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의 방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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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손꼽아 기다리던 책을 정작 딸아이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어제 오후에 근처 시댁에 다녀오느라 늦게 왔더니 학교에서 돌아와있던 딸아이가 택배를 받고 열어보았나보다. 얼른 읽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미 딸아이의 손에 들어간 책이라 다 읽기 전에는 넘겨주지 않을 것같아 딸아이가 빨리 읽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드디어 딸아이가 방에서 나오는 걸보니 벌써 다 읽었나보다 생각하는데 대뜸 질문을 던진다. "엄마, 엄마가 아주 부잣집 딸이라면 어떨 것같아?" "글쎄, 좋을 것 같은데...." 나의 대답이 신통치 않았는지 딸아이는 별반응이 없었다.
순간 '소희의 방'의 내용때문일 것이란 생각에 "가끔 책을 읽다보면 나도 주인공처럼 되고픈 때가 있던데..."라고 말끝을 흐리니 딸아이가 "엄마도 그래?"하며 깜짝 놀란 표정인지 반가운 표정인지를 짓는다. 음.. 뭔가 있구나.. 

딸아이의 뜬금없는 질문에 '소희의 방'이 더욱 궁금해졌다. 밤11시가 훌쩍 넘어 책을 들고 앉았다. 다음 날이 토요휴업일이라 딸아이도 등교하지 않으니 마음엔 여유가 넘쳤다.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 달밭을 떠나던 소희의 마지막 모습 이후 과연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소희가 등장할지 마음이 두근거렸다. 

어느새 1년 반이 훌쩍 지나 열다섯 살 중학생이 되어 나타난 소희는 흘러간 시간만큼 새로운 삶을 마주하고 있었다. 달밭에서 아빠이자 엄마였던 할머니와 함께 살며 꿋꿋하고 씩씩한 모습이었던 소희는 갑작스레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생활에 긴장이 된 탓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전무한 소희.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엄마가 그동안 만들고 가꾸어 온 가정 속으로 낯설게 들어가는 소희의 모습만큼이나 뒤늦게라도 자신의 딸을 찾으려는 엄마의 모습이 서먹서먹했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마음을 알지 못하는 탓일지도...... 

엄마와 새아빠, 그리고 엄마의 두 아들 우혁과 우진. 그 속에서 자신이 차지해야 할 자리를 만드는 것은 온전히 소희의 몫이 아님에도 소희는 갑작스레 닥친 환경의 변화때문인지 아니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마음 속에 무조건적으로 그들과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갈망)때문인지 잔뜩 긴장하고 주눅든 모습이다. 하긴 누구라도 그 상황이면 그렇지 않을까.... 비록 자신을 낳은 엄마가 함께 살자고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지겠지만, 그 옆에 이미 엄마의 또다른 가족들이 버젓이 있으니 말이다.  

열다섯이란 나이만으로도 사춘기입네 청소년기네 하며 자신의 내면 속 문제로도 벅찰 나이의 소희. 여태껏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여유보다는 현재를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활자체로도 버거웠을 소희.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나 소희는 그런 일로 가벼운 투정조차 하지 않는다. 달밭에서의 그 소희처럼. 다만  뒤늦게 만난 엄마와 새로운 가족과의 생활에 당황하고 긴장한 모습일 뿐. 

이제는 정말 엄마와 한집에서 살게 되고 더불어 여태껏 누려보지 못했던 행복을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듯 부자인 새아빠와 두 동생들까지 나타난 소희가 마치 신데렐라가 된 듯하다. 더구나, 새로 전학한 학교에서는 소희의 과거는 전혀 모른 채 그냥 부잣집 딸로만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멋진 남자 친구와 마음 잘 통하는 절친까지 있는 소희의 새로운 모습에 딸아이도 살짝 부럽지 않았을까.... 

언제나 그렇듯 한 고비를 넘겨 서로가 어쨌든 가족임을 확인하게 된 엄마와 소희. 그리고 새아빠와 엄마의 두 아들 우혁과 우진, 그리고 또 하나의 소희인듯 나타난 새아빠의 딸 리나.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가족 구성원이 참으로 공평하다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같은 입장인 엄마와 새아빠처럼 같은 입장인 소희와 리나, 그리고 그들 사이에 균형을 잡아주는듯 우혁과 우진이 있다.  

