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코요테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4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4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리즈 전체에서의 순서로 본다면 4번째 작품이고, 국내에 출간된 작품들 중에서는 6번째로 발간된 책이지만, 순수하게 내용 면에서 본다면 [ 라스트 코요테 The Last Coyote ] 는 현대 미국 스릴러계의 대가 마이클 코넬리의 대표적인 작품인 해리 보슈 Harry Bosch 시리즈의 원점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1992년에 마이클 코넬리의 작가 데뷔작이자 시리즈의 첫 작품인 [ 블랙 에코 ] 가 출간된 지 3년이 지난 1995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이 작품을 통해 할리우드 경찰서의 터프한 형사 해리 보슈의 출생과 어린 시절, 그리고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비로소 본격적으로 밝혀지고, 그것이 그대로 이 작품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LA 지진으로 집이 붕괴되어 철거와 퇴거 통보를 받게 되고, 애인마저 곁을 떠나버린 데다가 상관을 폭행한 사건으로 인해 경찰에서도 정직된 상태인 해리 보슈는 이 기회에 그가 고아원에 있던 시절인 1961년에 발생했고, 아직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는 자신의 어머니인 마저리 로우의 살해 사건을 직접 조사해 보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자 초등 수사에서부터 부실함이 많았고, 이후의 수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대충 종결된 흔적이 역력하며, 결정적으로 수사 기록의 중요한 부분이 누군가에 의해 소실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강한 의혹을 느낀 해리 보슈가 사건 기록을 샅샅이 뒤져보던 중 당시 LA 지방 검사였던 아노 콘클린이 이 사건과 연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사건 당시에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와 당시 어머니의 친구, 콘클린과 그 주변 인물들을 차례로 조사해 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단순한 섹스 살인마나 연쇄살인마의 범행으로 처리되었던 어머니의 죽음의 뒤에 숨겨져 잇는 복잡하고 어두운 내막을 밝혀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책상물림 상사와의 격한 대립, 겉치례와 여론의 질타에만 민감한 경찰의 행정 조직이나 기회주의적인 동료 경찰들과의 불화, 권력자와 부자들에 대한 혐오감 등이 표출되면서 하드보일드 형사물의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해리 보슈의 이미지가 이 작품에서 원형적인 모습으로 조형됩니다.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과정을 통해 해리 보슈가 외롭게 홀로 살면서 어둡고 거친 성격이 된 근본적인 원인을 알기 위한 서브 플롯은 그를 단순한 살해당한 매춘부의 고아원 출신 아들에서 전도가 양양한 검사가 자신의 모든 사회적 지위와 명예마저 버리고 선택했을 정도로 매력있는 여성의 아들로 그려내고, 자신의 아들을 고아원에서 데려나오기 위한 강렬한 모정이 사실상 이 모든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는 설명으로 그의 어머니의 죽음을 숭고한 경지로까지 끌어 올립니다.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에서 말한 것처럼 출생의 불분명함과 어린 시절의 고초가 이후 숭고한 부모의 발견으로 반전되면서 영웅의 필수 조건이 충족되는 것처럼, 이 책에서 밝혀진 사실들은 이후 해리 보슈의 신화화에 결정적인 밑받침이 될 것이 분명하므로, 이 작품은 해리 보슈 사가의 원점이자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이클 코넬리는 아마 이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싶었겠지만,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무명 작가로써는 일단 출판사와 독자들의 눈길을 잡아 끌 수 있는 강렬한 사건과 이미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데뷔작인 [ 블랙 에코 ] 에서부터 [ 블랙 아이스 ], [ 콘크리트 블론드 ] 등의 작품들에서 하드보일드 형사물에 필수적인 요소인 엽기적인 연쇄 살인마를 등장시켜 해리 보슈와의 대결로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높였을 것이고, 세 작품의 연이은 성공으로 자신감을 가지게 된 작가는 해리 보슈 시리즈를 장기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해리 보슈의 내력을 본격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해리 보슈의 비극적인 가정사와 어린 시절의 숨겨졌던 진실을 그려냄으로써 해리 보슈의 내면과 심층심리의 근원을 설명하고 일정 부분 신화화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쓰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소설은 이러한 목적에만 치우치지 않고 30여년 전에 발생했던 사건의 복잡한 전개 과정과 의외의 동기, 다면적인 추적 과정, 현재 시점으로 그려지는 용의자들과의 추격전과 격투, 마지막의 뜻밖의 반전 같은 스릴러 소설의 오락적인 측면도 매우 탁월하게 그려내어,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는 재미도 만끽시킵니다.


제목인 [ 라스트 코요테 ] 는 [ 블랙 에코 ] 에서부터 해리 보슈의 자아의 투영처럼 종종 등장했지만, LA 지진 이후 종적을 감추었다가 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홀연히 해리 보슈의 눈 앞에 다시 나타났다 사라진 한 마리의 코요테의 모습를 통해 외롭게 투쟁하는 경찰인 해리 보슈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메타포적인 존재입니다.


책 맨 뒤쪽에 ‘누구보다도 해리 보슈를 사랑했던 한 리뷰어를 추모하며’라는 눈길을 끄는 헌사는 얼마 전에 타계한 장르 소설에 많은 애정을 보였던 물만두님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어서 애뜻한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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