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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 Niche - 왜 사람들은 더 이상 주류를 좋아하지 않는가
제임스 하킨 지음, 고동홍 옮김 / 더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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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GDP를 비롯한 모든 수치가 양호하다지만 실물경기는 여전히 바닥이다. 특히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사상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가파른 물가상승, 저임금구조의 사회구조, 엄청난 자영업자의 양산등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그야말로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아무리 시장자유주의 경제라고해도 국민경제의 책임은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에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년간 우후죽순처럼 펼쳐진 대형마트의 동네상권입점은 정부의 역할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정치권에서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서민경제’다. 무엇이 서민경제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현 정권에서 내세웠던 기업프렌들리는 확실히 한국 중산층을 무너뜨렸다. 부의 쏠림에 대한 서민들의 자괴감과 박탈감은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잃게 만든다. 중산층의 두께에 따라 내수가 살아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경제정책이다. 독재정권시절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모 인사가 그래도 당시엔 중산층이 늘어났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을 들어보라. 참으로 어이가 없는 현실이다.

 

중산층의 몰락은 비단 사회구조뿐만이 아니라 경제정책에서도 수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혹 준비를 하지 않아서 피해를 보는 것일까? 과거 자영업자들은 프랜차이즈 중간관리자로 바뀌었다. 자신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으나 이젠 모든 상황이 감시를 받고 시스템에 통제된다. 동네상권의 몰락은 가속화 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차지했던 가치 또한 우리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선택에 의해 강요당할 것이다.

 

기업들은 과거 어느 시절보다 화려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무한경쟁체제에 놓인 그들의 입장을 국가적 차원에서 철저히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치’를 이러한 환경에 대한 마이너의 반란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한때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거대기업들의 몰락은 그들이 선택했던 문어발식 확장에 종지부를 찍는 희대의 사건이었다. 누구도 갭의 몰락을 예측하지 않았고 울워스의 파산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든 것을 가지려다 결국 자신이 설 땅마저 잃어버렸다. 저자는 이를 ‘틈새의 진화’라고 명명한다. 이젠 소수의 선택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니치는 틈새를 의미한다. 대중화를 추구하던 중산층의 몰락이 현실화 된 시점에서 소비자의 변화가 빠르게 자신들만의 세계로 이동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거대기업이 추구해오던 치밀한 마케팅이 더 이상 효용성이 없음을 입증한다.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기업보다는 소수의 선택을 받는 것이 훨씬 효용성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저자의 시대구분이 너무 뒤처진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구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 이들은 이미 틈새시장까지 장악할 정도로 세력을 뻗치고 있음을 간과하는 까닭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이버 공간을 주목한다. 사이버 공간은 알라딘의 마술사 지니의 요술램프 같은 곳이다. 그들은 다양하고 다변화된 상품으로 가장 쉽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빠르게 대기업에 잠식당하는 분위기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엔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의 출연이 뜸하다. 영화제작자들은 과연 그들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실례로 저예산 영화들의 성공은 영화인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들이 이를 니치 버스터라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틈새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마법은 아닐 것이다. 가장 경계해야할 부분이 닭장에 갇힌 신세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특이하고 진기한 것을 충족시키라 강조한다. 분명 과거 자영업 시대와는 구분되는 문구다. 니치는 ‘차별화’를 떠올린다. 결국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차별화만이 특별한 전략이다. 니치는 이를 세분화하고 특화시킨 또 다른 전략의 일부분이다.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마케팅을 헤지하기 위한 니치전략, 새롭게 떠오르는 경제, 문화의 아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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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정치경제학 - 하버드 케네디스쿨 및 경제학과 수업 지상중계
천진 지음, 이재훈 옮김 / 에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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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재산도 지키기 어려운 시대가 올 것인가? 상당기간 지속되는 저금리덕분에 기업들은 하루가 다르게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개인들은 그야말로 침울한 시절을 맛보고 있다. 자본주의시대에 누구를 탓할 것인가? 처음부터 공정한 게임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미 이러한 게임이 시작되었을 때 우린 현재와 같은 결과를 예견하고 있지 않았을까? 단지 자신의 경제적 성장이 이토록 쉽게 무너진다는 가정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분배에 대한 기업들의 논지는 얼음처럼 차갑다. 그런데 우린 불편해져가는 시대적 상황에 태클을 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동안 학문적인 업적만으로 존경과 존엄을 인정받았던 경제학자들이다.