문득 새로운 가족이 되는 데는 어느 누구 할 것없이 모두에게 버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소희에게만 닥친 변화가 아니라 엄마, 새아빠, 우혁과 우진, 저멀리 미국에 있다는 리나에게도 어쩌면 똑같은 세기로 불어대는 바람처럼. 

어느덧 한창 이성에 두근거릴 열다섯 살의 나이로 나타난 소희는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슴 설레게 하는 그 또래들의 이야기까지도 함께 들려주며, 마음 속에 진주를 키우고 싶어했던 달밭에서의 바람처럼 상처를 이겨내고 마침내 진주를 키워냈다. 
그러고보니 소희는 진짜 하늘말나리인가보다. '자신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알차게 자기 자신을 꾸려 나'간다는 바우의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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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길고양이 - 제8회 푸른문학상 동화집 미래의 고전 21
김현욱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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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책을 함께 읽다보면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에 푹 빠져들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실이 잘 반영된 책들은 나와 주변을 새삼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아이들 책을 펴내는 출판사들이 열 손가락을 몇 번이나 꼽아야 할지도 모를만큼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 가운데 아동청소년문학 전문 출판사로 꾸준하게 새로운 작품과 신인 작가를 발굴해 내고 있는 <푸른책들>은 아이가 커갈수록 더욱 눈에 띄는 몇몇 출판사 가운데 하나이다.

벌써 8회째를 맞고 있는 '푸른문학상'의 <새로운 작가상>으로 선정된 7편의 단편동화가 담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또 7편의 수상작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 '도서관 길고양이'는 주인공 다미가 발견한 범인이 길고양이가 아니라 노숙자 아저씨였음에 왠지 그럴것 같았던 내 짐작이 맞았다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럼 그렇지....

다른 한편으로는, 어쨌거나 별로 책과 친하지 않은 다미를 내기를 하면서까지 도서관으로 이끄는 다미의 엄마를 보면서 책과 친한(책 잘 읽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여느 엄마들의(나를 포함한)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엄마들이란 하나같이.... 

혹시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겨드랑이 속 날개'는 아마도 수상작가가 초등학교 교사라는 소개글탓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에게 시를 암송하게 하는 방법이 참으로 구체적이고 시를 암송하는 아이들의 모습  역시 참으로 생생하게 다가오기때문이다.

그밖에 '일곱 발, 열아홉 발', '대장이 되고 싶어', '엘리베이터 괴물'같은 작품들은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마음(심리) 속이 들여다보이는 듯하여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특히, '엘리베이터 괴물'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된 딸아이가 상급생 언니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한동안 엘리베이터 공포에 시달렸던 그때를 떠올리게 하여 그야말로 공감 100배인 작품이라고나 할까... 

나머지 '슬픔을 대하는 자세'와 '하늘에 세수하고 싶어' 두 작품은 가슴 한 켠에 짠~하지만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각각 아빠의 죽음과 부모의 이혼이라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일을 겪게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요즘 우리의 삶이 죽음이나 이혼같은 것에 낯설지 않음을 상기하게 된다. 

아이들의 이야기이지만 결코 아이들만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생활(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들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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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 사진과 카메라 개화기 조선에 몰아닥친 신문물 이야기 1
서지원 지음, 조현숙 그림 / 꿈꾸는사람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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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철학자 크로체는 '역사를 생각하는 것은 역사를 시대구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러고보면 우리의 역사(공부) 역시 무슨시대 다음에는 무슨시대라며 배우지 않는가. 그러다가 현대(현재?)에 앞선 근대(혹은 근세?)시대를 그래도 가장 현재와 근접한 과거의 시대로 배우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우는 우리에게 근대(시대)는 어떤 이미지로 떠오를까?
이미 한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한국근대사하면 개화기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우리만의 세계에서 깨어나 비로소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켜던 그 시기 말이다. 비록 자주적인 개화가 아니라 일본에 의한 수치스런 조약(이른바 강화도조약)때문이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람의 일생에도 우여곡절이 있듯 한 나라의 역사에도 무수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또 사람이 성장하고 변화하듯 나라도 발전하고 변화해 가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대개 사람은 일생을 놓고 볼 때, 일정한 나이를 기준으로 삶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아마도 문명의 발전, 기술의 발달이나 경제적 영향 또는 전쟁과 같은 엄청난 변화에 기인하지 않을까?? 

