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야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타자, 투수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 밖에는 없지만,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랬기에 2006년에 개최된 WBC 프로야구 코리안 시리즈에 열광하던 주변 사람들을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틈에 끼고 싶어 기웃 기웃거렸을 테니 말이다. 응원에 열을 올리던 그들을 쫄래쫄래 쫓아 다니며 "타율이 뭐야? 병살타가 무슨 말인데, 이닝은 뭐고?"   쉬지도 않고 질문을 해댔다. 그런 나를 귀찮다는 쳐다보면서도 알아야 야구 용어들을 나열해가며 열심히 설명을 해준 그들의 열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만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던 나는 야구가 어려운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 헷갈려 하다 결국 야구에서 눈을 돌렸다그나마 다행인건 대신 손과 도구를 쓰는 다를 , 학창 시절 심심찮게 했던 발야구랑 비슷하구나 하는 야구에 대한 나의 견해를 간단하게나마 정의 내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내가 책에 관심을 가지게 순전히 나의 오만함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 책을 여태껏 읽지 못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으니, 남에게 뒤지는 싫어하는 데다 욕심이 유달리 많은 나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지 않나 싶다. 나의 그런 성격을 찬찬히 살펴보자면 동안 읽은 책이 헤아릴 없을 만큼 많아야 정상일 테지만 실상을 살펴보자면 다른 독서 애호가들에 비해 명함도 내밀 정도로, 그야말로 세발의 피라고 하기에도 모자랄 만큼 수는 많지 않다. 그러니 책을 선택하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내세울 없는 오만방자한 욕심쟁이의 되도 않는 자존심 때문이라고 있겠다.

 

각설하고, 이러한 연유로 책을 손에 들긴 했는데, 어랏,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야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니 당연하게도 야구 용어만 나왔다 하면 책을 뒷전으로 밀어버렸던 것이 원인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진땀 꽤나 흘렸다. ,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길... 야구 용어가 빼곡히 나와있는 야구 용어집은 절대 아니니까...

 

연일 들려오는 소식이라고는 우울과 절망이 가득한, 희망을 찾으려면 귀를 쫑긋, 눈을 희번덕거려야만 간신히 있을 정도로 빡빡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들 발버둥 치기에 여념이 없다. 쉬지 않고 달려온 만큼 즐겁고 행복한 미래가 보여야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으니 조바심이 더욱 열심일 밖에 없다. 삼미의 주인공인 ‘나’가 보여주는 또한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학창 시절에는 일류대에 들어가기 위해 전교 1 자리를 고수하고, 일류대에 입학해서는 일류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린다. 그러다 일류 기업에 입사하여 한시름 놓나 싶지만 새벽 출근, 새벽 퇴근의 반복이다. 뒤를 돌아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주구장창 달리다 고개 들어 보니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내는 떠나고, 회사에서는 정리해고를 당한 힘없는 ‘나’만 있을 뿐이다. 경기가 회복되면 제자리를 찾을 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는 ‘나’를 보며 불알친구 조성훈은 말한다. “지면 어때?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9 아웃에서 스트라이크 쓰리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4 내내 그렇게 살았지? 조금 들어온 .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그러니까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이상은 속지 .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공은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고,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는다”는 삼미의 정신을 이어 받은 조성훈은 ‘나’와 함께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팬클럽 회원이었다. 프로만이 살아남는 사회에서 만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한 삼미의 아마추어적인 정신과 실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거리였고, 같은 이유로 유년기 ‘나’의 인생에서 삼미는 수치스런 존재였다. 잠시 머문 동안 누구도 깨지 못할 수많은 기록을 세운 삼미가 해체되면서 ‘나’의 유년도 끝이 났다. 하지만 조성훈을 통해 되살아난 삼미의 느긋함이야 말로 ‘나’가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것임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조성훈과 함께 삼미의 마지막 팬클럽을 창단함과 동시에 ‘나’만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프로 야구에서 삼미는 그들만이 있는 노히트 노런의 어처구니 없는 기록, 최다 연패 기록 짜고 친다 해도 나올 없을 정도의 최하 성적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하지만 프로만이 대우 받고 살아 남는 사회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프로정신이 아닌 삼미의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아닐까?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박민규 작가 특유의 재치로 가볍게 풀어나가 읽는 내내 유쾌하고 즐거운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문장 문장 곱씹으며 쉴새 없이 웃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어찌나 아쉬운지 앞으로 넘겨 다시 읽기를 번이나 반복했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음에 다시금 속이 상했지만, 지금이라도 접하게 되어 없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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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1-06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야구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이었지만 이 작품 너무 즐겁게 보았어요. 덕분에 박민규 팬이 되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