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
윌리엄 케네디 지음, 장영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독서를 하다 보면 쉽게 읽혀지지 않는 책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가 내게는 그러했는데 그다지 우울한 상황 전개가 아님에도 가슴이 먹먹해져 책장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고, 내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러한 삶을 영위하지 않았기에 부랑자 프랜시스가 거니는 삶이 쉽사리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물건을 훔치고, 사람을 죽이고,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자고, 일을 하지 않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살아온 인생이 너무 평탄했었나 보다.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절망과 힘겨움은 그들이 지나온 삶의 행로에서 겪은 그것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음을, 내가 얼마나 평온한 삶을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어디에든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산다. 내가 살고 있고, 내가 보고 있는 인생만이 참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인생이 있다는 것을 알려고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뉴욕 하면 떠오르는 화려함 이면에 프랜시스와 같은 부랑자들이 배회하고 있는 올버니라는 황량한 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고 있는 그들이 각기 다른 사연들을 간직한 채 도망자 혹은 부랑자의 길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묻으려고만 한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을 잘 살펴 보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놓고 사는 부랑자들의 모습에서 감추어져 있던 그들의 추악한 이면을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프랜시스 역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집과 가족과 직장이 있었던 그는 자신이 부랑자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터였다. 파업 도중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낳은 갓난아기를 실수로 떨어뜨려 죽이지만 않았던들 그는 평범한 삶을 영위했을 터였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 죄의식과 죄책감을 느끼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이제껏 살아온 자신의 삶을 버리고 도망 친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평범한 삶을 버리고 부랑자의 길을 택한 그가 불행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그의 기질이 부랑자의 삶을 사는 그에게는 오히려 더 어울린다는 점을 부인하기가 쉽지 않았던 만큼,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그에게서 불행의 단면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추운 겨울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방황하기를 수십 번, 얼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그는 자유로웠다. 어쩌다 돈이 생기게 되면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일에 더 열중했으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는 일에 관심을 쏟았다. 그가 지나온 길이 꽤 거칠고 험난했기에 그가 선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극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가 굉장히 멋져 보였음을 시인해야겠다. 젊은 날, 잘생긴 외모로 여자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는 점이 그를 더욱 멋져 보이게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의 빛나는 젊음도, 야구 선수로서의 영광스런 삶도, 가장으로서의 행복했던 시간들 모두 부랑자의 길을 걸은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찬란했던 과거의 한 단편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주정뱅이 부랑자일지는 몰라도 지나온 시간들을 후회하거나 삶을 포기하려는 인생의 낙오자는 아니다.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운명과 맞서 싸우고 있는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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