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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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함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달콤하지 않다는 걸 반어법으로 표현한 걸까? 아니면 정말 달달한 이야기일까? 나의 도시라면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려는 걸까? 아니면… 이렇듯 사소한 의문에 매달려 있는 나를 권신아의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색감의 그림이 유혹하며 어서 책을 펼쳐 보라 재촉한다.

오은수는 옛 애인의 결혼식 날, 피가 거꾸로 치솟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리기는 커녕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같은 날 저녁, 친구들과 옛 남자친구의 결혼을 애도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두 번째 날벼락을 맞는다. 결국 그녀는 늘 함께였던 친구의 예상치 못한 결혼 선언에 무너져 내리고야 만다. 그녀는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다. 자신의 인생에 ‘원나잇 스탠드’는 없다며 살아온 그녀였지만 파릇파릇한 24살의 청년 태오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 후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그와 연애라는 걸 시작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하지 못한다. 그래서였을거다. 맞선을 권하던 안이사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것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삶의 모태인 평범한 남자 김영수와 평범한 결혼을 위해 평범한 연애를 선택한 그녀였지만, 태오를 과감히 뿌리치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그녀는 결국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 생각하는 사회적 편견에 대항하지 못한 채 두근거림과 설레임을 느끼게 한 사랑 대신 안정적이고 평범한 미래를 선택한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진행된 그와 김영수의 결혼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세상이 정해 놓은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 안에 소속되지도 못한 채 그녀는 겉돌기만 한다. 연애와 결혼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갈팡질팡하고 있는 그녀는 우리 사회의 거친 단면을 보여준다. 오은수의 고민은 곧 나의 고민이며, 우리 모두의 고민일 수 밖에 없다. 때가 되면 학교를 가야 하고, 직장에 다녀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애를 나아야 한다. 나는 대체 그 '때'라는 것을 누가 정했으며, 왜 거기에 옭매여야 하는지 답답기만 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음을 시인한다. 그들이 사회적인 통념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살얼음을 걷고 있듯이 나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사고 방식에 완전 동의할 수는 없을 듯싶다. 하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을 때 안전하게 하자는 식의 섹스 규칙까지 세워 놓고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그녀들의 모습에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요즘의 세태에 그런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임을 부정하지는 않으니 이해하려면 못할 것도 없다. 나 역시 요즘 사람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을테다. 하지만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한 행위 자체를 당연시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이니 보수적이니 뭐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다 똑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 전반에 걸친 섹스에 관한 노골적이고 솔직한 대화는 야하다는 느낌보다 유쾌하고 발랄한 수다를 듣는 것 같이 가볍다. 하지만 정이현의 글은 전혀 가볍지 않다. 여러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상이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통념 속에서 사람들은 갈등하고 번뇌할 수 밖에 없음을,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인생은 흘러가기 마련임을 그녀는 역설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이 책도 어떠한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세상과 타협을 하든, 대항을 하든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 가는대로 인생을 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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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아드 - 에임스 목사의 마지막 편지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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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을 다녀야 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죽음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죽음이 뜻하는 수많은 의미에 대해 알게 됐고 또한 알아 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까마득한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아들에게 써 내려간 편지인 길리아드를 읽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함과 동시에 죽음에 대한 안개가 조금은 걷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른 여섯 살의 제임스 목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기보다는 평온한 모습으로 느지막이 얻은 일곱 살 난 아들에게 담담하면서도 애틋함이 묻어나는 문체로 진솔한 이야기를 건넨다. 할아버지부터 3대째 목사였던 집안의 내력, 온건한 평화주의자 아버지와 노예해방운동에 투신한 현실주의자인 할아버지간의 갈등을 통한 인종차별과 세대간의 극심한 대립, 아버지와 형의 종교적 갈등, 자신의 직업에 대한 고뇌와 갈등 등 가족간의 사랑, 갈등, 좌절과 희망의 이야기를 일기를 쓰듯 편안하게 들려준다. 그의 편지를 읽다 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부하는 교훈적이고 지루한 이야기나 아들에게 바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그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어린 아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하루 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느끼게 해주며, 또한 자신과 가족이 저지른 지난 날의 과오를 어린 아들이 다시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아들이 이 세상을 지혜롭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해 주는 아버지의 훌륭한 가르침에 그의 아들이 된 양 읽는 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줘라’ 는 말처럼 제임스 목사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며, 아들 스스로가 자신만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면서 아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탄탄한 토대를 마련해준다.

