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
강상구 지음, 손문상 그림 / 레디앙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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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눈을 뜬, 그렇다고 심봉사처럼 하루아침에 새 세상을 본듯 번쩍~ 눈이 뜨였다는 것은 결코 아닌, 다시 말하면 출간된지 100여 년도 훨씬 더 된 이 책으로 인해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 보게 되었음을 의미함이다.

귓등으로만 흘려듣던 마르크스니 자본주의니 자본론이니 하던 것을 이십 년전 풋풋한 그 시절에만 제대로 알았더라도 하는 아쉬움이 한편으로 밀려온다. 하긴 그때는 눈에 보이는대로 판단하고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이었으니 그 탓을 돌리자면 어린 우리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단면? 또는 모순?)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어른들의 책임이 아닐까......

하여, 이 책을 접하기에 앞서 청소년용 마르크스와 그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아직 어린 딸아이에게만큼은 자신이 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나가야 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라도 <자본론>을 반드시 읽혀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자본론>을 가장 쉽게 풀어썼다는 글귀에 기대만발하여 펼쳐든 책~
때마침 쌍용자동차의 파업으로 인한 뉴스가 연일 계속되는 시점이어서 내용 하나하나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중간중간 쌍용자동차의 노사간 타협이 될듯될듯하면서도 무산되어 아쉬움과 긴장을 바짝 세우게 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사회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나나 우리 가족이 쌍용의 파업의 한가운데 서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느새 마음은 생존을 위한 그들의 파업이 결코 그들만의 외침이 아니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전체를 하나하나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마르크스가 콕! 짚어낸 자본주주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그로 인한 영원한 숙제가 될 '노동(력)'에 대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은 과거는 물론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큰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또한 알 수 있었다.

신성한 '노동(력)'을 바라보는 시각!
그로인한 사소한 차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엄청난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자본은 더 큰 자본을 생산하지만 노동은 오히려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더 궁핍하게 만드는 하나의 담보물로 밖에 되지 않는 현실.... 결국엔 자본주의사회란 말이 자본주의자들에 의해 굴러가야하는 것임을 시사하는 것일까??

자본가에게는 노동 역시 토지와 자본과 마찬가지로 생산에 필요한 3요소일 뿐이다. 그러나 노동은 토지나 자본과 달리 인간 자체에 담겨진 즉,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직접적인 무형의 능력인 것이다.

노동을 둘러싼 사용자인 자본가와 제공자인 노동자들의 대립. 그러나 말만큼 호락호락한 대립은 결코 아니다. 언제나 칼자루를 쥔 것은 사용자인 자본가와 그 칼끝에서 자신의 노동의 댓가를 정당하게 받고자 하는 노동자들은 어쩌면 한지붕인 자본주의 사회 아래서 해답없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이윤 추구로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끊임없는 노력(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노동력 착취이겠지만..)으로 나날이 다양한 자본의 흐름으로 다양한 자본주의로 변화하고 있는 21세기에도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은 마르크스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전과 달리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채널이 마련되고 있음은 다행스럽지만 그래도 생존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기계를 마주한 사람만이 결코 노동자가 아니다. 육체적인 노동을 제공하는 것만 아니라 자본가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노동자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혹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라 착각하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사회를 향한 예리한 지적이 한낱 이론이 아닌 자본가는 물론 노동자가 함께 행복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자신은 물론 자본주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소수의 노동자가 아닌 절대 다수 노동자들의 응집된 단결과 하나된 목소리만이 소수 자본가들의 일방적 폭력과도 같은 횡포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 의한 신성한 노동은 분명 토지나 자본과는 분명 구분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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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이 들려주는 불교 동화 2 - 똥으로 무장한 멧돼지 안도현 시인이 들려주는 불교 동화 2
안도현 지음, 임양 그림 / 파랑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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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안도현 시인의 첫 번째 불교동화 <호미를 먹은 쥐>를  읽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더불어 굳이 불교동화라 할 것까지 없어 보이는 전래동화같은 이야기에 친숙한 느낌도 되살아났다.

