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덴티티 경제학 - 정체성이 직업.소득.행복을 결정한다
조지 애커로프 & 레이첼 크렌턴 지음, 안기순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TV 드라마를 거의 보지않는 제가 이례적으로 < 시크릿 가든 >을 본방사수까지 하면서 집중해서 본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드라마 속에서 무척이나 직접적으로 그려지는 재벌 등 상류층의 사고와 행동 양식이 상당히 흥미로왔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현재의 부를 향유하는 데에만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또는 장래에 물려받을 부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소양, 즉,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오히려 부러움을 살 만큼의 감식안과 능력을 갖추고 최신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일반인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는 것이 현실의 상류층과 부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네가 이런 안목이나 가지라고 내가 10살 때부터 미학 공부를 시켰는 줄 아니?” 같은 대사가 단적인 예이죠.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계층 간의 구조와 갈등이 갈수록 고착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경제적 부는 단순히 경제적 이득만으로는 획득하기도 어렵고, 지속적으로 누리기는 더더욱 힘든 것이 후기 산업 자본주의를 넘어 IT와 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신경제 체계로 접어든 21세기 자본주의의 현상인 것입니다. 

 

 

조지 애커로트와 레이첼 크레턴이 쓴 [ 아이덴티티 경제학 ] 은 개인의 경제 활동이 20세기 초의 ‘호모 이코노미쿠스’ 개념이 이상적으로 상정한 것처럼 순수하게 경제적 이익만을 기준점으로 삼아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제적 행동 이면에는 그러한 행동과 판단을 유발시키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존재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각 개인들의 현재의 경제적 활동과 상태 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경제적 이력과 미래의 경제적 전망도 이러한 경제 외적인 환경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그것이 현재의 경제적 선택과 장래의 경제적 위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정체성, 즉, 아이덴티티가 그 사람의 경제적 선택과 지위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파악하고, 이러한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매커니즘으로 교육과 조직, 성과 인종을 들고, 그러한 정체성의 강요와 고착된 이미지가 조장하는 결과를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에 미치는 정체성의 의미와 그 매커니즘의 설명에는 충분한 분량과 내용을 할애하고 있는 데 비해, 그러한 정체성의 강요와 고착을 어떻게 하면 타파하거나 경제적 활동과 연계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한 고찰은 상대적으로 전망 제시가 부족하고 구체적이지도 못한 편인 점이 다소 아쉽습니다.  


  

 

최근 경제학의 흐름은 수치 경제학의 단순한 인과론적 분석을 넘어 행동 경제학적인 시각으로 사회와 조직, 각 개인의 활동과 선택을 분석하는 것이 대세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도 개인의 경제적 상황과 선택, 그리고 그 결과는 단순하게 각 개인의 판단과 선택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고, 그 생각과 행동의 배후에 깔려있는 주입되고 고착된 정체성에 핵심적인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법 시험과 외무 고시의 폐지, 전문 대학원 제도 등 우리나라도 이제는 ‘가난해도 공부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사회적 부와 권력이 극단적으로 양분화되며 고착되는 상태로 굳어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본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정체성을 주입하고 강요하는 매커니즘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것은 그러한 고착화된 구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첫 걸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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