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덴티티 경제학 - 정체성이 직업.소득.행복을 결정한다
조지 애커로프 & 레이첼 크렌턴 지음, 안기순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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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를 거의 보지않는 제가 이례적으로 < 시크릿 가든 >을 본방사수까지 하면서 집중해서 본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드라마 속에서 무척이나 직접적으로 그려지는 재벌 등 상류층의 사고와 행동 양식이 상당히 흥미로왔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현재의 부를 향유하는 데에만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또는 장래에 물려받을 부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소양, 즉,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오히려 부러움을 살 만큼의 감식안과 능력을 갖추고 최신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일반인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는 것이 현실의 상류층과 부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네가 이런 안목이나 가지라고 내가 10살 때부터 미학 공부를 시켰는 줄 아니?” 같은 대사가 단적인 예이죠.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계층 간의 구조와 갈등이 갈수록 고착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경제적 부는 단순히 경제적 이득만으로는 획득하기도 어렵고, 지속적으로 누리기는 더더욱 힘든 것이 후기 산업 자본주의를 넘어 IT와 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신경제 체계로 접어든 21세기 자본주의의 현상인 것입니다. 

 

 

조지 애커로트와 레이첼 크레턴이 쓴 [ 아이덴티티 경제학 ] 은 개인의 경제 활동이 20세기 초의 ‘호모 이코노미쿠스’ 개념이 이상적으로 상정한 것처럼 순수하게 경제적 이익만을 기준점으로 삼아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제적 행동 이면에는 그러한 행동과 판단을 유발시키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존재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각 개인들의 현재의 경제적 활동과 상태 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경제적 이력과 미래의 경제적 전망도 이러한 경제 외적인 환경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그것이 현재의 경제적 선택과 장래의 경제적 위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정체성, 즉, 아이덴티티가 그 사람의 경제적 선택과 지위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파악하고, 이러한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매커니즘으로 교육과 조직, 성과 인종을 들고, 그러한 정체성의 강요와 고착된 이미지가 조장하는 결과를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에 미치는 정체성의 의미와 그 매커니즘의 설명에는 충분한 분량과 내용을 할애하고 있는 데 비해, 그러한 정체성의 강요와 고착을 어떻게 하면 타파하거나 경제적 활동과 연계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한 고찰은 상대적으로 전망 제시가 부족하고 구체적이지도 못한 편인 점이 다소 아쉽습니다.  


  

 

