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 남과 다른 나를 찾는 자기 발견의 기술
윤태익 지음 / 더난출판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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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특별할 것 같았던 ‘판박이’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책, 연필, 책받침까지 판박이는 자신을 알리는 독특한 상품이었다. 지나고 보면 추억이라 하지만 우리의 학창시절만큼 특징이 없었던 시대가 있었을까? 같은 머리, 같은 교복, 같은 책가방, 누구나 할 것 없이 같은 검정신발을 신었던 당시, 보잘것없었던 판박이가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나만의 독특함을 가지고 싶었던 조그만 욕망이었다. 그런데 판박이는 말 그대로 똑같은 모양과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독창적이고 싶다는 이유로 판박이를 붙이던 당시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어색한 웃음이 지어진다.

현대사회에서 특별한 외모는 성공을 부여잡은 확실한 선택이다. 얼마나 외모에 서러움이 많았으면 그토록 많은 이들이 성형수술에 목을 매는 것일까? 그런데 외모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일까? 특별한 외모를 기대하는 것은 대중이다. 대중의 눈과 귀에 민감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외모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외모가 바뀐다고 성격까지 바뀔까? 혹자는 성격도 바꿀 수가 있다고 하지만 성격은 개인의 타고난 성품이다. 외적인 부분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만 개인의 내면까지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의 인생은 자신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흔히 말하는 성격대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행복의 기준을 자신의 성격에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준, 즉 대중의 성격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면서 행복해 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리 경제적 풍요를 보장해준다고 해도 타고난 성격과 반대되는 일이라면 그는 평생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행복의 기준은 다른데 왜 사회는 행복은 같은 것이라 구속하는 것일까?

한국정치가 대중에게 보여주는 가장 큰 모순점은 자신만 옳다는 것이다. 최근의 선거분위기 역시 이와 다르지 않는데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들의 자만심은 청소년들에게 적지 않은 폐해를 끼친다. ‘틀리다’는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틀림이 곧 성공이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틀리다는 많은 이들에게 허탈함과 비관적인 사회분위기를 전달한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힘든 이유도, 누군가 진실을 말 하려해도 거짓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이유도, 이미 상대는 틀렸다는 고정관념이 자신의 내면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틀리다는 스스로를 괴롭게 만든다. 자신도 누군가에겐 틀린 존재로 비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린 다양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회에 살고 있다. 남과 나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다.

‘나답게’는 자신의 성격을 찾아가는 자기발견의 기술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본 모습은 특정한 성격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만큼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도 없지만 자신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저자는 9가지의 키워드로 인간의 성격을 구분 짓는다. 개개의 형마다 무척 다른 특징들이 있다. 이렇게 다른 점이 많은데도 같은 조건을 부여한다면 필히 좋지않은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정형을 알고 자신에 맞는 옷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소비한다. 소비는 재생산되고 가치는 업그레이드된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임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추종하는데 열심이다. 맹목적인 인생은 과거 우리들이 입었던 검정교복과 다를 리 없다. 마치 교복위에 판박이를 한다고 새로운 교복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자신을 알아가는 진정한 모습은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가벼운 여행길에 한발자우 들여놓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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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아름다운 가치사전
박원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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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저마다의 기준이 있지만 무엇에 어떤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도 달라집니다. 시민운동가로 알려진 박원순씨가 야권 통합 서울시장후보로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명도가 그리 높지 않은 시민운동가가 보수층이 두터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는데 그는 안철수씨와의 통합을 통해 자신의 낮은 지지율을 폭발적으로 상승시켰습니다. 이는 우리사회에 보기 드문 통합선례를 남겼는데 지지율이 50%가 넘는 이가 5%의 지지를 받는 상대에게 시장후보를 양보한 초유(?)의 사건이었습니다. 시민들은 무척 신선한 자극을 받았고 정치권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안철수씨가 박원순씨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그렇게 쉽게 양보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안철수씨는 박원순씨의 어떤 부분 때문에 시장후보를 양보했을까요? 아직은 미정이지만 이미 정치판의 거목으로 성장하고 있는 두 분의 만남은 향후 한국정치를 새롭게 변화시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박원순씨는 희망제작소라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면서 시민운동과 인권운동가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중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즐기는 그가 서민의 고통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는 사실입니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를 받고 다각적인 사업을 펼쳐 수익을 창출하는데 많은 이들에게도 좋은 영감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재야권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의 가치와 철학이 궁금합니다. 무릇 사람은 자신이 성장해온 과정과 경험을 통해 삶의 철학을 완성합니다.