한창 ’성경’에 관한 책들도 눈에 띄는 것에 비하면 아이들을 위한 불교동화는 생소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종교적인 상식과 교양을 넓혀줄 수 있으리란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 이야기 역시 <지혜> <사랑> <어리석음>을 주제로 한 짧은 이야기들을 엮어놓았다. 불교동화임에도 부처나 그와 관련한 어떤 것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몰랐던 옛이야기를 읽는듯 편안하다.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에 지레 놀란 토끼가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인 줄 알고 앞뒤가리지 않고 도망치는바람에 허겁지겁 뒤를 따르는 동물들. 다행히 이름값, 덩치값을 하는 사자의 현명함으로 한바탕 소란이 잦아들고 토끼와 사자를 통해 경거망동, 부화뇌동과 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리며 평소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수행자의 아름답고 소중한 딸 ’도대체’를 둘러싼 이야기는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넌센스같은 이야기에 어느새 빙그레 웃음이 피어난다. 아.. 영어로 어금니를 묻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결국엔 ’몰라’라고 대답했더니 ’맞아!’라는 반응에 어리둥절해 하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금니가 영어로 molar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된 이후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었던 추억 한 조각.

무엇보다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객기와도 같은 어리석음을 부리던 멧돼지가 아내의 지혜로 사자와의 대결에서 치사하지만 온몸에 똥을 묻쳐 목숨을 건진 ’똥으로 무장한 멧돼지’에서는 안도의 한숨보다는 왠지모를 가여움이 밀려온다.

늙은 어머니를 업고 바깥세상으로 꽃놀이를 나간 아들. 아들의 등 뒤에서 불현듯 불안감을 느끼던 어머니는 어느새 솔잎을 따서 길바닥에 뿌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며, 어느새 아내에게 마음을 빼앗긴 바시타카의 불효뿐만 아니라 아내의 사악한 마음까지도 깨우쳐준 어린 아들의 이야기는 어린시절 누렇게 바랜 두툼한 옛이야기 책에서 읽었던 ’효’에 관한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 나라 역시 한때 불교를 숭배하던 나라였던 탓에 인도의 자타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함께 했던 것일까......

요즘들어 일찍부터 자신만을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에 어느새 마음이 따듯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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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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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에 받아든 봉투속에 두툼하게 전해지는 손끝의 느낌에 내용물이 두 권의 책이라 짐작하며 바삐 뜯어보니 책표지가 인상적인 한 권의 책. 놀라운 두께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가벼운 책의 무게. '200만 유럽 독자를 사로잡은 천재 작가, 차세대 애거서 크리스티 탄생!'이라는 은빛 띠지가 특별한 계획 없는 주말을 이 한 권으로 보내리라 마음 먹으며 책장을 펼치게 하였다.

냉기가 가득한 텅빈 집의 욕조에서 얼음속에 죽어 있는 채로 발견된 한 구의 시체. 아름다운 '얼음공주'로 짐작되는 알렉스는 그렇게 어부이자  집의 관리를 맡고 있는 에일레르트와 우연히 에일레르트의 긴박한 목소리를 듣고 달려온 오래전 친구인 에리카에 의해 발견된다.

평화스런 아니 겨울 찬바람에 가라앉은 어촌마을 피엘바카에 일어난 갑작스런 자살을 가장한 살인사건!

앞 장을 서너 장 넘기며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밀레니엄>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그 책의 작가 역시 스웨덴출신이어서였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만 왠지, 어딘지 모르게 작품이 주는 비슷함(?)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데.. 딱히 이것이다 라고 짚어낼 수 었지만 아무튼 느낌이 비슷하게 다가왔다.

마을 사람들 누구나 가까운 이웃인듯 살아가는 작은 어촌 피엘바카에서의 사건은 그야말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죽은 이가 오래전 아무 이유없이 홀연히 가족들과 함께 마을을 떠났으며 어쩌다 가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다녀가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니 어쩌면 사건 자체보다도 갑작스레 주검이 된 그 여인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였으리라.