우리의 근대사 역시 엄청난 안팎으로의 변화를 초래하지 않았던가....그가운데서도 자급자족의 농업과 수공업에 의존하던 우리의 생활에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아닥친 서방세계로부터의 신문물은 순박한(미개한?) 우리민족에겐 두려움 그 자체였으리라. 

'사진 찍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라는 제목의 이 책 역시도 개화기의 서양문물에 대한 우리 민족의 순박한(미개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요즘처럼 사진이 일상이 된 시대에는 코웃음치고 말 일이지만, 사진은커녕 그림도 시커먼 먹을 갈아 그리는 것이 보편적이고 색채를 넣는 것은 아주 드물고 귀한 일이었던 시절이라면 또 다르지 않을까.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바뀐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건만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보다 그 편리함이나 용이함때문인지 카메라가 보편적인 생활용품이 된듯하다. 심지어는 핸드폰에도 카메라 기능이 들어있어 언제 어느 때고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카메라 앞에서 방긋 웃으며 표정을 만들고 자세를 취하지 않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을 연 황철이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에 살았던 점을 감안하자면 우리나라에 카메라가 들어온 것이 고작해야 100년 남짓한데, 이 얼마나 놀라운 발전(변화?)인가?  

여동생 계봉이를 잃어버리고 찾아나선 쌍둥이 오빠 길삼식. 당시 흉흉하게 떠도는 소문은 다름아닌 애들을 납치해서 만든다는 마법의 상자. 계봉이도 찾고 무시무시한 마법의 상자에 대한 진상도 확인하고자 용기를 내어 삼식이 찾아간 곳은 다름아닌 우리나라 최초의 촬영국을 만든 황철의 집. 

담을 넘으려다 하인에게 붙잡힌 삼식이 황철을 만난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도운 일. 삼식은 비로소 마법의 상자의 실체를 알게 되고 급기야는 황철에게서 사진 찍는 기술도 익히게 된다는 짐작 가능한 이야기와 함께 우리나라 근대사의 사진기에 얽힌 웃지못할 사실들을 들려주는 새로운 역사동화이다~ 

더불어 이미 18세기에 실학자 정약용의 저서 <여유당전서>에도 사진기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카메라 오브스쿠러(camera obscura)인 칠실파려안에 대한 기록이 있음도 알게 된다. (본문 71~74쪽)
또 당시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흑백사진 자료와 삽화의 배경으로도 만날 수 있는 그 시절의 풍경이 소박한듯 정겹게 다가온다. 

책 뒤에 마련된 '황철의 사진 학교'에서는 사진의 역사와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사들에 대한 이야기와 황실의 사진촬영 등 사진에 얽힌 정보와 이야기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의문 한 가지, 그런데 삼식의 여동생 계봉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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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 청소년소설집 푸른도서관 39
김인해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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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딸아이를 바라보는 나 역시도 사춘기를 앓는 당사자인 딸아이만큼이나 혼란과 불안인 요즘이라고나 할까....
어제는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배정원서 작성을 위한 학부모 설명회가 있다하여 참석했는데 중학교 입학을 앞둔 6학년 학부모들이 적지 않게 참석했다. 슬라이드와 함께 조목조목 짚어주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있자니 새삼 딸아이의 모습이 현실로 다가왔다. 어느새 훌쩍 자라 중학생이 된다니...... 

언제부턴가 하나둘 피어나던 여드름도 어느덧 익숙하게 다가오는데 문득문득 반항기담긴 시선이나 삐딱한 말투는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아직 어린 것이 어디서 괘씸하게......

그래서인지 청소년기의 아이들의 생활을 바탕으로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세 편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예사롭지 않게 읽혀졌다. 혹시 내 아이도 직.간접적으로 겪게될 상황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치고 지나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집보다는 학교, 학원에서 또래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는만큼 그들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당사자인 아이들이나 부모들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친구들에 대한 특별한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한 때에는 더욱 그렇다. 특히라도 또래 아이들로부터 왕따라도 당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기는 어쩌면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더 심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전학조차 쉽게 하지 못하는 요즘이 아닌가. 

과거 또래 아이들끼리는 멀고 가까움이 없이 친구라며 부르고 어울려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에는 좁은 교실안에서조차도 '절친'이란 말로 특별한 관계를 내세우고는 한다. 반친구는 그냥 반친구일뿐, 진짜(?)친구는 절친이라는 것일까?? 