 

미국위기와 함께 경제학자들의 위상은 땅에 꺼질 만큼 초라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뛰어난 정치적 입지와 인맥을 동원해 과거에 비해 월등해진 그들만의 성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위기는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선물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영특함 못지않게 개인들의 사고 또한 유연해졌다. 이미 경제학은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수량화, 계측화, 인간의 의심 많고 불특정한 삶을 통계적으로 산출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그럼에도 경제학은 스스로 진화하는 것을 거부했다. 대중이 경제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일까?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수식들이 인류의 삶에 어떤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왜 경제학을 선취해야하는 것일까?

 

‘하버드 정치경제학’은 하버드 경제학을 통해 하버드 경제학 교수들의 강의와 그들이 추구하는 경제학적 이론을 디테일하게 서술한 천진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연구원의 두 번째 저서다. 그가 전편을 통해 하버드 경제학 교수들의 원칙과 모델을 다루었다면 이번엔 외부적인 변수를 통해 본 하버드를 발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특히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유럽위기의 대응책으로 개방경제학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또한 외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미국의 불편한 의료체계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경제학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이미 한국에서도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사회 자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문화경제학이란 새로운 학문의 시작과 함께 경제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이 바뀌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사회 자본에 대한 하버드 교수들의 원칙론적인 강의는 경제학이 현재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 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저자의 하버드 정치경제학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버드 내부에서 바라본 외부적인 상황과 이를 해결해나가는 하버드 교수들의 해법을 이해하는 것은 실질적인 경제학의 해법을 풀어나간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논지를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이미 우린 언론을 통해 경제학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목도하고 있지 않는가? 저자는 특별히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린스펀은 금융위기를 어떻게 반성하고 있을까? 기울어져가는 미국의 꿈을 재 실현시킬 획기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과거와는 다른 가치관의 형성이 새롭게 변화하는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그는 데릭 복 전 하버드 총장의 행복론을 마지막으로 하버드에 대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놓는다. 경제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 완벽한 삶이 존재하지 않듯이 완벽한 경제학은 있을 수 없다. 경제학이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최고의 가치로 선택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무섭도록 저돌적인 금융 위기 속에서 경제학 또한 새로운 산고를 겪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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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일의 스캔들 - 창조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0.1% 변화 전략
민병국 지음 / 황금부엉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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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대는 병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데 놀라고 마치 관공서 같은 딱딱함에 두 번째 놀란다. 그나마 아이들을 상대하는 소아과는 덜하지만 조금만 이름 있는 병원들은 하나같이 위엄과 권위를 병원 문 앞에 세워놓은 것 같다. 좋은 인테리어와 훌륭한 시설들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관념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는 어쩔 수가 없나보다. 태어나서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아는 어느 가게보다 친숙해야할 병원이 이토록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병원 역시 영리사업이다. 엄청난 투자와 지적자본이 투여되는 사업이다 보니 그에 대한 보상심리 또한 강할 것이다. 하지만 병원은 사업이기 전에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 그 무엇보다 생명의 기본권이 우선시되는 분야인 것이다. 때론 소수의 권익을 위해 지나친 무게감을 얹기도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자신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의 생각과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누구나 번듯한 사람에게 신임이 가듯이 환자 역시 번듯한 건물을 선호한다. 아무리 뛰어난 의료진이 있더라도 낙후된 건물에 들어가기란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다. 곧 흡수될 병원이라면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임하던 민병국 교수는 2005년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장에 취임한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선뜻 병원장을 수락한 민교수의 배짱은 누가 보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민교수는 자신의 일을 좋아했지만 새로운 일을 도전해 보고 싶었다. 비록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최소한 있는 동안만큼은 기억에 남는 병원을 만들고 말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한다.

 

첫 출근, 모든 상황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완강했고 보수적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직원들의 굳어진 마음을 푸는 것이 우선순위라 여기고 병원의 개보수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여 있는 직원들의 마음은 민교수의 의견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결국 민교수의 선택은 자신이 직접 행동을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는 병원 담장을 허물고 경비실을 없애는 것을 시작으로 병원과 관련된 모든 일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일견에선 저러다 말겠지 라는 생각에 젖어 여전히 비호의적이었지만 그의 신념은 ‘나로부터 변화’ 였기에 주어진 일보다 찾아가는 길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로부터의 변화는 빠르게 직원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갔다. 병원은 예전과 같이 활기가 넘쳤고 방문하는 환자들 역시 달라진 분위기에 놀라는 눈치다. 하지만 민교수의 고민은 활력이 넘치는 병원을 넘어 환자들과 함께 가는 병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노력은 병원의 잡다한 업무를 없애고 모은 상황을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병원의 문턱이 놓은 이유는 권위적인 의사의 말투와 이해하지 못하는 필기가 한몫을 차지한다. 물리적인 치료를 위해 찾아왔지만 정신적인 치료가 환자의 안정을 찾는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그는 병원의 모든 이정표를 단순하고 알기 쉽게 만들고 고객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한다.

