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블랙독 -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하는 편안한 그림책
매튜 존스톤 지음, 표진인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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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의 의욕적이고 활달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무기력과 나태함만이 나를 엄습하고 있는 요즘, 혹 우울증의 초기 증상은 아닐까? 걱정하던 차에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편안한 그림책을 접하게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울증이란 병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관심하고 무지해서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들이 자주 겪는 심리적 문제일 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 급증하게 되면서 우울증은 더이상 개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떠안아야 할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혹자는 말한다. 우울증이라는 것이 본인이 감정을 잘 다스린다고 고쳐질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눈 닿는 곳, 귀가 열려 있는 곳마다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암울하고 우울한 이야기들 뿐이지 않느냐고...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우울증에 안 걸리고 살 수 있겠느냐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우울증에 걸려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만큼 현대인들이 느끼는 우울증의 원인이 우리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과 더불어 심리적, 유전적 요인들이 가중되면서 우울증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음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라탓, 사회탓, 남탓만 하면서 자포자기 하기에는 우울증이란 병이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우울증이란 것을 말이다.

이 책의 저자 매튜 존스톤 역시 우울증에 시달리던 사람이었다. 남들에게 드러낼 수 없어 혼자서 힘들어하던 그는 우연히 목격한 911 테러의 참상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 후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4시간 만에 완성한 이 책은 개념을 잡기가 쉽지 않은 우울증의 증상과 치료 방법들을 쉬운 그림과 핵심을 파악한 간결한 글귀로 표현해 우울한 감정을 한 번이라도 느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만사가 귀찮아서 식욕은 물론 의욕마저 없다면, 남을 믿을 수 없거나 사람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면, 혹은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당신의 머리, 팔, 어깨, 등 곳곳에 블랙독 - 우울증의 애칭 - 이 들러붙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블랙독은 결코 당신에게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고 즐거울 거라는 건 편견일 뿐임을 명심하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블랙독에 시달리고 있으나 단지 감추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되고,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만 블랙독에게 질질 끌려 다니던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버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블랙독을 당당히 소개하고 필요하다면 도움도 받아 보자.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얘기하고, 더 많이 사랑하면서 천천히 블랙독과의 이별을 준비해 보는 거다.

우울증을 겪고 있거나, 겪어 봤거나, 증상이 의심된다면 이 책을 들여다보자. 우울증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울증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 실마리를 얻어 적절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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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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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남자와 여자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에 식상함을 느낄 즈음, 아지즈 네신의 탁월한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인간 이외에도 사랑을 하는 수많은 무생물이 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독수리, 물고기, 인형, 나무, 대리석 조각품, 나비 등 사랑에 아파하고, 그리움에 애가 타는 그들의 사랑, 열망, 노력,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렬함을 심어준 여섯 편의 단편 모두 나름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단편은 처음과 마지막에 실린 [빛나는 것, 그것은]과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이다.

하늘을 사랑하는 늙은 독수리와 바다를 사랑하는 물고기 익투스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닿을 수 없었기에 쉽게 물러설 수도 있었을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고고하기만 하다. 언어로 전달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들을 아름다운 날개짓과 춤사위로 표현하면서,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독수리는 더 이상 낮게 날 수 없을 정도로 낮게 날았고, 물고기는 숨을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바다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희생하며 불가능을 이겨내는 듯 하지만 결국 독수리가 숭고한 죽음을 선택한 후에야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비극적 결말을 부추긴 죽음만이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지만, 그들은 분명 행복했다.

직업이 무어냐고 묻는 질문에 ‘튤슈를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그는 4 살 때부터 튤슈를 사랑했으며, 그녀를 찾기 위해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있는 노인이다. 튤슈가 누구이며, 그녀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녀를 사랑하는지는 노인에게 있어 결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튤슈를 사랑하는 행위 자체가 그 노인이 추구하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인 것이다. 그는 그렇게 누구라도 될 수 있는 튤슈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사랑을 이야기 하자면 밤을 새고도 모자를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지만 사랑만큼 쉽고도 어려운 것도 없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채로 오로지 자신만의 입장만을 내세운 채 상대방을 판단하고 구속하려는 참나무와 인형의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도, 자신이 희생한 댓가를 바라지도 말아야 함을, 사랑은 결코 희생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는 서로를 바라보는 것 이상의 행운은 없을진데,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한 욕심을 부리며 스스로를 불행에 처하게 한 남녀 조각상의 회의적 사랑을 보며 닿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님을,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사랑에 지나친 욕심을 내어선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모자란 짧은 인생 동안 사랑에 눈멀고 사랑에 휩쓸려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유용한 교과서가 될것이다.

