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마을 이야기 1
제임스 캐넌 지음, 이경아 옮김 / 뿔(웅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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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 한적한 일요일 오후, 마리키타의 남자들이 사라졌다. 게릴라들의 폭력과 탄압에 마리키타를 지키던 파티뇨 경사를 포함하여 수많은 남자들이 죽거나, 끌려간 것이다. 그렇게 마리키타 여자들은 과부가 되었다.

농사를 짓는 일부터 시작해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하던 남자들의 빈 자리는 컸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오빠, 남동생을 잃은 마리키타의 여자들은 남자들을 잃은 슬픔에 울 겨를도 없이 당장에 먹을 끼니부터 걱정해야 했다. 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이 돌아오기를, 당국에서 자신들을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여자들이 늘어났고, 역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결국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길거리는 구걸을 하는 사람들과 엄청난 양의 쓰레기 더미로 뒤덮였고 전기와 전화,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폐허 마을이 되었다. 마리키타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시궁창에서도 장미는 핀다고 했던가. 파티뇨 경사의 미망인 로살바가 새로운 치안판사로 임명이 되면서 마리키타에도 희망은 보이기 시작한다. 평범한 아낙이었던 그녀는 마을을 위해 해야 할 목록을 만들고 여자들을 독려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등 마을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처음의 뜻과는 달리 도덕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하면서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녀는 탁월한 지도자임에는 분명했다.

그렇게 치안판사로서의 역할에 열심이던 로살바는 더 이상 마리키타를 방문하는 상인들도, 길 잃은 여행자들도 볼 수 없게 되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여자들은 자꾸 나이 들어 죽음과 가까워 지고 있지만, 자신들이 한 평생 일궈놓은 마을을 이끌 아이들이 없었기에 언젠가는 마을이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러한 상황을 빌미로 라파엘 신부가 시급한 출산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적극 제안한 출산장려운동 – 라파엘 신부가 15세~40세 사이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져 그들을 임신시키는 운동 – 에 대해 거절의 뜻을 밝힐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잡혀가지 않은 유일한 남자 - 여성화된 남자를 제외한 – 인 라파엘 신부가 하느님을 빙자해서 저지른 일련의 행동들은 추악하기 그지 없다. 그는 자신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무지하고 순박한 여자들에게 자신이 주님에게 맹세한 순결의 서약을 깨고 연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희생하는 이유는 순전히 마리키타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역설한다. 머리가 벗겨진 땅딸막한 신부는 그렇게 마을의 여자들을 유린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남자들이 있었다면 행해지지 않았을 낯부끄러운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곳. 하느님께 몸과 마음을 바친 신부조차도 여자들만이 존재하는 낙원과 같은 곳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 여자들 또한 그들의 욕망을 풀 곳을 찾지만 마리키타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여자들뿐이라는 것을, 자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들 또한 그녀들뿐인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들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다. 여성과 여성의 사랑이 아무렇지도 않고 굳이 남자들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인 마리키타에도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다. 그들이 그토록 남자를 원한 이유가 그것이었듯 어린 아이들의 울음 소리를 들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여자들이 정자를 생성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굳이 남자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남자들이 아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 외에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자궁이 있다면 굳이 여자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 보면 황당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되는 요즘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남자도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여자도 정자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개발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작은 마을 마리키타는 전 세계의 축소판과 다름없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죽음을 재촉하는 나라, 무력에 의한 탄압에 쉴 곳을 찾아 목적 없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나라, 남자들이 최고이고 여자들은 존중 받지 못하는 나라, 동성애자와 게이들이 사는 나라. 이 모든 나라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마리키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는 전혀 괴리감이 없다. 다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모습들이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과부마을 이야기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울컥 화가 나기도 하고,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던 이유가 다 거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숨겨놓고만 싶었던 어둡고 암울한 현실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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