최근 한국사회는 다양한 정치적 용어가 실험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센델교수의 ‘정의’가 세간의 관심을 끌더니 최근엔 월가에 대한 ‘분노’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둘의 공통점은 대중의 관심입니다. 박원순씨는 정의를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신의 몫이라고 말합니다. 정의는 개인이 사회에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입니다. 그런데 우리사회엔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보단 기득권층에 기대거나 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법이나 권력을 훨씬 선호합니다. 평등한 조건에서 정의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원순씨는 ‘정의로움은 마땅히 옷을 벗어야 할 때, 기꺼이 옷을 벗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빽빽한 스케줄, 거의 쉴 틈이 없는 이들은 새벽에 출근해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옵니다. 이토록 열심히 하건만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 많아도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시간들이라는 생각뿐, 그렇다보니 자유는 방종이 되고 삶은 수동적이 되어갑니다. 바로 우리 아이들입니다. 세상은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한다면서 온통 그들의 틀로 꽉 채워놓았습니다. 무엇을 위한 그릇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똑 같은 그릇들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창의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야 만들 수 있습니다. 채우고 채운 것은 지식이 아니라 점수를 위한 암기일 뿐입니다.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어른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일을 하지요.’ 창의는 우리의 현실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통념으로부터의 자유, 자기만의 우주, 빈 종이에 그림을 그려 본적은 언제쯤인가요?

박원순씨는 정의, 상상, 함께, 겸허, 놓음이라는 주제로 가치사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가 상상하는 사회는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한국사회는 부자도 가난한자도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쁘게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혹 누군가의 발길을 잡기라도 한다면 무척 화를 내곤합니다. 우린 공감과 배려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여유마저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는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개인의 가치철학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는 것일까? 뚜렷한 소명의식이 앞길을 밝히고 있다면 행복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그가 전달하는 20가지의 메시지를 생각하면서 혼탁한 정치판에 뛰어든 박원순씨의 선전을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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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드 스크린 -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바꾸는 모바일 혁명
척 마틴 지음, 장세현 옮김, 박재항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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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애플의 아이 폰이 한국에 상륙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삼성전자는 극도의 위기감을 표출한다. 혁신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애플제품이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봐야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즉각 반격에 나섰지만 스티브가 이끄는 애플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IT 업계에서 2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플은 태블릿 PC를 처음 개발한 기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써드 스크린 시대를 알린 기업이다. 소비자들은 애플을 통해 감각적인 디자인과 개인적 감성 그리고 새로운 변혁이라는 주제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애플만의 독특함과 특별함에 열광했다.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가 PC 혁명을 일으켰듯이 스크린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세상은 아주 빠르게 새로운 변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스마트 폰은 스크린 혁명의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1세대 스크린이라 불리는 TV의 등장과 함께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TV는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근 100년간 산업구조 와 인간사회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인터넷은 TV에 버금갈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방관자에서 참여자로의 전환은 지금까지의 비즈니스 모델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TV와 PC는 여전히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PC를 구입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제 3번째 스크린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써드 스크린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계획된 마케팅? 모든 기업들은 모바일의 새로운 혁신을 준비해야한다.

