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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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분명 편안한 소파 위에서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책을 펼쳐 들었었는데… 꿈이라도 꾸고 있는걸까? 눈앞이 온통 암흑으로 가득 차는가 싶더니 푸르른 숲이 우거진 비포장길 위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여기가 어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길 양편에는 일반 집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사람은 커녕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동안 부지런히 길을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비포장길을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무심코 쳐다본 곳에 예전에 내가 즐겨 다니던 산책로가 있다. 낯익은 곳을 발견한 나는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걸음을 옮긴다. 쿵~, 내 몸이 순간 공중에서 정지하는가 싶더니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아픈 이마를 부여잡고 두리번거렸지만 대체 어디에 부딪힌 건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투명한 유리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두려움에 그곳으로 다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한참을 걸으니 맞은 편에서 물소수레를 끈 앳된 청년과 아이 둘이 걸어온다. 낯선 길로 들어선 후 처음 보는 사람이라 두려움 대신 반가움이 인다. 저기요~ 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무안해 하는 나를 그저 스쳐 지나간다. 오기가 솟은 나는 뒤돌아 그들을 뒤쫓아가며 연신 말을 건넨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제서야 이 상황이 어렴풋이 이해 되기 시작한다.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이니, 나오키상 후보작이니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야시를 읽던 중이었다. 책을 펼쳐듬과 동시에 다른 세계로 발을 내디디게 됐나 보다. 그렇다면 이 책이 끝날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기가 힘들 것이다. 결국 주인공일게 뻔한 그들을 따라 가보기로 마음 먹는다. 줄곧 앞을 향해 걷기만 하는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청년의 이름이 렌이며 고도라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과, 길을 잃은 아이 둘을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출구를 함께 찾아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을 따라다니며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지만 괴기스럽기도 한 경험을 하고 보니 내가 원래 있던 곳이 어디인지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조차 모호해졌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할 즈음 또 다른 세상이 다가왔다. 뭔가를 사지 않으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곳, 야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는 물건도, 이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 -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약, 재능을 살 수 있는 약, 사람의 목 등 - 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 살 수도, 돈에 맞춰 선택할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든 하나 이상의 물건을 사야 하고, 자신이 산 물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무엇을 사야 할까? 늙지 않는 약? 살이 찌지 않는 약? 영원한 생명? 전부 구미를 당기는 것들뿐이라 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게다가 물건을 사기 위한 대가로 뭔가 내놓아야 하는데 내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떡한다? 아~ 아니다, 책 밖의 사람인 내가 굳이 물건을 살 필요는 없다. 이 책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돌아갈테지? 혼자 고민하고 있노라니 인간 아이를 파는 가게 앞에 서 있는 중년 남자와 어린 남녀가 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오호라,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나 보네. 그들의 흥미진진한 흥정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중년 남자가 검을 빼든다. 깜짝 놀라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순식간에 온 세상이 캄캄해진다.

다시 내가 속해 있는 세계로 돌아오니 책을 읽은건지, 꿈을 꾼건지 도저히 분간이 되지 않는다. 소름끼칠 정도의 기상 천외한 두 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놀라움과 안타까움, 거듭되는 반전에 혀를 내둘렀다. 이 작가의 처녀작이라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의 깔끔한 문체와 알찬 내용에 감탄도 절로 나왔다. 고도와 야시를 여행하는 동안 잃었던 기억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다.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해 온 상상력에 날개가 돋힌 듯 여러가지 생각들이 밀려 들어와 읽는 내내 즐거움의 비명을 질러야 했다. 호러소설이라 하기엔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사연들이 많았지만, 그러한 것도 어쩌면 호러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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