한 사면 문제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 경제에는 이 경영자들이 필요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의 경영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 한국 기업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것이 이러한 사면 복권의 이유로 흔히 거론되곤 한다. 물론 한국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러한 범죄인들이 선고된 형을 모두 살게 해 더이상 유사한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수십 년간 경제, 민주주의, 법치사회 건설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수많은 해외 투자자들은 아직까지도 그런 발전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한국에서는 기업 경영자들이 단지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공정한 법의 처벌을 받지 않는 관행에 있다. (48,49)

 이 밖에도 한국의 경제성장, 민주화의 역사, 북한문제, 케이팝과 한류, 한옥과 한식, 무속신앙과 불교, 기독교, 유교 등 종교, 소개팅과 부킹문화, 동성애와 다문화 문제까지 한국의 정체, 경제, 사회, 문화가 저자의 특유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되는데 한국인이 읽어도 재미있게 읽힌다. 단언컨대 이 책에는 한국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아니, 이 책이야말로 한국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자세히 읽어보면 좀 아니다 싶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간 경쟁구도를 역사적 기원에서 찾고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지역 간 경쟁 구도를 이끄는 두 주역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쟁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오늘날 경상도라 불리는 지역 일대에 세워진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기 전인 660년에 지금의 전라도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백제를 멸망시켰다.
 이후 백제 부흥운동이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후백제가 세워져 900년에서 936년까지 존속하기 했다. 훗날 후백제를 점령하고 고려왕조를 세운 왕건은 후백제의 영토를 '반역의 땅'으로 언명하고, 그 지역 출신 사람들에게는 관직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89)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의 근원이 민주화 이후의 정치적 지형에서 만들어진 것임이 일반적인 설명임을 생각하면, 이러한 문단은 문제가 있다.

 그런가 하면 번역이 이상한 것인지 "최민식은 <파이란>(2001)부터 <취화선>(2002)까지, 한국 영화의 걸작에 꾸준히 출연해온 사람이기도 하다"(221)라는 문장도 의심스럽다. 최민식의 필모그래피가 2002년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2001년에서 2002년 사이를 꾸준히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한 세세한 오류는 그렇다 쳐도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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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절대 당하지 마라 - 동경대 출신 일본인 교수가 쓴 통렬한 일본 비판서!
호사카 유우지 지음 / 답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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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귀화하여 독도문제 등 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는 호사카 유지 교수가 쓴 한일비교문화론이다. 이 책에서는 대체로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한국인과 일본인의 국민성의 차이로 환원시켜 분석하고 있다. 글 곳곳에 한국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느껴지지만, 상식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저자는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사망한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한국은 살신성인의 나라"라고 말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는 일본인들은 남의 사건에 말려 들어가는 것 또한 피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남을 구한다는, 상상을 초월한 선행은 일본에서는 현재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미담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이 하지 못한 용기 있는 행동을 외국인이 그것도 지난 역사에서 일본이 짓밟았던 나라의 청년이 증오의 대상이 될 만한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감행한 일은 앞으로도 일본에서 역사적 사실로 남을 것이다. (65,66)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취객을 구하려 이수현씨와 함께 철로에 뛰어들어 같이 죽은 일본인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하지 못한 용기 있는 행동"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일본의 자살 문제를 언급하며 한국인들은 좌절은 해도 자살은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인간적인 삶으로 가늠해보면 일본이 선진국이라고는 해도 한국이 훨씬 사람답게 살고 있다. (중략)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깊이 알아가면서 한국인에게서 느끼는 것은 따뜻한 정의 세계다. 자신의 나라 사람들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깊은 인정을 느껴본 일본인들은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중략)
 한국인이 일본인과 달리 좌절은 해도 자살하지 않는 건 바로 이처럼 따뜻한 정의 세계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74)

 물론 이 책이 나온 2002년 당시에는 한국의 자살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지만, 일본의 자살률을 추월해 몇년째 OECD 1위를 차지한 한국의 자살률을 생각하면 타당성이 없어 보이는 주장이다.

 그 밖에 합스부르크 왕가를 "하프스브르그"(123)라고 표기하는 오류도 보인다.

 한국과 일본의 비교문화론을 한국인과 일본인의 국민성의 차이로 환원시키는 저자의 시도는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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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 교수와 일본 우익
장팔현 지음 / 동북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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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사이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해 사실이 아닌 것까지 지어내서 무조건 비판하며, 한국과 한국인, 재일 코리안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소위 혐한책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혐한우익들의 발호는 일본사회 내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혐한책 열풍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0여년 전부터 이미 오선화, 김완섭, 구로다 가쓰히로 등의 혐한책들이 일본에서 공공연하게 팔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주로 비판하고 있는 미즈노 슌페이 역시 일본의 우익매체에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글들을 게재한 전력이 저자에 의해 폭로되었다.

 

사실 미즈노 교수 폭로 및 "추방(?)" 사건에 대해서는 인터넷 상에서 여러 논란이 있고, 실제로 미즈노 슌페이의 혐한 행각을 폭로한 저자의 글을 보면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미즈노 슌페이가 일본에서 혐한적인 글들을 쓰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책 자체는 가독성이 좋은 편이 아니다. 일단 저자의 논지 자체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애국적이다. 구성도 좋지 않아서 같은 이야기가 몇 번이고 반복된다. 이 책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일본인들은 겉과 속이 달라서 믿을 수 없고, 한국에 대한 야욕을 결코 버리지 않기 때문에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주장도 아베정권 이후의 혐한 분위기를 보면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발전적인 결론이라고는 수긍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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