읽는 내내 마치 다른 사람의 고해성사를 듣는 듯한 엄숙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으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있는 상태라 그런지 책 읽는 속도는 상당히 더디었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다 보니 쉽게 집중할 수 없을 뿐더러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차지하고서라도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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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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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분명 편안한 소파 위에서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책을 펼쳐 들었었는데… 꿈이라도 꾸고 있는걸까? 눈앞이 온통 암흑으로 가득 차는가 싶더니 푸르른 숲이 우거진 비포장길 위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여기가 어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길 양편에는 일반 집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사람은 커녕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동안 부지런히 길을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비포장길을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무심코 쳐다본 곳에 예전에 내가 즐겨 다니던 산책로가 있다. 낯익은 곳을 발견한 나는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걸음을 옮긴다. 쿵~, 내 몸이 순간 공중에서 정지하는가 싶더니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아픈 이마를 부여잡고 두리번거렸지만 대체 어디에 부딪힌 건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투명한 유리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두려움에 그곳으로 다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한참을 걸으니 맞은 편에서 물소수레를 끈 앳된 청년과 아이 둘이 걸어온다. 낯선 길로 들어선 후 처음 보는 사람이라 두려움 대신 반가움이 인다. 저기요~ 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무안해 하는 나를 그저 스쳐 지나간다. 오기가 솟은 나는 뒤돌아 그들을 뒤쫓아가며 연신 말을 건넨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제서야 이 상황이 어렴풋이 이해 되기 시작한다.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이니, 나오키상 후보작이니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야시를 읽던 중이었다. 책을 펼쳐듬과 동시에 다른 세계로 발을 내디디게 됐나 보다. 그렇다면 이 책이 끝날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기가 힘들 것이다. 결국 주인공일게 뻔한 그들을 따라 가보기로 마음 먹는다. 줄곧 앞을 향해 걷기만 하는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청년의 이름이 렌이며 고도라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과, 길을 잃은 아이 둘을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출구를 함께 찾아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을 따라다니며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지만 괴기스럽기도 한 경험을 하고 보니 내가 원래 있던 곳이 어디인지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조차 모호해졌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할 즈음 또 다른 세상이 다가왔다. 뭔가를 사지 않으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곳, 야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는 물건도, 이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 -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약, 재능을 살 수 있는 약, 사람의 목 등 - 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 살 수도, 돈에 맞춰 선택할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든 하나 이상의 물건을 사야 하고, 자신이 산 물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무엇을 사야 할까? 늙지 않는 약? 살이 찌지 않는 약? 영원한 생명? 전부 구미를 당기는 것들뿐이라 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게다가 물건을 사기 위한 대가로 뭔가 내놓아야 하는데 내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떡한다? 아~ 아니다, 책 밖의 사람인 내가 굳이 물건을 살 필요는 없다. 이 책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돌아갈테지? 혼자 고민하고 있노라니 인간 아이를 파는 가게 앞에 서 있는 중년 남자와 어린 남녀가 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오호라,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나 보네. 그들의 흥미진진한 흥정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중년 남자가 검을 빼든다. 깜짝 놀라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순식간에 온 세상이 캄캄해진다.

