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 알마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은 언제나 그렇듯 시끌벅적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따라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보자. 지하로 내려가는 미끄럼틀을 타고 계단 벽에 그려진 멋진 벽화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도서관이다. 도서관 입구에는 흔들 그네가 보이고 바닥 한가운데는 아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꿈을 키울 수 있는 커다란 지도 한 장이 끼워져 있다. 더 안쪽을 들여다 보면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한 골방이 있고,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만든 아늑한 방도 보인다. 고개 들어 책꽂이 위를 바라보면 큼지막한 그림책 포스터가 붙여져 있어 도서관을 한층 더 밝게 해준다. 구석 곳곳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저자의 따스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도서관이면서도 전혀 도서관답지 않은 공간을 만든 저자는 놀이가 삶인 아이들이 책도 놀면서 만날 수 있길 바랐다. 그랬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쏙 빼앗아 놓은 멋진 도서관을 만들 수 있었을 테다. 이 도서관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문화 불모지였던 용인의 작은 마을에 희망의 빛이 되었다.

책은 물론이요 아이들을 위한 놀잇거리가 많은 곳이니만큼 책을 읽으러 오는 아이보다 놀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은 당연지사. 어떤 이들은 그런 아이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중에 책을 읽지 않는 아이는 없다. 처음에는 만화책을 보기 위해, 아이들과 놀기 위해, 또는 밖에서 뛰놀다 물만 마시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지만 어느 순간 책을 펼쳐 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책에 붙여진 레이블을 보고 누가 먼저 책을 꽂는지 시합도 벌이고, 새가 나오는 책, 벌레가 나오는 책, 기차가 나오는 책 등 책 찾는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레 책과 친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놀이가 된 책에 대한 부담이나 거부감이 없어지게 되자 아이들 스스로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제멋대로 드러눕고 엎드리거나 돌아다니는 등 책 읽는 방법은 모두 제각각 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모두 한결같아 진 것이다. 또한 아이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도서관을 드나들던 엄마들도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잃었던 꿈도 다시 꾸게 되고 도우미 활동도 하면서 점차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아이에게만 국한되었던 사랑과 정성을 다른 아이들에게도 쏟으며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중에는 엄마, 아빠가 맞벌이라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 발달장애를 앓는 아이, 비행청소년 등 가슴 아픈 사연이 가득한 아이들이 많다. 그런 아이들은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주는 사람도,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줄 사람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도서관이 생기게 되면서부터는 발달장애를 앓는 아이가 박쥐가 새끼를 낳는 포유류임을 알게 되고, 책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던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졸라대기도 하고, 꿈을 잃은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니 가슴이 따뜻해지고 흐뭇한 마음이 들어 읽는 내내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읽어야 할 책을 입시에 반영하기 위해 강요에 의해 읽어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경쟁위주의 교육을 더욱 부추기는 엄마들의 극성에 아이들은 쉴 곳 마저 잃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제 그만 아이들이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통해 이웃과 어울리고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배우길 바라고,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상처받고 신음하는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격려와 위로를 받으며 세상을 헤쳐나갈 수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또한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는 꼭두각시 아이들도 책과 함께하며 자극도 받고 잠재력을 키워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자랄 힘을 타고나는데, 부모가 너무 잘 가르치려 하다 보니 오히려 그 힘을 막게 된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는 ‘책 읽기에 대한 열 가지 권리’를 선언한 적이 있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가 그것이다.

책이 아이들 삶에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면 좋겠다. 사람과 어울리는 가운데 책을 읽으면서 편안하고 즐겁게 쉼을 누리고 상상력을 펼칠 실마리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을 좋아할 권리를 누리게 되면 그 나머지, 어른들이 바라는 지식은 벌써 아이들 손 안에 다 들어 있는 셈이니까.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다 다르다는 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줄까. 우리는 등급을 나누고 편을 가르는 것 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아이들 스스로 느끼게 되길 바랐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건 다른 사람만 배려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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