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영국 출신으로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을 지낸 저자의 이력이 주목을 끄는 책이다.
원서가 영어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기에, 한국인으로서는 다 아는 내용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한 기우는 한국 경제발전의 역사를 다룬 첫 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과연 나는 저자보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몰랐던 한국의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일급 저널리스트가 각종 통계적 사실, 각계각층 인사들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저자의 탁월한 통찰력으로 한국을 본 걸작 저널리즘이다. 한국에 대해서 쓴 책들, 혹은 어떤 나라에 대해 쓴 책들 중에서 이 책만큼 흥미진진하면서도 심도 있게 적은 책은 읽은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최근 문제가 된 기업가 범죄자들에 대한 사면 문제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 경제에는 이 경영자들이 필요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의 경영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 한국 기업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것이 이러한 사면 복권의 이유로 흔히 거론되곤 한다. 물론 한국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러한 범죄인들이 선고된 형을 모두 살게 해 더이상 유사한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수십 년간 경제, 민주주의, 법치사회 건설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수많은 해외 투자자들은 아직까지도 그런 발전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한국에서는 기업 경영자들이 단지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공정한 법의 처벌을 받지 않는 관행에 있다. (48,49)
이 밖에도 한국의 경제성장, 민주화의 역사, 북한문제, 케이팝과 한류, 한옥과 한식, 무속신앙과 불교, 기독교, 유교 등 종교, 소개팅과 부킹문화, 동성애와 다문화 문제까지 한국의 정체, 경제, 사회, 문화가 저자의 특유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되는데 한국인이 읽어도 재미있게 읽힌다. 단언컨대 이 책에는 한국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아니, 이 책이야말로 한국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자세히 읽어보면 좀 아니다 싶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간 경쟁구도를 역사적 기원에서 찾고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지역 간 경쟁 구도를 이끄는 두 주역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쟁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오늘날 경상도라 불리는 지역 일대에 세워진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기 전인 660년에 지금의 전라도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백제를 멸망시켰다.
이후 백제 부흥운동이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후백제가 세워져 900년에서 936년까지 존속하기 했다. 훗날 후백제를 점령하고 고려왕조를 세운 왕건은 후백제의 영토를 '반역의 땅'으로 언명하고, 그 지역 출신 사람들에게는 관직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89)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의 근원이 민주화 이후의 정치적 지형에서 만들어진 것임이 일반적인 설명임을 생각하면, 이러한 문단은 문제가 있다.
그런가 하면 번역이 이상한 것인지 "최민식은 <파이란>(2001)부터 <취화선>(2002)까지, 한국 영화의 걸작에 꾸준히 출연해온 사람이기도 하다"(221)라는 문장도 의심스럽다. 최민식의 필모그래피가 2002년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2001년에서 2002년 사이를 꾸준히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한 세세한 오류는 그렇다 쳐도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