다시 내가 속해 있는 세계로 돌아오니 책을 읽은건지, 꿈을 꾼건지 도저히 분간이 되지 않는다. 소름끼칠 정도의 기상 천외한 두 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놀라움과 안타까움, 거듭되는 반전에 혀를 내둘렀다. 이 작가의 처녀작이라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의 깔끔한 문체와 알찬 내용에 감탄도 절로 나왔다. 고도와 야시를 여행하는 동안 잃었던 기억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다.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해 온 상상력에 날개가 돋힌 듯 여러가지 생각들이 밀려 들어와 읽는 내내 즐거움의 비명을 질러야 했다. 호러소설이라 하기엔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사연들이 많았지만, 그러한 것도 어쩌면 호러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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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 알마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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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은 언제나 그렇듯 시끌벅적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따라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보자. 지하로 내려가는 미끄럼틀을 타고 계단 벽에 그려진 멋진 벽화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도서관이다. 도서관 입구에는 흔들 그네가 보이고 바닥 한가운데는 아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꿈을 키울 수 있는 커다란 지도 한 장이 끼워져 있다. 더 안쪽을 들여다 보면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한 골방이 있고,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만든 아늑한 방도 보인다. 고개 들어 책꽂이 위를 바라보면 큼지막한 그림책 포스터가 붙여져 있어 도서관을 한층 더 밝게 해준다. 구석 곳곳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저자의 따스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도서관이면서도 전혀 도서관답지 않은 공간을 만든 저자는 놀이가 삶인 아이들이 책도 놀면서 만날 수 있길 바랐다. 그랬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쏙 빼앗아 놓은 멋진 도서관을 만들 수 있었을 테다. 이 도서관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문화 불모지였던 용인의 작은 마을에 희망의 빛이 되었다.

책은 물론이요 아이들을 위한 놀잇거리가 많은 곳이니만큼 책을 읽으러 오는 아이보다 놀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은 당연지사. 어떤 이들은 그런 아이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중에 책을 읽지 않는 아이는 없다. 처음에는 만화책을 보기 위해, 아이들과 놀기 위해, 또는 밖에서 뛰놀다 물만 마시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지만 어느 순간 책을 펼쳐 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책에 붙여진 레이블을 보고 누가 먼저 책을 꽂는지 시합도 벌이고, 새가 나오는 책, 벌레가 나오는 책, 기차가 나오는 책 등 책 찾는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레 책과 친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놀이가 된 책에 대한 부담이나 거부감이 없어지게 되자 아이들 스스로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제멋대로 드러눕고 엎드리거나 돌아다니는 등 책 읽는 방법은 모두 제각각 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모두 한결같아 진 것이다. 또한 아이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도서관을 드나들던 엄마들도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잃었던 꿈도 다시 꾸게 되고 도우미 활동도 하면서 점차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아이에게만 국한되었던 사랑과 정성을 다른 아이들에게도 쏟으며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중에는 엄마, 아빠가 맞벌이라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 발달장애를 앓는 아이, 비행청소년 등 가슴 아픈 사연이 가득한 아이들이 많다. 그런 아이들은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주는 사람도,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줄 사람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도서관이 생기게 되면서부터는 발달장애를 앓는 아이가 박쥐가 새끼를 낳는 포유류임을 알게 되고, 책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던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졸라대기도 하고, 꿈을 잃은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니 가슴이 따뜻해지고 흐뭇한 마음이 들어 읽는 내내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읽어야 할 책을 입시에 반영하기 위해 강요에 의해 읽어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경쟁위주의 교육을 더욱 부추기는 엄마들의 극성에 아이들은 쉴 곳 마저 잃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제 그만 아이들이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통해 이웃과 어울리고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배우길 바라고,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상처받고 신음하는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격려와 위로를 받으며 세상을 헤쳐나갈 수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또한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는 꼭두각시 아이들도 책과 함께하며 자극도 받고 잠재력을 키워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자랄 힘을 타고나는데, 부모가 너무 잘 가르치려 하다 보니 오히려 그 힘을 막게 된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는 ‘책 읽기에 대한 열 가지 권리’를 선언한 적이 있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가 그것이다.