최근 경제학의 흐름은 수치 경제학의 단순한 인과론적 분석을 넘어 행동 경제학적인 시각으로 사회와 조직, 각 개인의 활동과 선택을 분석하는 것이 대세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도 개인의 경제적 상황과 선택, 그리고 그 결과는 단순하게 각 개인의 판단과 선택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고, 그 생각과 행동의 배후에 깔려있는 주입되고 고착된 정체성에 핵심적인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법 시험과 외무 고시의 폐지, 전문 대학원 제도 등 우리나라도 이제는 ‘가난해도 공부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사회적 부와 권력이 극단적으로 양분화되며 고착되는 상태로 굳어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본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정체성을 주입하고 강요하는 매커니즘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것은 그러한 고착화된 구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첫 걸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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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코요테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4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4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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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전체에서의 순서로 본다면 4번째 작품이고, 국내에 출간된 작품들 중에서는 6번째로 발간된 책이지만, 순수하게 내용 면에서 본다면 [ 라스트 코요테 The Last Coyote ] 는 현대 미국 스릴러계의 대가 마이클 코넬리의 대표적인 작품인 해리 보슈 Harry Bosch 시리즈의 원점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1992년에 마이클 코넬리의 작가 데뷔작이자 시리즈의 첫 작품인 [ 블랙 에코 ] 가 출간된 지 3년이 지난 1995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이 작품을 통해 할리우드 경찰서의 터프한 형사 해리 보슈의 출생과 어린 시절, 그리고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비로소 본격적으로 밝혀지고, 그것이 그대로 이 작품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LA 지진으로 집이 붕괴되어 철거와 퇴거 통보를 받게 되고, 애인마저 곁을 떠나버린 데다가 상관을 폭행한 사건으로 인해 경찰에서도 정직된 상태인 해리 보슈는 이 기회에 그가 고아원에 있던 시절인 1961년에 발생했고, 아직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는 자신의 어머니인 마저리 로우의 살해 사건을 직접 조사해 보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자 초등 수사에서부터 부실함이 많았고, 이후의 수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대충 종결된 흔적이 역력하며, 결정적으로 수사 기록의 중요한 부분이 누군가에 의해 소실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강한 의혹을 느낀 해리 보슈가 사건 기록을 샅샅이 뒤져보던 중 당시 LA 지방 검사였던 아노 콘클린이 이 사건과 연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사건 당시에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와 당시 어머니의 친구, 콘클린과 그 주변 인물들을 차례로 조사해 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단순한 섹스 살인마나 연쇄살인마의 범행으로 처리되었던 어머니의 죽음의 뒤에 숨겨져 잇는 복잡하고 어두운 내막을 밝혀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책상물림 상사와의 격한 대립, 겉치례와 여론의 질타에만 민감한 경찰의 행정 조직이나 기회주의적인 동료 경찰들과의 불화, 권력자와 부자들에 대한 혐오감 등이 표출되면서 하드보일드 형사물의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해리 보슈의 이미지가 이 작품에서 원형적인 모습으로 조형됩니다.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과정을 통해 해리 보슈가 외롭게 홀로 살면서 어둡고 거친 성격이 된 근본적인 원인을 알기 위한 서브 플롯은 그를 단순한 살해당한 매춘부의 고아원 출신 아들에서 전도가 양양한 검사가 자신의 모든 사회적 지위와 명예마저 버리고 선택했을 정도로 매력있는 여성의 아들로 그려내고, 자신의 아들을 고아원에서 데려나오기 위한 강렬한 모정이 사실상 이 모든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는 설명으로 그의 어머니의 죽음을 숭고한 경지로까지 끌어 올립니다.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에서 말한 것처럼 출생의 불분명함과 어린 시절의 고초가 이후 숭고한 부모의 발견으로 반전되면서 영웅의 필수 조건이 충족되는 것처럼, 이 책에서 밝혀진 사실들은 이후 해리 보슈의 신화화에 결정적인 밑받침이 될 것이 분명하므로, 이 작품은 해리 보슈 사가의 원점이자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이클 코넬리는 아마 이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싶었겠지만,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무명 작가로써는 일단 출판사와 독자들의 눈길을 잡아 끌 수 있는 강렬한 사건과 이미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데뷔작인 [ 블랙 에코 ] 에서부터 [ 블랙 아이스 ], [ 콘크리트 블론드 ] 등의 작품들에서 하드보일드 형사물에 필수적인 요소인 엽기적인 연쇄 살인마를 등장시켜 해리 보슈와의 대결로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높였을 것이고, 세 작품의 연이은 성공으로 자신감을 가지게 된 작가는 해리 보슈 시리즈를 장기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해리 보슈의 내력을 본격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해리 보슈의 비극적인 가정사와 어린 시절의 숨겨졌던 진실을 그려냄으로써 해리 보슈의 내면과 심층심리의 근원을 설명하고 일정 부분 신화화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쓰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소설은 이러한 목적에만 치우치지 않고 30여년 전에 발생했던 사건의 복잡한 전개 과정과 의외의 동기, 다면적인 추적 과정, 현재 시점으로 그려지는 용의자들과의 추격전과 격투, 마지막의 뜻밖의 반전 같은 스릴러 소설의 오락적인 측면도 매우 탁월하게 그려내어,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는 재미도 만끽시킵니다.