세상은 스마트 폰에 열광한다. 손안의 컴퓨터라는 스마트 폰은 사무실이나 방안에서만 하던 업무를 밖으로 끌어냈다. 우린 시간과 공간에 구여 받음에 없이 어디에서나 업무를 보고 있다. 스마트 폰의 가장 큰 특징은 ‘탈구속화’ 일 것이다. 그동안의 마케팅이 기업이나 정부의 일방적인 전달수준이었다면 스마트 기기로 무장한 소비자들은 저마다의 방어책(?)을 가지고 그들의 일거수를 감시한다.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무한정 열려있다. 스마트 시대를 받아들이는 기업과 관료집단의 이해가 변화하는 사회를 인식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써드 스크린은 모바일 시대를 예고한다. 앱으로부터 위치기반까지,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던 수많은 비즈니스 모델들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본 책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모바일 시대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한 전략적 마케팅 방법을 다루고 있다. 우선적으로 모바일 시대에 대한 이해다. 이미 휴대전화 사용률은 전 세계 인구를 능가한다. 지구촌은 실시간으로 오픈되어있으며 이는 비즈니스를 찾는 기업들에게 가장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모바일 시대를 이끌어가는 선두주자는 지속적인 상승을 가져갈 가능성이 많다. 2등은 없다는 IT 기업의 특성은 모바일 시대에서도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대가 인류에게 주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다양한 기기의 발전과 더불어 편안한 생활도 보장이 되겠지만 모바일을 새로운 혁명으로 부가한 이유는 ‘시간에 대한 변화’때문이다. 이젠 ‘실시간’은 기본이다. 모바일은 ‘올 더 타임’을 외치고 있다. 특히 위치기반 서비스는 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사회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IT기기가 어디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불규칙적인 인간의 사고를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과거 개인의 패턴을 분석하면 상당 부분은 가능하다고 한다. 모바일은 이러한 패턴을 분석하고 결정하는데 가장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우리의 일상이 데이터화 된다는 것이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비즈니스 모델로선 최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OFF가 없는 세상, 써드 스크린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게임을 즐기는 아이로부터 실시간으로 정보를 찾는 부모들까지, 우린 분명 변혁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그렇다고 TV나 인터넷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 역시 자체적으로 모바일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할 것이다. 써드 스크린은 분명 우리의 일상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이젠 스마트 폰을 전화기로만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직은 단순한(?) 기능에 불과하지만 스마트 폰의 미래는 인류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감각적인 스크린으로부터 모션, 3D, 4D까지, 움직이는 스크린을 잡는 개인이나 기업만이 최고의 위치에 설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모바일을 통한 새로훈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 써드 스크린, 변화의 핵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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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팽이 - 1세대 콘텐츠 리더 최신규의 문화콘텐츠 현장 이야기
최신규 지음 / 마리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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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아 팽이를 돌리던 시절, 팽이는 무척 귀한 장난감 이었다. 워낙 인기가 좋아 동네마다 팽이대회가 열릴 정도였는데 형형색색 칠을 한 팽이들이 자태를 뽐내곤 했다. 당시엔 누가 어떤 팽이를 가지고 있는지도 무척 큰 관심사였다. 팽이를 치는 가장 큰 즐거움은 상대와의 치기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멋진 팽이기술을 선보이는 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외줄타기 기술은 가히 압권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팽이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아이들은 혼자 하는 게임에 빠져들었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팽이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탑 블레이드와 함께 팽이가 부활했다. 그런데 이번엔 플라스틱에 요란한 치장을 한 팽이다. 팽이채는 모터를 돌리는 채로 바뀌었고 크레파스나 물감으로 색칠을 했던 팽이의 자태는 다양한 금속들이 부착되었다. 탑 블레이드가 특별한 것은 하나의 팽이만으론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팽이 하나하나에 이름을 달고 이야기를 넣으니 콘텐츠가 되었다. 처음엔 두 개, 그리고 하나씩 모으다 보면 어느새 열 개가 훌쩍 넘는다. 팽이 부대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떤 팽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기분까지 좌우된다. 팽이와 자신을 일체화하는 순간이다. 탑 블레이드는 과거 로버트 태권브이가 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듯이 아이들의 마음과 행동을 고스란히 사로잡아 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한물간(?) 팽이가 그토록 인기를 얻게 된 것일까? 팽이 콘텐츠의 주인공은 손오공 대표인 최신규님이다. 흔히 그를 1세대 콘텐츠 리더라 부른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콘텐츠의 중요성이 대중에게 알려졌으니 이미 80년대부터 다양한 콘텐츠 문화를 접한 저자는 그야말로 한국 콘텐츠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력은 보잘 것(?)이 없다. 뛰어난 학문적 업적이나 지식이 뒷받침되어야하는 콘텐츠 업계에서 초등학교 중퇴는 그야말로 경이적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는 그가 이루어낸 결과만을 가지고 논할 때다. 우린 진정한 그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무일푼이었던 그가 어떻게 세계를 호령하는 콘텐츠 업계의 CEO로 우뚝 설수 있었을까?

‘멈추지 않는 팽이’는 최신규님의 자서전적인 성공스토리다. 그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저자만의 생각) 어머니 뒤를 쫒아 다녔던 어린 시절을 유독 강렬하게 기억한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 그는 배고픔과 외로움을 이길 용기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었다. 그에게 어머니는 돈을 벌고 인생을 성공해야할 유일무이한 이유였다. 그의 10대 시절은 당시의 보통 아이들과도 판이하게 달랐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그를 반겨준 것은 아무데도 없었지만 그는 즉시 삶의 현장으로 뛰어든다. 당시엔 취업에 나이제한이 없었다고 한다. 금을 녹여 귀금속을 만드는 곳은 그의 첫 직장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불평 한번 하지 않고 허드렛일을 했지만 결국 의심을 받고 그만두게 된다. 당시 그는 극심한 배신감과 실망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고진감래’란 그가 느꼈을 세상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덕에 그에겐 빠른 성공이 찾아온다.

