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왕자 책읽는 가족 2
강숙인 지음, 한병호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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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지귀, 선덕여왕을 꿈꾸다>로 알게된 작가 강숙인의 글세계에 번쩍 눈이 뜨임과 더불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한꺼번에 밀려와 동네 도서관에서 그의 책들을 몇 권 빌려왔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역사에 막연히 가까이 하고픈 마음이 어느새 피어오르더니 급기야는 딸아이에게 무엇보다 소중히 깨우쳐주고픈 것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 역사가 되어버렸다. 

내가 자랄 때만해도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며 욕구가 지금같지는 않았던 것같아, 몇 년전부터 지대해진 국민적 관심과 함께 어린아이들의 역사탐방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라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틈틈이 우리의 영토뿐만 아니라 역사를 노략질하려는 파렴치한 주변국들이 있는한 우리의 역사 지키기는 더욱 굳건해져야 할 것이다.

<지귀, 선덕여왕을 꿈꾸다>를 통해 사실적 역사인물과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이 주는 재미에 푹~ 빠져듦과 동시에 당시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하며 어쩔 수없이 고구려도 아닌 백제도 아닌 당과 손을 잡아야 했던 최선(?)의 선택에 대한 절실함이 오롯이 전해져왔다. 그 여운이 가슴 한 켠에 적지 않게 남아서인지, <마지막 왕자>를 펼치는 손길 역시 왠지모를 기대감이 먼저 피어올랐다.

선덕여왕의 먼 후손일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에 관한 이야기 역시 스러져가는 마지막 불꽃인 신라의 모습과 함께 영원히 천 년 역사를 가슴에 품고자 했던 마지막 왕자의 조국애가 절절한 아픔으로 전해져왔다.

표주박처럼 생긴 알에서 태어났다하여 박朴을 성씨로 삼고 신라를 연 박혁거세로부터 고구려에 동맹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하고 당과 손을 잡고 삼국통일의 야망을 이룬 29대 태종무열왕과 30대 문무왕을 거쳐 천 년의 찬란한 역사를 일구었던 신라.. 

그러나, 그러한 신라의 국운도 새롭게 떠오르는 고려의 왕건에 의하여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신세였다. 과연 왕건에 맞서 저항하다 그 찬란했던 불꽃이 꺼지느냐 아니면 왕건이란 새로운 불꽃에 의지하여 사그러드는 불꽃을 고려의 일부로 함께 타오르느냐 하는 선택에서 신라의 마지막 왕 56대 경순왕과 그의 아들, 마의태자는 결국 뜻을 모으지 못한다.

왕건에게 천 년 왕국 신라를 넘겨야 했던 경순왕과 끝내 신라인으로 살고자 했던 마의태자의 피할 수 없는 그들의 선택에 과연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역사적 기록으로, 경순왕에게 유일했던 아들, 마의태자. 끝내 신라를 저버리지 않았던 마지막 화랑으로서의 용맹과 의리가 가상의 인물, 선에 의하여 절절하게 전해온다.

마의태자.....왠지 그 이름속에 안타까움과 슬픔이 더욱 새롭게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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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세상을 날다
소피 라구나 지음, 황보석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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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세상을 날다>라는 제목이 몹시도 나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나 역시 사춘기 이후 마음 한 구석에 '새가 되고 싶다....'는 '새가 되어 세상을 자유롭게 날고프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왜 새가 되어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동기조차 희미하지만 어디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달고 있는 새들이 왠지 부러웠다. 그래서 좋아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도 '나는 한 마리 이름없는 새~'라는 노래이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할 때는 더욱더 이 노래와 함께 정말 새가 되고픈 간절함이 꿈틀대고는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버드 (진짜 이름은 제임스 버델인데 제일 친한 친구, 마침내 그를 날게 한, 슈거가 붙여준 이름이다)는 열두 살의 소년으로 어릴 때 그와 그의 아빠를 떠나간 엄마를 기억조차 못하고, 친구라고는 같은 학교의 슈거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여덟 살 때 학예회 발표에 쓰일 물건을 구입하러 아빠와 함께 간 옵아트 상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AP 데이비스의 <새들: 들판의 안내자>라는 책은 그후 버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니 슈거가 붙여준 애칭(?)처럼 '버드(새)'는 그의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매개체이다. 버드의 독백같은 이야기는 어김없이 <새들>과 연관되어 있다. 

