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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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주는 서정성 때문에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 역시 단편소설인 줄 알았다면 손에 대지 않았을 책, 그러나 소설집을 읽는 동안 내내 나의 편협한 취향이란 것에, 편협한 사고라는 것에 대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지~ 한다.

작가 오현종이란 사람도 남자인 줄, 게다가 장편인 줄 알고 간만에 우리 소설 좀 보자 했다.

'부산에서',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연금생활자와 그의 아들', 난장이의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 모든 것이 붕괴되기 이전에', '약의 역사', '호적을 읽다' 총 8편의 소설집이다.

쉬운 우리글, 것두 여류작가, 것두 최신.. 고전소설을 읽느라 쓰는 에너지의 반의반만 써도 되는 것, 그래서 어쩌면 여운도 반의반만 될 수도 있음을 무릅쓰고라도 나는 의무적으로 우리 소설을 읽으려 든다. 때로는 아쉬움도 격려로 내 스스로 위로할 줄도 알면서...

여덟 편의 소설은 모두 사소한 사연, 그러나 있을 법한, 아니면 꿈에서라도..

모두 외롭고 침잠해 있다. 그리고 작가의 소설을 향한 향수를 닮은, 아니 작가의 페르소나 같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래서 수필 같기도 하고, 자전적 소설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를 미루어 짐작해본다. 내가 처음 접하는 작가를..

등장인물들은 성장을 멈춰버린 사람들 같기도 하고 성장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현시대의 잉여인간들처럼 시스템이 그러해서 그리 사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을 선택해서 그리 살지도 모른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른을 훌쩍 넘겨도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만 한다. 부모는 짝을 잃어도 오래 살지도 모른다. 부모의 늙음을, 아픔을 지켜봐야 하는 시간이 매우 길어질지도 모른다. 많이는 배웠지만, 평생의 직업이란 어렵다. 그런 세대들의 이야기이다.

화려하지 않고, 차분한 문체이지만 힘이 있고, 여운이 있다. 좋아하게 될 것 같은 작가이다.

[부산에서] 대학도 나오고 실력도 있지만 서른이 넘어도 아직 아무것이 되지 않았으면서도, 무엇이 될 여지도 물 건너간듯하면서, 그래도 소망하는 소설가가 될지도 모르는.. 한 번쯤 낯선 지역에서 1년을 살고, 게다가 바닷가고, 이런 신분이라 이런 도전이 가능한 그런 정서가 그립다. 못해봐서 그립다. 익숙해서 쉬이여기고 산, 사람들, 삶들이 낯섦으로 더 애틋해지고 굳이 멀다 않고 찾게 될 수도 있는 그런 .. 그래서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면..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 스물 언저리를 지나온, 남친을 군대 보내본 사람이라면 공감이 되는,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가 어느 나이가 되고 군대를 간다는 것, 보낸다는 것, 가족으로 나서든, 친구로 나서든, 애인으로 나서든, 그런 생경함 속에 불안과 불면이 애틋하고 가슴 시리다. 안그래도 그 나이는 충분히 시린나이이다.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이 서정이 듬뿍 묻어나는 제목은 노래의 가사이다.

결혼을 앞둔 대기업 남자와 중학교 여선생이 연애 끝 설렘보다 불안 앞에 놓인다.

악몽.. 어쩜 이성 간 설렘의 끝은 불안인 건가, 헤어짐이 아닌 연애의 끝은 불안인 건가, 결혼이라는 미지의 세계는 개척할 가치가 있는 건가, 그렇게 자주 연애를 하고,

그렇게 오래 노골적으로 연애를 하기도 하면서, 그 목표가 결혼이며 그런 과정이라는걸, 벗어나고픈 걸까, 도망치고 싶은 걸까.. 결혼 않고 연애만 해도 된다면 것도 허무하다. 인생이 허무한지도 몰라, 무모한 건지도 몰라서 해보는 걸지도.

[연금생활자와 그의 아들] 연금을 타는 혼자된 아버지의 집에 아직도 얹혀살면서 경제적 독립도, 정서적 독립도 하지 못한, 아니 하지 않는 연극배우 아들의 삶, 어머니라는 존재의, 아내라는 존재의 부재로 인한 시간과 공간들 속에서 화해해 가는 .. 먹먹함이 동떨어지지 못해서 더 먹먹하게 다가온다.

[난장이의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 이 할머니를 어쩌나, 나도 늙으면 이 할머니 같은 위인이 될지도 몰라, 모든 걸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내 방식대로 위로하면서 꼬장꼬장해지고, 각자의 어른 노릇에 여념 없이 바쁜 자식들의 부재와 무관심에 이렇게 될지도 몰라. 너무도 미운 이 노인네가 또 너무 공감 돼서 안쓰럽다는

[모든 것이 붕괴되기 전에] 결국은 닮아, 유전의 힘, '부산에서'의 임시 강사 딸과 아버지, '연금생활자와 그의 아들'에서의 아버지와 배우 아들, 그리고 피규어를 모으는 아버지와 그를 원망하는 아들.. 그래서 무섭다. 나를 이세상에 나오게 한것도, 나에게 이런 영향을 미친것도, 모두 아버지 당신이잖아, 그래서 멈춰보려고..나를.

 

 

- 그날 밤도 나는 불을 끄고 서재에 누워 오만 가지 기억을 더듬어나갔다. 아파트 앞 동에서 유리창을 넘어온 불빛이 낡은 책등을 어스름히 비췄다. 어둑한 서재에 누워 있어도, 이른 아침 발코니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청사포를 응시하고 있어도, 생각의 좌표는 어김없이 서울에 고정돼 있었다. 내가 만약, 이란 후회가 오가고 나면 누군가 미워죽겠는데 그 대상이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아 괴로웠다. 내 손바닥의 손금처럼 아꼈던 사람들, 나를 알았던 사람들. 누구지? 누구지? 미운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막상 얼굴을 헤아려보면 다 빠져나가고 없어서 나만 술래로 남겨졌다. 나를 미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도로 다른 얼굴을 뒤적여보아도, 그들의 이목구비가 달아나버려 달걀처럼 텅 빈 얼굴만 남았다. 기다리다 지친 잠이 다가들어 그때까지 한 생각을 죄다 훔쳐가 버리곤 했다. 13-14



-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없고, 때로는 그 미래를 알면서도 그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으니까. 우리는 늘 그렇게 어리석고, 그래서 운명을 피해 가지 못하는 법이란 걸 적어도 나는 알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그런 사람들 편에 오래오래 서있고 싶었다.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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