한때 마을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소녀였으나 상류층의 남자와 결혼을 하고 친구와 함께 갤러리를 운영하는 멋진 여성, 알렉스.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는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과 그 의문을 풀어가는 두 주인공, 에리카와 파트리크의 미스테리를 향한 풀이는 조용하게 그러나 차근차근 진행된다. 작가와 경찰이라는 서로의 직업에 충실하며 다른 퍼즐조각을 줍지만 마침내는 한 작품의 완성을 위한듯.......

초반이후 중반까지는 살해된 알렉스의 옛친구이자 작가인 에리카에 의해, 중반이후 결국 사건의 해결은 경찰인 파트리크에 의해 비교적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 된다.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드는 것은 복잡할 것 없으면서도 사건의 전개와 범인을 짐작케 하고 그것을 확인해 보고픈 독자의 마음을 조바심 치게 하는 것,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짐작하면서도 점점 더 빠져들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알렉스를 죽인 범인에 대한 궁금증보다 25년 전 알렉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궁금증이 살인사건 보다 더 중요한 사건인듯 흘러간다. 엎치락 뒤치락 하는 추리를 하며 사건이 서서히 풀려가는 것과 더불어 에리카를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이 증폭된다.

그때문인지 한편으로는 '얼음공주'라는 제목에 집중되지 않는듯 하지만, 결국엔 25년 전 자신에게 일어난 엄청난 일과 그 일로부터 어린아이를 보호해 주기보다는 자신들의 체면과 소문들 먼저 의식한 부모들에 의해 자신의 고치 속에서 숨어지낸 상처입은 알렉스. 결국 그녀는 그녀 스스로 고치를 깨고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였으나 그것마저도 또 다른 어른에 의해 무산된 채 영원한 희생자이자 얼음공주가 되고 만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심각한 성폭력(아동성폭력). 그것으로 인한 한 개인(안데르스와 얀, 알렉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사회(파트리크)의 문제를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로 만나니 또 새롭게 다가온다.

어쨌든 8월의 더위도 느끼지 못한 채 주말이 휘리릭~ 지나간 이야기에 자신있게 짐작해본다. 표지만 보아도 누구든 빠져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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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구출 작전 - 세종대왕이 숨겨둔 비밀 문자 Go Go 지식 박물관 24
서지원 지음, 김은희 그림 / 한솔수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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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늘 아주아주 반갑고도 놀라운 뉴스에 다시금 이 책을 찾아보게 하였다.  다름아닌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찌아찌아 족이 자신들의 고유 언어를 표기할 문자로 우리의 위대한 한글에 낙점을 찍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감탄을 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과학적'이고도 '유례없이 위대한' 문자라는 칭찬이 그저 공허한 메아리처럼 실감이 나지 않더니, 인구 6만의 그야말로 소수의 민족인 찌아찌아 족이 영어도 한문도 불어도 아닌 대한민국의 한글을 선택했다는 소식에 비로소 우리의 글자를 돌아보게 하다니......
새삼 우리글의 가치를 실감하며, 다시 보는 이야기가 더욱 새롭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린 백성을 사랑하지 않은 왕이 있으랴마는... 그 중에서도 진정으로 백성의 어리석음을 마음 아파하신 왕이 있었으니 바로 세종대왕님!
시력마저 약해져 고통을 참아가며 백성들의 눈을 밝혀줄 훈민정음을 만드신 은인과도 같은 세종대왕님!

훈민정음을 만들고도 어리석은 양반들의 반대에 부딪쳐 반포하기까지 쉽지 않았던 우여곡절 마저도 오늘날의 한글을 더욱 빛내기 위한 단련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마침내 한글의 위대함이 세계에 실질적으로 퍼져나가는 계기라는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훈민정음 창제에 얽힌 이야기는 물론 현재의 한글이 있기까지 자칫 사라질 뻔했던 위기의 순간이 이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이다. 현실에서는 천만다행으로 반대파들과 일본의 음모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는 한글!