자동차를 수리하며 커다란 문신을 한 아빠와 씩씩하게 살고 있지만 버드의 마음 한 구석에는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떼어내지 못할 딱지처럼 들러붙어 있었던 것일까.... 학교에서는 열등생으로 선생님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그러나, 그의 둘도 없는 친구 슈거와 함께라면 버드는 마음껏 자유롭다. 슈거 엄마의 걱정스런 눈빛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그런 슈거가 어느날 8000Km나 떨어진 브룸으로 이사를 갈거라는 말에 몹시도 충격을 받은 버드. 슈거와 함께 한 낚시며 자전거 타기, 기차와의 경주 등등 슈거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듯 정신적 충격에 휩싸인 버드는 마침내 슈거와의 이별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 자신이 블루마운틴을 찾아나선다. (물론, 처음엔 슈거와 함께 가려고 했지만...) 그가 애지중지하는 AP 데이비스의 <새들>을 보물처럼 챙겨들고......

물론, 열두 살 철없는(?) 소년 버드의 세상을 향한 비행은 어느 역에서 한바탕의 소동으로 끝이 나고, 그를 찾아나선 개리 삼촌들에 의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안타깝게도 그의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던 AP 데이비스의 <새들>을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단짝 친구 슈거와의 갑작스런 이별로 세상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것같은 막막함에 대한 버드의 대처는 오히려 그 자신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AP 데이비스와 블루마운틴을 찾아서.......

결국, AP 데이비스도 블루마운틴도 만나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느새 버드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다. 슈거와의 이별에 곧 죽을 것 같던 절망은 새로운 만남으로 벅차 오르고, 그동안 몰랐던 아빠의 끈끈한 사랑을 말이다.

돌이켜 보건대, 주인공 버드처럼 이별을 감당 못 할만큼의 친구를 가져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어느새 버드와 같은 나이의 딸아이를 키우는 여태껏 그런 상실감으로 괴로워한 기억조차 없이 무덤덤하게 살아온 나의 삶에 비해 주인공 버드의 이야기는 무모하고 철딱서니 없다기보다 오히려 부럽기만 하다. 

무엇엔가 홀딱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심취하고(친구 슈거나 새들에 푹~ 빠진 버드처럼) 또 자칫 무모할수도 있지만 새로운 것에 눈뜨는 극적인 반전이 있는 한때가 아쉽기만 하다. 

어쨋든, 버드는 잃어버린 <새들>만큼이나 소중한 깨달음을 마음 한 켠에 가득 채워넣는 소중한 비행을 한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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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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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과학이며 문명이 발달할수록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며 부정적이기보다는 염려스러운 걱정을 하던 것이 아마도 오래전부터 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각종 기계산업이 발전하고 컴퓨터며 전자 산업이 발달을 꾸준히 지향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그로 인한 환경파괴나 인간성 상실 등등의 폐해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이며 환경에 대한 부분이야 이제 일상이 되었다고 할만큼 우리나라는 물론 온세계가 글로벌시대에 다함께 푸르른 지구를 지켜내자고 외쳐대고 실천을 종용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TV출현이후 나타난 컴퓨터는 나날이 진화하여 어쩌면 TV보다 더욱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이다. 웃음과 재미를 주며 생활의 활력을 주기도 하는 TV가 마침내는 그속에 푹~ 빠져버리는 폐해로 인해 생활에 적지 않은 마비(?)증세를 초래하게 되어 일부에서는 TV추방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요즘, 그와 더불어 일방적인 시청자로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참여가 가능하여 TV와는 비교할 수 없는 능동적인 활동이 가능한 컴퓨터는 TV를 대신하여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물론,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며 새로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고 또 개인적인 일도 앉은 자리에서 자판만 눌러대고 마우스만 움직이면 뚝딱뚝딱 처리할 수 있는 그야말로 신기한 기계덩어리, 컴퓨터.

어느새 우리는 컴퓨터가 없는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집에나 한두 대쯤은 마련해 놓고 있는 컴퓨터가 생활의 필수품으로 어느새 은근슬쩍 자리를 확보한 셈이다. 아이들에게는 각종 흥미진진한 게임과 학습까지도 할 수 있고, 부모들에게는 사회와 세계의 소식들을 챙겨볼 수 있고 각종 은행 업무며 온라인상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컴퓨터로 생겨나는 새로운 인간관계. 각종 동호회나 카페, 클럽 등등을 통해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도 몇줄의 글로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특별한 관계를 맺는 정말 간편한 매개체가 바로 컴퓨터. 그러다보니 컴퓨터를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자신을 만들기고 하고 또 잊고 있었던,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과 만나기도 한다. 물론, 평범한 보통사람들에게보다는 연예인이나 각종 운동선수들, 정치가, 예술가 등등 대중적인 인물들의 경우 말이다.