저학년때 친구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조바심내던 딸아이가 어느새 밤 늦게 까지 문자를 주고받으며 주말이나 휴일이면 따로 만나 어설픈(?) 쇼핑 흉내를 내는 것을 보노라면 정말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영화까지도 보고 오니 말이다. 초등생이라고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전같지 않은 요즘 아이들의 모습에 살짝 긴장하게 된다. 겁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어찌보면 대단하지도 않은 일(도서관이나 화장실에서 바람 맞힌 것?)로 재민이에게 괘씸함을 갖게된 시욱의 모습을 보자면, 그 이유가 다름아닌 2반의 쩨쩨한 남자로 불리게 될까봐서이다. 호영이가 호떡으로 불리는 연유를 잘 아는 때문이다.
시욱과 재민.. 둘만의 친밀감이나 우정같은 것보다는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더욱 중요한 탓일까?? 

문득, '관계'에 대한 진지함이 상실된 탓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위 사람들의 생각이야 어떻든 둘만의 관계가 진심이고 진지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과거의 '친구'가 아니었을까....
시대가 변하고 세태가 달라진만큼 친구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 요즘 아이들의 모습일까 싶은 생각이 새삼스레 밀려온다.   

자신 스스로보다는 상대방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신의 모습에 더 의미를 두는 요즘이다보니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없다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주인공 시욱이 재민에게 주먹을 날리는 것처럼. 그러나 그 주먹은 다름아닌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뒤늦은 후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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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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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어디까지나 관심이 있을 때만 가능한) 작은 들꽃들에 대한 대변(代辯)같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들꽃이야기'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 등장하는 것들은 우리의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무와 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들꽃이라하여 정말 들에서 피는 꽃이려니 했다가는 깜짝 놀라게 되지 않을까 싶은 책이다. 

특히,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그 존재감을 미처 느끼지 못해 '잡초'로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풀들이 있음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러고보니 생김새는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름 하나하나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린 딸아이를 위해 이름없는(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름을 알지 못하던) 식물들에 대한 반짝 관심이 있어 가까운 들로 산으로 다니던 때도 있긴 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아이가 커가면서 그나마의 반짝 관심도 자취를 감추고 어느새 '풀'이란 이름으로 싸잡아서 부르고 있지 않은가... 

북한산 밑자락에서 초등학교 두 아이를 키우며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자연의 이야기를 쓰고, 찍고, 그린다는 저자는 그래서인지 이야기 속에 주인공이기도한 들꽃이며 풀, 나무들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그렸다. 때론 진짜 식물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고 또 사진도 담아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애쓰는 듯하다.
가끔은 익숙한 이름의 들꽃 이야기가 나오니 참으로 반갑다. 

아스팔트, 콘크리트 틈에서도 자란다는 들꽃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질기디 질긴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고, 먼먼나라 그 아득한 곳에서 언제, 어느 경로로인지는 몰라도 흘러들어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토종보다 더 당연한듯 살아내고 있는 귀화식물들도 세계 곳곳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들꽃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인듯 다가오는 이야기에 새삼 들꽃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제 곧 모든 생물들이 생장을 멈추고 죽은듯 숨죽인다는 겨울이다.

그러나 차가운 도시의 담벼락 틈사이에도, 서둘러 재촉하는 우리네 발밑에도 따사로운 봄볕을 기다리는 들꽃들의 질긴 몸부림이 계속되고 있음을 이제는 알지 않을까....
 

들꽃이야기에 나오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까 하여 집근처로 나섰다.

 

애기똥풀같기도 한 풀이 자라고 주차장 입구 쇠기둥을 감싸고 자라고 있는 이름모를 풀도 자라고 있다. 단풍나무 아래 수북하게 쌓인 마른 단풍잎 사이에 보이는 저것은 토끼풀인가??

 

버려진 담배꽁초 옆에서도 아랑곳않고 초록색을 피워내고 있는 저 풀을 보라~
마치 죽어버린듯 누렇게 위장한 저것도 땅속 깊숙이 뿌리를 박고 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지 아니한가..... 과연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은 들풀들의 모습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콘크리트 틈사이에서도 꽃을 피워내고 있는 모습이라니... 사뭇 진지하다못해 숙연함까지 느낀다. 우리는 과연 저 들풀들처럼 질기게 살아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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