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과 이주홍 동화나라 빛나는 어린이 문학 5
이주홍 지음, 김동성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북 치는 곰’에 등장하는 야광귀는 한결같이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앙괭이라고도 불리는 야광귀는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는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제 발에 맞는 것을 가져 간다는 민간 신앙 속 귀신이다. 올 설에도 장난끼 가득한 얼굴을 하고 지상에 내려갈 계획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는 그들은 다른 때보다 신중해 보인다. 사람들이 야광귀들을 속이기 위해 대문에 걸어둔 체의 구멍을 세느라 성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내려갈 것인지 여러 의견들이 오갔다. 그 때,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었으니 막내 똘똘이다. 가족들의 우려와 비웃음에도 아랑곳 않고 기세등등하여 지상 나들이에 나선 똘똘이는, 어둡고 조용한 길을 왔다 갔다 하며 헤매긴 하지만 인간들이 걸어둔 체를 보고 코웃음을 칠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어둠을 뚫고 한적한 인가를 찾아 살그머니 안으로 들어간 똘똘이는 생각처럼 신발을 쉬이 찾지 못한다. 그러다 부엌 한 켠에 놓여진 북치는 곰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동한다. 곰 뒤에 달린 태엽을 돌리고 또 돌리자 북을 치기 시작하는 곰. 한참을 그 곰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며 놀고 있노라니 어느새 새벽이 밝아온다. 그제서야 허둥지둥 쫓기듯 하늘로 올라가지만 어느새 자신의 신발 한 짝이 보이지 않는다. 순진하고 귀여운 야광귀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니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솔솔 잠기는 눈을 억지로 비벼대며 열심히 옛날 이야기를 듣던 추억이 생각난다.

야광귀 이야기는 그 옛날 감칠맛 나게 고운 우리네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와 같이 포근하고 구수하다.

나뭇잎들이 생의 이별을 준비하는 가을에 어울리는 ‘은행잎 하나’는 성덕사 큰 절 옆 은행나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늦은 가을, 황금빛깔의 노란 잎들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은행잎 아이와 은행나무 엄마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가만 들어보니,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가 울먹이며 엄마에게 떼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 내년에 또 만날 수 있다는 엄마의 다정한 말에 이내 수긍한 듯 자신이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스케치북 위로 떨어진다. 아이와 함께 한 지 얼마지 않아 개구쟁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시달리고 있는 은행잎을 강한 바람이 빼앗아 달아난다. 바람아 바람아 성덕사 가자 울 엄마 날 찾아 울고 있다 은행잎이 홀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바람은 어느새 따뜻하고 편안한 엄마의 품 속으로 은행잎을 실어다 준다.

푸릇푸릇하던 은행 잎들이 하나 둘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요즘 가까운 곳에 은행 나무가 있다면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운이 좋으면 그 곳에서 엄마 은행나무와 은행잎 아이의 아기자기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체통’에 등장하는 어린 숙희는 집 앞에 있는 빨간 우체통을 바라보며 넣는 사람은 많은 데 꺼내 가는 사람은 없음에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다 저 혼자 상상한 것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땅 속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그리로 편지가 굴러간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밥 대신 쪄 준 개떡을 먹던 숙희는 문득 아버지가 생각나 기름종이에 개떡을 싸서 우체통에 넣는다. 그 후 아버지가 개떡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답장은 고사하고 자신이 보낸 개떡이 그대로 되돌아오자 실망을 금치 못한다.

숙희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우체통에 개떡을 집어 넣는 장면에서는 콧등이 시큰거려 참기가 어려웠다. 20여년 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생각나 숙희가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과 그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담백한 그림이 너무 예뻐 읽는 내내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포근함을 느꼈다. 내가 아이와 같은 순수하고 해맑은 순간은 동화를 접했을 때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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