제목인 [ 라스트 코요테 ] 는 [ 블랙 에코 ] 에서부터 해리 보슈의 자아의 투영처럼 종종 등장했지만, LA 지진 이후 종적을 감추었다가 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홀연히 해리 보슈의 눈 앞에 다시 나타났다 사라진 한 마리의 코요테의 모습를 통해 외롭게 투쟁하는 경찰인 해리 보슈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메타포적인 존재입니다.


책 맨 뒤쪽에 ‘누구보다도 해리 보슈를 사랑했던 한 리뷰어를 추모하며’라는 눈길을 끄는 헌사는 얼마 전에 타계한 장르 소설에 많은 애정을 보였던 물만두님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어서 애뜻한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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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추락/머니랩>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끝나지 않은 추락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츠의 세계경제 분석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장경덕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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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최근에 벌어진 일이고 아직까지 종결은 커녕 그 여파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지 조차 않았다는 주장이 다수설임에도 불구하고, 2년 전인 2008년에 발생한 미국발 금융 공황은 그 규모와 향후 예상되는 파장의 범위로 보아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 공황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1929년의 대공황이 현재까지도 확실한 원인이나 전개 과정이 밝혀지지 않은 것과는 달리 이번 금융 공황은 외견상으로는 발생 원인과 전개의 매커니즘이 어느정도 밝혀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표면상 이번 금융 공황의 시발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량 모기지 채권을 통해 증폭되어 금융권과 증권사로 비화된 것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나타난 발생과 전개 과정일 뿐, 그러한 경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과 배경이 되는 경제 이론과 사조는 아직 대중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조지프 E. 스티글리츠 교수의 주장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폴 그루그먼과 함께 미국 경제학계의 양심으로 여겨지고 있는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번 금융 대공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시카고 학파가 주창하고 레이건-부시의 보수우익 공화당에 의해 실행되어 온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이므로, 그들의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궤변이며 극소수 최상층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착취 매커니즘임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파합니다.

정치세력에 의해 실행된 신자유주의 경제 체계가 내세우고 있는 주주가치 이론과 그에 상응되는 CEO들의 천문학적인 인센티브가 부실 자산인 모기지 대출금을 채권화하여 유통시켜 리스크를 분산시킴으로써 재무재표상 이익을 낸 것처럼 보이게 만들도록 유혹했다고 지적합니다.

문제의 발화점이 된 모기지 대출금도 클링턴 시대에 지속된 고성장이 미국 사회 전체에 과도한 자본을 유통시켰고, 넘쳐나는 여유 자금으로 인해 촉발된 신용 부풀림과 지나치게 오래 지속된 연방 준비 제도의 저금리 기조가 집값이 실제 가치 이상으로 부풀려졌다가, 부쉬 정부가 들어서면서 은행에 엄청난 자산을 예치해 놓은 계층의 이익을 위해 급격하게 올린 금리 상승에 상반하여 저소득층들이 엄청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모기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은행이나 채권 회사에 차압당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부실화된 모기지 대출이라는 화약들을 모아 거대한 폭탄으로 만든 이론이 바로 ‘금융공학’인데, 각 은행과 채권 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모기지 대출들을 채권으로 변형시킨 모기지 채권을 다시 이리저리 쪼개고 합쳐서 원래의 구성이나 형태를 알 수 없도록 만든 뒤 우량 채권으로 둔갑시키고, 이것을 연기금이나 기관에 팔아넘김으로써 엄청난 부실 자산을 장부상으로는 깨끗하게 정리하거나 오리혀 우량 자산으로 바꿔놓은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가 자랑하는 금융공학의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화려한 주장과 금융공학의 교묘한 이론에 은행과 채권회사, 증권 회사들이 스스로 현혹되어, 자신들이 문제의 모기지 채권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위험성은 고사하고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모기지 채권의 양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모기지 채권의 부실화가 드러나자 천문학적인 모기지 채권을 보유하고 있던 패니매이와 프레디맥을 시작으로 AIG와 리먼 브러더스까지의 거대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엄청난 구제 금융을 받는 댓가로 사실상 국유화가 되었는데, 스티글리츠 교수가 금융 공황의 근본적인 원인 파악에 못지않게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은 처리 과정에서의 문제점들입니다.