그로 인한 결과,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 했던가.....컴퓨터 화면이 보여주는 것을 진실이라 믿고 또는 그렇게 동조(?)해간 결과 어느 스타는 목숨을 끊기도 하고 또 진실공방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야말로 하루도 잠잠할 날없이 벌어지는 컴퓨터로 인한 새로운 인간사이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은 그래서인지 그 내용이 몹시도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악플'이라는 제목조차 컴퓨터를 불쑥 떠올리게 하는 걸보면 그만큼 컴퓨터는 이제 우리에게 일상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트루먼 중학교 3학년들의 소동과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 내용이 담고 있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교내 신문인 <트루먼의 소리>에 편집장으로 학교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는 학교가 다루어야 할 문제에 대해 진실을 담고팠던 제이비는 편협한(언제나 그렇듯 일상적인, 좋게 말해 긍정적인..) 기사를 고집하는 담당 선생님에게 항의의 뜻으로 편집장을 그만두고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이자 절친한 동네친구,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아무르와 아무도 모르게(물론 둘만이 아는) <트루먼의 진실>이라는 홈페이지의 문을 연다.

그들이 <트루먼의 진실> 운영을 아무도 모르게 한 이유중 하나는 그들이 학교에서 그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이른바 '최하층'에 속해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최하층인 그들이 만든 홈페이지가 그다지 관심을 얻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철저히 비밀에 붙이기로 하고 트루먼 중학교의 진실이 그들의 홈페이지에서 논의되기를 절실히 기대하며 차근차근 그리고 은밀하게 아이들 사이에 <트루먼의 진실>을 퍼뜨려나간다.

그야말로 자신들의 학교인 트루먼 중학교 곳곳에 숨어 있는 문제들, 예를 들면 학생들은 북쪽 계단을 이용할 수 없다라거나 3개월에 샤워실을 최대 10회만 쓸 수 있다라는 엉터리같은 학교 규정과 같은 것들에 대해 진솔한 의견을 나누는 장場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 <트루먼의 진실>을 열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지극히 형식적이고 엉터리같은 <트루먼의 소리>에 반발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트루먼의 진실>의 은밀한 공동 운영자인 제이비와 아무르는 누군가가 올린 게시물로 예기치 못한 문제에 부딪치게 되지만(한때 그들과 절친했던 초등학교때 친구 릴리에 대한 비방이 담긴 게시물로), 그들이 정한 규정과 판단(?)으로 게시물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어쩌면 애초부터 '통제'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일파만파 커져나간다.

이야기의 결말은 다행스럽게도 모두에게 좋은 쪽으로 끝이 나지만, <트루먼의 진실>을 통해 어느새 사회 문제의 하나로까지 발전(?)된 인터넷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또 얻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이에게는 누구에 대한 분풀이를 하기도 하고 또 숨기고 싶었던 자신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폭로되어질 수 있다는 것 등등이 <트루먼의 진실>을 통해 일차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보면 애초 자신들의 관심(마음)과는 다른 학교 신문에 항의하며 진실을 담겠다며 만든 <트루먼의 진실>은 어느새 제이비와 아무르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한 욕망이 잠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되도록 많은 학교 학생들의 방문과 관심 그리고 참여를 기대하며, 자신들이 만든 <트루먼의 진실>이 그야말로 옳은 것이며 학생들의 대단한 관심을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그들의 숨겨진 욕심일 것이다. 제이비와 아무르가 초반에 <트루먼의 진실>을 아이들에게 퍼뜨리고 또 방문자 수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 등등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닐까.......

또,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는 좀더 심각하게 자신의 행동이나 그로 인한 상대방의 입장 등에 대한 고민도 그다지 많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린시절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준 릴리에게 복수하듯 숨기고픈 릴리의 과거모습이 담긴 사진이며 가짜 릴리의 카페까지 만든 트레버의 행동이나 갑작스레 드러난 릴리의 과거로 당황한 헤일리 등이 만든 <안티 릴리 카페>도 역시 그렇다.

그야말로, 순수한 의도로 시작된 10대 아이들의 <트루먼의 진실>은 예기치 못한 사이버 폭력의 폐해와 또 다른 잔인성을 보여준다.