한글 아니 훈민정음이 당시의 반대세력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면 과연 지금의 우리는 어떤 글자를 쓰고 있을까? 사실, 상상조차도 하기 싫은 끔찍한 상황이지만 작가는 대담하게도 이 끔찍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우리의 글이 없어 이두에서 좀더 발전한 형태의 글자를 쓰고 있지만, 표의문자인 한자에 뿌리를 둔탓에 현재의 우리들 역시 온전히 말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며 살아가기는 마찬가지.

어느날 우연히 발견된 훈민정음으로 짐작되는 고문서 하나. 그것으로 인해 현재의 성삼문, 장영실, 김종서는 과거의 세종대왕 곁으로 날아간다. 역사 속 이야기로만 전해 오던 훈민정음의 완성을 위하여~

정말 이야기가 아니면 있을 수도 없는 일들이 다행스럽게 펼쳐지는 가운데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에 얽힌 이야기며 훈민정음의 원리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중학교 때 네모 칸을 그려가며 스물여덟 글자를 생성원리에 따라 깨우쳐 주시던 국어선생님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하였다. 지금도 생생한 아.설.순.치.후~^^

어제오늘 우리에게 반가운 한글의 찌아찌아 족 표기문자로 채택됨을 기념하며 읽으면 기발한 상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와 더불어 한글, 훈민정음이 다시금 마음 속으로 쏙쏙~ 되새겨질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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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여인 김만덕 - 헐벗고 굶주린 백성을 살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사업가
이경화 지음, 백명식 그림 / 깊은강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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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고 굶주린 백성을 살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사업가' 구원의 여인, 김만덕....이란 제목만으로도 이미 이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음을 짐작해 본다.

연기자 고두심 씨의 '추천글'을 통해 <김만덕 기념 사업회>가 있다는 것이며 제주도에서는 이미 '만덕 할망'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하니 일개 여성 사업가로서의 김만덕이 아닌 신화 그 자체임을 알려주는 듯하고, '머리말'을 통해 저자가 귀뜸해 주는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서 김만득의 업적이 조선이라는 시대에 제대로 평가 받기는커녕 묻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만덕....그녀의 이름조차 본명인지 아니면 훗날 기생으로 살면서 스스로 지어 가진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12살부터 74세까지 그녀의 삶을 되짚는 과정이 수월치 않았다는 저자의 머리말과 '만덕'이라는 이름에 대한 해설, 본문 50쪽), 그녀의 삶은 분명 시대를 앞서도 한참 앞선 당찬 인간이었음을 새삼 느낀다.

그녀에게 두려운 것은 그 어떤 사회적 시대적 제약이나 제재도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좇으며 꼿꼿하게 살아낸 '올곧음', 그리고 한없는 '인간애' 바로 그것이 그녀의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그 어떤 위대한 인물보다도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 김만덕. 나랏님도 고을의 수령도 어쩌지 못하는 배고픔과 가난을 일개 아녀자의 몸으로 거침없이 채워주었던 제주도 사람들의 구원자와도 같았던 김만덕.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문득 그녀가 범상치 않았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세상의 어느 사람인들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 아프지 않겠는가?
어느 사람이 누군가에게 동정과 자선을 베풀고 싶지 않겠는가?
아무리 가진 것 없는 사람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고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제주도의 설문대 할망으로 2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추앙받는 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것!

아무리 좋은 뜻과 목적이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오로지 노력과 실천만이 그 뜻과 목적을 의미있는 것임을 깨우쳐 주는 김만덕의 이야기에 그동안 실천없이 이런저런 생각 속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유례없이 아녀자의 몸으로 제주도를 떠나 정조 임금을 알현하고 금강산을 유람했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 그것은 한결같이 곧은 마음과 실행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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