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팽이 - 1세대 콘텐츠 리더 최신규의 문화콘텐츠 현장 이야기
최신규 지음 / 마리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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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아 팽이를 돌리던 시절, 팽이는 무척 귀한 장난감 이었다. 워낙 인기가 좋아 동네마다 팽이대회가 열릴 정도였는데 형형색색 칠을 한 팽이들이 자태를 뽐내곤 했다. 당시엔 누가 어떤 팽이를 가지고 있는지도 무척 큰 관심사였다. 팽이를 치는 가장 큰 즐거움은 상대와의 치기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멋진 팽이기술을 선보이는 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외줄타기 기술은 가히 압권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팽이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아이들은 혼자 하는 게임에 빠져들었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팽이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탑 블레이드와 함께 팽이가 부활했다. 그런데 이번엔 플라스틱에 요란한 치장을 한 팽이다. 팽이채는 모터를 돌리는 채로 바뀌었고 크레파스나 물감으로 색칠을 했던 팽이의 자태는 다양한 금속들이 부착되었다. 탑 블레이드가 특별한 것은 하나의 팽이만으론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팽이 하나하나에 이름을 달고 이야기를 넣으니 콘텐츠가 되었다. 처음엔 두 개, 그리고 하나씩 모으다 보면 어느새 열 개가 훌쩍 넘는다. 팽이 부대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떤 팽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기분까지 좌우된다. 팽이와 자신을 일체화하는 순간이다. 탑 블레이드는 과거 로버트 태권브이가 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듯이 아이들의 마음과 행동을 고스란히 사로잡아 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한물간(?) 팽이가 그토록 인기를 얻게 된 것일까? 팽이 콘텐츠의 주인공은 손오공 대표인 최신규님이다. 흔히 그를 1세대 콘텐츠 리더라 부른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콘텐츠의 중요성이 대중에게 알려졌으니 이미 80년대부터 다양한 콘텐츠 문화를 접한 저자는 그야말로 한국 콘텐츠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력은 보잘 것(?)이 없다. 뛰어난 학문적 업적이나 지식이 뒷받침되어야하는 콘텐츠 업계에서 초등학교 중퇴는 그야말로 경이적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는 그가 이루어낸 결과만을 가지고 논할 때다. 우린 진정한 그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무일푼이었던 그가 어떻게 세계를 호령하는 콘텐츠 업계의 CEO로 우뚝 설수 있었을까?

‘멈추지 않는 팽이’는 최신규님의 자서전적인 성공스토리다. 그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저자만의 생각) 어머니 뒤를 쫒아 다녔던 어린 시절을 유독 강렬하게 기억한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 그는 배고픔과 외로움을 이길 용기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었다. 그에게 어머니는 돈을 벌고 인생을 성공해야할 유일무이한 이유였다. 그의 10대 시절은 당시의 보통 아이들과도 판이하게 달랐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그를 반겨준 것은 아무데도 없었지만 그는 즉시 삶의 현장으로 뛰어든다. 당시엔 취업에 나이제한이 없었다고 한다. 금을 녹여 귀금속을 만드는 곳은 그의 첫 직장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불평 한번 하지 않고 허드렛일을 했지만 결국 의심을 받고 그만두게 된다. 당시 그는 극심한 배신감과 실망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고진감래’란 그가 느꼈을 세상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덕에 그에겐 빠른 성공이 찾아온다.

그에겐 독특한 인생철학이 있다. ‘살아생전에 성공은 없다’ 라는 것이다. 한 번의 성공이 인생을 바꿀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인생을 보장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마지막 순간에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를 평가받기를 원한다. 현재의 모습은 그저 일순간일 뿐이다. 일상의 생각이 인생을 지배한다는 그의 철학은 왜 그가 항상 쉬운 길보다는 험난하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다른 하나는 한번 믿음을 준 사람은 끝까지 믿는다는 것이다. 일본 다카라 완구업체 사장과의 일화는 비록 순간적으로 상대기업이 어려움에 처해있을지라도 자신이 받은 은혜를 지속적으로 베푼다는 그만의 상도덕문화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최근에 불고 있는 콘텐츠 바람이 순간적인 미풍이 아니길 바란다. 콘텐츠는 단기간에 승부가 나는 사업이 아니기에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적 미학을 지닌 우수한 콘텐츠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시장을 만들 수 있다. 특히 그가 주목하고 있는 곳은 완구와 만화,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데 묶는 분야다. 콘텐츠의 성공은 문화의 지형까지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폭발적이다. 다양한 조건과 IT기기들의 발전이 빠르게 대중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어린 시절 겪었던 그의 수많은 추억과 경험들이 알알이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된다면 그의 인생은 바람대로 영원히 멈추지 않는 팽이가 될 것이다. 이제 그의 제2막 인생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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