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일반적인 남자와 여자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에 식상함을 느낄 즈음, 아지즈 네신의 탁월한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인간 이외에도 사랑을 하는 수많은 무생물이 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독수리, 물고기, 인형, 나무, 대리석 조각품, 나비 등 사랑에 아파하고, 그리움에 애가 타는 그들의 사랑, 열망, 노력,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렬함을 심어준 여섯 편의 단편 모두 나름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단편은 처음과 마지막에 실린 [빛나는 것, 그것은]과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이다.

하늘을 사랑하는 늙은 독수리와 바다를 사랑하는 물고기 익투스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닿을 수 없었기에 쉽게 물러설 수도 있었을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고고하기만 하다. 언어로 전달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들을 아름다운 날개짓과 춤사위로 표현하면서,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독수리는 더 이상 낮게 날 수 없을 정도로 낮게 날았고, 물고기는 숨을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바다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희생하며 불가능을 이겨내는 듯 하지만 결국 독수리가 숭고한 죽음을 선택한 후에야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비극적 결말을 부추긴 죽음만이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지만, 그들은 분명 행복했다.

직업이 무어냐고 묻는 질문에 ‘튤슈를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그는 4 살 때부터 튤슈를 사랑했으며, 그녀를 찾기 위해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있는 노인이다. 튤슈가 누구이며, 그녀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녀를 사랑하는지는 노인에게 있어 결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튤슈를 사랑하는 행위 자체가 그 노인이 추구하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인 것이다. 그는 그렇게 누구라도 될 수 있는 튤슈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사랑을 이야기 하자면 밤을 새고도 모자를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지만 사랑만큼 쉽고도 어려운 것도 없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채로 오로지 자신만의 입장만을 내세운 채 상대방을 판단하고 구속하려는 참나무와 인형의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도, 자신이 희생한 댓가를 바라지도 말아야 함을, 사랑은 결코 희생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는 서로를 바라보는 것 이상의 행운은 없을진데,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한 욕심을 부리며 스스로를 불행에 처하게 한 남녀 조각상의 회의적 사랑을 보며 닿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님을,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사랑에 지나친 욕심을 내어선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모자란 짧은 인생 동안 사랑에 눈멀고 사랑에 휩쓸려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유용한 교과서가 될것이다.

그러나 터키 문학을 처음 접해서일까? 다른 책들과는 달리 쉬이 읽혀지지 않아 몇 번이나 손에서 책을 놓아야 했다.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체와 단편을 좋아하는 내게 안성맞춤일 거라 생각하고 쉽사리 선택한 책이었는데, 나와는 성향이 맞지 않는 것 같다. 특별히 싫은 점이 있다기 보다 동물과 식물, 사물의 관점에서 바라본 사랑의 감정에 나 스스로 동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평소 책을 읽을 때는 그 내용에 완전 몰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나 자신을 오롯이 내던지기 마련인데, 이 책은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터키의 국민작가인 아지즈 네신의 풍부한 표현력과 세밀한 은유적 방식을 내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활자만 읽기에 급급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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