 

용산병원을 주도한 민교수의 변화들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환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다. 어느 병원인들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마는 정작 병원에 가면 환자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환자에 불과할 뿐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운 이들인데 대부분의 의사나 간호사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환자들과의 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단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만 병원에 가는 것은 아니다. 민교수는 모든 것을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했다. 결국 용산병원이 잘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1500일의 스캔들’ 민교수가 용산병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겪었던 변화를 기록한 책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믿었기에 지금껏 시도하지 않은 변화의 가운데 뛰어들었다. 그의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우린 인생이 확정적이라고 믿곤 한다. 자신의 경험이 우선적이라 여기고 변화를 싫어하는 이유도 불확실한 인생의 미래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서지고 파편만 남은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변화는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선택하는 방법은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기도 한다. 큰 도움도 좋지만 사소한 배려와 조그만 공감이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민교수의 0.1% 변화전략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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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속 숫자의 거짓말 - 정부와 여당, 기업, 정치가는 통계로 우리를 어떻게 속이고 있는가?
게르트 보스바흐 & 옌스 위르겐 코르프 지음, 강희진 옮김 / Gbrain(지브레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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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면 어김없이 상대후보자에 대한 비방이 시작된다. 비방의 순서도 상당히 계획적이고 전략적인데, 전략가들이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상대후보자의 지지율을 낮추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발표하는 지지율이 공정한 기관의 신뢰를 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상대는 즉시 지지율에 대한 의심을 제시하지만 대중은 이미 상황 파악이 끝난 상태다. 지지율은 마치 선거의 특별한 전략처럼 보인다. 그 내막에 대한 어떠한 추궁이나 조사도 없지만 마치 선거의 우선순위가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책이 아니라 각본된 지지율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각 후보자들이 공표하는 지지율엔 엄청난 허점과 오류가 있다.

 

최소한 한번이상은 고령화에 대비한 개인연금 부족부분에 대한 보험사의 설계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영업사원들은 숫자놀음에 익숙하다. 마치 30년 후 고객의 모습을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려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제시하는 년 수익률과 연금으로 받게 될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그들의 말을 따르면 노후문제는 완벽히 해결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들은 통계와 숫자를 읽을 줄 알뿐 장기예측에 대한 확률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또한 시간적 변수를 너무 쉽게 판단한다. 30년 전 어느 영업사원이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당신의 미래모습을 예견했다면 솔직히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개인연금은 판매사에 대한 음양이론과 통계적 수치의 오류, 무엇보다 예상하기 어려운 시간적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들만의 통계놀음에 불과하다.

 

우린 숫자의 유혹 앞에 쉽게 허물어진다. 상대의 말과 글엔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지만 유독 숫자 앞에선 고개를 끄덕인다. 숫자의 통계엔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토록 쉽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숫자엔 우리들이 믿는 어떠한 매혹적인 답도 없다. 보기 좋고 이해하기 편한 통계숫자는 그야말로 거짓말을 진실로 포장하기위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뿐이다. ‘통계 속 숫자의 거짓말’은 우리가 알던 숫자의 실체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숫자는 말이나 글과 달리 기억하기도 쉽지만 쉽게 바꿀 수 있다. 설령 잘못되더라도 통계적 계산에 대한 기준을 재편하면 그만이다. 특히 대부분의 언론보도에 등장하는 절대수치와 상대수치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순위에 따른 필연적인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숫자의 거짓말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이론이 음양이론이다. 음양이론은 현상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을 경계하고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린 대부분 장점이 부각된 포장에 관심을 갖지 이에 대한 이견을 고민하는 덴 익숙하지 않다. 좋은 현상이 있으면 좋지 않은 부분도 받아들여야 통계의 거짓말을 방어할 수 있다. 정책 관료자들이나 기업들은 음양이론의 대가들이다. 그들은 부정적이거나 단점이 될 만한 사항은 처음부터 전체비율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만들고 배포한 통계자료는 그들의 입맛에 맞을 뿐이다.