책이 아이들 삶에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면 좋겠다. 사람과 어울리는 가운데 책을 읽으면서 편안하고 즐겁게 쉼을 누리고 상상력을 펼칠 실마리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을 좋아할 권리를 누리게 되면 그 나머지, 어른들이 바라는 지식은 벌써 아이들 손 안에 다 들어 있는 셈이니까.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다 다르다는 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줄까. 우리는 등급을 나누고 편을 가르는 것 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아이들 스스로 느끼게 되길 바랐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건 다른 사람만 배려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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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과 이주홍 동화나라 빛나는 어린이 문학 5
이주홍 지음, 김동성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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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치는 곰’에 등장하는 야광귀는 한결같이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앙괭이라고도 불리는 야광귀는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는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제 발에 맞는 것을 가져 간다는 민간 신앙 속 귀신이다. 올 설에도 장난끼 가득한 얼굴을 하고 지상에 내려갈 계획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는 그들은 다른 때보다 신중해 보인다. 사람들이 야광귀들을 속이기 위해 대문에 걸어둔 체의 구멍을 세느라 성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내려갈 것인지 여러 의견들이 오갔다. 그 때,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었으니 막내 똘똘이다. 가족들의 우려와 비웃음에도 아랑곳 않고 기세등등하여 지상 나들이에 나선 똘똘이는, 어둡고 조용한 길을 왔다 갔다 하며 헤매긴 하지만 인간들이 걸어둔 체를 보고 코웃음을 칠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어둠을 뚫고 한적한 인가를 찾아 살그머니 안으로 들어간 똘똘이는 생각처럼 신발을 쉬이 찾지 못한다. 그러다 부엌 한 켠에 놓여진 북치는 곰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동한다. 곰 뒤에 달린 태엽을 돌리고 또 돌리자 북을 치기 시작하는 곰. 한참을 그 곰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며 놀고 있노라니 어느새 새벽이 밝아온다. 그제서야 허둥지둥 쫓기듯 하늘로 올라가지만 어느새 자신의 신발 한 짝이 보이지 않는다. 순진하고 귀여운 야광귀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니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솔솔 잠기는 눈을 억지로 비벼대며 열심히 옛날 이야기를 듣던 추억이 생각난다.

야광귀 이야기는 그 옛날 감칠맛 나게 고운 우리네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와 같이 포근하고 구수하다.

나뭇잎들이 생의 이별을 준비하는 가을에 어울리는 ‘은행잎 하나’는 성덕사 큰 절 옆 은행나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늦은 가을, 황금빛깔의 노란 잎들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은행잎 아이와 은행나무 엄마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가만 들어보니,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가 울먹이며 엄마에게 떼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 내년에 또 만날 수 있다는 엄마의 다정한 말에 이내 수긍한 듯 자신이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스케치북 위로 떨어진다. 아이와 함께 한 지 얼마지 않아 개구쟁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시달리고 있는 은행잎을 강한 바람이 빼앗아 달아난다. 바람아 바람아 성덕사 가자 울 엄마 날 찾아 울고 있다 은행잎이 홀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바람은 어느새 따뜻하고 편안한 엄마의 품 속으로 은행잎을 실어다 준다.

푸릇푸릇하던 은행 잎들이 하나 둘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요즘 가까운 곳에 은행 나무가 있다면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운이 좋으면 그 곳에서 엄마 은행나무와 은행잎 아이의 아기자기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체통’에 등장하는 어린 숙희는 집 앞에 있는 빨간 우체통을 바라보며 넣는 사람은 많은 데 꺼내 가는 사람은 없음에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다 저 혼자 상상한 것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땅 속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그리로 편지가 굴러간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밥 대신 쪄 준 개떡을 먹던 숙희는 문득 아버지가 생각나 기름종이에 개떡을 싸서 우체통에 넣는다. 그 후 아버지가 개떡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답장은 고사하고 자신이 보낸 개떡이 그대로 되돌아오자 실망을 금치 못한다.

숙희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우체통에 개떡을 집어 넣는 장면에서는 콧등이 시큰거려 참기가 어려웠다. 20여년 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생각나 숙희가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과 그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담백한 그림이 너무 예뻐 읽는 내내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포근함을 느꼈다. 내가 아이와 같은 순수하고 해맑은 순간은 동화를 접했을 때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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