금융 대공황 과정을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 내부의 관점에서 바라 본 [ 살아있는 역사, 버넹키와 금융 전쟁 ]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부시로부터 금융 공황에 대처하기 위한 모든 전권을 위임받은 버넹키와 연방 준비 제도가 금융 공황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천문학적인 구제 금융이었습니다.

자금 경색에 빠진 거대 금융 회사와 기업들의 도산 위기를 막기 위해 막대한 구제 금융을 제공한다는 방식 자체는 납득할 수 있지만, 문제는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기준과 시기, 방식들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분별한 구제 금융의 남발은 이번 금융 공황의 근본적인 원인인 월스트리트 은행가와 자본가들의 도덕적 해이를 오히려 부추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오바마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사태는 다소 희망적이 되었지만, 불행히도 미국의 정치와 사회, 언론 구조상 오바마 역시 그러한 잘못을 과감하게 바로 잡기는 힘들고, 잘못된 구제 금융의 지원과 예상되는 후폭풍에 대한 대비도 여전히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 제기와 함께 자신을 비롯한 다보스 포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의 폐기와 미국과 전세계의 경제를 건전한 방향으로 부흥시키기 위한 새로운 경제학 체계의 수립을 주창합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모기지 채권과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금융공학이 바로 미국을 강도로 만드는 거대한 사기라고 비난하고, 모든 경제적, 정치적 규제의 철폐를 주장한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 이론이 결국은 이러한 한계를 모를 만큼 탐욕스럽고 무분별한 ‘미국식 막장 자본주의’를 만들었다고 비판하며, 이러한 파국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규제 철폐가 아닌 정부의 적극적이고 적절한 규제와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번 금융 공황에서 보여졌듯이 이미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으로 묶인 지구 전체의 경제를 위해 이미 신뢰를 잃은 미국식 경제가 아닌 새로운 경제 이론을 수립하고 적용해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장의 자유와 자율이라는 전근대적인 억지를 여전히 내세우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과 정부의 능동적인 개입과 조정을 요구하는 케인즈 학파의 흐름을 잇는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먼 등 양심적인 경제학자 진영의 대결은 결국 거시 경제학과 통화 정책, 금융론을 넘어 사상 전쟁이 될 것이며, 혁신경제학을 위한 이러한 사투가 지금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경제학은 결국 사회와 개인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신자유주의 이론의 결과로 극도의 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 빈부양극화가 발생한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와 개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고, 도덕적이고 가치있는 것을 보호하고, 전세계를 글로벌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기조로 한 새로운 경제 이론과 체계를 수립하고 적용시켜 나아가야 깊게 파열된 자본주의 경제 체계가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국발 금융 대공황이 전세계를 휩쓴 지 벌써 2년 여가 지났지만, 아직도 그 끝은 보이지 않고, 다가올 거대한 여파에 대한 예측과 대비책도 불분명한 상태입니다. 금융 대공황의 원인과 전개 과정에 대한 분석과 비판도 경제적인 매커니즘에만 한정되어 있으며, 근본적인 사상적, 이념적 요소들은 여전히 상존해 있음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발간된 스티글리츠 교수의 [ 끝나지 않은 추락 ] 은 금융 대공황으로 가시화된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의 허황함과 위험성을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공박하고, 오바마 정권의 대응책의 불안함도 더불어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적에서 그치지 않고 극우보수 정권이 퍼트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이념과 이론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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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추락/머니랩>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머니랩 - 돈이 벌리는 경제실험실
케이윳 첸 & 마리나 크라코브스키 지음, 이영래 옮김 / 타임비즈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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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가 일찌감치 날카롭게 통찰하고 혁파해 낸 것처럼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인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의 차이’와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자본주의가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이루게 된 가장 핵심적인 동인이자 성공 비결이지만,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의 모든 구조적인 문제점과 폐해의 원인이 집적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생산물이 실제로 소유자에게 주는 효용 가치(사용 가치)와 소유자가 그것을 구입하기 위해 치루어야 하는 비용인 교환 가치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은 일견 부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차이에서 생겨나는 부가가치가 생산자에게 생산 의욕을 부여하고 생산 활동을 촉진시키는 무형의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데에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그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인식하는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 사이에 자본주의 체제가 통상적으로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있을 때에는 독점금지법에서부터 사기죄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규제와 심리적인 거부감을 낳게 되는데, 그러한 규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에는 사회 전체적으로 빈부격차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해지는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법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저항을 발생시킬 정도만큼은 아니지만, 광고나 언론, 소설 네크워크 등을 이용한 여론 조작을 통해 소비자로 하여금 특정 상품의 실제 가치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정당화시키는 경우들입니다. 특히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 상품의 실제 효용과 가격 사이에 소비자가 통상적으로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제조자에게는 기대 이상의 이익을, 소비자에게는 기대에 못미치는 손실을 안겨주게 되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현대 마케팅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소비자 심리학이 존재 가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소비자 심리학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행동 경제학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하였는데, [ 머니랩 ] 은 이 분야에서도 가장 첨단인 실험 경제학을 다룬 책입니다. 
 