그에겐 독특한 인생철학이 있다. ‘살아생전에 성공은 없다’ 라는 것이다. 한 번의 성공이 인생을 바꿀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인생을 보장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마지막 순간에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를 평가받기를 원한다. 현재의 모습은 그저 일순간일 뿐이다. 일상의 생각이 인생을 지배한다는 그의 철학은 왜 그가 항상 쉬운 길보다는 험난하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다른 하나는 한번 믿음을 준 사람은 끝까지 믿는다는 것이다. 일본 다카라 완구업체 사장과의 일화는 비록 순간적으로 상대기업이 어려움에 처해있을지라도 자신이 받은 은혜를 지속적으로 베푼다는 그만의 상도덕문화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최근에 불고 있는 콘텐츠 바람이 순간적인 미풍이 아니길 바란다. 콘텐츠는 단기간에 승부가 나는 사업이 아니기에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적 미학을 지닌 우수한 콘텐츠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시장을 만들 수 있다. 특히 그가 주목하고 있는 곳은 완구와 만화,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데 묶는 분야다. 콘텐츠의 성공은 문화의 지형까지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폭발적이다. 다양한 조건과 IT기기들의 발전이 빠르게 대중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어린 시절 겪었던 그의 수많은 추억과 경험들이 알알이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된다면 그의 인생은 바람대로 영원히 멈추지 않는 팽이가 될 것이다. 이제 그의 제2막 인생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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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상상에 빠진 인문학 시리즈
벵자맹 주아노 지음, 신혜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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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포털의 가장 인기 있는 주제는 ‘성형’일 것이다. 마치 판박이를 찍어내듯이 얼굴을 바꾸는 연예인들의 모습에서 성형은 사회의 가장 민감한 주제로도 변신한다. 우린 마치 미인과 미남을 위한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잘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보면 외모에 대한 문제는 아주 깊숙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미에 대한 기준이 현대문화의 상징인 것만은 아니다. 고대로부터 미, 특히 아름다운 얼굴은 역사를 바꿔놓을 만큼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해왔다. 그런데 왜 우린 아름다운 얼굴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미에 대한 신화는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얼굴에 관한 신화는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의 얼굴에 반해 나르시스에 빠졌다는 나르시스 정도만 알까? 얼굴은 내면적인 심리만큼 인간세상의 금지된 욕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얼굴은 다양한 형태로 인간의 고뇌를 표현해 왔다. 마음은 속일 수 있어도 얼굴은 속일 수 없다는 옛 속담은 다양한 얼굴의 모습이 어떻게 역사를 변화시켜왔는지를 기억해낸다. 결국 얼굴은 인간의 내면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상징인 것이다.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는 얼굴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얼굴은 단지 형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얼굴과 함께한 눈, 코, 귀, 입들의 조화에 따라 얼굴의 상징성이 달라진다. 저자는 얼굴은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이라 표현한다. 상징은 말 그대로 사회나 문화를 대표하는 화두다. 이러한 화두가 인간의 역사를 만들었듯이 얼굴엔 개인이나 집단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린 스티브 맥커리의 ‘푸른 눈의 아프간 소녀’ 이라는 작품을 기억하고 있다. 검은 망토를 둘러쓴 소녀의 모습이 왜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일까? 작가는 전쟁이라는 참상을 얼굴로 표현했다. 흔히 전쟁에 얽힌 이야기들이 파괴라면 얼굴이 전쟁을 상징한다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 요소다. 무표정한 소녀의 푸른 눈 속엔 분노가 들어있다. 얼굴이 상징한다는 것을 이보다 더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현대사회에 성형이 유행한다고 이를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얼굴을 봐주는 사람이 있기에 성형을 하는 것이지 봐주는 이가 없다면 누가 성형을 하겠는가? 얼굴만큼 인간의 사회성을 가로막는 것도 없지만 얼굴 때문에 팔자 좋은 인생을 구가하는 이들도 많다. 얼굴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사회적이다. 이러한 상징이 결국 얼굴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놓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얼굴은 얼굴일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얼굴도 상징성을 잃어버리면 가장 추한 얼굴이 되고 만다. 얼굴 속에 감춰진 가면이 우리에게 어울리는 이유도 이중적인 잣대로 세상을 저울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상에 빠진 인문학은 사유의 폭을 넓혀준다. 인간사회에 인문학이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상상력이 부족한 인문학은 답답하고 딱딱하기만 하다. 역사와 사회, 문화를 알아가는 과정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매일 바라보는 얼굴 또한 신체적 욕망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상의 교차로에서 바라본 우리의 욕망은 얼굴에 쓰인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고 보면 위인들이 남겨놓은 두상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최고의 산물이 아니던가?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그 특별한 만남을 시도해보자.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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