 

숫자보다 더욱 많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그림이다. 선이나 막대 혹은 입체적으로 표현한 통계치는 그 어떤 자료보다 믿음을 준다. 그렇지만 그래프는 자세히 보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리만큼 우리의 눈과 정신을 속인다. 가장 흔하게 속이는 방법이 x 축의 년도를 축소하거나 y 축의 기준점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이는 그래프가 왜 마케터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업적 요소인지를 적절하게 설명한다. 그래프는 가장 예민하고 민감한 사회적 자료를 통제하는데도 필연적으로 사용된다.

 

우린 과연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덕분에 믿음이나 신뢰라는 이름이 부각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통계를 위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마치 온 세상이 틀에 짜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통계는 대중을 위한 자료라기보다는 통제를 위한 수단이 되었다. 분모를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분자, 백분율이 지니는 무소불위의 힘, 표본 추출방식의 오류, 사회적 현상을 둘러싼 예측의 결과 및 한계, 마치 인간의 불편한 진실을 보는 것과 같은 통계 속의 거짓말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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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배반]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장의 배반 -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존 캐서디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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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심리 개선으로 오를 것 같아 보이지 않았던 뉴욕증시가 3년 9개월 만에 13,000을 돌파했다. 유럽의 위기와 고유가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지만 분위기는 한층 업그레이드된듯하다. 하지만 미국이 다시 한 번 패권을 잡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다수의 경제전문가들조차 향후 미국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 인종문제등 여전히 풀리지 않은 정책들이 산재해있으며 금융 산업은 위기 전에 비해 더욱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계경제는 유럽의 위기에 주목한다. 서브프라임 위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또 한명의 학자가 위기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에 나선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아서래퍼, 키스 조지프 그리고 앨런 그리스펀과 이들의 주장을 절대화시켰던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 이들은 시장자유주의, 시장방임주의를 주장했던 대표적인 학자들이자 정치인들이다. 1970년대 이후 이들의 경제사상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전 세계경제의 바로미터가 되었다. 시장은 완벽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가정 하에 자유시장이론은 시장의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40년을 누려온 거대한 희망과 꿈은 거품이 빠지자 허망하게 사라져버렸다. 위기를 겪게 되자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앨런 그린스펀은 국회 청문회에서 그의 이데올로기가 그토록 잘 맞아떨어질 줄 생각조차 못했다고 진술하며 위기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믿음에 결함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경제학자인 존 캐서디는 애덤스미스의 이론을 중심으로 펼쳐진 자유시장가들의 이론을 유토피아 경제학이라 명명 지으며 이들이 추구하고자했던 자유 시장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 하에 출발했다고 비판한다. 철저한 시장위주의 경제정책 하에서 기업과 개인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들이 중심으로 삼았던 이론이 일반균형이론이다. 하지만 일반균형이론은 자유시장이 지니고 있는 독점적 시장지배와 대중의 사회적 욕구에 대해선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위기는 그린스펀의 말대로 충격이 아니라 잘못된 경제정책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사례로 위기 전 증후를 예로 들며 대부분의 사고는 상상력의 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말한다.

 

최근 경제학은 다니얼 카너먼이 주창한 행동 경제학이 대세다. 행동경제학은 애덤스미스의 고전적인 경제학적 인간의 개념이 아닌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행동을 통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이다. 위기를 단순히 외부적인 요인으로만 치부한다면 경제학의 실체를 이끌고 있는 인간의 오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행동경제학뿐만이 아니라 시장의 가설을 실패로 이끈 ‘시장 실패 경제학’ 또는 ‘현실 경제학’을 중심으로 죄수의 딜레마와 합리적 비합리성을 예로 든다. 특히 기업들이 어떻게 고객들을 희생시키고 이익을 추구하는지에 집중하며 대표적인 시장의 실패를 언급한다. 그는 여전히 권위적인 경제학자들이 유토피아 경제학에 묻혀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실체적인 경제는 인센티브에 의해 좌우된다. 유토피아 경제학이 이론상으론 완벽하지만 인간의 속성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것처럼 현실경제학 역시 문제 하나하나의 이해관계를 풀어나가야할 과제가 남게 된다. 경제학자들은 왜 문제를 어렵게 풀어가려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손도 위대하지만 대중들이 아는 경제학은 베일에 가린 채 권위를 앞세우는 권력과 다르지 않다. 시장의 논리란 결국 시장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공포의 순간에 시장의 원리를 따르는 기업과 개인은 가장 힘없는 이들일 뿐이다. 시장은 이미 배반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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