 

‘돈(Money) + 실험실(Laboratory)’의 합성어인 [ 머니랩 ]‘돈이 움직이는 방식’에 관련하여 사람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심리와 그 과정, 돈을 둘러싼 거래와 계약, 협상 등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현실과 거의 유사한 실험 환경 아래에서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얻어 유의미한 이론을 내는 학문인 실험경제학이 파악한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비자들이 내리는 경제 활동과 심리의 흥미로운 현상들을 들려줍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경제 실험들은 사람들이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으로 소비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며 비논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와 주변, 때로는 생산자와 판매자에게도 예기치 않은 손해나 이익을 입히게 됨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리스트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공정함과 형평성을 단순한 이익보다 감정적으로 더 중요시하며, 그 결과 상호주의나 호혜주의에 감정적으로 더 이끌리는 경향을 보이곤 합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장래 경영자가 될 MBA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대상자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을 내리기 일쑤이고, 평판이나 신뢰와 같은 비수치적인 요소들이 거래에서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보다도 훨씬 더 많으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최후 통첩 실험’, ‘독재자 실험’, ‘앵커 효과’ 등의 간단하지만 의미심장한 여러 실험들을 통해 사람들의 이러한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인 심리들을 파악, 분석해 내고, 그것들을 통해 얻은 통찰력을 토대로 사람들과의 거래나 협상, 계약에서 게임의 규칙(시스템)을 내게 유리하게 만들고 상대가 악용하지 못하게 하라거나 남들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함으로써 거래를 유리하게 이끌고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라고 조언합니다.