그러나 터키 문학을 처음 접해서일까? 다른 책들과는 달리 쉬이 읽혀지지 않아 몇 번이나 손에서 책을 놓아야 했다.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체와 단편을 좋아하는 내게 안성맞춤일 거라 생각하고 쉽사리 선택한 책이었는데, 나와는 성향이 맞지 않는 것 같다. 특별히 싫은 점이 있다기 보다 동물과 식물, 사물의 관점에서 바라본 사랑의 감정에 나 스스로 동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평소 책을 읽을 때는 그 내용에 완전 몰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나 자신을 오롯이 내던지기 마련인데, 이 책은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터키의 국민작가인 아지즈 네신의 풍부한 표현력과 세밀한 은유적 방식을 내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활자만 읽기에 급급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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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마을 이야기 1
제임스 캐넌 지음, 이경아 옮김 / 뿔(웅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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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적한 일요일 오후, 마리키타의 남자들이 사라졌다. 게릴라들의 폭력과 탄압에 마리키타를 지키던 파티뇨 경사를 포함하여 수많은 남자들이 죽거나, 끌려간 것이다. 그렇게 마리키타 여자들은 과부가 되었다.

농사를 짓는 일부터 시작해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하던 남자들의 빈 자리는 컸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오빠, 남동생을 잃은 마리키타의 여자들은 남자들을 잃은 슬픔에 울 겨를도 없이 당장에 먹을 끼니부터 걱정해야 했다. 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이 돌아오기를, 당국에서 자신들을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여자들이 늘어났고, 역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결국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길거리는 구걸을 하는 사람들과 엄청난 양의 쓰레기 더미로 뒤덮였고 전기와 전화,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폐허 마을이 되었다. 마리키타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시궁창에서도 장미는 핀다고 했던가. 파티뇨 경사의 미망인 로살바가 새로운 치안판사로 임명이 되면서 마리키타에도 희망은 보이기 시작한다. 평범한 아낙이었던 그녀는 마을을 위해 해야 할 목록을 만들고 여자들을 독려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등 마을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처음의 뜻과는 달리 도덕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하면서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녀는 탁월한 지도자임에는 분명했다.

그렇게 치안판사로서의 역할에 열심이던 로살바는 더 이상 마리키타를 방문하는 상인들도, 길 잃은 여행자들도 볼 수 없게 되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여자들은 자꾸 나이 들어 죽음과 가까워 지고 있지만, 자신들이 한 평생 일궈놓은 마을을 이끌 아이들이 없었기에 언젠가는 마을이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러한 상황을 빌미로 라파엘 신부가 시급한 출산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적극 제안한 출산장려운동 – 라파엘 신부가 15세~40세 사이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져 그들을 임신시키는 운동 – 에 대해 거절의 뜻을 밝힐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잡혀가지 않은 유일한 남자 - 여성화된 남자를 제외한 – 인 라파엘 신부가 하느님을 빙자해서 저지른 일련의 행동들은 추악하기 그지 없다. 그는 자신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무지하고 순박한 여자들에게 자신이 주님에게 맹세한 순결의 서약을 깨고 연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희생하는 이유는 순전히 마리키타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역설한다. 머리가 벗겨진 땅딸막한 신부는 그렇게 마을의 여자들을 유린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남자들이 있었다면 행해지지 않았을 낯부끄러운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곳. 하느님께 몸과 마음을 바친 신부조차도 여자들만이 존재하는 낙원과 같은 곳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 여자들 또한 그들의 욕망을 풀 곳을 찾지만 마리키타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여자들뿐이라는 것을, 자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들 또한 그녀들뿐인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들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다. 여성과 여성의 사랑이 아무렇지도 않고 굳이 남자들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인 마리키타에도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다. 그들이 그토록 남자를 원한 이유가 그것이었듯 어린 아이들의 울음 소리를 들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여자들이 정자를 생성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굳이 남자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남자들이 아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 외에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자궁이 있다면 굳이 여자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 보면 황당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되는 요즘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남자도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여자도 정자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개발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작은 마을 마리키타는 전 세계의 축소판과 다름없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죽음을 재촉하는 나라, 무력에 의한 탄압에 쉴 곳을 찾아 목적 없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나라, 남자들이 최고이고 여자들은 존중 받지 못하는 나라, 동성애자와 게이들이 사는 나라. 이 모든 나라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마리키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는 전혀 괴리감이 없다. 다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모습들이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과부마을 이야기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울컥 화가 나기도 하고,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던 이유가 다 거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숨겨놓고만 싶었던 어둡고 암울한 현실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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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유 - Everyone Says
이미나 지음 / 갤리온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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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빈번히 등장하는 식상하리만치 뻔하지만 결코 질리지 않는 유일무이한 소재거리인 한 여자와 두 남자 혹은 한 남자와 두 여자. 그들 모두 사랑에 울고, 사랑에 목매고, 사랑에 아파하고, 사랑에 절망하면서도 사랑을 버리지 못한다. 이상하리만치 사랑에 집착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내 사랑은 어떠한 모습인지 옛 기억을 떠올려본다.

첫사랑인 지금의 남편과 6년간의 연애를 끝내고 결혼식을 올린 지 어느덧 1년 5개월. 남편의 중국 파견 근무로 인해 떨어져 있던 1년을 제외하고서라도 남편과 함께 한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무수히 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기간인 것이다. 허나 남편과 8년을 함께 하면서 우리의 사랑을 가로막은 험난한 난관은 그리 많지 않았다. 힘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였기에 크게 가슴앓이를 한적은 없었던 것이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다른 이에게 향한 적도 없었고,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의 크기가 달라 고민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랑에 100% 공감 수 없었던 것은.