앞으로, 점점 더 진화하는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사이버 공간 속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의 아이들이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닌 사이버 사회에서 사이버 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또 하나의 미래에 대해 제대로 생각케 하는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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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동문선 고전을 만나는 기쁨 1
심후섭 엮음, 권문희 그림 / 처음주니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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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주니어의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동문선'이라 하여 아이동童이 먼저 떠올라 당연히 아이들을 위한 글모음집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동문선'은 아이동童이 아닌 동녘동東으로 동국東國, 즉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긴 글 가운데 뛰어난 것을 가려 뽑아 모은 문집이라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 동문선은 조선 성종의 왕명으로 서거정과 양성지 등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문인을 포함하여 모두 500여 선비의 4천3백여 편 작품을 154권에 담아놓은 것으로 글의 종류도 격문, 제문, 시, 기록문, 일기, 기행문, 상소문, 외교 문서, 재판 판결문, 비문, 책의 머리말 등등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진정으로 귀한 우리 선조들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작품이라는 생각과 함께 모처럼 만나는 우리의 고전이라는 생각에 왠지모를 두근거림조차 느끼게 하였다. 

첫 작품은 신라시대의 학자로 교과서를 통해서도 익숙한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을 풀어놓은 것으로 최치원이 당나라에 있던 시절 난을 일으킨 황소를 치기 위해 지은 격문으로, 여태껏 이름만 알고 있던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의 내용을 읽으니 그야말로 마음이 새로웠다.

고려말 공민왕의 정치개혁에 참여하였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새로운 정치부패를 조장한 신돈의 횡포을 용감하게 탄핵한 문신 이존오의 상소문은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의 올곧은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규보, 이색, 정도전, 하륜, 변계량, 김종직 등 국사책의 한 줄 이름으로만 만났던 인물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손수 지은 글들을 만나니 그들의 새로운 면을 대하는듯 반갑다.

더구나 요즘 서양의 고전을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교양삼아 읽히고자 하는 분위기가 한창인데, 우리 조상들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우리 고전과 만나니 더욱 반갑기만 하다.

한 가지, 원문(한문으로 된)도 함께 실었더라면 조상들의 글을 좀더 가까이 느껴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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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 선덕 여왕을 꿈꾸다 푸른도서관 27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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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얼마 되지 않는 오랜 역사의 흔적 한 자락으로 그 시대를 짐작코자 하는 또는 그러한 노력이 담긴 책들을 읽으면 새삼스런 기쁨을 맛보고는 한다. 동시에 그런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작가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감사와 박수를 또한 보낸다. 

이 이야기 역시 <삼국유사>에 담긴 두 줄의 짧은 역사적 기록과 더불어 '지귀 설화'라는 역사의 흔적으로 탄생된 이야기였다. '지귀 설화'는 이 이야기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된 설화이다.^^;;

이야기 자체에 대한 재미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못 궁금해 하던 역사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하여 책장이 휘리릭~ 잘도 넘어간다. 그것은 다름아닌 신라는 왜 당나라의 힘을 빌어 삼국을 통일해야만 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것이었다.

차라리,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더라면....하는 아쉬움과 함께 왜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였을까? 하는 오랜 역사에 대한 의문과 반감이 문득문득 밀려오고는 하였었다.

철없이 국사를 배울 때만해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부분으로만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신라의 삼국통일로 인해 득보다는 실이 많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움에 괜한 원망이 치밀어 오르고는 하였다.

왜 삼국의 통일을 기상도 드높았던 고구려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도 아니었다면, 차라리 발해라도 대신했더라면.....하는 안타까움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화랑 가진과 선덕여왕 그리고 활리역 역졸 지귀, 세 인물이 엮어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틋함보다도 당시 신라의 위기와 선덕여왕의 나름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전개가 나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신라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고구려와 백제를 스스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던 당시 신라의 편치 않았을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평생을 여왕으로 고구려와 백제에 대치하여 신라를 통치하였던 선덕. 그녀 앞에 나타난 어린 가진으로 인해 처음으로 느끼는 가슴속의 통증이 참 가슴 아프게 전해왔다. 실제 선덕여왕은 과연 어떠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개인적으로, <지귀, 선덕여왕을 꿈꾸다>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지귀가 선덕여왕을 향한 마음은 그다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진을 꿈꾸는 선덕여왕의 마음이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오히려 지귀가 꿈꾼 것은 선덕여왕이 아닌 그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쩔 수 없이 화랑 가진의 낭도가 되어야 했던, 결국엔 목탑과 함께 불꽃속으로 사라진 지귀가 과연 선덕여왕을 꿈꾸었을까...하는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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