위에 요약해 놓은 이 책의 주요 논점들과 결론만을 단순하게 살펴보면 일견 당연하고 단순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책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 보면 각 장마다의 실험에서 상정하는 간결하게 정돈된 실험 조건들과 결과로 나타나는 뜻밖의 행동들, 거기에서 도출되는 경제학적인 논리들의 날카로움과 정연함, 참신함에 놀라게 되고, 실험 경제학이 보여주는 통찰력과 설득력에 찬탄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이론과 주장들의 바탕에 깔려있는 인간에 대한 신뢰에 깊은 공감을 느끼기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경제적인 이익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서구 자본주의가 300년이 지난 이제서야 비로소 고대 동양의 성현들과 거상들이 설파해 온 ‘사람을 대하는 도리’와 ‘장사(상인)의 도의’에 도달했다는 것인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를 먹이삼아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의 망령이 그 어두운 그림자를 노골적으로 전세계 경제계에 드리우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이 책이 보여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할 때로 보여집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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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교과서 - 시대가 변할수록 빛을 발하는 불멸의 경영법칙
고미야 가즈요시 지음, 현창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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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제가 속해있는 한 동호회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평일 오후에 있었던 오프 모임에서 근무 중에 어렵게 빠져 나왔다고 투덜대던 한 회원이 마침 옆에 있는 다른 회원에게 ‘직장에 얽매여 있는 노예 신세가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자영업자가 부럽다’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분이 ‘월말만 다가오면 은행에 찾아가서 어음 할인을 부탁하거나 대출을 구걸해야 하는 고통을 아느냐? 그리고 그걸 매 달마다 되풀이해야 하는 답답함을?’이라고 날카롭게 일갈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최근에 아파트의 다른 주민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등 뒤에 큰 회사가 버티고 있어서 모든 일을 쉽게 할 수 있고, 어지간히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해고당하거나 감봉당하는 일은 없는’ 직장인들의 무사안일하고 나이브함에 새삼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매 순간마다 자신의 판단이나 능력에 따라 자신은 물론 동료와 부하들의 생계 전체가 달려있는’ 개인 사업자와 자영업자의 위기 의식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안이한 사고와 행동 방식에 말입니다.


매일 밤 잠을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서 일어나 식은 땀을 흘려야 하는 이러한 개인 사업자와 자영업자들의 절박하고 피말리는 고통을 [ 사장의 자격 ]에서는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고 책임져주지도 않는 이 압박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라고 말하며 ‘이를 악물고 견뎌라’고 밖에 말해줄 수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개인 사업자나 자영업자들이 ‘사장님’이라고 불리는 허울좋은 호칭 속에는 이러한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고통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정해진 대로 공부해 왔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현재와 장래가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해 온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보호의 장벽을 벗어나 자신의 선택과 책임만으로 살아가기 위해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택한 이후부터는 과거와는 다른 생각과 행동 양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정규 교육 과정을 밟지않고 검정 고시로 학력을 취득하는 사람에게 극단적일 만큼 정보와 배려가 적은 것처럼,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선택과는 다른 창업과 경영에 대한 마음가짐과 기본적인 자질 함양에 대해 알려주는 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자기 사업의 창업이나 운영에 대한 책과 조언서들이 넘쳐나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성공한 대기업 경영자들의 자서전과 성공담만이 넘쳐나는 우리나라 서점에서 [ 사장의 교과서 ]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이 책은 개인 사업이나 자영업을 시작하거나 이미 하고 있는 ‘사장님’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정말 소중한 책입니다.



책의 내용은 경영자로써 일과 경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과 자세의 확립에서부터 시작하여 회사의 근간이 되는 비전과 이념의 확립, 경영 전략 수립의 기본적인 원칙들 같은 회사와 사업의 기본적인 틀을 짜는 법을 먼저 말한 후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원칙을 마케팅을 통해 구체화하는 법, 회사 운영의 기술적 근간이 되는 회계와 재무의 본질을 파악하는 법, 인적 자원을 관리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법 등의 회사 운영의 토대가 되는 기술적인 부분들을 하나씩 언급한 후 조직의 리더로써 갑추어야 할 리더십과 리더로써의 자세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취직을 하지않고 곧바로 개인 사업을 시작하거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 모두 사업을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하지, 사업이 회사를 다니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이 사실입니다. 자신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이나 시작한 후에 자신의 기업 이념이나 비전을 확립하거나 자신만의 경영 전략이나 마케팅 원칙을 수립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고, 회계나 재무, 총무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아주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인,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조직의 리더라는 인식을 갖는 경우는 놀랄만큼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는 어떻게 보면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물론, 사업을 운영한 지 한참이 지난 시점에서도 제대로 인식하거나 의식하고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체계적으로 조언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이 책이 개인 사업자나 자영업자들에게 단순한 참고 자료가 아니라 사업을 시작하기 전이나 이미 ‘사장님’이라고 불리고 있는 시점에서 반드시 읽어두어야 할 필수적인 ‘사장학 교과서’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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