동희가 자신을 하찮게 대하는 성재에게 매달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동희 곁에서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그저 친구로만 남아 있는 동욱의 우유부단함에 가슴이 먹먹했다.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외면한 채 동희를 떠나 보내는 성재가 한심스러웠으며, 드러내 보일 수 없는 동욱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그 곁을 맴도는 승민이 안타까웠다. 그러한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이, 한심하게만 보이는 행동이, 지나치게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숨만 푹푹 내쉬어댈 뿐이다. 그들은 왜 쉬운 길을 놔두고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걸까? 그들은 왜 손 내밀면 순순히 닿을 거리에서 자신만을 향해 있는 한길 사랑을 버리고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사랑을 얻지 못해 안달인 걸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이해할 것도 같고, 이해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이해하기 싫은 것 같기도 한 그들의 사랑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생긴 거라면 나만 만나는 게 아니라 나도 만나주면 안돼?” 마지막 이별을 고한 성재에게 동희는 마지막 자존심마저 포기한 채 말한다. 그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그의 사랑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그의 곁에 머물 수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이 한마디만으로도 동희의 가슴 아픈 사랑에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그들을 100% 이해하지는 못했을지언정, 그네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에는 마음이 아팠고, 가슴이 저려왔다. 이렇듯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미나식 사랑 표현들은 막힘이 없고 직설적이어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특히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감성적인 독백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진부한 스토리를 차지하고서라도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들의 처음과 끝을 지켜보며 사랑과 집착의 모호한 경계선에 위태롭게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랑이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집착으로 인해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동전의 앞과 뒤처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집착을 구분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그들의 관계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엉킨 실타래처럼 보이지만 결코 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동희가 선택한 것처럼 사랑에 빠져있던 몸 하나하나의 신경 세포들을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 속으로 몰입시켜 보자. 소홀했던 가족들의 자그마한 변화에, 사랑에 빠져 등한시 했던 친구들과의 즐거운 수다에,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쏟았던 관심들을 오롯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시간을 주자. 시간이 지나면 모든 상처와 아픔이 사라진다고 했던가. 힘든 사랑에 빠져 있다면 잠시 그 사랑을 떠나 자신과의 사랑에 빠져보자.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엉켜 있던 실타래가 자연스레 풀려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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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
윌리엄 케네디 지음, 장영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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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하다 보면 쉽게 읽혀지지 않는 책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가 내게는 그러했는데 그다지 우울한 상황 전개가 아님에도 가슴이 먹먹해져 책장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고, 내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러한 삶을 영위하지 않았기에 부랑자 프랜시스가 거니는 삶이 쉽사리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물건을 훔치고, 사람을 죽이고,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자고, 일을 하지 않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살아온 인생이 너무 평탄했었나 보다.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절망과 힘겨움은 그들이 지나온 삶의 행로에서 겪은 그것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음을, 내가 얼마나 평온한 삶을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어디에든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산다. 내가 살고 있고, 내가 보고 있는 인생만이 참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인생이 있다는 것을 알려고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뉴욕 하면 떠오르는 화려함 이면에 프랜시스와 같은 부랑자들이 배회하고 있는 올버니라는 황량한 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고 있는 그들이 각기 다른 사연들을 간직한 채 도망자 혹은 부랑자의 길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묻으려고만 한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을 잘 살펴 보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놓고 사는 부랑자들의 모습에서 감추어져 있던 그들의 추악한 이면을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프랜시스 역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집과 가족과 직장이 있었던 그는 자신이 부랑자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터였다. 파업 도중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낳은 갓난아기를 실수로 떨어뜨려 죽이지만 않았던들 그는 평범한 삶을 영위했을 터였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 죄의식과 죄책감을 느끼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이제껏 살아온 자신의 삶을 버리고 도망 친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평범한 삶을 버리고 부랑자의 길을 택한 그가 불행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그의 기질이 부랑자의 삶을 사는 그에게는 오히려 더 어울린다는 점을 부인하기가 쉽지 않았던 만큼,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그에게서 불행의 단면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추운 겨울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방황하기를 수십 번, 얼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그는 자유로웠다. 어쩌다 돈이 생기게 되면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일에 더 열중했으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는 일에 관심을 쏟았다. 그가 지나온 길이 꽤 거칠고 험난했기에 그가 선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극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가 굉장히 멋져 보였음을 시인해야겠다. 젊은 날, 잘생긴 외모로 여자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는 점이 그를 더욱 멋져 보이게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의 빛나는 젊음도, 야구 선수로서의 영광스런 삶도, 가장으로서의 행복했던 시간들 모두 부랑자의 길을 걸은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찬란했던 과거의 한 단편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주정뱅이 부랑자일지는 몰라도 지나온 시간들을 후회하거나 삶을 포기하려는 인생의 낙오자는 아니다.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운명과 맞서 싸우고 있는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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